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펭귄클래식 155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심영아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6년 7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제대로 증오하기 위해 또 한 번 완독했다. 작은 판으로도 121페이지 밖에 되지 않는 책이다. 두 시간 정도면 얼마든지 읽어 치울 수 있다.


워낙 유명한 보아뱀 이야기 때문에 그거 말고는 도입부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는데 다시 들고 보니 화자의 독백 부분이 상당히 멋진 책이었다. 그 멋진 감각을 깨는 건 여지 없이 어린 왕자가 등장하는 부분이고 특히 "양을 그려줘.", "상자 안에 네가 원하는 양이 있어.", "세상에 하나 뿐인 꽃이야." 따위의 개수작을 벌일 땐 손발이 오그라들어 차마 독서를 이어갈 수 없는 참담함을 느끼곤 했다. 만일 이 책이 사막에 불시착한 화자의 이야기만으로 구성됐다면 지금 보다 훨씬 좋은 작품이 됐을 것이다. 그러니까 <어린 왕자>를 망치는 건 그 무엇도 아닌 바로 어린 왕자 자신이다.


지금 부터 이 책의 최악의 장면 3개를 꼽아 보겠다.


첫째, 그 지긋지긋한 보아뱀 이야기다. 생떽쥐베리는 어린 시절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그림을 보여주며 이 그림이 무섭지 않냐고 물어본다. 어른들은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지. 겉으로 보기에 그건 완벽한 모자 그림이었으니까. 작가는 자기가 모자 그림을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잘나빠진 그림을 자꾸 "코끼리를 삼킴 보아뱀"으로 보도록 강요한다. 그러면서 어른의 상상력을 미천한 것으로 치부하는데 글쎄, 아이에게 아이의 시선이 있듯이 어른에겐 어른의 시선이 있는 걸로 이해할 순 없을까? 그림을 본 어른들은 그 누구도 "이건 모자야 보아뱀이 아니야!" 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모자구나."라고 했을 뿐이다. 그림의 의미를 한가지로 고정시켜 결코 그 이상의 것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독재자의 마음은 오히려 어린 작가 쪽에서 보인다.


물론 일부의 어른들이 그런 그림을 그리기 보단 지리, 역사, 산수, 문법에 관심을 가져보라고 충고했다. 작가는 이것 때문에 자신이 화가의 길을 접었다고 말하고, 어쩔 수 없이 비행 조종사라는 직업을 택한 것처럼 말하지만 그가 죽기 직전까지 그 비행기로 무슨 짓을 했는지 돌이켜보면 애초에 화가 따위는 관심도 없었던 게 아닐까 싶다.


인생은 선택이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내놓을 수 밖에 없다. 그는 화가가 되기를 포기하고 비행 조종사가 됐다. 그는 그 직업을 엄청나게 사랑했음에도 어릴 적 포기한 화가의 꿈이 더 큰 것처럼 독자를 속이고 있다. 나쁜 어른이란 특별한 게 아니다. 바로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둘째, 여우와 어린 왕자의 첫 대면이다. 다시 읽어보면 알겠지만 여우는 거의 길거리 콜걸처럼 어린 왕자에게 접근한다. 여우는 어린 왕자를 만나자마자(초면이라는 걸 기억하자) 뜬금없이 길들인다는 것의 의미를 알려주는데 그러고는 곧장 "제발..... 나를 길들여줘!"라고 말한다. 세상에 진도가 빨라도 이렇게 빠를 수 없어, 둘은 어떠한 교감도 감정의 고조도 없이 옷을 벗고 침대 속으로 들어간다. 물론 그 순간 어린 왕자가 "그러고 싶은데, 시간이 많지 않아. 새로운 친구들도 사귀어야 하고. 알아야 할 것도 많거든." 하고 튕기지만 이어지는 말 한 마디에(총 93자. 공백 미포함) 의지는 스르륵, 곧장 "어떻게 하면 되는데?" 라며 미끼를 물고 만다. 책을 통 틀어 가장 천박한 장면으로 꼽고 싶다.


마지막은 관계에 대한 폭력적 정의다. 이 책은 말한다. 인간은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나(사실은 사랑한다고 착각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서로를 길들이고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 끝까지 이어가지 못한 사람은 결국 실패한 것이다. 우리는 이 실패를 딛고 일어서 언젠가는 영원을 이뤄야 한다 고 말이다. 이는 사랑의 본질을 완전히 착각한 것이다.


사랑이 소중한 이유는 그것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원한 사랑만이 진짜라고 정의하면 지난날 우리를 울고 웃긴 그 소중한 사랑들은 모두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정녕 가짜를 포옹하고 가짜와 키스하며 가짜를 사랑한 것일까?


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끝까지 책임지지 못했던 시간을 갖고 있다. 우리가 현재의 사랑에 충실할 수 있는 이유는 지난날 가졌던 그 시간의 아픔 때문이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무' 때문이 아니다. 여우는 관계를 지나치게 신파적으로 만든다. 어쩌면 떠나가는 왕자를 붙잡기 위해 그런 말을 지껄였는지 모른다. 그래서 거짓을 말한 거라면 그래, 여우를 용서해 줄 수는 있다.


<어린 왕자>는 지나치게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오늘날 <어린 왕자>는 어른의 동화를 넘어 일종의 신화가 되버렸다. 다른 감상은 허용치 않는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알아보는 사람이 그것을 "모자 그림."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경멸하고 무시한다. 그것이 바로 유아의 무지이자 유아의 잔인함이다. 하지만 명심하자. 시간이 흘러 몸과 마음이 변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모두 "찌든다." 시간의 때가 켜켜히 마음에 쌓이는 것이다.


누군가는 그냥 "찌든" 어른으로 살아가고 싶을 수도 있다. 누군가는 그냥 "모자"를 그리고 싶을 수도 있다. <어린 왕자>는 이 자연스러운 욕망을 조롱하고 경멸한다. 오직 자신의 시선만이 "순수"하다고 공표한다. 나는 이 폭력이 몸서리 치게 싫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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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2-14 2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메타포에 대해서 배우셨으면 합니다.

한깨짱 2021-02-15 14:11   좋아요 0 | URL
아직 배울 것이 너무나 많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