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맨스플레인‘으로 시작해서 결국엔 성폭력, 성추행, 가정폭력, 폭행, 강간, 여성살인으로 이어지는 우리 여성들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겐 페미니즘이 필요하다. 페미니즘의 가치 있는 주장들은 결코 판도라의 상자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레이스 2023-05-18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재미있어서 관심 두고 있는 책이예요.~♡

은하수 2023-05-18 22:50   좋아요 1 | URL
읽어보시면 좋으실 거예요
전 리베카 솔닛의 글이 좋았어요 계속 좋아한게 될거 같아요.
 

집을 향해 걸어가면서 그는 아침에 맨 먼저해야 할 일이 까라나르를 방목장에서 집으로몰아 오는 일일 거라고 생각했다 - 그 낙타가상당히 필요할 것이었다. 죽는 것도 간단하지는 않지만 이승에서의 격식을 제대로 갖춰서 명예롭게 한 사람을 묻는다는 것 또한 절대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장례를 치르려면 언제나 이런저런 물건들이 부족하기 마련인 데다 수의에서부터 밤샘을 할 때 쓸 땔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들이 급하게 마련되어야 했으므로.(58/1054)

예지게이가 하늘에서 무엇이 움직인다는 것을 알아차린 건 바로 그때였다. 그것은 그에게 전쟁터에서의 나날들, 발밑에서 지축을 흔드는 강력한 폭발의 먼 충격파를 떠올리게 해주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그는 오른편 앞쪽으로, 스텝 저 멀리 사로제끄 인공위성 기지가 있는 곳에서 무엇인가가, 뒤에다 점점 더 커지는 분수 같은 꼬리를 달고, 말 그대로 불을 뿜으며 하늘로 솟아오르는 것을 본 것이었다. 그 광경에 그는 넋을 잃었다. 그것은 우주로 떠오르는 거대한 로켓이었다. 그는 전엔 한 번도 그런 광경을 본 적이 없었다.(59/1054)

사로제끄에서 사는 사람들이면 다 그렇듯이,
그는 거기서 약 40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우주선 발사 기지 사리-오제끼-I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또한 또그레끄-땀 간이역으로부터 그리로 통하는 지선 철도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사람들 말로는 그쪽으로 스텝 한가운데에 커다란 상점들까지 있는 완전한 도시가 하나 건설되었다는 것이었다. (59/1054)

그러나 우주선 발사 기지와 그 주변은 바로 근처에서사는 사람들에게까지도 출입 금지 구역으로 선포되었기 때문에 그는 무슨 일에 대해서건 간접적으로 아는 정도로 만족해 왔었다. 그랬으므로, 그가 세차고 응집된 불꽃 속에서 그 무시무시하고 놀라운 빛으로 주위의 모든 것들을밝히며 별이 반짝이는 어두운 하늘 속으로 떠오르는 우주 로켓을 자기 눈으로 직접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60/1054)

예지게이는 기절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저 불꽃 한가운데 정말로 사람이 앉아 있을까? 
하나? 아니, 어쩌면 둘? 그런데 어째서 그는 우주선 기지 근방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살아왔는데도 전에는 발사 순간을 보았던 적이 한 번도 없었을까? 게다가 이제는 우주 공간으로 로켓들이 너무 자주 발사되기 때문에 발사 횟수가 얼마나 되는지도 제대로 알 수 없는데, 어쩌면 다른 경우에는 낮 동안에 발사를 했었을까? 햇빛속에서는 그 정도 먼 거리에서라면 로켓이 떠오르는 것을 분명히 알아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 이번 것은 밤중에 떠올랐을까? 아마도 서둘러야 할 이유가 있었을 테지. 아니 어쩌면 저 로켓은 암흑 속에서 떠오르지만 곧장햇빛 속으로 나가지 않을까? (61/1054)

