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존스의 고전 100권 공부법 - 세인트존스 대학의 읽고 토론하고 생각하는 공부
조한별 지음 / 바다출판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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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 전공 없이 오로지 고전 수업만으로 학위를 받는 대학이 있다는 것을 우연히 듣고 호기심에 책을 선택했다. 점점 세분화되어 같은 영역이라도 세부 전공이 다르면 서로 잘 알 수도, 아는 체를 하지도 않는 것이 통례인 대학의 전공을 통합했다는 과감함도 놀라웠지만, 교과가 일반 대학생들은 4년 내 몇 권 접할까 말까한 고전, 그것도 100권이라는 점은 더욱 그러하였다.


저자가 그 대학의 졸업생이다보니 책의 구성은 세인트존스라는 대학의 소개와 공부법에 대하여 주로 다루고 있다. 강의과 교수, 전공과 시험이 없지만 어느 대학보다 더 적극적인 자기주도 학습과 치열한 토론을 해야만 하는 학교에 대한 소개에 이어, 세인트존스의 특징적인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는 세미나, 프리셉토리얼, 논문, 공개 구술시험에 대해서도 상세한 설명이 제시되어 있다. 다만, 이러한 설명에 너무 많은 부분을 할애하다 보니 세인트존스의 학사일정이나 수업방식에 관한 참관기 같은 아쉬움도 든다. 예를 들어, 중간중간에 제시된 '리딩리스트'들은 이 학교 학생들이 어떤 책을 읽으며 공부하는지를 알 수 있는 좋은 정보이지만, 그래서 해당되는 책을 읽고 과연 어떤 토론이 오고 갔는지, 혼자만 읽은 것과 토론을 하고 난 후에 배운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저자가 말하는 세인트존스 공부법에 대하여 더욱 실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세인트존스의 공부법은 주도적인 학습법을 익히고, 토론을 통한 발표와 경청의 기술을 익히며, 언어, 음악, 수학, 과학과 같은 기초적인 학문의 토대를 통하여 수준 높은 교양을 축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책을 읽으며 세인트존스의 존재 못지 않게 진급 및 학습에 관한 프로그램들은 무척 신선하게 느껴졌지만, 이러한 커리큘럼이나 학습방법을 '진짜 공부'라고 극찬하는 것에는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예습과 토론을 중심으로 한 생각의 교환과 수용을 '진짜'라고 한다면, 먼저 공부한 이에게 (일방적으로) 배우고, (필요하면) 질문하고, (토론을 거치지 않고) 이를 습득하는 대부분 대학에서의 학습방법은 '가짜'라고 해야 하는 것일까. 더 나아가 현재와 같이 복잡 다단한 시점에서도 대학의 본질이 폭넓고 근본적인 교양의 습득에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은 이 책을 읽는 내내 떠나지 않았다. 100권의 고전을 통하여 평생 추구해야 할 공부의 대상과 방법을 4년 동안 마칠 수 있다는 것이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대학에 입학하고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적절한 효용이 될 지도 의문이다. 사회 진출을 위한 응용학문의 학습을 위해 이들은 추가적인 시간과 비용을 또 들여야 할 지도 모를 일이다.


찬사를 하자면 '순수한 학문의 장'의 면모를 고수하고 있는 세인트존스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내게는 마치 대학 차원의 대안학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대안학교라는 의미를 안 좋게 사용한 것은 아니다. 현 대학의 제도적 문제점들을 일정 부분 해소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바람직한 역할과 기능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교육의 다양성은 환영할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학의 목적을 전문적인 학습이 아니라 평생교육과 같은 수준높은 교양의 습득으로 보아야 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우선 인류의 ‘생각의 과정‘을 시대순으로 엿볼 수 있었다. 고대에서부터 근대까지 인류의 생각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엿본 것이다. 그리고 결국 시대만 다를 뿐 그들도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고민들을 해왔고 그에 따른 가치관을 하나하나 세워나갔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인류는 정말 옛날부터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꾸준히 해왔으며 그 질문들이 철학으로, 수학으로, 과학으로, 문학으로, 형태만 다르게 표현된 것이다. 더불어 매순간, 현재인 이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수십억 명의 인간 중 하나인 나도 그들처럼, 그동안 인류가 가지고 발전시켜 왔던 그 수많은 사상들을 바탕으로 ‘나는 어떤 사고와 가치관을 가지고 어떤 살을 살고 싶은가‘에 대해 고민해보고 싶어졌다. - 126, 127쪽

내 인생이라는 시간은 째깍째깍 흐르고 있는데 세상에 배울 것들, 읽어야 할 좋은 책들, 생각해야 할 거리들은 너무나 많다. 꾸준한 스스로 학습을 통해 여러 사물과 현상에 대해 나만의 가치관을 바르게 세워나가고 싶다. 그러기 위해 앞으로 내가 무슨 일을 하든 시간을 들여 이 책들을 다시 읽으며 평생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고 싶다. 그래서 매일매일, 오늘의 무지에서 조금이라도 더 깨어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뭔가 대단한 걸 기대했다면 미안하지만, 이게 내가 세인트존스에서 4년간 고전 100권을 읽고 난 솔직한 소감이다. - 127쪽

아니, 그럼 난 도대체 뭘 배운 거지? 4년간 뭘 한 거지? 이번에 책을 쓰면서 세인트존스에서의 시간들을 되짚어봤다. 그리고 새삼스러운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세인트존수에서 지혜를 얻고 진리를 찾아내기는커녕 나는 4년 내내 엄청나게 깨지고 망가지고 뒹굴고 넘어지면서 정말 지지라도 능력 없고 하찮은 내 모습과 마주했다는 것이었다. - 240쪽

그런데 그 과정에서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시간이 흐르면 ‘마침내 무언가를 배웠다‘거나 ‘드디어 극복했다‘고 말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의 일이 일어났다. 그냥 포기해버린 것이다. 욕심과 비교를 내려놓고, 초라한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본 것. 그게 내가 한 포기였다. 내 한계를 받아들였다. "그래. 이게 그냥 나구나."
근데 더 놀라웠던 건 그다음부터다. 내가 내 한계를 받아들이니 마음이 편해지고 오히려 배움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그렇게나 배워보려고 발악하고 노력했는데, 내려놓고 보니 배움이란 이렇게 쉬운 것이었단 사실을 알게 되었따. 이건 정말 단순한 사실이었다. - 241쪽

