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도시 - 서울에서 경기도까지, 시민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전쟁들 서울 선언 2
김시덕 지음 / 열린책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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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도시>의 저자 김시덕은 문헌학자로 꽤 이름을 알린 모양이다. 그전까지는 몰랐는데 읽고 나니 여기저기서 그의 이름이 눈에 띈다. 문헌학자가 무슨 일을 하는가 보니, 글을 읽는 직업이었다. 특이한 건 '책'이 아니라 '글'이라는 것이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무너지기 직전의 건물 머릿돌에서 가게 간판, 버려진 비석까지. 단 한 글자, 단 하나의 초성만 쓰여있어도 이 문헌학자에겐 소중한 해석의 재료가 된다.


쓰인 글에서 쓴 사람의 내력, 쓰일 당시의 상황, 쓴 이유까지 알아낸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마치 셜록 홈즈라도 된 느낌. 글에선 60-70대의 노 교수가 떠오르는데 실제론 75년생에 불과한 젊은 사람이라는 게 신기하다. 옛것을 가까이하면 말과 행동도 같이 늙나 보다.


<갈등 도시>는 저자가 서울과 주변의 위성 도시들을 걸으며 기록한 답사기다. 그는 부천, 인천, 안양을 비롯하여 일산, 고양, 파주 그리고 의정부, 남양주, 분당까지 서울에 인접한 도시들을 한데 묶어 '대서울'로 지칭한다. 이 '대서울'이란 말엔 듣는 사람에 따라 거북함이 있을 것이다. 이 말속에선 각 도시가 가진 고유성이 사라지고 그저 서울이 되고 싶은, 혹은 서울의 아류 도시들만 남기 때문이다.


물론 저자의 기준은 명확하다. 인간 사회는 물질이라는 토대 위에 지어졌기에 경제적 연관성으로 묶인 거대 권역을 통째로 읽지 않으면 서울과 그 주변 도시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확실히 분당과 일산은 서울의 거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도시고 인천은 서울을 바다로 연결해주는 공업 도시임을 부정하기 쉽지 않다. 이 밖에 다른 도시들도 버스나 지하철의 차고지, 하수 처리 시설 등 서울 내에 있긴 힘든 비선호 시설들을 품으며 이 거대 도시를 유지하는 일익을 담당한다. 저자의 생각을 찬찬히 더듬다 보면 그 논리나 근거에 대해 상담 부분 수긍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서울을 유지하기 위한 인위적 정책의 결과라고 생각하면, 주변 도시들의 희생이 눈에 띄면서 반발감이 들끓는다. 불필요한 걸 억지로 떠넘겨 놓고 관계를 운운하며 하나로 묶다니. 이 논리라면 대외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은 한국, 그러니까 중국과 미국과 사실상 하나처럼 움직이는 대한민국도 대중국 혹은 대 미국의 일부로 생각해야 하는 게 아닐까? 대한민국은 중국에 양질의 공산품을 제공하는 공업 성(province)이자 미국의 극동아시아 방어 요충지인 군사 주로(state)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을 좀 더 밀고 나가다 보면 일제 시절 침략에 당위를 제공하던 대동아공영권까지 떠오른다.


저자는 양반 및 왕가, 즉 지배층의 문화를 중심으로 보존되는 역사에 격렬한 거부감을 느낀다. 궁궐이나 왕릉만 보존할 가치가 있는 것이냐? 양반들이 살던 99칸 기와집은 중요하고 서민의 기와집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냐? 대한민국의 힘은 조선을 망국으로 이끈 지배층의 사상과 문화를 극복하면서 탄생한 것인데, 이제 와서 다시 그것을 보존하고 숭배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아니냐? 나도 이 생각엔 상당히 공감한다. 하지만 이런 철학을 가진 사람이 서울을 중심으로 한 대서울 서사를 만들어내는 건 어딘지 모르게 위화감이 느껴진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서울을 중심으로 한 위성 도시들의 연계는 인위적 선택에 따른 결과일 뿐이다. 대서울 이라는 것은 단지 그 현상을 쉽게 파악하려는 생각의 틀에 불과한 걸까? 저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 틀이 서울의 확장을 긍정하고 지역 균형 발전을 저해하는 도구로 사용될 여지는 없을까?


