불편한 편의점 (벚꽃 에디션) 불편한 편의점 1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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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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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책을 읽고 나서, 너희들이 읽을 만한 책들을 추천해 주는 경우가 있었지. 그런데 거꾸로 너희들이 아빠에게 추천하는 책들은 거의 없었어. 그런데, 어느날 Jiny가 책 한 권을 읽고 정말 재미있다고 했지. 그 책의 제목은 <불편한 편의점>. 아빠도 인터넷 서점에서 서핑하다가 자주 본 책이었지. 그렇게 재미있어? 아빠도 한번 볼까?. 하고 그 책을 빌렸잖아.

코로나 밀접 접촉자로 분류되어 방에 혼자 자체 격리하고 있을 때라서 아빠도 그 책을 앉은 자리에서 다 봐버렸단다. 재미도 재미지만, 정말 따뜻한 소설이더구나. 지은이는 김호연이라는 분인데

<이중간첩>이라는 영화 시나리오를 쓰기도 하셨대. 그 밖에 <망원동 브라더스> 등 장편 소설로 유명해지셨다고 하는데, 아빠는 이번에 읽은 <불편한 편의점>에서 처음 알게 된 분이란다. 나중에 김호연 님의 다른 소설들도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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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이용한단다. 아빠도 자주 이용을 하지. 늦은 밤 갑자기 뭔가 먹고 싶을 때도 찾아갈 수 있는 편의점. 24시간 내내 문을 열고 있어서 왠지 든든한 느낌. 그런 편의점에는 일하는 사람으로, 손님으로 하루에도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겠지. 그 사람들의 따뜻한 사연들을 한 권에 담은 것이 바로 <불편한 편의점>이라는 소설이란다.

염영숙 여사는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던 선생님이셨는데 지금은 은퇴를 했어. 평생 함께 하던 남편이 죽고 남긴 유산으로 서울시 용산구 청파동에 조그마한 편의점을 냈어. 배려심이 많으셔서 편의점 직원들도 잘 대해주었어. 편의점은 하루 여덟 시간씩 세 사람이 나눠서 일하고 있었어. 아침 시간에는 오여사(본명: 오선숙)이라는 아줌마가 일하고, 오후부터 저녁까지는 시현이라는 시험 준비생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야간에는 50대 성필씨가 맡고 있었단다. 그리고 염여사에게는 말썽쟁이 아들과 똑소리 나는 딸이 하나 있었어.

어느날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지방을 가는데, 평택 부근을 지날 때 파우치를 분실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얼마 뒤 어떤 사람이 그 파우치를 주었다는 전화가 왔단다. 부랴부랴 다시 서울역으로 돌아오니 독고라는 노숙자가 보관하고 있었어. 심지어 그 파우치를 훔치려는 다른 노숙자들로부터 그 파우치를 지키기까지 했어. 독고 씨는 답례를 받으려고 하지 않았어. 그래서 염여사는 독고 씨에게 고맙다면서 서울역에서 가까우니 자신의 편의점에 와서 도시락을 먹으라고 했단다. 그래서 독고 씨는 그 편의점에서 와서 도시락을 먹기는 하는데, 팔 수 없는 폐기된 도시락만 먹었어. 그렇게 독고 씨는 노숙생활을 하지만 심성은 착했단다.

알고 보니 독고 씨는 알코올성 치매가 있어서 자신의 이름도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도 기억을 못한다고 했어. 독고라는 이름도 자신의 이름이 아니고 남들이 그렇게 불러서 독고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했어.

그러던 어느날 야간 일을 맡던 성필씨가 그만두고 말았어. 염여사가 임시로 야간 일을 맡았는데, 야간 시간은 여자 혼자 맡기 부담스러운 시간대였단다. 역시나, 술 취한 젊은이들이 편의점에 와서 난동을 부렸어. 염여사가 당황하고 있는데, 그때 독고 씨가 나타나서 그 젊은이들을 한방에 정리해 주었단다. 그런 모습뿐만 아니라 독고 씨의 심성이 착하다는 걸 알고 있는 염여사는 독고에서 야간 시간대 편의점 일을 제안했단다. , 술을 끊어야 한다고 했어. 그렇게 독고 씨는 편의점 일을 하게 되었단다.


2.

시현이가 독고 씨의 편의점 일을 배우게 되었는데, 시현이가 편의점 일을 설명을 차분히 잘 해주기도 했지만, 독고 씨도 정말 열심히 배웠어. 남들보다 빨리 일을 익혀서 이젠 노숙자가 아닌 편의점 직원으로 열심히 일했단다. 독고 씨는 손님들에게도 싹싹하게 잘 해 주었어. 불량 청소년들한테도 잘 해주고, 동네 할머니들한테도 잘 해주어서 편의점 매출이 오르기도 했단다. 그리고 자신의 시간이 끝났음에도 퇴근하지 않고, 편의점 주변 청소를 하는 등 한참 동안 일을 도와주었어. 그리고 독고 씨는 시현에게 제안 하나를 했어. 자신에게 편의점 일과 장비 사용법 등을 유튜브에 올려보라고 제안했어. 그 제안을 솔깃하여 시현은 편의점 일하는 사람을 위한 가이드를 동영상으로 만들어 유튜브에 올렸단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그 영상을 보고 자신의 편의점의 점장을 맡아달라고 연락이 왔어.. 시현은 이것이 자신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염여사에게 그만두겠다고 했고, 마음씨 착한 염여사는 진정으로 축하해주었단다. 그리고 당분간 편의점 일은 오여사와 독고 씨가 이교대로 하기로 했어.