학생들이 자신의 한계와 정정당당히 마주하게 하고 그 한계를 인정하게 하는 학교. 그 후 한계에 도전하고, 실패 혹은 성공하기도 하면서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깨닫게 하는 학교. 그래서 결국에는 학생 각자가 자기만의 배움을 찾도록 하는 학교. 그게 내가 경험한 세인트존스다. 그리고 이것이 세인트존스가 원하는 교육 목표, 스스로 학습(배움)이 아닐까 감히 생각한다. - 242, 2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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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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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읽다가 멈추고 덮어 두었다. 도저히 앞으로 더 나갈 수가 없었다. 그건 이 책의 내용이 너무 끔찍해서도 내가 너무 몰입되어서도 아니었다. 오히려 책을 읽는 내내 나를 어지럽게만든 잡념들 때문이었다. 무심코 페이지를 넘기다가 어느내 그냥 인쇄된 글을 따라 흘러가는 내 눈을 발견하고는, 다시 앞으로 돌아가 읽기를 반복했다. 계속 읽어나갈 수가 없어서 소리내어 읽기까지 해보았지만 이미 60페이지 정도를 읽어버린 내게는 더이상 아무 것도 입력되지 않았다. 그리고 책을 덮었다. 꽤 시간도 흘렀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이런 맑은 날, 그것도 5월이 훌쩍 지난 시기에 이 책을 다시 폈는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두번째로 시도하는 독서는 처음보다는 수월했다. 나름 마음의 준비를 하며 읽었기 때문일까. 많은 책과 영화, 다큐를 보고 이야기를 전해들어도 생경하기만 하였던, 가끔은 함부로 상상을 하는 것 조차도 차마 죄스러울 것 같았던, 내게는 여전히 낯선 80년 5월 광주의 상황을 차분히 묘사해가는 저자의 목소리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전율하고 말았다. 담담한 그의 목소리는 울분에 차 화를 내고 오열하는 어떤 목소리들 보다도 더 깊게 다가왔다. 차분하게 이루어지는, 그러나 어느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저자의 관찰과 투시는 얼룩진 역사를 개인들의 서사로 다시 재구성한다. 


1장(어린 새)에서는 동호라는 소년을 관찰하는 나로, 2장(검은 숨)에서는 육신은 이미 죽어버린 정대의 영혼으로, 3장(일곱개의 뺨)에서는 김은숙을 관찰하는 제3자로, 4장(쇠와 피)에서는 그날과 김진수에 대해 진술하는 나로, 5장(밤의 눈동자)에서는 동호와 은숙과 성희를 기억하는 선주로, 6장(꽃 핀 쪽으로)에서는 동호를 떠올리는 동호의 어머니로, 에필로그(눈 덮인 램프)에서는 작가로 각 장마다 달라지는 서술자의 관점은 5.18을 일관된 어떤 한 덩어리로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파편들만 주워먹는 게 고작인 내 혼란스러운 시선과도 같았다. 나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그들의 상황과 이야기를 따라갈 뿐이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모든 것이 명확해지지는 않았다. 사건도 사람도, 그 무엇도. 이것은 '민주화운동'이라고 명명되는 5.18에 대한 기록인가? 아니다. 기억을 위한 서사인가? 아니다. 살아 남은 자의 회고인가? 아니다. 그날 고집스럽게 상무관에 남았던 동호는 죽어버린 정대의 영혼을 거쳐, 살아남은 김은숙의 젊은 날을 거쳐, 서 선생의 연극 속의 초혼(招魂)을 거쳐, 김진수와 선주의 기억을 거쳐 작가에게 다가가 버렸나보다. 


침울하고 갑갑한 마음을 이겨낼 길이 없어 창밖으로 시선을 달래본다. 다시 일을 하려고 컴퓨터를 켰는데, 하필이면 야당대표가 전두환을 예방하겠다고 했다는 뉴스가 뜬다. 겨우 진정시켰던 가슴이 다시 갑갑해진다. (취소되었다고 한다)

똑같이 죽은 몸인데, 누군가의 손길이 남아 있는 그 몸이 한없이 고귀해 보여서 나는 이상한 슬픔과 질투를 느꼈어. 몸들의 높은 탑 아래 짐승처럼 끼어 있는 내 몸이 부끄럽고 증오스러웠어. - 53쪽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처음엔 차디찬 몽둥이 같았던 그것,
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이가 된 그것,
그게 반대편 옆구리를 만들어놓은, 내 모든 따뜻한 피를 흘러나가게 한 구멍을 생각해.
그걸 쏘아보낸 총구를 생각해.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잠든 그들의 눈꺼풀 위로 어른거리고 싶다, 꿈속으로 불쑥 들어가고 싶다, 그 이마, 그 눈꺼풀들을 밤새 건너다니며 어른거리고 싶다. 그들이 악몽 속에서 피 흐르는 내 눈을 볼 때까지. 내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 - 57, 58쪽

그녀는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기보다, 불판 위에서 고기가 익어가는 순간을 견디지 못했다. 살점 위에 피와 육즙이 고이면 고개를 돌렸다. 머리가 있는 생선을 구울 때는 눈을 감았다. 프라이팬이 달궈지며 얼었던 눈동자에 물기가 맺히고, 벌어진 입에서 희끗한 진물이 흘러나오는 순간, 그 죽은 물고기가 뭔가를 말하려 하는 것 같은 순간을 외면했다. - 72쪽

묵묵히 쌀알을 씹으며 그녀는 생각했다. 치욕스러운 데가 있다, 먹는다는 것엔. 익숙한 치욕 속에서 그녀는 죽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배가 고프지 않을 것이다, 삶이 없으니까. 그러나 그녀에게는 삶이 있었고 배가 고팠다. 지난 오년 동안 끈질기게 그녀를 괴롭혀온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허기를 느끼며 음식 앞에서 입맛이 도는 것. - 85쪽

그녀는 책을 덮고 기다렸다. 창밖이 더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
그녀는 인간을 믿지 않았다. 어떤 표정, 어떤 진실, 어떤 유려한 문장도 완전하게 신뢰하지 않았다. 오로지 끈질긴 의심과 차가운 질문들 속에서 살아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 96쪽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에. 다 쓴 음료수 병에 네가 꽂은 양초 불꽃들이. - 102, 103쪽

순간 깨달았습니다. 그들이 원한 게 무엇이었는지. 우리를 굶기고 고문하면서 그들이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너희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른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었는지, 우리가 깨닫게 해주겠다. 냄새를 풍기는 더러운 몸, 상처가 문드러지는 몸, 굶주린 짐승 같은 몸뚱어리들이 너희들이라는 걸, 우리가 증명해주겠다. - 119쪽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 134쪽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 135쪽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 - 207쪽

그들이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오해였다.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다. 그 도시의 열흘을 생각하면, 죽음에 가까운 린치를 당하던 사람이 힘을 다해 눈을 뜨는 순간이 떠오른다. 입안에 가득 찬 피와 이빨 조각들을 뱉으며,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밀어올려 상대를 마주 보는 순간.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를, 전생의 것 같은 존엄을 기억해내는 순간. 그 순간을 짓부수며 학살이 온다, 고문이 온다, 강제진압이 온다. 밀어붙인다, 짓이긴다, 쓸어버린다. 하지만 지금, 눈을 뜨고 있는 한, 응시하고 있는 한 끝끝내 우리는... - 2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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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9-08 16: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당내 사람들 반발이 커서 예방이 취소되었다고 합니다.

붉은눈 2016-09-08 16:42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반가운 소식이네요. 감사합니다. 저는 그런 행위가 `통합`으로 치장되는 걸 잘 이해할 수가 없어서요...

comet 2016-09-09 23: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소년이 온다를 다 읽어내기까지 펼쳤다 덮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저릴 만큼 아픈 글이었습니다. 첫 문장이 너무도 공감되네요.
 