<갈등 도시>는 엄밀한 사회 과학서가 아니다. 지은이가 직접 발로 걸어 다닌 길들을 기록한 탐사기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 담긴 내용들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사실 저자가 유년 시절을 보냈던 곳이 나의 유년시절과 겹치고 책에서 많은 부분을 할애한 강남, 인천, 일산, 분당, 파주, 의정부, 남양주 지역이 나와 무관하지 않은 탓에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흥미롭게 읽었다. 살던 동네의 옛 지명과 탄생 과정을 확인하는 미시 역사는 그야말로 우리 같은 사람들,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역사임에 큰 의미를 지닌다. 그럼에도 어딘지 모르게 뒤통수가 댕기는 이유는 뭘까? 흥미와 의심 사이를 시종일관 오락가락한 책. 김시덕의 <갈등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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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0-02-03 17: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헌학....
덕분에 좋은 책 소개 받아 감사합니다

한깨짱 2020-02-05 14:04   좋아요 0 | URL
방문에, 긴 글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 - 도둑 정치, 거짓 위기, 권위주의는 어떻게 권력을 잡는가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유강은 옮김 / 부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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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민주주의가 온다>는 2014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2016년 트럼프의 당선까지를 훑으며 유럽과 미국에 새로운 파시즘이 등장하는 과정을 기록한다.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건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가짜 뉴스가 지휘하는 '새로운 현실'의 창조 과정을 적나라하게 목격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스펙터클이 난무하는 현실의 각축장에서도 그 화려함을 잃지 않는다. 읽고 있으면 분노를 넘어 경이로움까지 느낄 수 있다. 러시아가 육성한 사이버 부대는 브렉시트부터 우크라이나 전쟁, 트럼프의 당선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머릿속 깊숙이 침투하여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수행해냈다. 그 정교함과 과감성은 러시아의 올리가르히(권력층)들이 그동안 세계를 위협했던 악당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들은 사실상 파산한 부동산업자에 불과한 트럼프를 미합중국의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유럽 각지에서 유령처럼 일고 있는 극우 정당들이 러시아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들은 확실히, 일이 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이런 걸 보면 윤리야 말로 인간의 능력을 억압하는 족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속박을 벗어던진 인간은 초인을 향해 나아간다. 인간이 인간다워야 한다는 양심이, 러시아의 올리가르히들에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들의 메시지는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드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우리가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두 번째 지식이다.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권력자들은 시민들에게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 누구도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미래를 제시하는 것은 엄청난 실패를 감수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안전한 선택은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다. 여기서 바로 '강한 국가에 대한 민족주의적 향수'가 등장한다.


유럽의 빅5는 모두 극우 정당의 돌풍을 경험하고 있다. 독일과 스페인에선 가까스로 집권당이 승리했지만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에선 모두 극우 정당이 1위를 차지했다. 이들을 보면 모두 과거에 큰 제국을 건설했던 나라다. 현재가 어려운 시민들에게 극우 지도자들은 묻는다. 과거의 영광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팍스 로마나, 대영제국, 대프랑스의 위엄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그 답은 과거에는 없었지만 현재에는 존재하는 것들로 채워진다. 중요한 건 이 답들이 '선택된다는 것'이고 합리와 양심은 그 조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것들만을 주워 담는다. 이를테면 난민, 동성애, 개인의 자유 같은 것들 말이다.


서구에서 개인의 자유는 곧잘 동성애와 연결 된다. 자유가 문란의 상징이 되는 것이다. 러시아는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의 열망을 서유럽인들의 동성애로 대체함으로써 시위대를 효과적으로 제압할 수 있었다. 자유를 열망하는 자들은 동성애를 원하는 것이다. 러시아 정부는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위대 앞에 '동성애가 몰려온다!'는 헤드라인을 붙였다. 자유의 가치는 추상적이지만 동성애는 구체적이다. 러시아 정부는 사람들이 동성애에 갖고 있는 편견을 악랄하게 이용해 그들이 시위대를 볼 때마다 구토를 유발하게 만들었다.


난민 문제는 어떻게 활용되고 있을까? 인권을 중요시하는 국가라면 응당 난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 압박이 따른다. 러시아의 사이버 부대는 난민과 강간을 연결함으로써 난민에 대한 지원을 강간에 대한 옹호로 바꿔놨다. 난민을 지원하기로 결정한 정부는 민족의 배신자가 된다. 자신의 딸, 누나, 언니를 강간의 위험으로부터 방치한 정부가 어떻게 승리할 수 있겠는가? 독일이 시리아 난민을 수용하기로 결정하자마자 러시아는 그 땅에 대규모 폭격을 감행해 더 많은 난민을 '생산'해 냈다. 생산된 난민이 메르켈을 무너뜨리고 자신과 손잡은 극우 정당이 집권하리라 예상한 것이다.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지도자들은 늘 현재의 위기를 강조한다. 이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전략이다. 선거때만 되면 휴전선에서 울리던 총성이 기억나는가? 대한민국의 최전성기는 빨갱이들을 가장 확실히 잡아 조지던 시기로 기록된다. 광장에 나온 시민들을 총과 탱크로 사살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찬란한 과거를 되찾는 제1 조건으로 꼽히는 것이다.


