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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톈 중국사 12 : 남조와 북조 ㅣ 이중톈 중국사 12
이중텐 지음, 김택규 옮김 / 글항아리 / 2020년 8월
평점 :
혼란스러웠던 위진을 거쳐 드디어 왕조라 부를 수 있는 시대, 그것이 바로 남조와 북조다. 남조와 북조는 말 그대로 남쪽의 조정과 북쪽의 조정이란 뜻이다. 그렇다면 남조는 무엇인가?
조조가 세운 위나라를 사마씨가 쿠데타로 멸망시키고 세운 나라가 진이다. 이 진은 봉건시대로 회귀해 중원을 여러 사마씨 왕족들에게 나눠줬다가 팔왕의 난을 맞아 완전히 무너진다. 그 잔당이 중원에서 쫓겨나 남동쪽 귀퉁이에 자리 잡은 것이 바로 동진, 이른바 남조다. 그렇다면 북조는 무엇인가?
허약한 남조가 지리적 이점을 살려 연명하는 동안 중원은 수차례 주인을 바꿨다. 그 주인공은 흉노, 갈인, 저인, 강족, 선비였다. 오랑캐 중의 오랑캐라 중화의 그 누구도 세세히 기록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 뿌리조차 모호한 야만인들. 그 야만인들끼리 피 터지게 싸워 최종전에 승리한 나라가 북위, 그것이 바로 북조의 시작이었다.
주인은 바뀌어도 뿌리는 바뀌지 않는 게 정복의 딜레마다. 힘으로 눌러두었으나 그 땅에 살고 있는 백성들은 여전히 한족으로 오랑캐와는 풍습과 습성, 언어가 완전히 달랐다. 대한민국이 일제에 주권을 침탈당한 뒤에도 끝까지 저항해 다시 나라를 찾을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이 문제였다. 민족은 쉽사리 섞이지 않는다. 그 반발력은 점점 뿌리와 줄기를 반대쪽으로 밀어내 거대한 간극을 만들어낸다. 야망을 가진 이들은 그 간극을 가만히 두고 보지 않는다.
북위는 결국 스스로를 한족으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가지야 다시 나면 그만이었지만 뿌리가 없으면 재생이 불가하지 않은가? 문제는 모든 가지가 뿌리를 향하고 싶지는 않다는 데 있다. 어찌 됐든 오랑캐는 지배계급이 됐다. 자신이 주인이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왜 주인이 주인의 옷을 벗고, 주인의 음식을 버리고, 주인의 집을 버려야 한다는 말인가?
요순시대는 신화로 남겨두고 하, 은상, 주를 중화의 시작으로 본다면 북조는 이미 한족이 이천 년 넘게 주인으로 살던 땅에 들어선 셈이다. 넘을 수 없는 시간의 벽. 이중톈 선생은 대중화 민족으로서는 삼키기 힘든 이 위진남북조를 소화하기 위해 그 의의를 오호의 소멸에서 찾는다. 이 시대를 기점으로 민족의 경계는 사라지고 남방과 북방의 차이만 남았다는 것이다. 민족은 완전히 섞여 결국 모두 중화인이되었으며 그래서 남은 건 남쪽의 김치가 짜고 북쪽의 김치가 심심한 정도의 문화적 차이뿐이라는 것. 이런 점에서 선생은 역시 중화인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남북조를 무너뜨린 건 수와 당이었다. 이들의 뿌리 역시 오랑캐인 선비족이다. 당이 세계적 대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건 그들이 완전히 한화된 선비족이었기 때문일까? 나는 당나라의 성공이 민족의 차이가 계급의 차이로 변질되는 것을 막은 데서 왔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을 그렇게나 괴롭혔던 고구려 유민에게 군권을 맡길 정도로 능력 중심의 사회를 만들었다. 장안의 서시는 페르시아인, 신라인, 고구려인, 흉노, 갈인, 저인, 강족, 선비들이 모두 모여 각자의 춤을 추던 민족의 용광로였다. 융합은 차이를 지워서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차이를 그대로 놔두고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바로 남북조와 당나라의 차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