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의 전쟁 - 글로벌 제약 산업의 패권 경쟁과 K-바이오의 생존 전략
윤태진 지음 / 바다출판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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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하면 개잡주 냄새가 심하지만 대한민국의 두 번째 성장 동력은 제약일 가능성이 높다. 신약 개발을 말하는 게 아니다. 생산이다. 삼성이 바이오로직스를 시작한 건 수십 년 간 웨이퍼를 갈고닦아 만든 초미세공정 기술 덕분이다. 분자의 크기가 대충 0.1~1nm쯤 하니 트랜지스터를 3nm 간격으로 배치하는 삼성전자의 기술은 가히 분자 수준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있다. 분자를 조립하는 일 중에 가장 가치가 높은 건 제약이니, 안 할 수가 없는 거지.


위고비와 마운자로는 제약의 경계를 넓혔다. 자기 관리의 실패로 여겨지던 비만은 이제 질병으로 인정된다. 류머티즘 관절염을 앓는 사람에게 "그러게 자가 면역 관리 좀 잘하지 그랬어"라고 말하지 않듯 이제 비만인에게 보내던 비난의 눈초리는 세심한 진단으로 변했다. 살 빼는 약은 비만 '치료제'가 됐다. 전자는 식단과 운동을 견딜 의지가 없는 사람이 선택하는 꼼수지만 후자는 정당한 처방이 된다. 약을 먹는 건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다. 암을 이길 의지가 없어서 항암제를 처방받는 건 아니지 않은가!?


제약 BD라면 이점을 반드시 파고들어야 한다. 이미 있는 질병의 치료제를 개발하는 건 민망할 정도로 정직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더 좋은 건 질병을 창조하는 것이다. 긴장과 소화불량, 게릴라성 똥마려움은 불안장애와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 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향후 10년 안에 질병이 될 가장 유력한 후보는 단언컨대 '노화'다. 노화를 치료하겠다는 야심만만한 회사를 눈여겨보라. 당신에게 부와 영생을 가져다줄 테니까.


<신약의 전쟁>은 제약 BD가(Business Developer) 쓴 책이다. 단순히 제약 산업을 소개하는 걸 넘어 약의 기전과 무려 무려 BD 실무지침서까지 담았다. 이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약의 기전이 훨씬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데다 내용도 어렵지 않아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어떤 회사가 생산에 강하고 또 어떤 회사가 신약 개발 능력이 있는지 알 수 있는 건 덤이다. 회사명이 그대로 나온다.


2024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는 알파고의 창조주 데미스 하사비스였다. 구글의 제미나이 개발을 총괄하며 남는 시간에 취미 삼아 연구하던 결과물이 이뤄낸 성과였다. 그의 연구는 제약 업계를 송두리째 뒤집어놨는데 수년에 걸치던 단백질의 구조 규명을 몇 분 만에 밝힐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약의 기전은 단백질의 구조에서 기인하기 때문에 제약회사는 데미스 하사비스의 도움을 받아 치료제의 후보 물질을 손쉽게 찾을 수 있게 됐다. 하사비스는 2억 개에 달하는 단백질의 구조를 모두 밝혀 무료로 배포했다.


그러니 여러분이 AI에 투자하겠다며 팔란티어나 앤트로픽, 스페이스X만 보고 있다면 이 쪽으로도 눈을 돌려보기 바란다. 제약과 AI는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제약 회사와 그런 제약사에 AI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 원래 이런 얘기를 하려고 시작한 글은 아니었는데, 이 책을 읽다 보면 자꾸 이런 쪽으로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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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글 오늘의 젊은 작가 57
전예진 지음 / 민음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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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집어삼켜야 할 게 너무 많다. 살려면 많은 걸 삼켜야 한다. 음식 얘기가 아니다. 분노, 시기, 질투, 나를 싫어하는 것들, 내가 좋아하는 것들, 숨기고 싶은 것들, 없애고 싶은 것들. 먹다 보면 체할 때도 있다. 체하다 보면 삼켰던 게 다시 밖으로 나오기도 한다. 그렇게 나온 것들은 들어갈 때보다 끔찍해 보인다. 그러니 뭔가를 삼킬 땐 각오해야 한다. 다시는 꺼내지 않으리라. 끝까지 소화시켜 없애리라.


