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아나로 가는 길>
로버트 바이런Robert Byron
1933년부터 1934년까지 약 10개월간 팔레스타인, 시리아, 이라크, 페르시아, 아프가니스탄을 여행하고 1937년 베이징에서 이 책을 완성했다.
그는 비잔틴과 이슬람의 역사뿐 아니라 건축과 예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다.

베네치아 하면 먼저 떠오르는 기억..
산 마르코폴로 광장 근처 아케이드에서 팔찌 사다 사기 당할뻔한 기억.. 지나고 생각하면 웃음만 ..ㅎ



베네치아 Venice
ㅡ1933년 8월 20일
2년 전 주데카Giudecca에 있는 펜션에 머물렀을 때와는 달리 이곳은 즐거움으로 가득하다. 오늘 아침 우리는리도Lido에 갔다. 총독궁(베네치아 산 마르코폴로 광장에 있는 두칼레 궁을 가리킨다)은 곤돌라에서 보는 것보다 쾌속정에서 보는 것이 더 아름다워 보였다. 바람 없는 잔잔한날, 유럽에서 해수욕을 하는 것은 분명 최악이다. 물은 시가의 끄트머리가 떠다니는 입속의 뜨거운 침과 같고 해파리 떼가 몰려 있다. - P13

리파가 저녁 식사를 하러 왔다. 버티는 모든 고래는매독에 걸린다고 말했다. - P13

ㅡ8월 22일
곤돌라를 타고 산 로코San Rocco 대회당으로 갔다.
거기서 틴토레토 Tintoretto‘의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Crucifixion을 보고 숨이 멎을 만큼 감동했던 사실을 완전히잊고 있었다. 레닌의 이름이 적힌 오래된 방명록은 치워졌다. 리도에는 산들바람이 불었고 바다는 거칠고 시원했으며 쓰레기는 없었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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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출판인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독자를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획득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독자가책을 계속 읽을 수 있도록, 더불어 문해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겠지요. 높은 문해력을 가진 독자를 수백 명 수천 명 만들어 내어 그들이 지갑을 열고 처음 책을 구매할 때 그 선택을 받는 책을 만드는 것. 그것이 출판인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P210

‘출판 비즈니스‘라는 것이 성립하려면 읽는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만들어 내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 P210

...  누군가 재미없는 이야기를 할 때 다른 쪽을 쳐다보는 일, 그런 행위는 힘이 셉니다. 대세에 반기를 드는 행위에는 굉장한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친구 말을 잠시 빌리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홀로 총을 쏘며 이 세상에 나 홀로 있다고 생각할 때 멀리서 총성이 들리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는데, 바로 그런 겁니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이 함께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면 용기를 얻게 되지요. - P215

출판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출판에 길이 있다면 저 먼 어딘가에서 같은 적에 맞서 싸우는 사람과 연대하는것, ‘싸우는 소수‘와 연대하는 것, ‘마이너리티‘를 갖는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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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종이책보다 더 나은 것을 발명하지 못했다
/내 손으로 책을 만들수 있다는 발상... 재밌겠다.
정말로 아무 것도 읽을 것이 없다면..?
내가 쓰고 책을 만들면 된다. 그것을 읽으면 된다.
간단하네!

제가 책이 굉장하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1995년한신 대지진 때였습니다. 아파트가 기울 정도의 재난 상황이었으니 가구는 전부 다 넘어지고 당연히 책장도 넘어졌습니다. 철로 만든 책장은 엿가락처럼 휘어져서 전부 버렸습니다. 그런데 책은 무사했습니다. 표지가 파손된 책은 있었지만, 제본이 흩어지거나 찢어져서 읽지 못하게 된 책은 수천 권의 장서 중 한 권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대체로 꽂아 둔 대로 바닥에 떨어졌으니 책을 금방찾을 수 있었습니다. 책장을 새로 사서 책을 원래 자리에꽂는 작업도 간단했죠. 대학 연구실의 책장은 붙박이장이라서 책만 바닥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더군요. 이것도 몇 시간만에 원래대로 돌려 놓을 수 있었습니다. - P113

우리 집은 다행히 곧 전기가 들어와서 불빛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설령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도 종이책은낮이라면 자연광만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전자책이라면 전기가 없으면 끝입니다. 그래서 전기가 들어올 때까지 읽을 수 없습니다. 만약 장기간 정전 상태가계속된다면 인프라가 부활할 때까지 수 주간, 수개월 책없이 생활해야 합니다. 저처럼 활자가 없으면 살아 있는느낌이 들지 않는 사람에게 아주 괴로운 일입니다. - P114

그때 종이책은 정말로 ‘위기에 강하구나‘ 하고 
절실하게 생각했습니다. 홍수가 와서 책이 다 젖어도 말리면읽을 수 있습니다. 물론 화재로 타 버리면 끝이긴 합니다만 그것 이외의 자연재해에는 강합니다. - P114

