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천사 같은가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마거릿 밀러 지음, 박현주 옮김 / 엘릭시르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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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밀러는 1915년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태어났다. 8살 때, 오빠가 숨겨놨던 펄프 픽션 잡지 <블랙 마스크>를 읽었다. 마거릿 밀러는 건방진 말투의 악당을 좋아했고, 그건 내 취향과 완전히 일치한다. 그럴 길은 전혀 없지만 켄 브라운에게 물어도 똑같이 대답할 것이다. 조 퀸, 잭 테일러, 그리고 언젠가는 탄생할 내 소설의 주인공. 나는 그 인물의 대사를 쓸 때 반드시 이 둘을 참고할 것이다. 아, 필립 말로도 있구나.


<얼마나 천사 같은가>가 기막힌 이유는 그 좋은 대사가 장마처럼 쏟아진다는 것이다. 말이 정말 많다. 주로 대화로 단서를 얻어내는 탐정의 건방진 말투가 지면을 가득 채운다. 가끔은 듣다가 지쳐 눈을 휙휙 흘려내리기도 하는데 그래도 긴장을 늦추지는 않았다. 어디서 보석 같은 말이 툭,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야기도 치밀하다. 말도 안 되는 장소에서 우연히 만난 여자로부터 사건은 시작된다. 그녀는 '축복 자매'로 불리는 사이비 종교의 일원이다. 리노에서 도박으로 전재산을 날린 뒤 빚을 받으러 가는 길에 조 퀸이 잘못 들른 곳이 바로 그 종교 집단의 은신처였다. 목마름과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는데, 조 퀸은 뜻밖에 사건을 수임하고 축복 자매가 건네준 120달러를 선불로 받기까지 한다.


언제나 그렇듯 말투가 건방진 탐정들은 조용히 덮어둬야 할 곳을 돼지 같은 인내심으로 들쑤신다. 정의감이 특출 난 건 아닌데, 자기 일에 은근히 책임감이 강하고, 냄새가 나는 곳을 좋아한다. 한 마디로 성격이 개 같다. 엮이면 골치가 아파지는 말썽꾸러기들이다.


120달러로 시작한 이야기는 거액의 은행 횡령 사건으로 이어지고 한 남자의 실종, 혹은 살인에 가닿는다. 첫 장에서 마지막 장의 이야기를 예측하기란 도저히 불가하다. 복잡계의 동작 방식과 비슷하다. 포르투갈의 나비 한 마리가 펼친 날갯짓이 LA에 태풍을 불러오듯. 직조를 잘하는 작가들의 소설은 늘 그렇게 전개된다.


처음 몇 쪽을 읽었을 때는 너무 옛날 소설이라 걱정을 좀 했다. 그레이엄 그린의 <브라이턴 록>을 읽었을 때의 악몽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마거릿 밀러는 레이먼드 챈들러만큼 현대적이다. 휴대폰과 노트북, 인터넷이 나오지 않을 뿐, <얼마나 천사 같은가>는 명작이 왜 불멸하는지 말해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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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과 객관 - 과잉 정보의 시대, 본질을 보는 8가지 규칙
키코 야네라스 지음, 이소영 옮김 / 오픈도어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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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런 류의 책들은 정말로 많고 똑같은 통계 사레도 반복해 등장하니 이번에는 그중 하나만 정확히 짚어보겠다.


강남에 에이즈가 유행이라고 상상해 보자(집 값아 떨어져라!). 5년 전부터 이 사태를 정확하게 예측해 온 당신은 놀랍게도 에이즈를 검사하는 신속 키트를 개발해 보유하고 있었다(축하한다 이제 부자가 돼 보자). 이 키트의 민감도는 95%로, 진짜 에이즈 환자의 콧구멍에 시약을 넣었을 때 95% 확률로 양성 반응이 나타난다는 의미다. 반면 거짓 양성률은 1%에 불과하다. 100명에게 시험했을 때 단 1명만이 에이즈로 잘못 검진된다는 말이다.


당신은 출시를 코앞에 두고 자기 자신에게 이 키트를 시험해 봤다. 그런데 세상에, 결과가 양성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정말로 에이즈 환자일 확률은 얼마일까?