독고 씨는 이 일을 좋아하고 오여사는 돈이 필요해서 그렇게 하겠다고 했단다. 오여사도 말썽쟁이 다 큰 아들이 있었어. 대기업을 다니다가 때려 치고 영화를 하다가 돈을 말아먹고 집에 처박혀 게임만 하는 그런 아들이었어. 이 이야기를 들은 독고 씨는 오여사에게 한가지 조언을 해주었어. 편지를 쓰고 아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한번 들어보라고 했어. 그 조언의 효과가 만점인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

오여사뿐만 아니라 독고 씨는 손님과도 정을 쌓았단다. 의료기기 영업 사원으로 일하는 경만 씨. 쌍둥이 딸들은 점점 커져 돈 쓸 일은 많아지고, 수입은 그대로고 나이 들어 체력도 떨어지고, 우울한 날들의 계속이로구나. 유일한 낙이 퇴근길 편의점에서 먹는 참참참(참깨라면, 참치김밥, 참이슬). 그를 유심히 보던 독고 씨는 경만 씨에게 술을 끊고, 옥수수 수염차를 권했단다. 자신도 술을 끊고 옥수수 수염차를 먹는데 좋다고

….

인경 씨는 30대 후반으로 연극 배우를 은퇴한 작가 지망생이었어. 어찌 어찌하여 등단을 했지만 이후 작품은 없었어. 편의점 앞 선배의 빌라에서 3개월만 빌려 생활하기로 했는데, 편의점 직원 독고 씨를 만나면서 그를 캐릭터로 한 희곡을 구상했단다.


3.

민식 씨는 앞서 소개한 적이 있는 염여사의 말썽쟁이 아들이었단다. 이혼하고 혼자 살고 있고, 이런저런 사업을 시도했지만 잘 안됐어. 이번에는 후배가 수제맥주 사업을 하자고 제안을 했는데, 수제맥주 사업을 하려면 자금이 필요하고 그럴려면 편의점을 처분해야만 했어. 엄마를 설득해야 하지만, 엄마 말고 그의 일을 방해하는 독고 씨가 있었어. 독고 씨는 민식 씨가 하려는 일이 사기 당하기 딱 좋다고 생각을 했던 거야. 그러자 민식 씨는 독고 씨의 뒷조사를 시켰어. 그 일을 흥신소 곽이라는 사람이 했는데, 독고 씨가 어느날은 어떤 성형 외과에 들어갔다고 나오는 것이었어. 독고 씨가 다녀가고 나서 흥신소 곽은 성형 외과에 가보았더니, 독고 씨는 예전에 그 병원에서 의사를 했었던 거야.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사실 그 즈음 독고 씨는 알코올로 지워졌던 기억을 하나 둘 되찾게 되었단다. 그리고 그 기억을 더듬어 자신이 일했던 곳을 알게 된 것이었어. 그래, 독고 씨는 성형외과 의사였던 거야. 독고 씨는 서서히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고, 이름도 알게 되고, 가족이 있다는 것도 기억하게 되었단다. 그가 다니던 병원에서 의료사고로 사람이 죽고 본인이 그런 것도 아닌데도 죄책감 때문에 술로 나날로 보내고, 가족에 소홀해지면서 집을 나가 노숙 생활을 하게 되고 기억까지 잃게 되었던 거야. 하지만 착한 본성까지는 변하지 못했던 것이지그 착한 본성을 염여사가 알아보고 도와주게 된 것이고

기억을 되찾은 독고 씨는 의료사고 죽은 이가 잠들어 있는 추모 공원에 가서 진심으로 사과를 했단다. 그리고 편의점은 그만두고 새로운 신종 바이러스인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고 있는 대구로 의료 봉사를 가기로 했단다. 더불어 대구에는 아내와 딸이 있는데, 그들에게도 용서를 빌고 화해를 할 생각도 갖고 말이야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어. 시작에도 이야기했지만 참 따뜻한 소설이었어. 등장인물 모두 악한 사람들은 없고 마음씨 따뜻한 사람들만 나오고이런 사람들이 많으면 우리 사회는 더 따뜻한 사회가 될 것 같구나. 이 소설의 마지막에 독고 씨가 코로나가 유행한 대구로 의료봉사 가는 장면이 있는데,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나라에 처음 생겼을 때 생각나는구나. 신천지라는 종교 단체 때문에 코로나가 대구와 경북 지역만 극성이던 시절그때만 해도 길어야 몇 달 고생하면 잠잠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2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코로나가 여전할 것이라 생각도 못했지. 이제 코로나가 일상이 되어버린 세상이 되었어.