게다가 전자책은 손으로 만들 수 없지만 종이책은스스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시중에서 팔리는 책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요. 하얀 종이에 연필이든 펜이든 문자를 써서 그것을 철하면 ‘책과 같은 것‘을 만들 수있습니다. 정말로 아무것도 읽을 것이 없다면 저는 아마도 책을 쓸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읽을 겁니다. 다른 사람이 읽어 주는 일도 가능합니다. 원한다면 손수 만들 수있다는 것도 종이책의 최대 강점이죠.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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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도서관에 관하여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
공공도서관 사서들의 연차 총회에서 도서관의 역할에관한 제언을 듣고 싶다고 요청해 주셔서 강연을 했습니다. 그때 규슈의 어느 시립도서관 이야기를 했습니다. - P19

그 도서관은 민간업자에게 업무를 위탁한 곳이라,
업자는 제일 먼저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던 귀중한 향토사 자료를 폐기하고 본인 소유 회사의 불량 재고였던 쓰레기 같은 고서를 구입하는 용서할 수 없는 일을 했습니다. 그렇게 도서관의 학술적인 분위기를 해쳤음에도 도서관에 카페를 들이는 등 세상의 유행을 따르다 보니 고객 만족도가 높아져 도서관을 찾는 사람이 두 배가 되었습니다. - P19

민간 위탁을 추진한 시장은 "봐라, 내 말대로 됐지?" 하고 의기양양했고요. 도서관의 사회적 유용성을방문자 수나 대출 도서 권수 등의 수치로 판단하는 것은아무리 봐도 수요와 공급의 관계만을 중시하는 시장 원리주의자의 발상으로 보입니다. - P20

그때 문득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라는 말이 무심결에 입 밖으로 튀어나왔습니다(정말로 문득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 "정말로 그렇네. 왜 도서관은 사람이 별로 없어야 도서관다울까?" 하는 생각에 잠겨서 강연 내내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 P20

제가 그동안 방문한 도서관이나 도서실 가운데 지금까지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는 곳은 모두 사람이 거의없는 곳입니다. 제가 가기 전에는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은 듯한 고문서를 노트에 필기하며 읽던, 어스레하고 고요한 파리 국립도서관 열람실, 오래된 문서를 장시간 심취해서 읽었던, 석양이 들이비친 로잔 올림픽 박물관 도서실. 문헌을 찾느라 몇 시간이나 보냈던 도쿄도립대학도서관의 싸늘한 폐가 서고. 저에게 ‘정겨운 도서관‘은모두 사람이 거의 없는 공간이었습니다. 아마도 사람 없고 조용한 공간이 아니면 ‘책‘이 저를 향해 신호를 보내는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나기 힘들기 때문일 테죠. 정말로 그렇습니다. - P21

책이 저를 향해 신호를 보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고요한 도서관에서 서가 사이를 돌아다닐 때 그런 일이 일어나지요. 그럴 때면 제가 이 세상을 전혀 모른다는 사실에 압도당하고 맙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서가의 거의 모든 책을 저는 읽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책의 99.999999퍼센트를 저는 아직 읽은 적이 없습니다. 그 사실 앞에서 망연자실해집니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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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비싼 독> 제3권 ~제4권

칼을 숨겨놓은 지점에 다다르기 전에 난 뒤처졌고, 들판 출입구에서 다시 따라잡았다. 안으로 들어가니 끔찍한 싸움이벌어지고 있었다. 겨우 시간에 맞춰 도착한 것이다. 그림블의 개만 남은 상황이었다.
우리가 다가갈 때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가 그림블의 개를묶는 데 성공한 것이다. 곧바로 함성이 또 터졌다. 그리고 개에게 목을 물린 그의 모습(오, 내 사랑!)이 내 눈에 들어왔다. - P231

내가 그림블의 어깨를 움켜쥐며 말했다.
"개를 떼어내!"
그림블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일 초만 더 그러고 있으면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이 끊어질 것이었다.
난 앞으로 뛰어나갔다. 지금껏 어떤 생명도 일부러 해한 적이 없는 나였지만, 그리고 그 커다란 짐승이 그 사람의 목에 이빨을 박은 채 뒷발로 일어섰지만, 난 달려가 그 심장 깊숙이 칼을 찔러 넣었다. - P232

말로 설명하는 시간보다 더 빠르게 불이 타올랐다. 생명의 불꽃을 유지하기 위해 케스터의 입속으로 브랜디를 약간 흘려 넣은 뒤 캠릿 씨가 물린 상처를 불로 지졌고,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며 케스터가 깨어났다. 까무러친 상태라 마음의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 P232

"자, 자. "내가 말했다. 고통스러운 비명이 내 심장을 관통했다. "자, 다 되었어요! 이제 누구도 당신을 건드리지 않을 거예요"
캠릿 씨가 그의 상처에 붕대를 감았고, 난 찬물로 그의 얼굴을 닦아준 뒤 브랜디를 좀 더 주었다.
"상처가 깊진 않아요." 캠릿 씨가 말했다. "하지만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늦었을 리가 없어요." 내가 말했다. "오늘 내가 이 사람의수호천사니까요." - P233

