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 - 사건지평선 너머의 닿을 수 없는 세계
브라이언 콕스.제프 포셔 지음, 박병철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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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행복했다. 이렇게 쉬운 블랙홀 책이 있다니. 펜로즈 다이어그램을 만나면서부터 이 행복은 산산조각 났고 그것이 자전하는 블랙홀과 만나 최대로 확장되면서 내 이해력은 특이점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그러니 나는 이 책의 아주 작은 단편, 그것도 핵심과는 아주 먼 이야기로 변죽을 올릴 수밖에 없음을 알아주기 바란다.


블랙홀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됐다. 현대 물리학의 소산처럼 느껴지지만 이 개념은 1783년에 영국의 목사이자 과학자인 존 미셸이 최초로 떠올렸다. 1798년에는 프랑스의 수학자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도 돌멩이를 던지면 다시 땅에 떨어지는 것처럼 '빛 까지도 추락할 정도의 강력한 중력을 가진 천체'가 존재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블랙홀의 존재를 가장 격렬히 부정한 사람은 당연 아인슈타인이었다. 물리학계는 1905년을 '위대한 해' 라틴어로는 '기적의 해(Annus Mirabilis)'라고 부르는데 당시 26세의 스위스 특허청 직원이었던 아인슈타인이 '광양자 가설'과 '브라운 운동 이론'과 '특수상대성이론'과 '질량-에너지 등가 원리(a.k.a E=MC스퀘어)'라는 4편의 논문을 발표해 그때까지 '물리학'이라 불리던 모든 이론 체계를 '고전 물리학'으로 바꾼 해이기 때문이다. 이런 아인슈타인이 머지않아 퇴물 취급을 받은 이유는 그가 자신이 활짝 열어젖힌 세계가 뿜어내는 이론적 결과물들을 모두 부정했기 때문이다. 슈바르츠실트는 블랙홀을 발명한 게 아니었다. 그저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논문에 적은 방정식을 풀어냈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는 블랙홀을 부정했다.


물론 아인슈타인이 유일한 블랙홀 혐오자는 아니었다. 학계는 두 파로 나뉘어 맹렬히 싸웠고 이 전쟁을 끝낸 건 인류에게 스스로를 파괴할 능력을 쥐어준 원자폭탄의 아버지 오펜하이머였다. 이후 우리는 연료를 소진한 별이 내부의 압력이 사라짐에 따라 자체 중력에 의해 붕괴되어 블랙홀이 만들어진다는 걸 당연하게 얘기할 수 있게 됐다.


1973년 스티븐 호킹은 조지 엘리스와 공동 집필한 <시공간의 거시적 구조>에서 '우리의 우주는 아득한 과거에 특이점에서 시작됐다.'라고 썼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특이점은 모든 걸 빨아들여 무로 돌리는 시간의 끝 아닌가? 그곳에선 새 우주가 탄생하는 게 아니라 우주의 모든 것이 사라지지 않나? 나는 이 해답을 카를로 로벨리의 <화이트홀>에서 얻었는데 그때의 전율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많은 천재들이 블랙홀을 부정한 이유는 특이점이 모든 이론을 붕괴시키기 때문이다. 블랙홀 안에서 시간은 뒤죽박죽 섞이고 현실은 환상과 자리를 바꾼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이 우주의 절대 반지 또한 여러 개의 반지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나는 그런 점에서 때로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황당한 과학자들의 낙관과 긍정이 이해된다.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이 존재하는 이유는 창조주의 섭리와 기적 때문이 아니다.


우리에게 아직 그것을 이해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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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다 하다 앤솔러지 4
김엄지 외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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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엄지의 <사송>은 미지근해진 연애를 얘기한다. 내게 소설가들은 죄다 INFP에 장기 연애를 할 거 같은 선입견이 있는데 여기에 나오는 연인이 비슷한 인상이다. 장기 연애를 해본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이미 죽어버리 관계를 한쪽에 치워두고 애써 외면하는 시기가 온다는 걸. 이러니 저러니 핑계를 대 보지만 사실은 끝난 것이다. 이걸 다잡아 결혼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간혹 있다. <사송>의 남자도 비슷하다. 그는 이야기의 끝에서 알듯 모를듯한 결의를 다지는데 그건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확실한 끝과 관계의 재발견. 할 수만 있다면 소설 속에 들어가 정신이 번쩍 들도록 전자를 소리치고 싶다. 떠나야 해. 새로운 기회를 찾아. 꺼져버린 사랑은 다시 붙일 수 없어.


