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민주주의가 온다 - 도둑 정치, 거짓 위기, 권위주의는 어떻게 권력을 잡는가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유강은 옮김 / 부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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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민주주의가 온다>는 2014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2016년 트럼프의 당선까지를 훑으며 유럽과 미국에 새로운 파시즘이 등장하는 과정을 기록한다.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건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가짜 뉴스가 지휘하는 '새로운 현실'의 창조 과정을 적나라하게 목격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스펙터클이 난무하는 현실의 각축장에서도 그 화려함을 잃지 않는다. 읽고 있으면 분노를 넘어 경이로움까지 느낄 수 있다. 러시아가 육성한 사이버 부대는 브렉시트부터 우크라이나 전쟁, 트럼프의 당선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머릿속 깊숙이 침투하여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수행해냈다. 그 정교함과 과감성은 러시아의 올리가르히(권력층)들이 그동안 세계를 위협했던 악당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들은 사실상 파산한 부동산업자에 불과한 트럼프를 미합중국의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유럽 각지에서 유령처럼 일고 있는 극우 정당들이 러시아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들은 확실히, 일이 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이런 걸 보면 윤리야 말로 인간의 능력을 억압하는 족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속박을 벗어던진 인간은 초인을 향해 나아간다. 인간이 인간다워야 한다는 양심이, 러시아의 올리가르히들에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들의 메시지는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드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우리가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두 번째 지식이다.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권력자들은 시민들에게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 누구도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미래를 제시하는 것은 엄청난 실패를 감수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안전한 선택은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다. 여기서 바로 '강한 국가에 대한 민족주의적 향수'가 등장한다.


유럽의 빅5는 모두 극우 정당의 돌풍을 경험하고 있다. 독일과 스페인에선 가까스로 집권당이 승리했지만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에선 모두 극우 정당이 1위를 차지했다. 이들을 보면 모두 과거에 큰 제국을 건설했던 나라다. 현재가 어려운 시민들에게 극우 지도자들은 묻는다. 과거의 영광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팍스 로마나, 대영제국, 대프랑스의 위엄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그 답은 과거에는 없었지만 현재에는 존재하는 것들로 채워진다. 중요한 건 이 답들이 '선택된다는 것'이고 합리와 양심은 그 조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것들만을 주워 담는다. 이를테면 난민, 동성애, 개인의 자유 같은 것들 말이다.


서구에서 개인의 자유는 곧잘 동성애와 연결 된다. 자유가 문란의 상징이 되는 것이다. 러시아는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의 열망을 서유럽인들의 동성애로 대체함으로써 시위대를 효과적으로 제압할 수 있었다. 자유를 열망하는 자들은 동성애를 원하는 것이다. 러시아 정부는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위대 앞에 '동성애가 몰려온다!'는 헤드라인을 붙였다. 자유의 가치는 추상적이지만 동성애는 구체적이다. 러시아 정부는 사람들이 동성애에 갖고 있는 편견을 악랄하게 이용해 그들이 시위대를 볼 때마다 구토를 유발하게 만들었다.


난민 문제는 어떻게 활용되고 있을까? 인권을 중요시하는 국가라면 응당 난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 압박이 따른다. 러시아의 사이버 부대는 난민과 강간을 연결함으로써 난민에 대한 지원을 강간에 대한 옹호로 바꿔놨다. 난민을 지원하기로 결정한 정부는 민족의 배신자가 된다. 자신의 딸, 누나, 언니를 강간의 위험으로부터 방치한 정부가 어떻게 승리할 수 있겠는가? 독일이 시리아 난민을 수용하기로 결정하자마자 러시아는 그 땅에 대규모 폭격을 감행해 더 많은 난민을 '생산'해 냈다. 생산된 난민이 메르켈을 무너뜨리고 자신과 손잡은 극우 정당이 집권하리라 예상한 것이다.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지도자들은 늘 현재의 위기를 강조한다. 이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전략이다. 선거때만 되면 휴전선에서 울리던 총성이 기억나는가? 대한민국의 최전성기는 빨갱이들을 가장 확실히 잡아 조지던 시기로 기록된다. 광장에 나온 시민들을 총과 탱크로 사살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찬란한 과거를 되찾는 제1 조건으로 꼽히는 것이다.


이러한 시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러니하게도 과거를 공부하는 것이다. 올바른 역사 인식은 필요할때마다 과거를 짜 맞추는 권력자들의 음모를 가장 확실하게 파헤친다. 로마의 영광은 황제들이 등장했던 제국이 아니라 이민족의 문화와 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던 공화정에서 비롯됐다. 프랑스? 그들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시민 혁명을 이뤄낸 민족 아닌가? 그들이 약해진 것은 난민을 받아들이고 동성애를 수용했기 때문이 아니다. 빈부와 계급에 상관없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고,


부당한 권력에 도전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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