Jiny, 좋은 책 추천해 주어 고마워~


PS:

책의 첫 문장: 염영숙 여사가 가방 암에 파우치가 없다는 걸 알았을 때 기차는 평택 부근을 지나고 있었다.

책의 끝 문장: 눈물이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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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NOON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외 지음, 황현산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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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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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NOON 세트 여덟 번째 책은 바로 도스또예프스키의 <백야>라는 중편이란다. 출판사 열린책들은 도스또예프스키에 진심인 출판사란다. 도스또예프스키 전집 시리즈를 다양한 판본으로 여러 번 냈으며 작년에는 도스또예프스키 탄생 200주년 판본으로 무지막지한 양장본까지 출간했으니 말이다. 아빠도 이 기념판을 샀는데, 아직까지는 장식용으로 제 몫을 잘 하고 있단다. 그렇게 도스또예프스키에 진심인 열린책들에서 기념판에 도스또예프스키를 빼놓을 수 없지.

그의 수 많은 작품 중에 <백야>라는 중편 소설이 열린책들 35주년 기념을 함께 했단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도스또예프스키는 대표작 몇 편 읽은 것이 전부이지만, 호감이 가는 작가라서 언젠가는 그의 작품들을 하나씩 찾아 읽을 생각이란다. 이번에 읽은 <백야>는 중편의 사랑이야기로구나. 책의 속지에 제목이 적혀 있는 페이지에 제목 아래 감상적 소설, 어느 몽상가의 회상 중에서…”라고 적혀 있었단다. 이 말이 소설의 성격을 한 마디로 설명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 자신을 몽상가라고 생각하는 라는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전개되는 소설이란다.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하다 보니 주인공에 더 쉽게 감정 이입할 수 있었어. 아빠도 소설을 읽는 동안은 사랑에 빠진 몽상가가 되어 보았단다.


1.

주인공 는 뻬제르부르크에 살고 있는 26살 남자란다. 소위 숙맥이었으며, 사랑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했고, 고백 조차 한번 해보지 못했단다. 스스로 자신이 몽상가라고 생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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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이 모퉁이에는 이상한 사람들, 즉 몽상가들이 살고 있습니다. 몽상가, 좀 더 자세히 정의하자면 그는 인간이 아니라, 그러니까 이를 테면 무슨 중성적인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대체로 다른 사람이 근접할 수 없는 구석에 정착합니다. 마치 한낮의 햇빛까지도 피하려는 듯이 그 속으로 기어드는 거죠. 그리고 일단 자신의 안식처에 숨어들면 달팽이처럼 아예 자기 구멍에 찰싹 들러붙습니다. 적어도 이 점에서 그는 생물이자 동시에 집이기도 한 저 흥미로운 동물, 거북이라 불리는 것과 유사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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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길을 걷다가 울고 있는 한 여인 나쓰쩬까를 보게 된단다. 그런데 그 나쓰쩬까가 불한당에게 곤경에 처하게 되는데, ‘가 나쓰쩬까를 구해주게 되는 인연으로 말을 섞게 되었단다. 그리고 는 나쓰쩬까를 첫눈에 반해서 고백까지 하였단다. 하지만, 나쓰쩬까는 사랑은 안 된다, 친구로서는 만나겠다 이렇게 선을 그었어.

사실 나쓰쩬까가 울고 있던 이유가 있었어. 1년 전 모스크바로 떠난 남자친구와 1년 뒤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했는데, 그 날이 바로 약속한 날이었고, 남자친구가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아서 울고 있었던 것이란다. 그런 상황에서 사랑고백을 받았으니 나쓰쩬까 입장에서도 에 호감이 있더라도 의 고백을 바로 받아줄 수는 없었지. 아무튼 그들은 그렇게 친구가 되었단다. 다음날도 만나기로 약속을 하는데, ‘는 들뜬 상태로 나쓰쩬까와 만날 것을 기다렸단다.


2.

다음날 다시 만나 그들은 많은 이야기를 나눈단다. ‘는 자신이 살아왔던 이야기를 하고 몽상가로 외로웠던 지난 날에 솔직히 이야기도 했어. 나쓰쩬까는 자신이 함께 해주겠다면서 위로해 주었단다. 그러면서 자신의 이야기도 꺼냈단다. 그러면서 에게 오빠와 같은 입장에서 조언을 해달라고 했어. 나쓰쩬까는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었대. 2년 전에 새로운 하숙집 주인이 왔는데, 그 하숙집 주인은 무척 젊은 사람이었고, 나쓰쩬까는 그 하숙집 주인과 사랑에 빠지게 된 거야. 그랬다가 앞서 이야기했듯이 모스크바로 가게 된 것이고.. 이런 사연을 에게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그러면서 1년이 지나고 약속한 날로부터 3일이 지났는데, 아직 연락이 없다면서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이야기를 했어.