"네가 그 사람 목숨을 살렸어. 정말이야, 프루. 
그런 일은 살면서 본 적이 없어! 우리가 들판 출입문을 막 들어섰는데, 저멀리 네가 보이는 거야. ‘말도 안 돼!‘ 내가 말했지. 그 말과함께 막 뛰었어. 잰시스도 뛰고, 근데 우리가 닿기 전에 네가그 개를 끝장내버렸어 상 받을 만해, 프루!" - P233

"얘야, 그 사람이 널 만난다면, 그리고 내가 생각한 그런 사•람이라면, 분명 널 좋아할 거야." 어머니가 딱 잘라 말했다.
이불을 덮어드리는데 어머니가 내 손을 붙잡았다.
"프루. 만약 그 사람이 다리나 팔이 하나뿐이거나 천연두로 얼굴이 다 얽었다면 그게 싫겠니?"
"싫겠냐고요, 어머니?" 난 생각할 필요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 ‘당연히 싫지 않죠. 오히려 더 사랑할 거예요!"
"그럴 줄 알았다, 얘야." 어머니가 아주 흡족하게 말했다.
"그 사람을 사랑하는 줄 알았어. 참 기쁘구나. 그에게서 숨지마, 프루, 코스틀리 컬러 놀이를 했을 때처럼 용기를 내서 모든 걸 다 걸어." - P243

"뭐야? 도망가는 거예요? 왜 그래요. 프루 사른?" 그가 물었다.
난 고개를 푹 숙였고, 차라리 잠자리가 되었으면 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몸을 빼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그냥 웃었다.
"목숨을 구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러 온 사람을 대하는 방식치곤 아주 독특한데요, 프루 사른! 호수로 뛰어들 것처럼 도망치려 하다니." 여름을 만들어내는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그의 손을 통해 전해진 두근거림이 나를 뚫고 지나가 난 서있기도 힘들었다. - P288

아래층으로 달려 내려가 집 밖으로 나가자마자 내 눈에 들어온 광경이란. 세상의 종말도 그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그때는 가을걷이할 필요도, 힘겹게 돈을 모을 필요도 없이 다마련되었을 테니까. 그때는 누구에게나 상황이 똑같겠지만,
이것은 우리만의 일이었고 마차 바퀴가 밀 이삭을 짓밟듯 우리를 짓밟는 것이었으니까. - P338

어마어마한 굉음은 불타오르는 곡물에서 나는 소리였다.거둬들인 곡물이, 수년의 노동으로 거둬들인 전부가, 기디언의 영혼 자체이자 우리의 미래가 활활 타고 있었다. 만물의 종말을 초래할 거대한 혜성이나 별똥별이 하늘을 가르는 것도 아니고, 덜덜 떠는 세상 위로 암흑 같은 밤하늘에서 대천사가 요란하게 나팔을 불어대는 것도 아니었다. 고작 곡물이었다. 다만 우리가 가진 전부였을 뿐! 다만 그것을 가짐으로써 기디언이 밤낮으로 노예처럼 일하고 가족을 노예처럼 부리는 일을 그만두고 보통 사람들처럼 일할 수 있을 그것, 그래서 그를 사랑 넘치는 상냥한 남자로 만들어줄 그것.  - P330

수확이 오로지 탐욕이라면 씨뿌리기는 오로지 베푸는 일이다. 아주 세심하게 모아서 쭉정이를까불러 내버리고 소중하게 모셔두었던 것을 들고 너른 들을누빈다. 가진 것이라고는 그것뿐이지만 개의치 않고, 쟁여둘생각이라곤 없이 양손에 가득 담아 모두 뿌려버린다. 앞으로나아가며 이리저리 뿌리는데, 손이 크면 더 기분이 좋다. 이지역의 방식을 잘 모르는 사람은 아마 미쳤다고 생각할 것이다. - P332

조용하게나마 오가던 어머니가 안 계시니 사른은 더욱 조용했다. 내가 어머니에게 의지했더라도 그럴 수 없게 어머니가 그리웠다.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에게 의지했던 사람이 가장 그렇게 마련이니까. 그래서 어머니들은 치맛자락에 매달리는 자식들이 있을 때보다 오히려 없을 때 누가 방해라도하는 듯 일이 더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다. 그땐 일할 마음이없으니까. 어머니가 손을 들어 올리는 모습이며, 저녁에 기진맥진해서 돌아온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시던 모습을 떠올리며 난 해가 길어지는 4월 내내 문득문득 주저앉아 울었다. 이따금 찾는 티비를 빼면, 이제는 기디언과 나 둘뿐이었다. 어디에나 슬픔이 가득했지만 일은 예전처럼 이어졌다.  - P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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