이 책을 읽게 된 건 사실 백온유의 <나의 살던 고향은> 때문이었다. 덫에 걸려 발가락이 잘린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고향에 내려온 여자의 이야기를 어떻게 놓칠 수 있을까? 예상했던 대로 이 소설은 서늘하고 어느 지점에서는 기괴하기까지 하다. 영지는 똑똑하다고 소문난 여자였지만 고등학생 때 불의의 사고를 저질러 쫓기듯 고향을 떠나온 사람이다. 도망쳐온 서울에서도 당연히 안식을 찾을 수는 없었다. 왜? 회사라는 곳을 다녔기 때문이다. 영지는 자기 어머니를 덫으로 해친 산주와 맞서 싸우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지만 자신이 그 싸움에서 얼마나 싱겁게 패배할지를 바로 알아차린다. 그 순간 영지는 산주의 소름 끼치는 제안을 받아들인다. 마음을 놓을 곳이 없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모든 걸 파괴하는 것. 잿더미 위에서는 모두가 평등하게 자기 자리를 다시 찾아야 하니까.


서이재의 <폭음이 들려오면>은 그나마 가장 희망적인 소설이다. 며칠간 가출한 조카를 돌보며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자기 마음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을 그린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요즘에는 이런 고민도 굉장히 드물지 않은가 싶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앉아 돈벼락이나 맞을 생각뿐인데, 어디서 내면의 소리가 끼어들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이 소설이 가장 희망적인 것이다. 희망은 현실과 가장 먼 것이니까.


김혜진의 <하루치의 말>은 다음의 문장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있는 소설이다.


그러면서 다시금 말을 간직하는 법을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중얼거렸다. 매일 밤, 차갑고 딱딱한 마음을 파서 하루치의 말을 묻는 일. 조금씩 더 깊이 파고, 오래 파는 행위에 단련되는 일. 말들이 새어 나오지 않도록 마음을 단단하게 잠그는 일. 그러니까 안전하고 평화로운 하루를 영위하는 현명한 사람들이 매일 되풀이하는 일들. (p.64)


<듣다>에는 안전하고 평화로운 하루를 영위하기 위해 매일 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은 현실을 보여준다. 아마 '되풀이하는 사람'이라는 문장을 '되풀이하려는 사람'이라고 고쳐 써야 할 것이다. 하려고 하지만 잘 되지는 않는. 그래서 늘 외롭고 고독한, 질릴 정도로 짜증 나지만 그렇다고 버릴 수는 없는, 바로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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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송세월
김훈 지음 / 나남출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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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이 늙었다. 많이 늙었다. 이 늙은 소설가는 소설 쓰기라는 고된 밥벌이를 떠나 잠시 허송세월하는 중인 것 같다. 일산 호수 공원에 자주 나가 철새들을 구경하고 눈이 내리면 하던 일을 멈추고 산에 오르기도 한다. 최근엔 그 산마저 끊었다는데, 늙음이란 모든 뜨거웠던 것들과의 안녕이란 생각이 든다. 들뜨고 성말랐던 마음은 차갑게 굳어 아래로 내려앉는다. 끝을 준비하는 것이기도 하고, 세상을 제대로 보기 시작하는 것이기도 하다. 태풍과 싸우는 중일 때는 그 밑이 얼마나 고요한지 모른다. 싸움에 지고 나서야, 물속에 가라앉고 나서야, 그것이 패배가 아니었다는 것을, 그저 보는 곳을 달리 한 것뿐이라는 걸 알게 된다.


내가 기억하는 김훈은 자기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우는 여동생들을 향해 울음을 그치라며 으르렁대던 사람이다. 요망하다고 했는지, 요사스럽다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1948년 생이니 옛날 사람이라 볼 수 있겠지만 김훈의 언어는 40년이 아니라 30년, 20년대까지 거슬러 오르는 옛 됨이 있다. 나는 그 옛 됨이 주는 새로움을 좋아했다. 다른 사람은 할 수 없는 말을, 김훈은 했다.


심장이 안 좋아 병원을 들락거린다고 한다. 술도 마시지 못하고, 심지어 혼수상태에 빠졌던 적도 있다고 하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다는 걸 느낀다. 장편소설 1개 정도가 남았을까? 여의치 않으면 이런 산문 한 두 개로 끝날지도 모른다. 그마저도 새로운 글은 아닐 것이다. 어딘가에서 했던 연설, 강의, 썼던 글을 모아놓은 정도.


아직도 원고지에 연필로 꾹꾹 눌러쓰는 김훈이 간다고 생각하면 아쉽고 아깝다. 김훈이 좋은 소설가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분명 유일한 소설가였다. 글로 밥을 버는 무서움을 이해하고, 어느 쪽이냐 묻는 말에 제 가는 길로 대답하는 사람. 김훈이 마지막에 가게 될 그곳은 세상을 뒤흔드는 요망한 말들이 없는 곳이다.


