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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탄의 세이렌
커트 보니것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평점 :
<타이탄의 세이렌>은 커트 보네거트 주니어가 아직 밥을 벌기 위해 쩔쩔매던 시절에 출간한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불의의 사고로 숨진 누나의 자식들까지 입양하여 대가족을 이룬 그에게 이름 없는 작가의 삶이란 결코 녹록지 않은 적수였을 것이다. 어디서 글을 쓸 용기가 났는지는 확실치 않다. 확실한 건 이 위대한 용기가 출발한 지 거의 20여 년이 지나서야 그가 성공다운 성공을 맛봤다는 것이다.
짹짹?
이 책에는 이후 커트 보네거트가 끈질기게 추구해 온 테마의 씨앗이 골고루 심겨 있다. 트랄파마도어 행성, 미래를 안다는 것의 의미, 자유의지 같은 것들. 작가의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는 킬고어 트라우트는 아직이다.
주니어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이 <제5 도살장>과 <타임퀘이크>의 믹스라는 말에 어느 정도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제5 도살장>에는 전 세계가 똥통에 빠진 경험을 했던 2차 세계대전이 주요한 소재인 것에 비해 <타이탄의 세이렌>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확실히 문학계는 자유의지 같은 추상적 논쟁보다는 고통과 절망, 인간의 잔혹성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드러내는 시도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것 같다. 내 보기에 주니어가 작가로서 이름을 얻기 위해 <제5 도살장>까지 기다릴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커트 보네거트에게 이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면 아마 이렇게 답했을 것이다.
그렇게 가는 거지.
들어보라! 미국 로드 아일랜드 주 뉴포트에 사는 윈스턴 나일스 럼포드는 그의 개 카작과 함께 화성을 탐험하던 중 크로노 신클래스틱 인펀디뷸럼을 통과하는 바람에 파동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이후 그와 그의 개는 주기적으로 우주 곳곳에서 물질화하는 신세가 된다.
그러나 이 비극은 지구에서 15만 광년 떨어진 트랄파마도어 행성에서 온 살로를 만나며 완전히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낸다. 살로는 우주선의 부품 고장으로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에 불시착했고 윈스턴은 그곳의 유일한 인간이었다. 살로는 윈스턴을 좋아했다. 그를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에게 시간의 비밀과 자신이 가진 기술을 아낌없이 공유한다.
사실상 신이 되어버린 윈스턴은 인간의 역사를 송두리째 다시 쓰기 위해 화성에서 군대를 양성해 우주 전쟁을 벌인다. 그의 목표는 화성군이 철저히 패배하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자신이 창조한 새로운 종교가 지구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신의 계획에는 두 인간의 비극이 핵심이었다. 한 명은 성경을 이용한 투자로 세계를 지배할 정도의 부를 이룬 멜러카이 콘스탄트였고 또 하나는 그가 아직 물질로만 존재하던 시절에 결혼한 아내 비어트리스 럼포드였다. 두 사람은 윈스턴의 계획에 따라 완전히 몰락한 뒤 화성으로 납치된다. 지구인이었던 시절의 기억은 모두 삭제됐고 그 공백을 채운건 무선으로 사람을 조종하기 위해 만든 안테나였다.
신을 믿는 사람들은 고난에서조차 신의 의도를 찾으려 노력한다. 그들은 이 불행이 신이 준비한 해피엔딩의 과정일 뿐이라 믿음으로써 스스로를 위로한다. 우리 같은 하찮은 피조물의 입장에선 원하는 대로 믿고 위안을 찾으면 된다. 그러나 신의 입장에선 어떤 생각이 들까? 그러니까 지금까지 지구에서 일어나고 스러졌고 스러져 갈 모든 존재의 필요와 역할을 원자 단위까지 정해놓은 자신의 계획이, 사실은 더 큰 신이 짜 놓은 더 큰 계획의 일부라는 걸 알게 됐을 땐?
<타이탄의 세이렌>을 읽을 때 당신은 멜러카이 콘스탄트나 비어트리스 럼포드에 감정을 이입해선 안 된다. 당신은 이 이야기의 신이자 악당인 윈스턴 나일스 럼포드에 빙의해야 한다. 그래야만 이 소설이 전하는 진정한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