는 그녀에게 편지를 써보라고 조언을 해주었단다. 속으로 계속 나쓰쩬까가 마음이 바뀌어 자신을 사랑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는 얼마나 조마조마 했을까. 나쓰쩬까는 의 조언에 따라 편지를 썼지만 그 이후에도 연락이 없었어. ‘와 나쓰쩬까는 매일 밤 만났는데 네 번째 되는 날, ‘는 다시 고백을 했어. 친구가 아닌 연인이 되고 싶다고 말이야. 나쓰쩬까는 더 이상 남자친구를 기다릴 수 없다면서, ‘의 사랑 고백을 받아주었어. 그러면서 둘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까지 이야기를 했단다. 하지만, 그때 놀랍게도 모자이크에 갔다고 한 나쓰쩬까의 남자친구가 나타났어. 나쓰쩬까는 를 외면하고 그 남자친구에게 가버렸단다. 그래, 그 남자친구가 빨리 나타나서 다행일 수도 있겠구나. 더 늦게 나타났더라도 나쓰쩬까의 선택은 같았을 것 같구나. 그나마 아픔이 적은 게 에게 낫지

그렇게 헤어지고 며칠 뒤, 나쓰쩬까로부터 편지가 왔어. 결혼한다고. 용서해달라고. 고맙다고. 앞으로 친 오빠처럼 사랑해 달라고. ‘는 나쓰쩬까를 원망하지 않았단다. 그리고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스쩨까 덕분에 지극한 행복을 느낀 것으로 만족했단다. 진정 몽상가라면 그 순간의 행복으로 오랫동안 버틸 힘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 주인공 에게 다시 사랑이 찾아올까 궁금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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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그러니까 나쓰쩬까, 너는 내가 모욕의 응어리를 쌓아 두리라 생각하는가! 내가 너의 화사하고 평화스러운 행복에 어두운 구름을 드리우게 할 것 같은가, 너를 신랄하게 비난하여 너의 심장에 우수의 칼을 꽂을 것 같은가, 너의 가슴이 비밀스러운 가책으로 고통받고 행복의 순간에도 우울하게 고동치도록 만들 것 같은가, 네가 사랑하는 이와 함께 제대(祭臺)를 향해 걸어갈 때 너의 검은 고수머리에 꽂힌 저 부드러운 꽃 중에 단 한 송이라도 나로 인해 구겨져 버리게 할 것 같은가…… , 천만에, 천만에! 너의 하늘이 청명하기를, 너의 사랑스러운 미소가 밝고 평화롭기를, 행복과 기쁨과 순간에 축복이 너와 함께하기를! 너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득 찬 어느 외로운 가슴에 행복과 기쁨을 주었으니까!

, 하느님! 한순간 동안이나마 지속되었던 지극한 행복이여! 인간의 일생이 그것이면 족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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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소설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이 어느 정도 다 들어간다고 하는데, 지은이 도스또예프스키 자신의 젊은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것인지 궁금하더구나. 그래서 주인공 이름도 밝히지 않고 라고 했던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 말이야. 거장 도스또예프스키의 사랑 이야기, 재미있었단다. 오늘은 이상.


PS:

책의 첫 문장: 아름다운 밤이었다.

책의 끝 문장: 인간의 일생이 그것이면 족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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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강력한 프로이센 건설을 원하는 국왕의 의중을 파악한 비스마르크는 1862 9월 프로이센 의회에서 그 유명한 연설을 합니다. “프로이센은 자유주의, 민주주의가 아닌 무력을 더 중요시해야 한다. 의회의 다수결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독일의 통일은 철과 피를 통해서만 이룩할 수 있다라는 연설이었습니다. 여기서 철은 군대를 말하고 피는 군사의 희생을 일컫습니다. 이후 프로이센 국민들은 비스마르크를 철혈재상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50)

그리고 독일에게는 소위 슐리펜 계획이라는 전략이 있어서 나름 든든했답니다. 이 계획에 대해서 설명해보겠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독일은 동서 양쪽에서 프랑스, 러시아와 동시에 전쟁을 치르는 것이 최악의 시나리오였어요. 만일 프랑스와 러시아 양국과 동시에 전쟁을 치른다면 슐리펜 계획이란 전력 카드를 꺼내 쓸 계획이었습니다. 이 계획은 1891년 독일 참모총장에 오른 알프레드 슐리펜 장군이 고안이 작전입니다. 만일 프랑스와 러시아, 동서 양쪽에서 전쟁이 동시에 일어난다면 러시아는 땅덩어리가 워낙 넓어서 총동원령을 내린다고 해도 전쟁 준비를 하는 데 최소 7주 정도 걸린다고 계산했어요.