예지게이가 그 깊은 밤 눈길을 여전히 우주로켓에 고정시킨 채 일터로부터 집으로 돌아오며 했던 생각은 그런 것이었다. 오랫동안 그는, 마침내 불을 뿜는 배가 점점 더 작아져서 조그맣고 흐릿한 점으로 바뀌어 하늘의 검은 심연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그것을 지켜보았다.
예지게이는 머리를 흔들고 나서 이상하고 상반된 감정을 느끼며, 가던 길을 계속 갔다. 그는 자기 눈으로 그 로켓을 직접 본 것이 기뻤지만 그래도 그것은 경이와 두려움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그의 시야 밖에 있는 어떤 것이었다. (64/1054)

그날 밤 로켓이 우주 공간으로 날아오르는것을 목격한 증인인 부란니 예지게이는 그 우 (64/1054)

주선과 거기에 탄 비행사가 발사 전 의식도, 신문 기자들도, 특별 보고도 없이 특별한 용무로 긴급히 발사되었으며 그 발사가 미소 우주 계획의 일환으로 이미 1년 반 동안이나 〈트램펄린〉이라고 명명된 특별 궤도에 떠 있던〈패리티〉 우주 정거장에서 일어난 일련의 예외적인 사건들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도 알지 못했고 또 사실상 알 수도 없었다. (65/1054)

예지게이는 이 사건이 그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리라고는 ㅡ단지 그와 나머지 인류 사이의 뗄 수 없는 관계 때문이 아니라 가장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방식으로ㅡ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는 또 사리-오제끼에서 우주선이 발사된 지 얼마 뒤에 지구의 다른 편인 네바다의 한 우주선 기지로부터 똑같은 임무를 띤, 즉 접근하는 방향만 서로 다를 뿐 똑같은 트램펄린 궤도의 똑같은 패리티 정거장으로 가기 위해 미국의 우주선이 솟아오르리라는 것도 알지못했다. (65/1054)

그 두 우주선은 〈데미우르고스〉 계획을 주관하는 
미•소 공동 통제 센터의 해상 기지인 과학 탐사 항공모함 컨벤션호로부터 온 긴급명령에 따라 발사되었다. 항공모함 컨벤션호는 알류샨 열도 남쪽, 블라지보스또끄와 샌프란시스코로부터 정확히 등거리인 태평양상의 고정위치에 정박해 있었다. 공동 통제 센터 〈옵뜨세누쁘르〉는 두 우주선이 트램펄린 궤도로 진입하는 과정을 주의 깊게 뒤쫓는 중이었다. 
(66/1054)

지금까지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제 막 패리티 복합 위성과의 도킹을 위한 방향 조정이 시작될 참이었다. 그 작업은 두 우주선의 도킹이 적당한 시간 간격을 두고 연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방향으로부터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지극히 복잡했다.
(66/1054)

패리티는 지금까지 열두 시간 이상 컨벤션호의 공동 통제 센터에서 보낸 신호에 답신을 보내오지 않았고 그곳에 접근 중인 두 우주선에서 보낸 신호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패리티 우주 정거장의 승무원들에게 어떤 일이 있어났는지를 알아내야만 했다. (67/105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와...쪽수가 666
이 책을 사놨다는게 믿기지 않네
심지어 <화재의 색>도 같이 꽂혀 있었어.
언제 다 읽지? ㅠ.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스시의 마법사 어스시 전집 1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지연, 최준영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스시(EARTHSEA)의 마법사 새매 게드는 자신이 만들어 낸 죽음의 그림자를 물리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마침내 그림자와 하나가 된 새매 게드는 죽음의 그림자를 자신의 이름으로 지우고 ˝한 인간˝이 되었다 .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어떤 위대한 힘을 발휘하게 될지 아닐지는 다음편에서 볼 수 있겠지. 지금은 새매가 명성을 얻기 전의 이야기일 뿐이므로!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레이스 2023-05-01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갖고 있는 책이예요
애들이 읽었죠!
재미있다고 했는데, 저는 아직 못읽어 봤네요^^

은하수 2023-05-01 09:08   좋아요 1 | URL
전집의 1권이라 이야기의 시작이잖아요.
재미있게 본터라 다음권 바로 주문했어요^^
 

죽음의 그림자와의 추격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젠 죽음의 그림자에 쫓기는 것이 아니라 게드가 그림자를 쫓는다는 것이 다를 뿐!




