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무지개 모양을 여러번 그리면서
시스티나 성당에 다시 가서 미켈란젤로의 천정화를 다시 한 번 더 볼 기회가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인파에 밀려 있는대로 고개를 쳐들고 감상하면서도 그렇게 목이 아팠는데 그 천정화를 어찌 그렸나 싶은게 ... 그 혼잡한 잠시간의 순간에도 감히 인간의 영역이 아닌 듯한 감동이 밀려왔던 기억이 생생하다.
짜증과 절망이 섞인 미켈란젤로의 편지들에는
˝결과도 없이 시간만 낭비하고 있어...... 신이시여, 도와주소서!˝가 제일 자주 눈에 띈다.
그는 이 말을 얼마나 자주 했을까!
만일 어떻게든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에 가까이 다가갈 수있다면, 미켈란젤로가 그랬듯이 높게 쌓아 올린 비계 위에 서서 턱을 치켜들고 설 수 있다면 거장이 하루에 얼마만큼의 작업을 했는지 정확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P279
매일 아침 미켈란젤로와 그의 조수들은 새로 바른 회반죽이 마르기 전에 그날 완성해야 할 부분에 대한 밑작업을 했다. 이것을 이탈리아어로 ‘하루의 ‘일‘이라는 뜻의 조르나타giornata 라고 하는데 시스티나 예배당의천장화는 사실 이렇게 작고 불규칙한 모양의 작은 성취들이 경계선이 거의 보이지 않는 모자이크처럼 모여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비스듬히 누워 있는 아담은 조르나타 네 개, 팔을 뻗고 있는 신도 조르나타 네 개 조각들을 세어보면 미켈란젤로가 붓과 물감통과 모래, 회반죽 자루를 가지고 흙손(이긴 흙이나 시멘트 등을 떠서 바르는 연장-옮긴이)으로 그 높은 곳에서 570일을 보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P280
메트에서 열린 전시는 좀 더 아담한 규모지만 내게는 거장의 작품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 는 기회다. 전시물은 미켈란젤로의 70년 커리어 전반에 걸친 133점의 소묘작품들로, 대부분이 아무에게도 보여줄 의도가 없었던 습작들이다. 전시는 <미켈란젤로 신이 내린 소묘 화가이자 디자이너>라는 제목을 내걸었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그 주인공이 하나의 인간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미켈란젤로는 자신을 예술사 최고의 거장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날마다 그날 해야 할 일을 마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데 더없이 전념했기 때문이다. - P280
4년의 작업 끝에 천장화가 완성되자 "온 세상이 그 작품을 보려고 몰려오는 소리가 들린다"라고 그의 동시대인은 전하지만미켈란젤로는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 "그동안 그려오던 예배당천장화 작업을 끝냈습니다. 교황이 매우 만족했습니다"라고 그의 아버지에게 편지로 전했을 뿐이다. 그런 다음 덧붙였다. "다른 일들은 바랐던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건 제가 시대를 잘못 타고 난 때문인 듯합니다. 지금은 제가 하는 예술에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시대예요." - P287
오늘날 우리는 이 호의적이지 않은" 시대를 하이 르네상스High Renaissance혹은 전성기 르네상스라고 부른다. - P287
그가 대성당의 거대한 돔 지붕을 그린 가로세로 25센티미터가량의 종이를 들여다본다. 로마의 지붕들 위로 높이 솟아오른 돔을 짓는 것은 초인간적인 능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고, 바로 그래서 우리가 미켈란젤로라는 인물이 초인간적인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는 인상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소박한 그림에서 그는 그저 무지개 모양을 거듭해 그리면서 마음에 드는 곡선을 찾으려 하고 있다. 아무리 위대하다 칭송을 받는 그일지라도 결국 어린아이 같은 연습 과정을 건너뛸 수는 없는 사람인 것이다. - P290
나는 돔 그림이 있는 방에서 나와 그가 노년에 진행한 또 다른 프로젝트였지만 죽을 때까지 완성하지 못했던 피에타상의스케치를 찾아 나선다. 종이 한 장에 80대 노인의 떨리는 손으로 그린 다섯 점의 습작이 담겨 있는 작품이다. 작고 치열하며솔직한 느낌의 그 그림들에서는 그가 자신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가라고 의식을 한 흔적은 손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80대에 접어들어서도 미켈란젤로는 사소한 실수로 성베드로성당의 완공이 늦어지게 된 일로 크게 자책했다. "수치심과 슬픔으로 사람이 죽을 수 있다면 나는 이미 죽었을 것이다"라고 그는 당시를 기록했다. - P291
다섯 점의 스케치 중 두 점은 그가 결국 만들어낸 조각과 비슷하다. 수직으로 서 있다시피 하는 숨을 거둔예수와 그의 무거운 시신을 받치고 있는 어머니 성모 마리아의모습이다. 미켈란젤로는 처음에는 듬직한 근육질로 예수의 몸을 조각했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돌을 깎아나가 마침내 수척하고 쪼그라들어서 묘하게 현대 인상파 조각 느낌이나는 예수의 모습을 만들어냈다. 1490년대에 제작된 그의 <피에타Pietà〉(미켈란젤로의 걸작이며 피에타의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가된 작품 -옮긴이)가 거장의 명성에 걸맞는 걸작이라면 이 <론다니니 피에타 Pietà Rondanini(미켈란젤로의 유작이며 성 베드로 대성당의〈피에타>와는 달리 성모가 예수를 선 채로 끌어안고 있는 구도 때문에축 늘어진 예수의 몸이 부각되어 더 처연한 느낌을 자아낸다 -옮긴이)에서는 고통과 내밀한 슬픔이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 P292
사랑과 경건함 그리고 기진맥진한 몸과 마음을 표현한 그 소묘들을 다시 바라본다. 그리고 머리와 심장의 요구에 손으로 부응하려 애를 쓰며 하얀 종이 앞에 구부정한 몸으로 앉아 있는 노인을 상상한다. 미켈란젤로를 미켈란젤로로 만드는 건 그다음에 그가 한 일이다. 습작을 해본다음 그는 일어나서 그 스케치를 현실화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그는 죽기 며칠 전까지도 말을잘 듣지 않는 대리석을 망치와 끌로 두드리고 있었다. - P29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