(60)

1차 대전이 발발한 1914년도 7월에서 시간이 흘러 어느 12 24일 크리스마스가 되었어요. 바로 이때 ‘1차 대전 전장의 기적이라 불리는 일이 일어납니다. 어김없이 총격적인 끝난 24일의 밤, 독일군 참호 안에서 조용히 크리스마스 캐럴이 흘러나왔어요. 병사들이 부르기 시작한 겁니다. 노래를 들은 반대 진영의 프랑스 영국군도 맞받아 캐럴을 부르기 시작합니다. 서로의 참호 속에서 참혹한 전쟁 중에도 그들에게 크리스마스가 온 것입니다. 누가 약속한 것도 아닌데 그들은 마치 휴전한 듯이 각자의 진영에서 무인지대로 걸어 나와 서로 악수하고 포옹하고, 사진도 찍고 음식도 나눠 먹었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만큼은 서로 싸우지 말자고 하면서요. 그야말로 크리스마스가 가져다준 기적이었습니다.


(92-93)

무슨 의도로 폭동과 쿠데타를 일으켰는지에 대한 질문에 히틀러는 재판정에서 특유의 연설을 시작했어요. ‘나는 개인의 야망을 위해 쿠데타를 한 것이 아니다. 지금 독일을 보라. 전쟁에서 패한 후 나라는 무너졌다. 독일 국민들은 먹을 것이 없어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하고 사는데 정치인이란 것들은 서로 권력 다툼만 하고 있다. 독일은 전쟁 전보다 더 혼란스러운 상황이 됐다. 나는 독일을 다시 위대한 독일로 만들고 싶어 봉기한 것이다. 독일 국민들을 위해 일어선 것이다!’라고 외쳤습니다. 이런 히틀러 법정 연설은 뉴스가 되어 독일 전역에 알려졌습니다. 당연히 독일 국민들은 열광했지요. 가뜩이나 패배감에 사로잡혀 살던 독일인들에게 구세주가 나타난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도대체 히틀러가 누구야? 이런 사람이 국가 지도자가 돼야지!’라며 열광했어요.


(128-129)

점점 죽음의 블랙홀로 변해가는 전투였습니다. 그리고 1942 11 19일이 되어 소련군은 새로 개발한 T-34 전차를 앞세우고 대대적인 반격에 들어갔습니다. 지원군이 도착한 겁니다. T-34 탱크를 처음 본 독일군 장교들은 경악했어요. 하드웨어를 살펴보니 독일의 그 어떤 기갑 부대 전차도 당해낼 수 없는 극강의 전투력을 지닌 전차였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이 T-34 전차는 소련을 구한 애국 전차라는 칭송을 받고 있답니다. 하지만 우리 한국에겐 트라우마를 안겨준 전차예요. 1950 6 25, 북한군이 바로 이 T-34 전차를 몰고 38선을 넘어와 한국전쟁이 일어났으니까요. 하여간 이 T-34 전차 덕분에 소련군의 대반격이 시작됩니다.


(210-211)

일본 정부는 끝까지 미국의 항복 제안을 완전히 무시합니다. 그러고는 소련에게 매달리기 시작해요. 소련에게 빨리 참전해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야 자신들이 신처럼 모시는 일왕을 계속 그 자리에 앉힐 수 있으니까요. 소련은 만주와 한반도 지배권 그리고 쿠릴 열도 진출 등을 목표로 태평양 전쟁 참전 여부에 대한 고민을 하던 중이었답니다. 소련은 이미 시작된 미국과의 경쟁에서 태평양 지역의 패권 확보를 위해서 그리고 만주와 극동 지역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태평양 전쟁 막판에 일본과의 전쟁에 뛰어듭니다. 결국 소련은 히로시마 원폭 투화 이틀 후인 1945 8 8, 일본의 소원대로(!) 일본에 선전포고하고 태평양 전쟁에 참전하죠. 그리고 결과적으로 미국과 소련의 한반도 점령, 38도 선으로 인해 남북한이 분단됩니다. 우리가 일본을 용서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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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주는 괴물들 - 드라큘라, 앨리스, 슈퍼맨과 그 밖의 문학 친구들
알베르토 망겔 지음, 김지현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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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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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인터넷 서점의 공식 블로그 알라딘 서재에서 한 때 알베르토 망겔이라는 분이 쓴 책들에 대한 포스팅이 한창 올라온 때가 있었단다. 아빠는 처음 보는 사람인데, 포스팅되는 글들을 보면 이 사람이 무척 유명한 사람이고, 책도 재미있게 잘 쓰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나중에 지은이 소개를 보니, 작가이자 번역가이자 편집자이자 비평가로 일하면서, 스스로 자신을 독서가로 소개한다고 하는구나. 그만큼 많은 책을 읽는 사람인가 보구나. 그래서인지 알베르토 망겔이 쓴 책들도 보면 책에 관한 책들도 많았어. 그래서 더욱 아빠의 구미를 당겼단다.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그의 책 두 권을 샀단다. 그 중에 한 권을 이번에 읽었단다. 끝내주는 괴물들. 제목부터 찬란하구나.


