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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신 - 신은 과연 인간을 창조했는가?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한음 옮김 / 김영사 / 2007년 7월
평점 :
600 페이지나 쓸 책이 아니다. 신의 부재를 과학적으로 논증하는 책으로 기대했는데 택도 없는 바람이었다. 대부분이 성경의 꼬투리를 잡는 무의미한 시비글이거나 종교인의 모순을 꼬집는 조롱이다. 리처드 도킨스 정도의 대 과학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날카로운 통찰력은 없다. 여름 성경 학교를 두 번만 갔다 와도 얘기할 수 있는 범부의 주장이었다. 어마어마한 두께를 자랑하고 있음에도 이 책에선 신기할 정도로 깊이가 보이지 않는다. 기적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이 터무니없음으로 인해 하마터면 난 신의 존재를 믿을 뻔 했다.
신은 믿을 수 있어도 종교는 믿을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종교는 오랜 시간 인간이 가꿔온 문화의 일부다. 그것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신의 말씀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온 역사적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족이 핍박을 받을 때 신은 거침없이 적을 찢는 죽음의 화신이 됐고 평화의 시기엔 자비로운 어머니가 됐던 것이다.
신의 모습은 당대의 인간이 바라는 모습을 정확히 반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예수의 고뇌를 이해할 수 있다. 예수는 자신이 믿는 바와 이스라엘 사람들이 믿는 것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보고 번뇌한다. 사람들은 예수에게 끊임없이 신의 아들이 될 것을 강요했고 그 막강한 권력을 이용해 민족을 핍박하는 로마인들을 한 칼에 쓸어내기를 원했다. 예수가 위대한 건 자신이 신의 아들이 아님을 알면서도 기꺼이 십자가를 지러 나아갔다는 것이다. 예수는 골고다 언덕의 고통이 살갗을 파고드는 끔찍한 현실이라는 걸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운명의 날 새벽에 떨며 기도했고 잠이 든 태평한 제자들에게 화를 낸 것이다.
종교를 역사적으로 바라보면 조롱과 비아냥 없이도 '만들어진 신'을 깊이 있게 증명할 수 있다. 나는 리처드 도킨스가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이 책을 썼는지 궁금하다. 이렇게 깊이 없는 내용과 신랄한 어조로는 어차피 이런 책 따위 쓰지 않아도 신이 없다는 걸 믿었을 사람들을 신나게 할 뿐 정말 변화가 필요한 골수 근본주의자들을 감화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대 과학자가 난리를 치지 않아도 종교는 어차피 죽어가고 있었다. 이런 공격은 도리어 죽어가는 종교로 하여금 필사적 저항 태세를 갖추게 만든다. 적을 바닥까지 몰아세우는 게 항상 좋은 전략은 아니다. 구석에 몰린 쥐는 결국 고양이를 물고 도망친다. 투항하면 살려주겠다는 말은 물가에 몰린 병사들의 마음을 흔들지만 모두 죽이겠다는 말은 칼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게 만든다.
장단컨대 도킨스 같은 사람이 많아질수록 종교는 더더욱 번성할 것이다. 최근들어 미국의 티파티나 이스라엘의 하레디, 이슬람의 IS 같은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이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는 것은 그 잘나빠진 지식인들의 계몽 전략이 얼마나 형편 없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근본주의자들의 메세지는 간단하고 강력하다. '믿으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600쪽 짜리 책이 배워야 하는 점이다.
반대 증거가 있다면 언제든지 자기 주장을 바꿀 것이라는 점에서 본인은 근본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리처드 도킨스는 과연 반대 증거를 찾기 위해 노력을 기울일까? 인간은 자신의 믿음과 반대되는 의견에 선택적으로 노출하고 그것을 선택적으로 지각한다. 증거가 바로 눈 앞에 떠다녀도 모르는 게 인간 정신의 기묘함이다.
반대 증거가 나오지 않은 현시점에서 볼 때 그는 확실히 다윈의 자연선택과 유전자의 합리적 행동을 광적으로 신봉하는 근본주의자가 맞다. 그는 인간이 그저 유전자의 총합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합리적 부분이 구성한 전체는 틀림없이 합리적이어야 한다.
종교는 비합리적이고 모순적이므로 그것을 믿는 사람들은 전부 비정상이고 정신에 결함이 있는 것이며 따라서 치료가 필요하다라는 생각은 설령 그 말이 맞다하더라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을만큼 폭력적이다. 그의 혀는 비행기를 끌고 월드 트레이드 센터로 돌진하는 테러리스트와 꼭 같은 복수심으로 가득차 있다. 이런 태도로는 그 어떤 종교인도 바꿀 수 없으며 심지어 같은 생각을 지닌 동료들조차 등을 돌릴 것이다.
인간은 단순히 유전자의 집합체가 아니며 본질적으로 합리적인 존재라는 근거도 없다. 그것은 잘나빠진 똑똑이들의 바람일 뿐이다. 현실에선 착하고 합리적인 개인이 군중을 이뤘을 때 철저히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사례를, 그러니까 전체가 결코 부분의 합이 아니라는 사례를 얼마나 많이 발견할 수 있는가? 인간과 사회에 대한 그의 이해는 6살에 옥스퍼드에 입학한 소년의 것과 자웅을 겨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