둘러보자 눈앞엔 아무것도 없었다. 게드는 이렇게 텅 빈 암흑을 응시하고 경계하는 데 지쳐 있었다. 그는 추위에 몸서리치며 일어섰다.
"이제 오너라"
그가 중얼거렸다.
"오라고, 뭘 기다리고 있는 거지, 그림자?" - P218

아무 대답도 없었다. 어두운 안개와 물결 속으로 더 캄캄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자기가 왔던 이 춥디 추운 행로를 거꾸로 더듬어 감에 따라 그것이 이제 그렇게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은 점점 더 확실하게 느껴졌다. 게드는 돌연 큰소리로 외쳤다.
"나 여기 있노라, 나 새매 게드가! 내가 나의 그림자를 소환하노라!"
배가 삐걱거리고 파도가 찰싹댔으며, 하얀 돛에 스치는 바람이 울었다. 한순간 한순간이 지나갔다. 게드는 그대로 기다렸다.
그는 주목 지팡이로 세운 배의 돛대에 한 손을 얹은 채 북으로부터 들쭉날쭉한 전선을 그리며 바다를 가로질러 천천히 몰려오는 얼음 같은 가랑비 속을 노려보고 있었다. 순간순간이 지났다. 그러곤 물 위로 내리는 빗속 저 멀리 이쪽으로 다가오는 그림자를 그는 보았다. - P219

낮이라 그림자는 반쯤 눈이 멀어 있었고, 또 게드 쪽에서 불러낸 것이었기에 그림자보다 게드가 먼저 상대를 발견했다. 그림자가 게드를 알듯 게드도 그것을 알아보았다. 모든 존재와 모든 그림자들 사이에서 그들은 서로를 알았다. - P220

겨울 바다의 절대적인 고독 속에 게드는 두려워하던 그것을보며 서 있었다. 바람은 그림자를 배에서 멀리 날려 버리려는듯했고, 그림자 밑을 달리는 파도는 눈을 어지럽혔다. 볼 때마다 그것은 더 가까이 다가와 있는 것 같았다. 그림자가 움직이는 건지 아닌지 게드는 알 수 없었다. 이제 놈은 게드를 보았다.
생명을 빨아내는 그림자의 건드림을, 그 차갑고 시커먼 고통을겁내는 마음이 소름 끼치는 공포로 온통 그를 사로잡았지만 게드는 꼼짝 않고 기다렸다. 그러다가 돌연 큰 소리로 주문을 외워 하얀 돛에 강하고 갑작스러운 마법풍을 불러들이자, 배는 잿빛 물살을 가르고 펄쩍 뛰어오르며 바람 속에
떠 흐느적대는 그림자를 향해 똑바로 돌진했다. - P220

완벽한 적막 가운데 그림자는 일렁였다. 그러곤 뒤돌아 달아났다.
그것은 바람을 거슬러 북으로 달아났다. 게드의 배도 바람을 맞받으며 뒤쫓았다. 그림자의 속도 대 마법의 대결이었고, 비바람은 양쪽 모두를 거슬러 불었다. 눈앞에 달아나는 늑대를 보고 사냥개들을 다그치는 사냥꾼처럼 게드는 배와 돛과 바람과 앞길의 파도를 향해 고함쳐 댔다. 그는 천으로 만든 돛이었더라면 모조리 찢어발길 만큼 강한 바람을 마법으로 짠 돛에 불어 넣어, 부풀어오른 거품이 소용돌이치는 바다 위로 점점 더 가까이 달아나는 그림자를 추격했다. - P221

