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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 이후의 중국
프랑크 디쾨터 지음, 고기탁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7월
평점 :
중국은 정치와 경제가 한 몸인 나라다. 이 거대하고 야만적인 독재 국가를 이해하려면 이 점을 반드시 숙지해야 한다. 하지만 좀 더 간단한 도식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딱 하나만 기억하면 된다.
공산당.
정치와 경제가 한 몸인 중국에서 정치는 공산당으로만 구성되므로 중국은 곧 공산당, 공산당은 중국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중국의 현대사를 밝히는 <마오 이후의 중국>은 사실상 인민의 역사가 아닌 공산당의 역사를 기술한다. 마오쩌둥, 화궈펑,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 한 세기에 이르는 공산당의 역사는 앞서 언급한 이 인물들의 개인사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집단 지도 체제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최고 권력자 1인과 그 측근들의 권력 독점이 공산당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이 지도자들은, 성향과 출신은 조금 다를지언정 당이 추구하는 최우선적 가치만큼은 줄곧 유지해 왔다. 그것은 바로 일관된 거짓말, 일관된 시민 탄압, 일관된 독재다. 나는 늘 궁금했다. 십억이 넘는 중국 인민들은 왜 한 줌도 되지 않는 공산당의 독재를 일방적으로 수용하는가? 그들의 마지막 저항은 1989년 6월 4일이었던 것 같다. 천안문 사태로 불리는 이 시위는 몇십만에 이르는 군대의 투입과 총격으로 무자비하게 진압됐고 이후 중국은 대규모 시위가 불가능한 불구가 됐다.
중국 공산당의 장점은 역사를 공부한다는 점이다. 공산당은 80년에 광주를 짓밟았음에도 87년의 직선제 개헌을 막지 못한 대한민국을 철저히 분석한 것이 틀림없다. 중국 공산당은 완전하고 불가역적인 시민운동의 붕괴를 원했다. 그들은 더 높은 강도로 인권을 탄압했고 중국의 누런 땅을 다시는 자유가 뿌리내릴 수 없는 불모지로 만들었다. 그 결과가 바로 시진핑의 3 연임이다.
시진핑의 '공동부유'가 실상은 민간 기업을 탄압하기 위한 명분에 불과하다는 건 모두가 알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공산 국가 내에서 빈부의 격차가 발생하는 모순을 제거하기 위해 민간 기업을 잡아 죽이기로 결심했다. 목숨을 담보 잡힌 경영자들은 결국 이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것은 전부 당의 것입니다.'
지금까지 서구 사회는 중국에 경제의 자유를 심으면 정치의 자유가 뒤따라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완전한 착각이었다. 지난 수십 년간 세계의 공장으로 일해온 중국은 막대한 달러를 축적하고 선진국의 기술을 훔치고 저개발 국가를 약탈해 얻은 이득을 시민을 탄압하는 데 이용해 왔다. 환경 규제도 노동법도 준수할 필요 없는 중국은 서구의 기업들에게 낙원이었다. 이제 와서 난리를 치지만 실상 전 세계는 중국의 범죄를 방조한 공범이라고 볼 수 있다.
덩샤오핑은 공산당을 향해 늘 '겸손하고 때를 기다리라'라고 했는데 현대의 공산당은 지금이 바로 그 때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기점으로 중국은 서구의 정치, 경제 제도가 완전히 실패했다고 단정했다. 강력한 환율 통제와 무한에 가까운 대출 제공으로 그 누구보다 빠르게 2008년의 경제 위기를 돌파했다고 자칭한 중국. 그러나 인위적인 경기 부양책은 늘 거품을 만들기 마련이고 막대한 시민의 희생을 강요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정보 통제로 이 사실을 가리고 폭력으로 불만을 잠재운다. 그럼에도 체제가 유지되는 이유? 북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이 평양의 상류층만 통제하는 것으로 정권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중국 공산당도 사회를 통제하는 핵심계층을 파악하고 이들을 달래는 정책을 정교하게 설계한다. 여기에 필요한 돈은 농촌 인구나 취약 계층에 부과하고, 국내의 강제 노동 수용소, 저개발 독재 국가와 결탁한 자원 수탈, 홍콩, 대만 같은 민주 사회를 압박해 얻어낸다. 중국 공산당은 전반적으로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 등장한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을 닮아있다. 그들은 확실히 역사에 정통하다.
지금 중국은 상당한 위기다. 거품으로 연명하던 부동산 시장이 붕괴하고 소득 감소로 인해 내수 시장은 성장이 더디고 외국인의 투자도 예전만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중국의 공장들에게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라 요구한다. 몇몇 기업은 벌써 베트남 등으로 주요 생산기지를 옮긴 상태다. 미국의 첨단 기술은 더 이상 중국에 제공되지 않는다.
정보를 독점해 세계를 통제하겠다는 계획은 역사상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정보의 양이 그 처리 기술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AI를 필두로 한 기술의 발전은 이것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얘기한다. 지금은 미국의 방해로 그 속도가 주춤했지만 윤리와 도덕을 무시하는 데이터 활용, 광범위한 간첩 행위에 능통한 중국이 대만이라는 세계 최대, 최고의 반도체 생산 공장까지 차지하면 중국은 더 이상 옛날의 중국이 아닐 것이다. 그들은 정말 독재가 무궁한 우주 역사상 전무후무한 국가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방법을 러시아가 따라 하지 않을까? 인도나 브라질은?
악행은 윤리와 도덕으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이 물질적 이득, 민족, 애국심과 연관되어 있을 때는 더더욱 그렇다. 누군가의 눈에는 중국의 방식이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보일 것이다. 내로남불은 인간의 본성이다. 중국이라는 존재는 내로남불을 정당화하는 강력한 명분이 될 수 있다. 주저하는 민주 국가의 지도자에게 누군가 속삭인다.
'이 싸움에서 중국에게 지고 싶습니까? 당신은 중국에게 패배한 첫 번째 지도자로 기록되고 싶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