1.

그가 쓴 책들은 책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아서, 이번 책도 그런 종류의 책이라고 생각했고, 제목을 보고 추측하기로는 책 속에 나오는 괴물들만 따로 추려서 이야기를 해주는가 싶었단다. 그런데 괴물들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고, 지은이 알베르토 망겔이 뽑은(기준은 잘 모르겠지만) 문학 작품 속 37명의 캐릭터를 이야기하는 그런 책이란다. 그렇다고 주인공들만 추려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야. 문학 작품 속에 조연이나 까메오로 등장하는 그런 캐릭터들도 소개를 해주고 있단다. 아빠도 분명 읽은 책인데 그런 등장인물들은 잘 생각이 나질 않는 인물들도 소개를 주고 있단다.

첫 번째로 소개한 보바리 씨도 그런 사람 중에 한 명이었지. 보바리 씨는 아빠도 읽은 <보바리 부인>이라는 소설의 주인공 보바리 부인의 남편이란다. 그렇듯 익숙한 소설인데, 잘 기억나지 않는 등장인물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어 흥미로웠단다. 이 책이 아니라면 그 소설을 다시 읽더라도 관심을 두지 않을 사람들인데 말이야. 그렇다고 조연급들만 소개하는 것은 것은 아니고, 빨간 모자, 드라큘라, 로빈슨 크루소 등 주연급 캐릭터도 많이 이야기하였단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이야기할 때는 그 캐릭터들의 일반화 객관화되어 있는 의견들 말고, 자신만의 시각으로 그 캐릭터들을 설명하고 있었단다. 아빠가 그 캐릭터들의 일반화되고 객관화된 지식이라도 잘 알고 있어야. 알베르토 망겔가 바라보는 캐릭터의 주관적 설명과 어떻게 다른지 깨닫고 그의 생각에도 일리가 있어, 그렇게 생각할 텐데, 아빠가 알베르토 망겔이 소개하는 캐릭터들에 대해서 잘 몰라서 책을 읽는 재미가 반감된 것 같더구나. 아빠도 나름 책을 즐겨 읽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독서량은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2.

책을 읽다가 중반쯤 가다 보면 이 책에 소개된 37명의 캐릭터 중에 반가운 캐릭터가 한 명 나온단다. 아빠가 책 차례를 제대로 안보고 읽기 시작해서, 그 캐릭터가 나왔을 때 약간 놀라기도 했단다. 왜냐하면 그 등장인물은 우리나라 고전 소설 김만중의 <구운몽>의 주인공 성진이었거든. 아빠는 고등학교 때인가 교과서에서 일부 발췌된 것을 보고,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완독을 했었는데, 그 구운몽 속 주인공이 등장해서 반가웠단다. 알베르토 망겔은 어떻게 <구운몽>을 읽게 되었을까도 궁금하고, 그가 정말 많은 책을 읽는가 보다 하는 생각도 들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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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이 치정 모험극을 읽다 보면 우리가 현실 세계라고 생각했던 곳이 도리어 꿈같음을 암시하는 단어들이 많이 나온다. “눈은 두 귀보다 더 많은 진실을 봅니다.” 양소유는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들은 직후 귀신 행세를 하는 어느 미녀에게 속아 넘어간다. 그 미녀는 나중에 진짜 사람이었음이 밝혀지지만, 무엇을 무엇으로 속인 것인지는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 아가씨가 귀신인지, 귀신이 아가씨인지 말이다. 이후 그녀가 양소유에게 설명하기를, “사람과 귀신의 길은 각각 다르지만 사랑은 그 둘을 합칠 수 있지요.”라고 한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진실은, 감각적 세계는 비실재적이고 영혼의 세계야말로 실재적이라는 것, 전자는 환상에 지나지 않으며 오로지 후자야말로 의미 있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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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더 읽다 보니 <서유기>에 나오는 사오정도 이야기를 해주고 있단다. <서유기>에서 엉뚱함을 담당하는 사오정. 알베르토 망겔의 눈에는 사오정이 돈키호테와 비슷한 관점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고개를 마구 끄덕이게 하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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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