안개가 그 얼굴 없는 뿌연 머리를 통과해 흐르고 있었지만 형체는사람과 같았다. 단지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그림자인 양 형태가 일그러지며 변할 뿐이었다. 게드는 적을 깔아 버리고자 다시 한번 배를 돌진시켰다. 그 순간 그림자는 꺼져 없어졌고, 좌초한것은 그의 배였다. 
흐르는 안개가 시야를 가려 미처 보지 못한여울목 바위에 배를 세게 갖다 박은 것이다. 게드는 배에서 튀어나갈 뻔했지만 다음 충돌이 오기 전에 지팡이 돛대를 움켜잡고 버텼다. 사람이 달팽이 껍질을 집어 올려 부수듯이 파도가 작은 배를 물 밖으로 내던져 바위 위에 내동댕이쳤다.
- P223

이제 바다를 가로지르는 게드의 추적은 묘하게 되어 버렸다. 게드 자신도 잘 알다시피 그는 사냥감이 무엇인지도, 온 어스시 어디에 있을지도 알지 못하는 사냥꾼이었다. 놈이 게드를 쫓을때 그랬듯 추측과 직감과 운에 의지해 추적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 둘 다 상대의 존재를 뚜렷이 간파할 수 없었다. 그림자가 낮의 햇빛과 확고한 존재들에 방해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게드는 형체 없는 망령들로 인해 고투했다.  - P234

 게드에게 분명한 건 한가지였다. 이제 자신이 사냥꾼이고 사냥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게드를 속여 암초에 올라앉게 만든 이상, 그림자는 그가 반죽음 상태로 바닷가에 누워 있던 동안이나 폭풍우 속에 더듬더듬 모래 언덕을 헤매는 동안 얼마든지 제 맘대로 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놈은 기다렸다가 그런 기회를 타지 않았다. 놈은 감히 게드와 맞서지 못하고 그를 속인 즉시 멀리 내뺐다.  - P234

그 점에서 게드는 오지언이 옳았음을 알았다. 자신이 맞서는 한 그림자는 자신의 힘을 빼내 갈 수 없다. 그러니 계속해서 그림자에 대항하고 그것을 쫓아야만 한다. 비록 이 망망한 바다에 놈의 흔적이 까마득히 사라져, 남으로 부는 세계풍의 운과 남쪽이나 동쪽이 옳을 것이라는 어렴풋한 추측 내지 느낌을 빼면 아무 지침이 없더라도 말이다. - P234

그림자는 게드를 꾀어 오스킬의 황무지로 가게 만들었고, 아개 속에서 그를 속여 정통으로 암초에 가 얹히게 했다. 이제 이건 세 번째 속임수인 걸까? 게드가 놈을 이리 몰아붙인 것인가.
아니면 놈이 그를 이리로 꾀어 들인 것인가? 이건 함정이 아닐까? 알 수 없었다. 게드가 아는 것은 오직 고통스러울 정도로 엄청난 공포와, 나가서 자기가 하게 되어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확신뿐이었다. 바로 두려움을 그 근원에까지 추적해 가서 그 사악한 것을 잡아 끝내는 일이다. - P238

 이제 좁게 파고든 물길의 끄트머리에 이르렀다. 겹겹이뒤엉킨 벌거벗은 바윗덩어리들이 좁은 물길의 폭을 더 좁히며 높직이 솟아 있었다. 파도의 끝자락이 거기 힘없이 찰싹거렸다.
- P238

게드는 배를 반 바퀴 돌렸다. 물 밑의 암초들에 걸리거나 뻗쳐난 뿌리와 가지들에 얽히지 않도록, 주문과 임시 변통으로 만든 노를 이용해 조심스럽게 돌려야 했다. 배가 다시 바깥쪽을 향하자 게드는 들어왔을 때 했던 대로 배를 내보내 줄 바람을일으켰다. 그러나 갑자기 주문이 입에서 얼어붙으며 심장이 섬뜩하게 차가워졌다. 어깨 너머 돌아다보자 그림자가 배 안에 서 있었다. - P239