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 - 갑질 공화국의 비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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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종종 강준만 교수의 글을 찾는 이유는, 그 주제의 다양성과 더불어 우리 사회에 내재된 문제점을 깊숙히 파고들어 불편할 정도로 드러낸다는 점, 단순히 자신의 주장만이 아니라 그 문제점에 관련된 다양한 의견과 현상들을 아울러 제시한다는 점, 무책임한 결론에 도달하지 않기 위하여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는 점 때문이다. 이 책도 그런 연유에서 읽게 되었는데, 이 책에서 저자는 흙수저들도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을 담은 것으로 오독(誤讀)되고 있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이 실상 우리 사회에 만연된 계층 문제, 갑을 문제, 차별 문제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총 6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머리말에서는 저자가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을 깨야한다고 주장하는 연유를 밝히고 있다. 서론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저자들이 많이 있지만, 특히 강준만 교수는 머리말만 읽어보더라도 그 책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제기와 주요 내용들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도입부분을 공들여 쓴다는 느낌이다. 한 두 페이지의 배경이나 연유가 아니라, 계층의 이동 가능성을 표현한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왜 우리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는지,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사회적 신분 서열제와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왜곡된 능력주의, 그리고 최근 심각해지고 있는 '갑질' 문화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다.


제1장 '갑질 공화국'의 파노라마에서는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라는 데니얼 튜더의 표현을 빌려 세계 최고와 최악이 병존하는 우리 사회의 기이성을 밝히고, '땅콩회항' 사건과 김현 의원의 대리기사 폭행 사건을 통하여 '모욕 사회' '의전 사회'의 구조를 분석한다. 제2장 '갑질'을 가르치는 교육에서는 학력과 학벌이 신분화 되고 있는 현상을 가리키면서 '원세대' '지균충' '기균층' '지잡대'라는 용어 속에 숨어 있는 차별적 이념을 파악하고, 모욕과 차별이 하향적으로 반복되는 현상을 분석한다. 특히 오찬호의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를 통하여 이 책에 등장한 20대들의 사례는 곧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능력주의를 답습한 것임을 밝힌다. 제3장 지위불안과 인정투쟁에서는 끊임 없는 비교를 통하여 현실에서 낙오될까봐 전전긍긍하는 우리사회의 '지위불안'과 대학등급에서 결혼등급으로 계속되는 '인정투쟁' 현상에 대해 다룬다. 제4장 갑과 을, 두 개의 나라에서는 보수 기득권층이 맹신하고 있는 '낙수효과'의 허점을 설명하면서 대기업 vs 중소기업, 인 서울 vs 지방, 경쟁 과잉 vs 경쟁 과소의 현상을 '개천의 용' 틀에서 분석한다.


저자에 따르면,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은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것이고, 용이 된 미꾸라지는 결국 자신의 터였던 '개천'을 돌보지 않고 오히려 파괴한다는 문제가 있다. 또한 전 국민이 용이 되기 위하여 '각개약진'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막대한 사회적 기회비용을 유도한다는 부작용은 물론, 모두가 용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통하여 극소수의 용이 모든 것을 독식하게 하는 승자독식주의를 평등으로 치환하는 자기기만과 자해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진보적이라고 생각하고 계층마저도 '개천 용'이 결국 한국 사회가 평등한 것임을 반증한다는 패러다임에 빠져 있다는 저자의 분석은 매우 날카롭다.


맺는말에서 저자는 '비교하지 않는 삶'을 제안한다. 그런 뻔한 말을 누가 못하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개인들이 용이 되기 위한 각개약진의 자세를 버리고 '꿈'이라는 프로파간다를 통한 '희망 고문'을 멈추어 용을 키우기 위한 미꾸라지들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 것 이상의 해법은 찾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흐름을 우리가 5-10년 뒤에 따라가는 것으로 보면,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발생하고 있는 '사토리 세대(달관 세대)'는 어쩌면 학벌과 취업 전쟁에 시달려 3포에서 이제 연애, 결혼, 출산에 이어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까지 포기해야 하는 5포 세대가 되어버린 우리 젊은이들의 미래상이 될 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든다. 더욱 큰 문제는 그나마 일본에서의 사토리 세대의 출현은 지금의 우리 젊은이들이 처한 상황보다 경제 및 사회적 분위기가 나았다는 것이다. 궁지에 몰린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선택한 극단적인 '달관'이 어떻게 변형되어 표현될 것인지는 생각만으로도 암담하다.


이런 의미에서 "체념을 해야 변화를 위한 저항도 가능하다"는 저자의 말은 새롭게 와 닿는 면이 있다. 그것은 루저가 되라는 것이 아니라 학력 루저, 취업 루저라는 루저 컴플렉스에서 벗어나 체념과 포기를 동력 삼아 지금 바로 이곳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도록 방법을 모색하는 이른바 발상의 전환이다. 스스로를 용이 되지 못한 미꾸라지나 루저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개천을 미꾸라지와 루저들의 공간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나를 증명할 필요가 없는 공간'이라는 공동체로 새롭게 복원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방식이 거대한 담론일 수 있으며, 우리 개인들은 늘상 이런 거대담론 앞에서 쉽사리 무너지고 만다. 문제점을 폭넓게 제도적으로 변경하는 연역적 해결방법이 아니라 '귀납적 개혁'을 통하여 나부터 체념하고 저항한다면, 그리고 이것이 연대를 위한 하나의 끈이 된다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비교하지 않는 삶이라는 것 말이다.

갑질은 결코 많은 권력과 금력을 가진 사람들만이 저지르는 게 아니다. 그것은 상대적이거니와 다단계 먹이사슬 구조로 되어 있어 전 국민의 머리와 가슴속에 내면화되어 있는 삶의 기본 양식이다. 즉, 이른바 ‘억압 이양의 원리’에 따라, 상층부 갑질의 억압적 성격은 지위의 고저에 따라 낮은 쪽으로 이양되는 것이다. - 7쪽

"개천에서 용 난다"는 단순한 속담이 아니다. 그건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기본 모델이자 심층 이데올로기로서 무게와 중요성을 갖는다.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은 신분 상승을 이룰 수 있는 ‘코리언 드림’의 토대지만, 동시에 사회적 신분 서열제와 더불어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왜곡된 능력주의, 즉 ‘갑질’이라는 실천 방식을 내장하고 있다. - 9, 10쪽

"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는 말은 용과 미꾸라지를 구분해 차별하는 신분 서열제를 깨거나 완화시키는 동시에 ‘개천 죽이기’를 중단하고 개천을 우리의 꿈과 희망을 펼칠 무대로 삼자는 뜻이다. "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는 말은 ‘국가’니 ‘전체’니 하는 말을 앞세워 일부 사람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건 물론 성공을 거둔 뒤에도 희생을 당한 사람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주지 않은 ‘철면피 심리’를 끝장내자는 뜻이다. - 12쪽