이 일이 생각처럼 잘 된다면 사는 데 힘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잘 되지 않는다.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 그대로 들고 갈 수도 있고 같이 선 사람에게 나눠줄 수도 있다.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대부분 고통을 불러일으키지만 가끔, 아주 가끔 마음에 쌓인 눈을 녹일 때가 있다. 그런 사람을 만나는 건 정말 행운이다.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이다.


<보글>의 두 자매는 삼키는 걸 아주 잘했다. 둘이 뺨을 맞대고 무언가를 삼키기로 마음먹으면 두 입이 합쳐져 엄청나게 커졌고 많은 걸 삼킬 수 있었다. 때로는 엄청나게 큰 걸 삼키기도 했는데 그럴 땐 입이 찢어지지 않도록 주변에 바셀린을 발랐다. 먹고 나면 이상한 것들이 나올 때도 있었다. 온몸 여기저기에 수포 같은 게 생기고, 터지면 무언가가 나왔고, 심으면 악취가 심한 열매를 맺었다. 언니는 이런 게 나올 때마다 전부 갈아서 없애버렸다.


자매는 엄마가 죽고 고아가 될 뻔했지만 할머니와 연락이 닿았다. 할머니에게는 안정적인 직장과 아파트가 있었다. 그런데 그 할머니가 치매에 걸리고, 집안 여기저기 똥을 싸고, 자매를 못 알아보기 시작하고, 그래서(여기서부터 스포일러가 있다) 죽여버렸다. 집에 돌아온 언니가 봤고, 언니에게는 단 한 가지 방법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자매는 오한과 경련, 메스꺼움을 견디며 생각했다.


다시는,

다시는,

먹지 말자,

인간을,

인간은.

(p.77)


사람을 먹지 말아야 할 이유는 단순한 고통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 뒤에 나오는 게 문제였다. 동생의 물집이 터지면서 그 안에서 아주 작은 사람이 나왔다. 사람은 쭉쭉 커서 말도 하고 걷기도 하고, 뛰기도 했다. 사람은 점점 자매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럼 별 수 있나. 다시 삼키는 수밖에. 다시는, 다시는, 인간을 먹지 말자 다짐했으면서도. 그런데 마음만 먹으면 합쳐서 크게 벌어지던 입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른이 되면 알아야 한다. 세상은 나 혼자고, 모든 걸 내 힘으로 해야 한다는 걸. 이것이 성장이고, 철이 든다는 것이고,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어쩌면 인간의 외로움은 성장을 잘못 이해한 데서 온 게 아닐까? 꾸역꾸역 슬픔을 삼키고, 눈물을 가두고, 어깨에 메고, 등에 지고, 침묵하는 것. 어른이라면 마땅히 감당해야 한다고 다짐한 것들. 이 모든 게 우리의 오해는 아니었을까?


어른이 된다는 건 내가 얼마나 약하고 부족한지를 깨닫는 것이다. 나 혼자서는 해낼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걸 경험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꺼이 손을 내미는 것, 도움을 청하는 것, 함께 해결할 사람을 찾는 것. 그러니 이제 무작정 삼키는 일은 하지 말자.


우리는 어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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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마지막 잔디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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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는 영원히 현재에 머물러 있다. 1949년 생 작가에게 이것은 힘일까 독일까. 하루키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 여전히 현재로 느껴질까? 그럴 거라고 믿는다. 그의 소설이 전하는 상실, 인과 없는 미끄러짐,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허물을 벗고 변태 하는 경험. 이것은 인간의 성장 과정에서 빠질 수 없는 흉터이기 때문이다.


하루키가 좋은 점은 이 흉터를 요란하지 않게 여겨서다. 아, 이거 얼마 전에 좀 다쳤어, 하고 대수롭지 않게 말한 뒤 맥주를 한 모금 마신다. 내리꽂는 태양에 구름은 잔잔히 흐르고 침묵은 길어지지만 어색함이 끼어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유심히 들여다보면 그의 영혼은 어딘가 틀어져 있다. 원래 향하던 방향에서 조금 어긋난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상은 여전히 똑같이 흘러간다. 하루키는 기본적으로 그 똑같이 흘러가는 세계를 기술한다. 벌어진 영혼의 틈에서 새어 나오는 미묘한 감정을 그 위에 섬세하게 내려놓는다.