게드가 한순간이라도 멈칫거렸더라면 파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준비가 되어 있었고, 팔 뻗으면 닿을 거리 안에서 흐느적거리며 떨고 있는 그것을 움켜잡으려고 몸을 던졌다. 지금은 어떤 마법도 그를 도울 수 없었다. 게드는 오로지 맨몸만으로, 자신의 목숨 그 자체만으로 생명 없는 그것에 대항했다. 게드는 말이나 주문 없이 공격했으며, 그렇게 갑작스레 돌아서 덤벼드는 바람에 배가 앞뒤로 요동을 쳤다. 고통이 팔을 따라 가슴속으로 밀어 닥쳐 숨을 막았고 얼음장 같은 차가움이 가득 차올라 앞이 캄캄했다.  - P239

그러나 그림자를 움켜쥔 손엔 아무것도 없었다. 캄캄함, 허공뿐이었다.
쓰러지지 않으려고 돛대를 잡고 비틀비틀 앞으로 나아가자 다시 눈에 빛이 쏘아져 왔다. 게드는 그림자가 자신을 떨쳐 내고 저만치에 움츠러드는 것을 보았다. 다음 순간 그림자는 순식간에 그의 머리 위로, 배의 돛 위로 거대하게 펼쳐졌다. 그러곤 바람에 휘말리는 검은 연기처럼 뒤틀리며휙 날아갔다. 그렇게 놈은 형체를 잃고 물길을 되돌아 나가, 양쪽 절벽 사이에 밝게 보이는 출구로 달아나 버렸다. - P240

공포는 모두 사라졌다. 모든 기쁨도 꺼졌다. 이젠 추격이 될수 없었다. 이제 게드는 사냥꾼도 사냥감도 아니었다. 이 세 번째 만남에서 그들이 만나 서로 접촉했기 때문이다. 게드 쪽에서 스스로 그림자에게 돌아서서 살아 있는 손으로 놈을 붙잡으려들었다. 그것을 잡지는 못했지만, 게드는 둘을 묶어 끊을 수 없는 사슬을 채웠다. 이젠 그림자를 몰아붙일 필요도, 흔적을 뒤따를 필요도 없다. 놈이 날아간다 해도 소용없다. 양쪽 모두 상대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어느 시간 어느 장소에 이르면 그들은 다시, 마지막으로, 만날 것이다.
- P241

그러나 그때가 되기까지 다른 어느 곳에서도 밤이건 낮이건, 땅에서도 바다에서도 게드는 쉴 수 없고 평화를 누릴 수 없을 터였다. 이제 게드는 그 사실을 알았다. 자신이 해야 하는 이 일이 결코 모든 것을 원상태로 돌려놓을 수 없으며 다만 시작했던 바를 끝맺을 따름이라는 깨달음은 차마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어두운 절벽 사이를 빠져나오자 바다 위엔 아침이 환하게 밝아 있었다. 북쪽으로부터 좋은 바람이 불어왔다.
- P241

게드는 그 얼굴을 향해 지팡이를 높이 들었다. 지팡이에 어린광채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밝아졌다. 너무도 희고 엄청난 그 빛은 고대의 어둠마저 갉아 들며 물리칠 듯했다. 그 빛 속에 게드에게 다가오는 그것으로부터 모든 인간의 형상이 벗겨져 나갔다. 그것은 작게 움츠러들어 시커먼 덩어리처럼 되어 발톱이 돋친 짤막한 네 발로 모래 위를 기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입술도 귀도 눈도 없이 맹목적인 무정형의 주둥이를 게드 쪽으로 쳐든 채 그놈은 계속 앞으로 나아왔다. 게드와 만난 그 순간 주위에 타오르는 희디흰 마법의 빛 속에 놈은 완전히 새카맣게 보였다.
그것이 형체를 똑바로 일으켜 세웠다. 침묵 속에, 사람과 그림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한 채 정지했다. - P290