박명림도 한국이 단기간에 선진국에 진입한 경제발전과 기술진보는 ‘한국 기적’이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다면서도 "출생에서 사망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단계에서 한국의 집합적 인간지표는 적절한 언어를 찾기 어려울 만큼 섬뜩함 자체"라고 말한다.
"우리 공동체에는 지금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지표와 기술지표, 세계 최악 수준의 인간존업과 인간지표가 병존하는 것이다. 인류 역사상 이런 공동체는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 서로 반대되는 한국적 기적(Korean miracle)과 한국적 재앙(Korean disaster), 한국에의 희망(Korean dream)과 한국의 수치(Korean shame)가 공존하는 한국적 신비(Korean mystery)와 한국적 수수께끼(Korean enigma)를 어떻게 이해하고 결함하며 해결할 것인가?" - 35, 36쪽

국제적 차원에서 보자면 한국은 ‘개천에서 난 용’이다. 그런데 이 용은 늘 비교중독증에 시달린다. 대니얼 튜더는 "끔찍한 비극인 세월호 사건에 대해 부끄럽다고 얘기하는 한국인이 있다"며 "한국과 외국을 끊임없이 비교하는 한국인들을 보며 서글픔을 느꼈다"고 말한다. "한국인들은 선진국이 되고자 하는 열망으로 남과 비교하는 저주에 빠져버렸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물론 그런 ‘비교의 저주’는 일상적 삶에서도 끊임없이 나타난다. 누가 용이 되었으며 누가 용의 지위에 더 근접했느냐를 놓고 한국인들은 남들은 물론 자신조차 못살게 군다. - 36, 37쪽

‘6·25 심성’은 우리에게 눈부신 발전을 가져오게 한 동시에 ‘전쟁 같은 삶’이라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물론 심리적 관점에서 보자면 그렇다는 것이고, 한국이 ‘갑질 공화국’이 된 이유는 매우 복합적이다. 상호 맞물려 있거니와 각기 위상이 다르긴 하지만, 단순 나열식으로 열거해보자면 ① 압축성장의 부작용(황금만능주의 등), ② 효율을 기하기 위한 1극 중심주의가 낳은 서열주의, ③ ‘낙수효과(落水效果, trickle down effect)’ 중심의 정책으로 인한 사회적 위계화, ④ 수출지향형 경제정책으로 인한 기업사회 구축, ⑤ 부정부패와 출세주의, ⑥ 법치의 실종, ⑦ 연고주의·정실주의·패거리주의 등 무수히 많은 요인이 얽혀 있다. 그럼에도 이 모든 요인을 그대로 방치하거나 감내케 한 주요원인이라는 점에서 ‘6·25 심성’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 37쪽

구조와 시스템의 상황으로 나타날 때 사람은 상황의 노예가 된다. 사람의 특성이 아니라 상황이 중요하다고 보는 ‘상황주의(situationism)’ 또는 ‘악의 상황 이론(situational theory or evil)’에 전적으로 동의할 순 없다고 하더라도, 조현아의 갑질과 내부고잘자에 대한 탄압을 설명하기엔 적합하다.
전·현직 대한항공의 승무원들이 ‘땅콩 회항’ 사건과 관련해 "이런 게 뉴스에 나왔다는 게 오히려 의아할 정도"라고 밝힌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런 상황이 당연하거나 자연스럽게 여겨질 정도의 시스템이라면, 그런 시스템의 문법에 충실했던 조현아 역시 그 시스템의 피해자일 수 있다는 인식, 아니 상상력이 필요하다. - 59, 60쪽

물론 의전 사회의 이데올로기 구호는 "내가 누군지 알아?"다. 윤평중은 "‘내가 누군지 알아?’를 추동하는 한국적 권력 의자와 출세관은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꿈틀거리는 암종(癌腫)이다. 추악한 그 암 덩어리를 단호히 끊어내야만 진정한 민주·평등 사회로의 비약이 가능하다"고 결론 내렸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유토피아’는 가능할 것 같지 않다.
나름 제법 성공을 거둔 이들이 자신을 ‘개천에서 난 용’으로 간주하는 가운데, 우리는 그들이 기고만장(氣高萬丈)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열심히 조성해오지 않았던가? 우리는 자기 정체성을 오직 남과의 서열관계 속에서만 파악하는 삶을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래서 자신의 서열 확인 차원에서 자신보다 서열이 낮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상대로 "내가 누군지 알아?"를 외치는 게 아닌가? - 84쪽

오래전 미국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 1882-1945)의 부인인 엘리노어 루스벨트(Eleanor Roosevelt, 1884-1962)가 흑인 등 소수자들의 인권운동을 펼치면서 한 다음과 같은 말이 오늘날의 한국에서 큰 울림을 갖고 다가온다는 게 서글플 따름이다. "당신의 승낙 없이는 그 누구도 당신이 열등하다고 느끼게 만들 수 없다(No one can make you feel inferior without your consent)." - 87쪽

이나미는 <한국 사회와 그 적들: 콤플렉스 덩어리 한국 사회에서 상처받지 않고 사는 법>이라는 책에서 "한에 울던 한국인, 이제 욕망 때문에 운다"고 했는데, 그는 그런 욕망에 짓눌려 ‘자녀를 범죄자로 만드는 부모들’을 다음과 같이 고발한다.
"똑똑하고 경쟁적인 일부 부모들은 ‘기죽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해라(설령 네가 잘못해도 꼭 사과할 필요는 없다)’, ‘수단과 방법 가리지 말고 남을 이겨라(커닝이나 폭력 정도는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 ‘남 신경 쓰지 말고 네 것만 챙겨라(약하고 아픈 사람 도와줄 필요 없다)’와 같은 메시지를 아이들에게 은근히 또는 노골적으로 보내 자녀들을 냉혹하고 지능적인 범죄자로 만드는 데 일조한다." - 127, 128쪽

"이십대 학생들에게 ‘수능점수’는 이런 부동산 가격과 흡사하다. 그것을 바탕으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서열의 기준이 마련된다. 이들은 자신의 위치를 수능배치표에서 정확히 확인하고 이에 근거하여 행동을 한다. 그리고 이 서열에 미세한 균열이 일어날라치면, 대학생들은 자기 ‘위치 값’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친다. 집값 하락을 어떻게든 막겠다는 주민들처럼 말이다." - 139쪽

입시전쟁에서 승자가 되었건 패자가 되었건, ‘수능의, 수능에 의한, 수능을 위한 삶’을 사는 대학생들의 정신 상태에 대해 오찬호는 "지금 대학생들은 ‘수능점수’의 차이를 ‘모든 능력’의 차이로 확장하는 식의 사고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십대 시절 단 하루 동안의 학습 능력 평가 하나로 평생의 능력이 단정되는 어이없고 불합리한 시스템을 문제시 할 눈조차 없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본인이 당한 인격적 수모를 보상받기 위해 본인 역시도 이런 방식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더 ‘높은’ 곳에 있는 학생들이 자신을 멸시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기보다, 스스로 자신보다 더 ‘낮은’ 곳에 있는 학생들을 멸시하는 편을 택한다. 그렇게 멸시는 합리화된다. - 142, 143쪽