이러한 시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러니하게도 과거를 공부하는 것이다. 올바른 역사 인식은 필요할때마다 과거를 짜 맞추는 권력자들의 음모를 가장 확실하게 파헤친다. 로마의 영광은 황제들이 등장했던 제국이 아니라 이민족의 문화와 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던 공화정에서 비롯됐다. 프랑스? 그들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시민 혁명을 이뤄낸 민족 아닌가? 그들이 약해진 것은 난민을 받아들이고 동성애를 수용했기 때문이 아니다. 빈부와 계급에 상관없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고,


부당한 권력에 도전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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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교사 안은영 오늘의 젊은 작가 9
정세랑 지음 / 민음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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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두절미하고 재밌다. 쉽고 담백한 문장이 큰 고민없이 종이 위를 달려나간다. 읽기가 어려워진 세대를 위한 하나의 모범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렇게 써야 힘들이지 않고 책 한 권을 읽을 수 있구나. 재미로만 따진다면야 근래에 본 소설 중 가장 훌륭했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퇴마사 안은영의 이야기다. 죽은 것들을 보는 재능이 있어 어릴때부터 고초를 겪었다. 왕따였고, 항상 주변부에 머물렀는데, 남을 위해 열심히 희생해도 정작 본인은 외면받는 괴물이 되어 쓸쓸하게 살아가야 하는 아이러니가 은영의 캐릭터를 중층으로 쌓아올린다. 자신의 일을 지긋지긋해 하면서도 학교 주변에 악귀가 나타나면 맨발로 달려나가 비비탄 총과 무지개 칼을 휘두르는 모습은 무거운 운명을 짊어진 츤데레의 전형을 보여준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위처'를 떠올리면 얼추 비슷한 냄새가 날 것이다.


청춘남녀가 모인 학교인 만큼 로맨스도 빠지지 않는다. 학생 사이에도, 교사 사이에도. 보건교사 안은영의 파트너는 재단 설립자의 손자인 한문 선생 홍인표. 학창시절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다리 한쪽이 짧다. 튼튼한 두 다리를 똑바로 딛고 서도 힘든 세상인데 모자란 다리는 오죽했겠는가? 결은 다르지만 두 사람은 미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게다가 인표의 단전에는 할아버지의 것으로 추정되는 강력한 사랑의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어 은영의 살아있는 방패가 되어준다. 그녀는 인표의 단전에서 에너지를 충전해 악귀들을 물리친다.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있는 동안 사랑의 에너지가 인표에게서 은영으로 흘러들어간다.


툭툭 던지듯 내뱉는 대사, 무뚝뚝한 문장들 사이로 불쑥 치고 들어오는 달달한 이야기가 연인과 친구 사이의 썸 관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간다. 역시 감정은 리듬이다. 설탕 범벅 도너츠는 아무리 먹어도 달지가 않다. 쓰디 쓴 에스프레소 한 잔, 그 밑에 녹지 않은 각설탕 조각이 입 안에 흘러들어올 때의 느낌으로 이야기를 엮어야 한다.


오컬트를 깊게 다루지 않으면서도 훌륭한 퇴마 소설을 썼다는 것도 놀랍다. 중세니 주술이니 피라미드, 온갖 비의와 신비주의에 이골이 난 매니아들에겐 유치한 애들 장난으로 보이겠지만 그게 이 소설의 매력이다. 어설픈 시도를 하느니 아예 자기만의 길을 간다. 이 소설이 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만들어지는 지 알 것 같다. 정유미의 안은영, 남주혁의 홍인표는 아무리 봐도 미스 캐스팅 같지만. 원작이 가진 상쾌함을 믿어본다. 오랜만에 기대가 되는 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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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가소성 - 일생에 걸쳐 변하는 뇌와 신경계의 능력 DEEP & BASIC 시리즈 3
모헤브 코스탄디 지음, 조은영 옮김, 김경진 해제 / 김영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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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의 마지막 신비로 남아있는 뇌는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고작 몇 킬로그램에 불과한 주름 투성이 해면체에서 초정밀 반도체의 설계도부터 가슴을 두드리는 이야기까지 나온다는 사실은, 생각할수록 놀랍고 오묘하다. 지금 원고지 위에 쓰이는 이 글은 도대체 어디서 온 걸까? 뇌는 어떤 작용을 거쳐 생각을 만들고, 생각은 어떻게 말과 글로 표현되는 걸까?


<신경가소성>은 이 모든 활동이 신경전달물질과 수용체, 그들의 콜레보로 인한 이온의 이동으로 생긴 전기 신호 때문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 단순한 화학물질의 결합과 전기 신호가 어떻게 글, 그림, 언어 등으로 출력되는지는 아직까지 미스터리긴 하지만.