그러니 가는 것을 너무 슬퍼할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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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심리학
다크 사이드 프로젝트 지음 / 어센딩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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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그와트 학생들은 어둠의 마법을 배운다. 크루시오는 고문을 하고 임페리오는 정신을 조종하며 아브라 카타브라는 상대방을 즉사시킨다. 해리 포터는 특히 이 과목에 강했다. 반면 모든 과목에서 출중함을 받은 헐마이니 그레인저는 유독 이 과목에서만 성적이 저조했다. 호그와트의 천진한 아이들은 모두 어둠의 마법을 배운다.


아이들을 악마로 만드는 게 덤블도어의 목적은 아니었을 것이다. 교수들은 어둠의 마법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그 마법을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악당들은 저주를 거는데 주저함이 없다. 아니, 아예 주력으로 사용한다. 악의 힘을 늘 쉽고 강력하다. 그래서 유혹이 성립한다. 인간은 유혹에 약하다. 태어날 때부터 악당인 사람은 드물다. 대개는 이 유혹을 견디지 못한 결과다.


영화 밖에서도 악당은 넘쳐난다. 대부분의 악당들 사이에 드문드문 평범한 우리들이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그들이 크루시와 임페리오 아브라 카타브라를 시전 하지는 않지만 인간이 수만 년 동안 익혀온 사회적 기술을 이용해 유사한 효과를 얻는다. 요즘엔 너무 흔해져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떨어질 것 같은 가스라이팅이나, 왕따 같은 것들이 여기에 속한다.


<다크 심리학>은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필요한 방어술을 가르친다. 빌런이 태어나는 걸 막을 수는 없으니 빌런을, 특히 그들이 사용하는 기술을 이해해 고통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의도는 좋은데 늘 그렇듯 내용이 효과적인지는 의문이 남는다. 쉽게 말해 다 아는 내용일 가능성이 높다. 몰라서 못하나? 최근에 이 '몰라서 못하나'를 깊이 고민해 본 적이 있다. 결론은 이랬다. 만약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야라는 말을 달고 살면서 매일 똑같은 고통을 받고 있다면, 그건 진정으로 모르는 것이다.


그래도 뻔한 내용을 조금이라도 덜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275페이지부터 읽을 것을 권한다. 앞에서 펼쳐놓은 수많은 문장을 알차게 정리한 요약본이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나는 본문 보다 여기에서 더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이 책은 실습서니까, 매뉴얼을 탑재한 건 아주 좋은 판단이었다. 독자들은 정독하라는 크루시오 없이도 그 정수를 알차게 배울 수 있다.


아브라 카타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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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표본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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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토 가나에는 사이코패스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 사실 사이코패스라는 소재는 캐릭터를 쉽게 만들어준다. 엽기적인 악행이 본성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왜 그렇게 행동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배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은 마음껏 난도질을 해도 된다. 악마를 벌주는 일에는 누구도 죄책감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고백>은 정말 통쾌했다. 악마성이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소년에게 깃들어있다는 것도 주요했다. 외면과 내면 모두 투명할 정도로 순수한 악은 읽기가 쉬웠고 그만큼 찢어버릴 때 행복했다. 자기보다 더 큰 악을 만났을 때, 똑똑한 소악마가 지옥의 왕을 만났을 때, 어른보다 끔찍했던 악행은 애들의 장난으로 전락하고, 압도적인 힘의 차이가 만드는 징벌의 무게에 짓눌린 악인의 눈물에서 즐거움을 느꼈다.


<인간표본>에는 사이코패스처럼 보이는 인물들이 다수 등장한다. 그런데 정확히 말해 이들은 사이코패스가 아니다. 여러 사람을 죽여 미술품으로 전시한다는 생각을 일반인이 떠올리기 어렵긴 하지만 이미 많은 부분에서 모방의 냄새가 난다. 작가 본인도 아쿠타카와 류노스케를 거론하지 않았는가. 캐릭터도 단단하게 구축하지는 못했다. 담담하게 살인을 저지른다고 모두 사이코패스가 될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소설은 이들에게 동기를 부여한다. 세상이 그저 불타기를 원하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얻기 위해 세상을 불태우는 것이다.


이번에도 그 행위자가 아직 다 자라지 못한 아이라는 점은 <고백>과 동일하다. 하지만 이 특징이 캐릭터와 행위, 이야기 사이의 괴리를 메웠는가는 의심스럽다. 아무래도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서스펜스와 서프라이즈도 없는 소설은 두 가지 화장으로 자신을 꾸민다. 하나는 나비라는 소재고 다른 하나는 반전이다. 둘 중에는 그나마 나비가 더 잘 먹었다. 반전은 붕 뜬 화장처럼 이야기에 스며들지 못했다. 반전이라는 대목에서 <인간표본>은 사이코패스가 등장하는 <용의자 X의 헌신>처럼 보인다.


<인간표본>은 읽지 않아도 되는 소설이다. 미나토 가나에를 좋은 기억으로 남기고 싶다면 <고백>에서 멈추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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