그 오랜 침묵을 깨뜨리며 크고도 분명하게 게드는 그림자의 이름을 불렀다. 그와 동시에 그림자 역시 입술도 혀도 없이 똑같은 단어를 말했다.
"게드"
그 두 목소리는 하나였다. 게드는 지팡이를 떨어뜨리고 손을 내뻗어 자신에게 뻗어 오는 그림자를, 검은 자신을 붙잡았다.
빛과 어둠이 만나고, 합쳐지고,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모래밭 멀찍이서 어스름 속에 두렵게 지켜보고 있던 들콩에게는 게드가 그림자에게 정복당한 것처럼 보였다. 뚜렷하던 광휘가 스러져 침침해졌던 것이다. 분노와 절망이 가득 차올라 들콩은 친구를 돕든가 함께 죽으려고 배를 뛰쳐나와 모래밭에 올랐다. 그러고는 메마른 땅 위 공허한 어스름 속에서 미약하게 꺼져드는 그 작은 빛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달리는 발 밑에서 모래가 꺼져 내려, 들콩은 유사에 휩쓸린 사람처럼 몸부림쳤다. 엄청난 물 흐름이 그를 휩쌌다. 포효하는 소음과 찬란한 날빛이 살을 에는 추위와 쓰디쓴 소금맛이 닥쳐들며 세계가 제자리로 되돌아왔다. 들콩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살아 있는 진짜 바다에 빠져 발버둥치고 있었다.
- P291

게드는 멍해 있었고 눈동자는 허공을 보는 듯했지만 눈에 띄는 상처는 없었다. 오른손에 움켜쥔 지팡이는 모든 광채가 사라져 검은 주목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게드는 지팡이를 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말을 잃은 채 물에 젖어 떨리는 몸을 기력 없이 돛대에 기대 웅크리고서, 돛을 올리고 북동풍을 받으려고 배를 돌리는 들콩을 한번 돌아보지도 않았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 배가 나아가는 방향의 하늘 위 기다란 구름자락 사이로 맑은 푸른 광채의 만이 열리며 신월이 빛을 던질 때까지 게드는 세상의 그 무엇도 보고 있지 않았다. 달은 상아로 된 고리나 뿔나팔의 가두리 장식인 양 햇빛을 반사해 어둠 젖은 대양 위에 선연히 빛났다. - P292

게드는 얼굴을 들고 먼 서녘에 빛나는 초승달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는 오랫동안 거기 눈길을 못 박고 있었다. 그러곤 전사가 장검을 쥐듯이 손으로 지팡이를 잡고 똑바로 섰다. 하늘과 바다와 머리 위에 부풀어 오른 갈색 돛과 친구의 얼굴을 빙 둘러 바라본 다음 게드가 말했다. - P293

"에스타리올, 봐, 이루어졌어. 끝난 거야."
게드는 웃음을 터뜨렸다.
"상처는 치유되었어………… 나는 완전해. 나는 자유야."
그러고 나서 몸을 구부리고는 팔에 얼굴을 파묻고 아이처럼흐느꼈다.
그 순간까지도 들콩은 미칠 듯한 공포 속에 경계하고 있었다. 그로선 그 어두운 땅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분명히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배에 함께 타고 있는 존재가 게드인지 확신할수 없었기에, 들콩의 손은 벌써부터 쭉 닻에가 있었다. 여차하면 선체에 구멍을 내어 배를 바다 한가운데 가라앉혀 버릴 생각이었다. 게드의 얼굴과 모습을 한 사악한 존재를 어스시의 항구로 데려가기보다는 그 편이 나았다.  - P293

 그러나 이제 친구의 얼굴을쳐다보고 말소리를 듣자 의심은 사라졌다. 그리고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게드는 이긴 것도 진 것도 아니며, 다만 자신의죽음의 그림자를 자기 이름으로 이름 지음으로써 자신을 완전하게 한 것이다. 그로써 그는 한 인간이 되었다. 진정한 자아 전체를 깨달은 인간이며 자신 아닌 그 어떤 힘에 이용당하거나 지배받지 않을 사람, 살기 위하여 살며 결코 파괴나 고통이나 증오나 어둠을 섬겨 살지 않는 인간이 된 것이다. - P29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