많은 사람이 우뇌형 인간과 좌뇌형 인간에 대해 들어봤을 것이다. 좌뇌형은 수리, 추론, 언어에 능한 분석형 인간이고 우뇌형은 미술, 음악 등 예체능에 능한 감성적 인간이다. 이 이론은 우리가 특정 활동을 할 때 활성화되는 뇌의 부위가 다르다는 것을 알려준다. 신경전달물질과 전기 신호는 특정한 경로를 따라 뇌의 정해진 부분을 자극한다.


그런데 이런 동작 방식은 영원불변인걸까?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과학자들은 그러한 사실에 의심을 품지 않았다. 하지만 연구가 거듭될수록 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유연하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신경가소성'이란 신경의 변할 수 있는 성질을 의미한다. 특정 자극에 대한 신경전달 경로는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일체유심조라는 말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이러한 개념이 아주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므로 마음을 달리 먹는 순간 만물을 통제할 수도 있다는 생각. 과학자들이 들으면 기가찰 말이지만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기엔 더할 나위 없이 파격적이다. 그래서 신경가소성은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외치는 성공을 향한 자기 암시나 생각의 힘을 양자물리학과 연결하는 온갖 의사 과학의 토대가 되기도 한다.


<신경가소성>은 이러한 생각을 경계한다. 이 책은 딱 증명된 만큼의 가소성을 설명한다. 뇌에 손상을 입은 환자들에게 벌어지는 신경의 변화는 대격변이라 부를 정도로 놀라운 게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오른팔을 못 쓰게 된 사람이 갑자기 테니스를 친다거나 하는 정도로 유연한 건 아니라는 한계를 명백히 한다. 이 책은 조심스러운 가능성을 제시하며, 이토록 많은 발전을 이뤘음에도 여전히 우리가 뇌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이 책은 신경 과학의 복잡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글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은데다 분량도 적당하다. 뇌의 작동 방식과 가소성의 원리를 설명하는 개론서로는 더없이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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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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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줄리언 반스의 소설을 단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다. 이걸로 에세이만 두 번짼데, 이 수다쟁이 소설가의 글은 어딘가 지루하면서도 묘하게 끌리는 매력이 있다. 소설이라면 당장에라도 다른 책을 집어 들게 하는 텐션이지만 에세이는 그 나른함 자체가 하나의 포인트가 된다.


<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은 말그대로 지극히 사적인 그림 이야기에 불과하다. 유명한 사람의 독후감이나 영화, 그림 이야기 등을 읽어본 사람은 잘 알 텐데, 나와는 어떠한 관계도 맺지 못하는 책이나 영화 이야기만큼 지루한 게 없다. 내가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예술에 대한 이야기가 재미있으려면 그 내용이 대단히 '공적'이어야 한다. 언뜻 보면 두꺼운 미술사 책들이 사적 경험담보다 읽기 힘들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감정은 같이 경험해본 사람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법. 오타쿠와 매니아들이 왜 자기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어두운 골방에서 만남을 가지겠는가? 그들의 감동은, 모르는 사람들에겐 그저 이해 못할 괴취미에 불가할 뿐이다.


이 책 또한 이런 류의 책이 갖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을 재미있게 읽으려면 읽는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 지금부터 그 방법을 알려주겠다.


1. 잘 아는 화가의 글만 읽어라

목차를 훑으며 줄리언 반스가 어떤 화가에 대해 이야기하는지 살펴보라. 그리고 익숙한 이름, 그림 밑에 명찰을 달지 않아도 100% 어떤 그림인지 아는 화가들의 글만 골라 읽어라. 줄리언 반스가 그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들의 그림에서 무엇을 읽었는지를 확인하고, 당신의 생각과 비교해보라.


2. 그림을 먼저 감상하라

유명한 화가라 할지라도 당신이 그의 그림 전체를 아는 것은 아니다. 모르는 화가라면 더 말할 것도 없고. 여기서 감상은 그저 보는 게 아니다. 몇 분 혹은 몇 십분을 할애해 천천히 그림을 음미해야 한다. 중심의 인물부터 시선을 뺏는 오브제, 가장자리의 미세한 색변화까지. 아쉬운 건 이 책에 반스가 언급한 모든 그림이 실리진 않았다는 점이다. 아마도 저작권 때문이었겠지만. 그럴 때면 인류가 발명한 최고의 기술 인터넷을 이용해 보라.


이 책으론 교양을 쌓을 수도, 미술사를 공부할 수도, 그림을 읽는 법을 배우지도 못한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는 유일한 방법은 반스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아는 사람들끼리만 이해하는 은밀한 덕질 고백. 상상해보자. 덕후들 사이에서도 인정받는 네임드와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차를 마시며 좋아하는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야외 테라스에는 선선한 바람이 불고 소음은 기분이 좋을 정도로 잔잔, 차향은 더할 나위 없이 향긋하다. 시간은 물처럼 흐른다. 어느새 어둠이 내린 세상엔 반스와 나 둘만이 남아있다. <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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