그렇다. 정희진이 잘 지적했듯이, "대부분의 인간이 잉여이거나 잉여 직전인 사회에서, 우리는 잉여의 공포에 떨면서도 먼저 잉여가 된 이들에게 안도감과 경멸을 느낀다." 같은 맥락에서 문성훈은 "한쪽에서 무시당한 사람들은 다른 쪽을 무시하면서 무시당한 설움을 풀고 훼손된 자존감을 회복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무시당한 사람들은 또 남을 무시하기 위해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내며, 이것이 무한분열하면서 한 사회 전체가 무시의 그물망에 사로잡히게 된다"고 말한다. - 143쪽

다른 대학들에도 있는 ‘지균충’과 ‘기균충’은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의 이면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고 있다. ‘지균충’과 ‘기균충’은 개천에서 더는 용이 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서울대를 비롯한 명문대학들이 점점 부잣집 자식들의 대학으로 변질되어 가는 추세에 ‘두려움’을 느낀 기존 체제 수호파들이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지균충’과 ‘기균충’은 명문대학들이 부잣집 자식들만의 대학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면피용 상징으로 고안한 것으로,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의 허울을 유지하기 위한 몸부림인 셈이다. 물론 개인들의 선의에서 비롯된 것일망정 거시적인 부석을 해보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 155쪽

명문대는 사실상 ‘신호를 팔아먹는 기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다니려면 수업료와 기타 비용으로 매년 12만 달러가 든다. 일부 사람들은 이 경영대학원의 학위가 아무 의미 없는 ‘12만 달러짜리 신호’에 불과하다고 폄하하지만, 계속 입학 경쟁률이 치열한 걸 보면 취업시장에선 그 비싼 신호 효과가 만만치 않은 것 같다. - 160쪽

인도의 카스트제도가 어떻다곤 하지만, 한국의 학벌 카스트제도는 인도의 그것보다 악성인 면이 있다. 인도에선 선거가 카스트에 따라 이루어지기 때문에 최하층계급은 선거를 통해 자신들의 경제적 지위를 높여나간다. 그래서 카스트의 완고성은 음식과 결혼의 영역에서만 지켜지고 있을 뿐, 사회에서 서열은 카스트가 아니라 돈과 힘이라는 새로운 물질적 척도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반면 한국의 학벌 카스트는 상징자본은 물론 돈과 힘까지 독식할 수 있는 근거가 되니, 한국은 어떤 면에서 인도보다 뒤떨어진 카스트제도를 갖고 있는 셈이다. - 161쪽

"가난이 낮은 지위에 대한 전래의 물질적 형벌이라면, 무시와 외면은 속물적인 세상이 중요한 상징을 갖추지 못해 사람들에게 내리는 감정적 형벌이다." 알랭 드 보통의 말이다. 사람들은 실제적 지위야 어찌되었든 소비를 통해 그런 ‘중요한 상징’을 획득하겠다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는데, 그런 상징성이 있는 상품들을 가리켜 ‘신분재(status goods)’, ‘지위재(positional goods)’라고 한다.
날로 생존경쟁이 치열해지는 사회에서 대표적인 지위재는 학위와 학벌이다.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의 관문이다. 한국에서 학위와 학벌의 지위재 위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지위재 수준을 넘어서 신분증명서 역할까지 한다. - 202, 203쪽

우리는 지위 불안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지만,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이 지배하는 체제하에선 그 불안은 결코 해소될 수 없다. 진정한 대안은 그 모델을 모멸하면서 그 모델을 신봉하는 남의 시선에서 독립하는 것이다.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까 하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삶을 추구할 수 있는 상상력과 용기, 이게 바로 우리가 지위 불안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다. ‘비교하지 않는 삶’은 정녕 불가능한가? - 2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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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의 정석 - 무에서 유를 만드는 10가지 빡신 기획 습관 기획의 정석 시리즈
박신영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1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일을 하면서 아이디어를 얻고 이를 어필할 수 있는 팁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책을 골랐다. '공모전 23관왕', '공모전 상금으로 혼수 준비를 다 마친 공모전의 여왕'이라는 저자의 소개를 보고 나서는 더욱 호기심이 생겼다.


1. Focus - 근본적으로 중요한 게 뭘까, 2. 4MAT - 왜 내 말을 못 알아들을까, 3. Why - 잘 팔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4. Drawing - 도무지 가닥이 잡히지 않는다면, 5. Definition - 문제가 날카로워야 해결책도 빛이 난다, 6. Dividing - 쪼갤수록 답이 보인다, 7. Concept - 됐고, 한마디로 뭐야, 8. Action plan - 머릿속에 그림이 안 그려진다면, 9. Expectation effect - 그래서 뭐 어쨌다고, 10. Storytelling - 뇌에 꽂히게 말해봐, 라고 구성된 목차 또한 단순하지만 분명한 메세지를 주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해하기 쉽도록 명료한 문장과 사례를 포함시켰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런데 너무 기초적이다. '정석'이라는 제목대로 그저 원론적인 이야기를 늘어 놓은 듯 하다. 또한 기획을 추진하기 위해 어떻게 하라, 라는 메세지는 있어도, 정작 중요한 기획을 어떻게 발굴하고 다듬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은 부족해보인다. 수요자의 입장에 서서 그 니즈를 파악하고 이 기획에 대한 필요성을 설득하는 것의 중요성은 충분히 알겠지만... 저자의 이력에서 두드러지는 공모전 우승이라는 실제 사례를 더욱 부각하여 구체적인 노하우를 포함시켰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더 크게 남는다.

왜? -> 기획 배경(problem)
뭐? -> 제안 내용(solution)
시간 없어. 한마디로 뭐야? -> 콘셉트(concept)
그림이 안 그려져. 느낌이 안 와. -> 실행 방안(action plan)
당연한 얘기 지루하게 하지 말고. -> 스토리텔링(storytelling)

기획은 무시무시한 것이 아니다. 그분의 입장에서 그 일을 왜 해야 하는지 기획 배경(problem)을 정의한 후, 해결책(solution)을 끌리는 한마디(concept)로 제시하고, 그림이 그려지도록 세부적인 실행 방안(action plan)을 제안하며, 그분이 이해할 수 있도록 그것을 기획서(proposal)로 쓰는 것, 그리고 그 분이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발표(presentation)하는 것이다. - 37쪽

당신이 말하고 싶은 대로 what만 목청껏 소리쳐서 신영이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표정으로 답답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자. 그리고 다음 사항들을 기억하자. 신영이의 입장에서 자신이 그것을 왜 해야 하는지(why), 그래서 자신이 알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what), 그것의 근본원리와 세부 내용은 어떤지(how), 만약 그것을 한다면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if) 설명해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신영이로 하여금 ‘엇, 나 이거 해야겠다’라고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 44쪽

Real why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물어보아야 할 것은 다름 아닌 why이다. Why를 대충 한 번만 묻지 말고, 명백한 이유가 나올 때까지 물어보아야 한다. 이 과정이 이름하여 5why이다. 이것은 토요타의 사장이었던 오노 다이이치(大野耐一)가 "문제에 부딪혔을 때 ‘왜’를 다섯 번 반복하면, 진짜 원인을 알 수 있고 진짜 대책을 세울 수 있다"면서 근본적 원인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늘 사용한 질문법이다. 다섯 번의 ‘왜’를 계속 묻다보면, 피상적인 현상에서 진정한 문제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 5why라고 해서 딱 5번만 물으라는 얘기는 아니다.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그분의 입장에서 물어볼 수 있는 why들을 몇 번이고 물어보라는 의미이다. - 60쪽

문제: 최선의 상태와 현실 간의 차이.
문제점: 결과를 일어나게 만든 원인들 중에서 대처 가능한 것.