그러나 오늘날 독자들 중에는 모험으로 가득한 <서유기>의 세계에서 카프카의 악몽 같은 음울한 부조리성을 연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설령 관료제에 대한 풍자라고 해도 그것은 실존주의적인 의미에서 이해된다. 즉 위에서부터 내려온 규칙과 규정,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음에도 따라야 하는 법에 우리 존재가 얽매여 있다는 문제의식 말이다. 사오정의 동료들은 요괴와 신과 왕자들을 물리치기 위해 사이비 군사 전략을 동원하지만, 사오정이 제시하는 해결책들은 이성적이고 윤리적으로 반응하는 것만이 최선의 생존 전략임을 알려준다. 그는 도덕군자연하는 이들의 비위를 맞춰주는 위로가 아니라 올바른 것을 정직하고 강직하게 추구하는 기개를 전해준다. 사오정의 세계관에 입각해서 보면, 겉보기에 올바른 것이 실은 악으로 가는 길일 수 있고, 약하게만 보이는 것이 알고 보면 올바르고 참된 길일 수도 있다(돈키호테도 이와 같은 관점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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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 책에 소개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작품들 중에는 아빠가 읽지 않은 작품들이 읽은 작품들보다 물론 더 많았단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몇몇은 꼭 읽어봐야겠다는 소설들도 있었단다. 책을 덮고 나서 그런 생각을 해봤어. 아빠도 소설을 즐겨 읽는 편인데, 지금껏 읽은 소설 중에서 마음에 드는 등장인물들을 소개하라고 하면 누굴 뽑아야 하나지금껏 소설을 읽을 때 줄거리가 재미있네, 재미없네이러면서 책을 읽었지, 등장인물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가져보지 않았던 것 같구나. 심지어 무척 재미있게 읽은 소설들의 주인공 이름조차 생각나질 않는구나. 마음에 드는 캐릭터 10명만 뽑아봐라 해도 뽑지 못할 것 같구나. 한번 시간 내서 지금까지 읽은 소설 속 등장인물 중에 맘에 드는 인물 열 명을 한번 뽑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리고 앞으로 소설을 읽을 때, 등장인물들의 이름에 좀더 관심을 가지고 마음에 드는 등장인물이 나오면 그 이름을 따로 적어두면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나중에 어떤 소설에 나오는 아무개가 정말 멋지더라이렇게 너희들에게 이야기해줄 수도 있고 말이야.

오늘은 이만 마칠게. 안녕.


PS:

책의 첫 문장: 이건 어린이야!

책의 끝 문장: 어쩌면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피의 사도이자, 밤의 군주이며, 내밀한 침실에서 쉬는 이들의 잠 속에 침입하는 드라큘라 백작은 무덤으로 돌아갈 숙명을 지고 있음에도 죽을 수가 없다. 이 금제 앞에서는 반 헬싱 박사의 작전들도 힘을 잃는다. 작가가 직접 쓴 소설의 결말도 아무 소용이 없다. 십자가와 마늘도, 드라큘라를 두려워하지 않는 척하는 각종 패러디와 우화들도, 그의 존재를 부정하는 과학 법칙들의 엄정함도 마찬가지다. 드라큘라 백작은 이 모든 수법을 물리치고 반드시 돌아온다. 소설가와 영화 제작자들이 아무리 드라큘라라는 이름 대신 온갖 가명을 지어내도, 앤 라이스와 스테프니 메이어가 아무리 새로운 모험을 상상해내도, 막스 슈레크, 벨라 루고시, 톰 크루즈가 그의 외모를 아무리 다양하게 재구성해도 그의 존재는 그대로다. 우리는 드라큘라 백작이 이 암울한 시대에 필수 불가결한 괴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 P49

20세기 초에 조지 버나드 쇼는 돈 후안에 대한 희곡에서 자신만의 슈퍼맨을 창조했다. 쇼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정치적 역량을 키우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로 망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더 오래된 대안들이 실패하는 바람에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채택하게 된 제도다. 독재주의는 유능하고 자비로운 전제군주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실패했다지만, 인구 전체가 유능한 투표자여야 하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돌아갈 가능성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쇼의 친구이자 적수였던 G.K. 체스터턴은 슈퍼맨에서 더 깊은 진실을 알아차렸다. 비인간적이고 초자연적인 연약함이 그것이다. - P78

돈 후안은 연인이라기보다는 유혹자이고, 유혹자라기보다는 수집가이며, 수집가라기보다는 저격수에 가깝다. 돈 후안과 일견 유사해 보이는 다른 바람둥이 인물들은 명확한 목적에 따라 애정 행각을 벌인다. 대개는 <위험한 관계>의 혐오스러운 발몽이라든지 사드의 우화에 나오는 음흉한 주인공들처럼 사악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돈 후안은 다르다. 그의 행각에는 동기가 완벽하게 결여되어 있다. 이 유명한 바람둥이가 육체적 쾌락을 누리기는 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다. - P86

고대인들은 괴물들과 교제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존재에 책임감을 느꼈다. 미노타우로스는 파시파에의 욕정 때문에 태어났고, 인어들은 뱃사람들이 금단의 영역을 넘어가지 못하게 막으려고 생겨났다. 역사학자 폴 벤느는 "당연히 고대인들은 신화를 믿었다!"고 말하면서도, 그렇다고 그들이 신화를 진실이라고 생각했느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한다. "진실이란 권력을 향한 의지로부터 우리를 갈라놓은 얇은 막 같은 집단적 자기만족이다." - P145