나는 안자이 미즈마루의 일러스트가 그의 이야기와 완벽히 맞아떨어지는 한 쌍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의 그림이 비어있다는 점에서는 통하는 면이 있다. 하지만 <오후의 마지막 잔디>와 함께 가기에는 너무 거칠다. 이 소설은 이렇게 뾰족하지 않다. 대충 그린 것처럼 보이는 멋있음이 아니다. 깎아넣은 정교함이다. 하루키 단편의 맛은 거기서 나온다. 까다롭지 않아 보이지만 지은 사람은 대단히 까다롭게 단어를 고르고 이야기를 이어 붙인 것이다. 이음새가 하나도 눈에 띄지 않게, 마음을 하나도 거스르지 않게, 그래서 이게 뭐야?라는 생각이 들게. 안자이 미즈마루의 일러스트가 어울리는 건 하루키의 에세이다. 그의 에세이는 정말로 아무것도 담지 않으니까.


<오후의 마지막 잔디>는 1982년에 나온 소설이다.

하루키는 영원히 현재에 머물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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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의 해부 - 이상한 자들의 이유
존 E. 더글러스.마크 올셰이커 지음, 김현우 옮김 / 글항아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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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의 해부>는 <마인드 헌터>의 존 E. 더글라스가 지은 책이다. <마인드 헌터>보다는 내용이 훨씬 풍부하다. 프로파일링 케이스 스터디로 아주 좋고 범죄 소설을 준비 중이라면 여러모로 참고할 부분이 많다. 여기에 몇 가지 유용한 내용을 정리해 둔다.


피살자의 시체가 담요로 덮여있거나 얼굴이 가려져 있다면 범인은 죄책감을 느낀 것이다. 죄책감을 느끼는 범죄자라면 성격이 조금 다를 수밖에 없다. 용의자를 면식범으로 한정해 지인이나 이웃을 먼저 의심해 보는 게 좋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소심한 성격일 수 있고 인간관계에 미숙한 외톨이, 주변에선 수줍은 사람으로 평가될 가능성도 높다. 처음부터 살인을 계획한 게 아닐 수도 있다. 피해자가 반항을 심하게 했거나 범인을 당황하게 만들어 벌어진 우발적 살인도 가정해야 한다.


범죄 수단도 아주 중요한 단서다. 총, 칼, 교살, 독 사이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우선 총, 칼, 교살은 범인이 피해자를 직접 마주해야 한다(저격 총이 아니라면). 반면 독살은 그럴 필요가 없다. 죽이려는 사람의 눈을 바라볼 용기가 있느냐 없느냐는 범인의 성격과 동기에 큰 차이를 만든다. 살인범들은 피해자를 완벽히 통제하는 데서 오는 만족감, 나아가 성적 쾌락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독살에서는 이런 즐거움을 얻을 수 없다.


독살은 좀 더 정교할 필요도 있다. 누군가의 음식에 독을 타거나 주사를 하기 위해서는 은밀히 접근했다 빠져나와야 한다. 피해자가 자리를 비우는 시간을 명확히 알고 있거나 지속적으로 관찰 가능한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피해자를 제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독살의 큰 장점이다. 독살은 여러모로 여성 살인범이 택하기 쉬운 수단이다.


범죄 현장을 묘사해 보자. 탁자 위에는 다 마신 오렌지 주스 병과 케이크를 담았던 것으로 보이는 접시가 있다. 냉장고에는 정확히 한 조각이 반듯하게 잘린 홀케이크가 있다. 주스 병과 포크에서 피해자의 지문이 나오지 않았다면 당신은 그걸 범인이 먹었다고 가정해야 한다. 이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범인이 이 장소를 아주 편안하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범인은 아주 대범한 놈일 수도, 이게 첫 번째 범행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 쉽게는 이 집을 자주 방문했던 사람, 피해자가 의심 없이 문을 열어줄 가능성이 있는 사람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도망자들은 자기에게 친숙한 장소를 은신처로 삼는 경향이 있다. 온 가족을 살해하고 도망친 가장은 자기가 어릴 때 살았던 지역, 주재원으로 오래 근무했던 나라, 대학 시절을 보낸 곳, 아내를 처음 만난 도시, 군복무를 했던 지방 등으로 숨어든다. 그곳에서 아주 평범하게 살아갈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다시 가정을 꾸릴 수도 있다. 자신의 인생에서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기 위해(아마도 망상이겠지만) 살인을 저질렀다면 범인은 아주 홀가분한 상태일 것이다. 살인으로 인해 범죄자의 삶은 다시 살아갈 에너지로 충만해진다.