이렇게 목적과 문제를 정리하다보면 대처할 수 있는 원인들을 바탕으로, 원하는 최선의 상태를 이루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이 ‘목표’로 재정의된다. 목표를 명확하게 재정의한 후에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나의 목표가 매력적으로 보이고, 그 목표를 이루고 싶게끔 ‘콘셉트’를 잡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대처해야 할 일들을 뭉뚱그려놓지 않고 쪼개는 것이 바로 ‘실행 방안’이다.
이것은 우리가 처음 배운 4MAT에도 적용된다.
- why = 목적
- what = 최선의 상태와 현실 간의 차이가 나는 원인을 파악하고, 그중에 대처 가능한 것을 바탕으로 설정한 목표, 그것의 콘셉트화
- how = 하나의 콘셉트 아래에서 대처할 일들을 쪼갠 실행 방안
- if = 문제를 해결한 후 발생될 기대효과 - 86쪽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대상을 쪼개고 -> 공통점을 찾아 -> 그룹핑을 하고 -> 패턴을 발견하자, -> 그리고 센스 있는 네이밍을 하자. "저는 이 현상을 ㅇㅇ라고 명명하겠습니다." - 133쪽

5%의 의식과 95%의 무의식에 대한 이론을 듣는 순간, ‘인간은 딱 자기의 무의식에 저장된 만큼만 상상하겠구나’라는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의식하고 있지 않아도 내 머릿속에는 무의식적인 데이터베이스가 있는 것이니까. 무언가 아이디어를 내야 할 때면 거기에 저장된 만큼 발현될 테니! 그래서 나는 절대량을 쌓는 습관이 생겼다. 즉 무언가를 시작하면 ‘100개만 해보자’라는 마음가짐이 습관화되어 있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피아노 연주를 맡기면 100번만 쳐보자. 실력이 있어야 그다음으로 기교나 느낌이 있는 연주를 해도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PT를 할 때도 100번만 해보자. PPT를 만들 때도 100개만 만들어보자. 운동을 배울 때도 100번만 반복해보자. 이런 습관을 기르면 마음이 편하다. 자신에게 매우 관대해지기 때문이다. 몇 번을 실패해도 괜찮다. 지금은 절대량을 쌓고 있는 순간이니까. - 135쪽

1. 목표를 콘셉트로 만들기
- 콘셉트는 ‘미디어가 된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퍼뜨리고 싶은 이야깃거리’가 되어야 한다.
- 콘셉트는 소비자들이 듣는 첫마디이므로 what이 아닌 why에서 나와야 한다.
- 콘셉트는 소비자들의 ‘왜?’라는 물음, 즉 why에 대한 대답이 되어야 한다.
2. 콘셉트에 담아야 할 why에 대한 6가지 대답
(1) 왜? -> 의미 있잖아. (허세거리 = meaningful thing)
(2) 왜? -> 대세잖아. (안심거리 = mega trend)
(3) 왜? -> 내 이야기야. (진심 = sympathy)
(4) 왜? -> 내 생각과 같아. (교감거리 = motivation)
(5) 왜? -> 네 잘못이 아니야. (핑계거리 = because of)
(6) 왜? -> 이거니까. (본질 - originality) - 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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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발전소 2016-09-07 1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적하신 구체적인 스킬은 <기획의 정석 (실전편)>이 잘 되어 있더라구요. 개념을 아는 것과 실무에 적용하는 것 사이에 Gap을 메꾸는게 정말 어렵죠 ㅎㅎ 서평 잘 읽었습니다 ^^

붉은눈 2016-09-07 12:44   좋아요 1 | URL
아, 실전편도 있었군요. 제가 그것까지는 모르고 불평을 했네요. 실전편도 살펴봐야겠습니다. 댓글 감사드립니다.
 
말하다 - 김영하에게 듣는 삶, 문학, 글쓰기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확인해보니 작년 4월에 한번 읽었던 책이다. 그때는 밑줄만 그어 놓아서 다시 한번 정리하는 차원에서 재독(再讀)을 하였다. 역시 <보다>를 재독할 때와 마찬가지로 책이라는 것이 읽을 때마다 그때의 내 상황과 생각과 기분에 따라 상당히 다르게 다가오는 것임을 느낀다. 이번에는 전혀 다른 문장들에 눈길이 갔다.

저자가 강연을 하거나 인터뷰를 한 것을 모아놓은 것이어서 뭔가 새로운 것을 원했던 독자들에게는 실망스러울 수도 있으며, 예전에 했던 것들에 대한 재탕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사느니 TED나 세바시, 힐링캠프를 검색하여 저자의 강연을 들으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저자의 일관된 주장을 편집하여 한 권의 책으로 읽는다는 것도 독자의 입장에서는 시간적으로나 금전적으로 그리 아까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저자는 소설을 통하여 독자와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을 쓰며 소설과 소통하다가 그것이 완성되면, 그때에는 소설과 독자들의 새로운 소통이 시작되는 것이며, 작가는 사라지는 것이라고 하니 저자가 기획하고 있는 이 3부작의 산문은 독자들과 소통하려는 특별한 노력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듯 하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내면을 지켜라', '예술가로 살아라', ' 엉뚱한 곳에 도착하라', '기억 없이 기억하라'라는 의미심장한 문구들을 '해라'체로 구성하였다. 아무래도 '말하다'라는 제목이다보니 저자가 하려 했던 말을 이런 투로 표현한 것 같다. 아무래도 강연과 인터뷰의 편집이다보니 각 부마다 제목에 꼭 맞는 내용들로만 구성된 것은 아니다.

1부에서는 독서라는 탐침을 통하여 자기 내면을 지켜나가는 비관적 현실주의와 감성근육에 대하여 이야기 하면서 자기해방의 글쓰기를 강조한다. 2부에서는 유용성을 결여한 그 자체로의 예술을 추구할 필요성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소설가라는 예술가가 된 저자 자신의 예(서재, 할머니의 벌집)를 일부 소개한다. '나를 작가로 만든 것들'이라는 보다 직접적인 제목은 4부에 있다.