책은 네모를 지식으로 안내하고 인류 공통 경험의 견본들을 보여주었지만, (독서가들이라면 알다시피) 책이란 한 권이든 1만 2천 권이든 간에 읽는 사람이 선택한 길만을 비춰줄 수 있다. 책은 독서가에게 어떤 의무적인 목표를 정해줄 수도, 심지어 특정한 방향을 강요할 수도 없다. 훗날 베른은 <신비의 섬>에서 자신의 아나키스트 주인공이 환멸 속에서 패배를 인정하는 이야기를 썼다. "고독, 고립…… 이런 것들은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슬픈 일이로구나. 나는 혼자만의 삶이 가능하리라 생각했던 탓에 죽는구나!" 네모는 고통스러워하며 토로한다. -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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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또 나는 부모 형제가 뭐라고 잔소리를 해도, 단 한 번도 말대꾸를 한 적이 없습니다. 별것 아닌 잔소리가 내게는 날벼락처럼 강력하게 느껴지고, 미쳐 버릴 것만 같아서 말대꾸는커녕 그 잔소리야말로 영원히 변하지 않는 인간의 <진리>라는 게 틀림없다, 나는 그 진리를 행할 힘이 없으니 더는 인간과 함께 살 수 없는 게 아닐까, 하고 믿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나는 말다툼도 자기변명도 하지 못했습니다. 누가 혼을 내면 내가 더없이 그른 생각을 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언제나 그 공격을 두말 않고 받아들이면서 속으로는 머리가 돌아 버릴 정도의 공포를 느꼈습니다.

 

(17)

나는 인간에 대한 공포감에 늘 버들버들 떨면서, 또 인간으로서의 자기 언행에 조금도 자신감을 갖지 못한 채 온갖 고뇌를 가슴속 작은 상자에 숨기고, 그 우울과 긴장감을 기를 쓰고 감추며, 오로지 천진난만한 낙천성을 가장하면서 점차 광대 짓만 하는 기괴한 사람으로 완성되어 갔습니다.

 

(94)

나는 신도 두려웠습니다. 신의 사랑을 믿지 못하고, 신의 벌만 믿었습니다. 신앙. 그것은 그저 신의 대답을 얻기 위해 고개 숙이고 심판대에 오르는 일처럼 생각되었습니다. 지옥은 믿을 수 있었지만, 천국이 존재한다는 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었습니다.

 

(96)

세상이란 대체 무엇인가요. 복수(複數)의 인간을 말하는 건가요. 그 세상이라는 것의 실체가 어디에 있는지요. 아무튼 강하고, 엄하고, 무서운 것이라고만 여기며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호리키가 그렇게 말하니 불쑥, <세상이란 게 당신 아닌가> 하는 말이 혀끝까지 나왔지만, 호리키의 화를 돋우고 싶지 않아 다시 삼켰습니다.

 

(101)

세상. 어째 나도 이제는 그것을 어슴푸레 알아 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개인과 개인의 싸움이고, 그 자리에서의 싸움이며, 그 자리에서 이기면 된다. 인간은 절대 인간에게 복종하지 않는다. 노예조차 노예다운 비굴한 보복을 한다. 그러니까 인간은 그 자리에서 단번에 이기지 않고는 살아남을 방법이 없다. 대의명분 따위를 내세우지만 노력의 목표는 반드시 개인, 개인을 뛰어넘고 또 개인, 세상이 난해한 것은 개인이 난해한 탓이요, 너른 바다는 세상이 아니라 개인이다>라는 생각으로, 세상이라는 너른 바다의 환영에 떨던 두려움에서 다소는 해방되어 예전만큼 이것저것 끝없이 마음을 쓰는 일 없이,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얼마간 뻔뻔하게 해동하는 것을 배우게 된 것이지요.

 

(134)

죽고 싶다, 차라리 죽고 싶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무슨 짓을 해도, 뭘 해도, 더 심해질 뿐이다. 수치에 수치를 더할 뿐이다. 자전거를 타고 새싹이 푸르른 폭포에 가는 일 따위는 도저히 바랄 수 없다. 추악한 죄에 천박한 죄가 겹쳐 고뇌만 늘어나고 강렬해질 뿐이다. 죽고 싶다, 죽어야 한다, 살아 있는 게 죄의 원천이다. 그러나 생각만 그렇게 치달았지 몸은 여전히 아파트와 약국 사이를 반미친 꼴로 오간 뿐이었습니다.

 

(138)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거의 얼이 빠지고 말았습니다. 아버지가 이제 없다, 내 가슴속에서 한시도 떠나지 않았던 그 그립고 무서운 존재가 이제 없다고 생각하니, 내 고뇌의 항아리가 텅 비어 버린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내 고뇌의 독이 유난히 무거웠던 것도 아버지 탓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의욕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고뇌할 기력마저 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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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4-29 1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홀릭님 곧 열린책들 35주년 세트 완독하실거 같아요~!!

bookholic 2022-04-29 23:08   좋아요 1 | URL
ㅎㅎ 네... 이제 다섯권 남았습니다~~~
시간이 휙휙 지나가네요....
새파랑 님, 즐거운 주말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