살인에는 분명 트리거가 존재한다. 직장을 다니며 피해망상에 빠진 사람 모두가 동료를 살해하는 건 아니다. 삶에는 붕괴를 막는 여러 기둥이 존재한다. 피해망상에 낮은 고과 평가, 실직, 파산, 이혼, 공개 모욕, 묻지마 살인을 보도하는 뉴스, 그것을 주제로 한 영화 등이 겹쳤을 때 툭, 하고 끊어지며 와르르 무너진다. 안톤 쉬거처럼 순수악을 만들어낼 수도 있지만 당신은 코맥 매카시가 아니다. 쌈마이가 되지 않으려면 얘는 그냥 싸패야라고 말하는 대신 인물을 다층적으로 구성해야 한다. <동기의 해부>가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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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뚝들 -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김홍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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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스 킹>의 농담 30%에 시의성을 70% 섞어 <말뚝들>을 만들어냈고 한겨레가 골랐다. 적절하다는 말은 참으로 이럴 때 쓰는 게 아닌가 싶다. 김홍 바모스!


나는 <프라이스 킹> 같은 소설을 좋아했다. 뼈대를 생각하기보다는 펀치 라인에 집중하는 이야기. 모르긴 몰라도 김홍 소설의 상당수는 단 1개의 문장에서 시작된 것들이 꽤 있을 것이다. 문장이 이야기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이야기가 문장을 위해 존재하는 것. 이런 류의 소설은 확실히 장편에 취약하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데 어떤 미학자가 이런 얘기를 한 적 있다. '예술은 없어져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 너무 많아서 사라지는 것이다.'


펀치 라인이 너무 많으면 라인이 더 이상 펀치의 역할을 못한다. 농담은 길면 지루해진다. 그럼에도 이걸로 장편을 기가 막히게 잘 지었던 사람과 작품을 언급해 보겠다. <넛셀>의 이언 매큐언, <하이 피델리티>의 닉 혼비, <고래>의 천명관, <지구 영웅 전설>의 박민규. 이 중에 작품으로 보면 첫 손에 꼽는 게 <넛셀>이냐 <고래>냐... 솔직히 <고래>는 처음 읽었을 때의 그 충격이 아직도 가시지 않는 레전드 오브 전설인데 작가가 물색없이 영화판을 기웃거리는 데다(그럴 거면 성공이라도 좀 하든가) 나의 <뜨거운 피>를 개망작으로 만든 죄까지 지었으니 <넛셀> 우승! 하지만 작가로 보면 고민할 거 없이 박민규다.


박민규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표절하지 않았다면 대한민국 문학계는 좀 더 흥미진진했을 것이다. 재미있는 한국 소설을 읽기 위해 편혜영이나 김애란만 찾지 않아도 됐을 테니까. 예전에는 정세랑도 있었는데 이 쪽은 거의 탑 텐처럼 돼서(나 탑 텐 진짜 좋아한다. 매년 텐텐 데이만 기다리는 사람이다. 하지만 우리가 새로운 자극을 얻기 위해 탑 텐을 가지는 않잖냐) 맛이 좀 슴슴하다.


어쩌면 김홍이 박민규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지 않을까? <프라이스 킹>은 이런 류의 소설을 진지하게 사랑했던 사람이 읽기에도 좀 지나친 면이 있었다. <말뚝들>은 그 지나침을 70% 도려낸 소설이다. 그래서 뭔가가 보이고, 재미있게 읽었다. 중간에 지루한 부분들은 단첫문(단락의 첫 문장만 읽기) 신공으로 건너뛰었음을 고백한다. 그중에는 김홍이 벼르고 깎아 넣은 금쪽같은 펀치 라인도 있었을 것이다. 뭐, 미안.


<말뚝들>은 내가 아니라 우리 집주인(세대주)이 골랐다. 김홍 소설인지는 몰랐다. 마침 서점을 못 가 책이 떨어져 책상 가장 위에 있던 놈을 읽은 것이다. <프라이스 킹>을 읽은 내가 <말뚝들> 아래에 적힌 김홍을 봤다면 절대로 서점에서 데리고 오지 않았을 책이다. 인연이란 참 신기할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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