1, 2부가 주로 독자나 청중에게 글을 읽고 쓰도록 권하는 이야기라면, 3, 4부는 소설과 문학이라는 조금 더 넓은 차원에 관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1, 2부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흥미가 감소되었는데, 중간중간에 끼워놓은 인터뷰에서는 저자가 썼던 소설들에 대한 Q&A가 있어, 이 책을 읽기 전에 읽었던 김영하의 소설에 대한 기억이나 미처 파악하지 못한 관점들을 제시하고 있다는 장점은 있다.


이 책을 통하여 저자가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인식, 삶의 방식과 지향, 작가인 동시에 독자로서 문학(특히 소설)을 대하는 태도, 글쓰기와 독서의 의미 등을 엿볼 수 있었다. 야만성을 향해 다가간 우리 사회의 퇴화, 압박면접이라는 사디스트적 행위 속에 감추어진 관계의 심리는 크게 공감이 갔다. 부모가 제시하는 조건부 혹은 유보적인 성취와 자신의 의지를 교환하지 않은 개인적 경험이나, 실패로 얼룩진 소설을 통하여 인생의 보험을 찾을 수 있다는 조언, 불필요한 관계에 휩싸이지 말고 그 시간에 내 취향과 영혼에 도움이 될 무언가를 하는 것이 더 낫다는 제안들은 청년이라고 보기엔 다소 나이가 든 내게도 유용한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러나 그가 제시하는 비관적 현실주의와 감성근육, 자기해방의 글쓰기는 책을 읽고 난 후 공감이 간다고 바로 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앞으로도 계속 머리와 가슴에 새겨두어야겠다.


이렇게 읽다보니, 소설 속에 숨겨진 작가의 뜻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쓴 작가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말을 듣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는 단순히 소설의 숨겨진 의미나 해석 차원의 도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을 읽는다는 행위와 그 소설과 독자와의 사적인 관계를 적극적으로 확인하는 차원의 도움을 말한다. 이 소설이 무슨 의미인지를 고민하면서 읽을 수도 있고, 재미와 즐거움 혹은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도 소설을 소비할 수 있겠으나, 읽고 배우며 그것을 체화한다는 의미에서는 매개체가 아닌 완성품으로서의 소설과 그것을 제조한 장인으로서의 작가를 분리해서 보는 방식은 읽는다는 행위와 읽는 대상에 대한 보다 명정한 이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한국에 돌아와서 느낀 변화라면, 예전보다 사회가 가진 희망의 총량이 많이 사라졌다는 거예요. 이제는 희망을 품는 것은 고사하고 다들 자기가 지금 차지하고 있는 자리라도 지키고 싶어한다는 인상을 받았고요. 그리고 우리 사회가 문명보다는 야만을 향해 조금 더 움직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약자를 존중하고 사회적 계약을 준수하는 것이 문명이라면 그 반대쪽으로 많이 움직인 것 같다는 거죠. - 11쪽

예를 들면 그런 게 있더라고요, 압박면접이라고 하나요? 그 무슨 사디스트적인 행동인지 모르겠어요. 취업을 하겠다는 사람에게 모욕을 주는 거잖아요. 정확히 그건 나쁜 부모가 하는 행동이거든요. "너는 모자라다, 너는 왜 이렇게 부족해" 이런 얘기를 하면서 모욕을 주고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모습이 똑같아요. 그런데도 지원자는 웃어야 되잖아요. 그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해야 되고, 자기는 모든 걸 견딜 수 있는 사람인 것처럼 처신해야 하고요. 심지어 실수로라도 반항하지 않도록 강자의 논리로 자기를 설득하잖아요. ‘경쟁이니까 어쩔 수 없는 거야’ 이런 걸 스스로에게 설득시키고 받아들이는 거죠. 나쁜 부모의 마음에 들려고 애쓰는 아이와 비슷한 거죠. - 12, 13쪽

아버지의 소원을 들어드리지 못해 죄송했지만 저는 분명하게 제 의사를 밝혔습니다. "못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어른들의 바람은 늘 그런 식이기 때문입니다. 대학만 들어가라, 졸업만 해라, 결혼만 해라, 아이만 하나 낳아라, 그다음부터는 네 마음대로 살아라. 하지만 아무 조건도 없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날’은 결코 오지 않습니다. - 17, 18쪽

보란듯이 성공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미안하지만, 여러분 앞에는 암울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게다가 나는 작가라 여러분에게 성공하는 법 같은 것은 가르쳐줄 수가 없다. 작가는 실패 전문가다. 소설이라는 게 원래 실패에 대한 것이다. 세계명작들을 보라. 성공한 사람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노인과 바다>의 노인은 기껏 고생해서 커다란 물고기를 잡는 데 성공하지만 결국 상어들에게 다 뜯기고 뼈만 끌고 돌아온다. <안나 카레리나>의 안나와 <마담 보바리>의 보바리 부인은 자살하고 만다. <위대한 개츠비>의 개츠비는 옛사랑을 얻기는커녕 엉뚱한 사람이 쏜 총에 맞아 젊은 생을 마감한다. 문학은 성공하는 방법은 가르쳐줄 수 없지만 실패가 그렇게 끔찍하지만은 않다는 것, 때로 위엄 있고 심지어 존엄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그러니 인생의 보험이라 생각하고 소설을 읽어라. - 20, 21쪽

이제는 열심히 해도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낙관이 아니라 비관입니다. 어떤 비관인가? 바로 비관적 현실주의입니다. 비관적으로 세상과 미래를 바라보되 현실적이어야 합니다. 세상을 바꾸기도 어렵고 가족도 바꾸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뿐이다, 자기계발서들이 말하는 내용이 바로 그것입니다. 너 자신이라도 바꿔라, 저는 그것마저도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를 바꾸는 것 역시 쉽지 않습니다. 그게 쉽다면 그런 책들이 그렇게 많이 팔릴 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당장 바꿀 수 있는 것은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대책 없는 낙관을 버리고, 쉽게 바꿀 수 있다는 성급한 마음을 버리고, 냉정하고 비관적으로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 22, 23쪽

마흔이 넘어서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친구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거에요. 잘못 생각했던 거죠. 친구를 덜 만났으면 내 인생이 더 풍요로웠을 것 같아요. 쓸데없는 술자리에 시간을 너무 많이 낭비했어요. 맞출 수 없는 변덕스럽고 복잡한 여러 친구들의 성향과 각기 다른 성격, 이런 걸 맞춰주느라 시간을 너무 허비했어요.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이나 읽을걸. 잠을 자거나 음악이나 들을걸. 그냥 거리를 걷던가. 20대, 젊을 때에는 그 친구들과 영원히 갈 것 같고 앞으로도 함께 해나갈 일이 많이 있을 것 같아서 내가 손해 보는 게 있어도 맞춰주고 그러잖아요. 근데 아니더라고요.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은 많은 친구들과 멀어지게 되더군요.
그보다는 자기 자신의 취향에 귀기울이고 영혼을 좀더 풍요롭게 만드는 게 더 중요한 거에요. - 38, 39쪽

인간만 존재하는 세상에선 인간의 본질을 생각할 필요가 없죠. 그런데 동물과 함께 있으니까 인간다움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인간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들은 대부분 신화인데, 신화는 계속해서 동물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그런 것이야말로 인간이 어디에서 왔는지 말해주는 게 아닐까요? - 47, 48쪽

글쓰기야말로 인간에게 남겨진 가장 마지막 자유, 최후의 권능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빼앗긴 인간도 글만은 쓸 수 있습니다. 인간성의 밑바닥을 경험한 사람도 글만은 쓸 수 있습니다. 정신과 육체가 모두 파괴된 사람도 글만은 쓸 수 있습니다. 거꾸로 말하자면, 글을 쓸 수 있는 한, 우리는 살아 있습니다. 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파괴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한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키는 마지막 수단입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압제자들은 글을 쓰는 사람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굴복을 거부하는 자들이니까요. - 56, 57쪽

롤랑 바르트에 의하면 플로베르는 소설을 쓴 것이 아니라 문장과 문장을 연결한 것뿐이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앞에 쓴 문장에 이어 말이 되도록 다음 문장을 쓰는 것이죠. - 69, 70쪽

제가 미친듯이 글을 써보라고 하는 것은 우리 내면에 숨어 있는 예술가의 악마가 따라오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 악마는 여러분이 예술가가 될 수 없는 수백 가지의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실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술가는 ‘될 수 없는 수백 가지의 이유’가 아니라 ‘돼야만 하는 단 하나의 이유’로 예술가가 되는 것입니다. - 76쪽

그럼으로써 서재는 자아가 확장해가는 공간인데, 자기와는 생각이 다른, 자기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또는 자기는 한 번도 꿈꾸지 않았던 욕망들을 실현하는, 그런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책 속의 여러 가지 생각들을 통해서 자아가 확장되는 거죠. 작은 공간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거대해질 수 있는 확장성이 있습니다. - 80, 81쪽

아마도 칼 세이건의 말일 텐데,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런 말이었어요.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내 생애에 우주를 전부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밤하늘의 별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느낀다. 저와 소설의 관계도 그와 비슷한 것 같아요. 전 세계의 소설에 역사가 있잖아요. 밤하늘의 별처럼 많은 소설들이 있고, 제가 쓰는 건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죠. 앞으로 남은 생애 안에 제가 아무리 잘 쓴다고 해도 밤하늘의 어떤 흔적도 되지 못할 수도 있는데, 그러나 그 세계의 일부라는 것, 내가 그 작가들 중 한 명이라는 것, 그게 어떤 기쁨을 줄 때가 있어요. 내가 그 세계의 아주 작은 일부라는 사실이 말이에요. 소설의 세계는 너무 거대해서 저는 어떤 파문도 일으키지 못할 거에요. 그게 기쁠 때가 있어요. 광대무변한 이 우주와 나. - 89, 90쪽

계속 떠돌면서 살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이런 거에요. 낯선 곳에 엉뚱하게 던져진 존재라는 것. 그러니까 자기도 잘 모르는 낯선 곳에 엉뚱하게 던져져서 여기가 어딘가를 어리둥절해하다가 생을 마감하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 99쪽

기초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문장은 쓸 수 있잖아요. 그런 정도만 되면 할 수 있는 것이 문학이고, 그때 중요한 것은 자기를 억압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자유롭게 발언하는 거에요. 저는 거기서 기본적 희열이 비롯된다고 생각해요. 해방감. - 136쪽

예전에 토니 모리슨이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나는 나의 서가를 둘러보고 거기에 없는 책을 쓴다." 또 어떤 작가는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쓴다고 말했죠. 다 비슷한 말입니다. 내가 읽고 싶거나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책을 쓰려고 노력한다는 거지요. 저는 토니 모리슨의 말을 더 좋아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기 서가를 둘러본다는 거에요. 서가를 둘러본다는 것은 지금까지 쓰인 책을 다 검토한다는 거죠. 작가에게 독서는 그런 의미에서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읽어보고 중요한 질문을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것이지요. 내가 정말 알고 싶었거나 답변을 듣고 싶었으나 지금껏 누구에게서 듣지 못했던 것이 있는가? 그것을 나는 새롭게 표현할 수 있는가? 그런 문제들을 고민하기 위해서 작가는 늘 서가를 둘러보고 그 안에 넣고 싶은 책을 쓴다,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적어도 작가로서 그런 야심은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 139, 140쪽

독자와 작가가 소설을 통해서 소통을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소설을 통해서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지 않아요. 소설을 쓰는 동안에 저는 오직 제 소설과 소통을 합니다. 제가 창조한 세계에서 그 인물들과 대화하면서 사건들을 함께 겪어나갑니다. 그렇게 해서 소설이 완성되었다고 생각하면, 저는 나오는 거죠. 이제 그 공간에는 제가 아니라 독자들이 들어오게 됩니다. 그때부터는 소설과 독자 간의 소통이 시작됩니다. 거기 제 자리는 없습니다. 이처럼 소통이란 게 상당히 간접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데, 우리 교과서에는 어떤 강박이 있는 것 같아요. ‘이 소설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묻는 것 말이죠. 저는 제 인물들과 소통을 하고 나면, 퇴장을 하는 사람이에요. 독자는 작가가 사라진 자리에서 그 인물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죠. - 162, 163쪽

그러니 서재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우리는 바람둥이가 되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열고 새로운 책을 만나거나, 혹은 과거에 읽었으나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책을 다시 읽습니다. 그리고 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면을 발견하고는 혼자 즐거워합니다. 이런 즐거움은 가장 가까운 친구와도 나눌 수가 없습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우리는 이 은밀한 기쁨을 다른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현대의 독서는 기본적으로 개인적인 행위입니다. 심지어 그 책을 쓴 작가와도 독서의 감상을 나눌 수가 없습니다. 참 이상한 일이지만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작가 역시 그 작품을 완성한 후에는 한 사람의 독자와 마찬가지가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수백 번을 더 읽은 독자라는 점에서 일반 독자보다는 작품에 대해 잘 기억하겠지만, 그 기억 역시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져가면서 다른 독자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처지가 됩니다. - 179, 180쪽

한 권의 책과 그것을 읽은 경험은 독자 개인에게만 고유한 어떤 경험으로 남습니다. 그렇다면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독서를 왜 할까요? 그것은, 누구와도 나눌 수 없다는 바로 그점 때문입니다. (...) 모든 것이 ‘털리는’ 시대. 그러나 책으로 얻은 것들은 누구도 가져갈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독서는 다른 사람들과 뭔가를 공유하기 위한 게 아니라 오히려 다른 사람들과 결코 공유할 수 없는 자기만의 세계, 내면을 구축하기 위한 것입니다. - 180, 1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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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8-29 13: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토니 모리슨의 말이 정말 마음에 듭니다. 저는 알라딘에 나오지 않는 책의 서평을 쓰는 것이 알라딘 서재 활동 관련 장기계획입니다. 인용문을 보면서 열심히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붉은눈 2016-09-07 11:20   좋아요 0 | URL
저는 아직까지도 눈이 가고 손에 잡히는대로 책을 읽는지라 책을 선별하는 능력은 많이 떨어집니다. 뻔한 독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cyrus님 서재를 더 많이 참고해야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