너무 쉬운 문제를 냈을 리는 없으니 당신의 머리는 복잡해질 것이다. 아까 95, 1 어쩌고 했는데... 둘 중 하나인가? 민감도가 정확도인가? 거짓 양성률이 1%라고 했으니 99% 확률로 에이즈라는 말이겠지. 큰일이다. 부자가 되기도 전에 죽어야 하다니.


안심해라. 당신에겐 아직 희망이 있다. 우선 사는 곳이 어디인지 말해봐라. 강남인가? 아마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일 테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거긴 이미 '부자'가 사는 곳이니까. 당신의 거주지가 남양주고 아직 이곳에 감염 사례가 한 건도 보고된 적 없다면 그 결과를 거짓 양성으로 봐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하지만 강남에 살고 있다면? 확실히 더 위험해진 건 사실이다.


아포칼립스 수준의 공포에 떨어본 미국의 에이즈 환자 비율이 2016년에 0.3% 수준이었으니 넉넉잡아 강남을 3%로 쳐주겠다. 이 정도면 사실 미사일로 강남을 불태우자는 주장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아무튼 이렇게 후하게 쳐줘도 당신이 진짜 에이즈 환자일 확률은 3%에 0.95를 곱한 2.85%에 불과하다. 안심이 되는가?


이것이 바로 기저율의 비밀이다. 민감도가 95%라는 건 애초에 당신이 에이즈 환자라고 가정했을 때 정확하게 그게 맞을 확률이다. 이처럼 통계에는 우리 눈을 속이는 장치로 가득하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숫자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한다. 때로는 의도적으로, 때로는 자기도 모르는 채. 진화의 도구인 자연선택은 숙고보다는 직관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가만히 서서 곰곰이 생각하는 대신 직관적으로 판단하는 데 익숙하다. 아마 호랑이로부터 도망쳐야 할 일이 더 많았던 과거에는 그걸 잘하는 사람이 더 많이 살아남았을 것이다. 유전자가 따라가기에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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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록
듀나 지음 / 래빗홀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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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나의 소설은 고민하지 않는 편이다. 페트로그라드인민대학의 문학부에 있었던 유리 오를로프, 분열성광증을 앓던 이무혁, 머리도둑 알렉세이 부닌이 의천이라는 국제 도시에 공존하는 설정이 얼굴을 간질일 때가 있지만 이야기는 이 모든 게 농담이 아니라고 정색한다. 그 광기 어린 눈을 마주하고 나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몰록은 고대 가나안 지방(젖과 꿀이 흐른다는 그곳)과 북아프리카 일대에서 숭배된 신이다. 그 지역 신들이 대부분 그렇듯 짐승의 머리를 하고 있고 기독교에 의해 악마화되었다. 몰록은 살아있는 어린아이를 제물로 원했다. 사람들은 뜨겁게 달군 몰록 청동상에 비둘기와 소와 기타 등등 동물을 넣고 마지막에 살아있는 아이를 놓아 한꺼번에 태웠다. 혹자는 몰록을 이 제사의 명칭이라 하고, 또 다른 이는 몰록이 당시 그 지역에 존재했던 수많은 부족신들의 통칭이라고도 한다.


이 소설과 몰록을 연결하는 지점은 몰록이 갖는 다양한 기원만큼이나 모호하다. <몰록>은 척추동물의 뇌에 기생하는 미생물이 주인공이다. 화성에서 온 이 미생물은 척추동물의 뇌에 침투해 그들의 뇌를 한데 묶는 역할을 한다. 하이브를 정점으로 하는 저그처럼 감염된 생명체들의 의식은 거대정신을 낳고 이 거대정신은 다른 정신들이 추가될 때마다 더 큰 통합으로 나아가거나 분열한다. 어설픈 통합은 붕괴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분열은 다른 정신을 죽이는 전쟁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인간을 제물로 삼는다는 점을 몰록의 인신공양과 연결할 수도 있다. 고대에는 별개의 신으로 존재했으나 오늘날에 이르러 단일 악마로 정의됐다는 점에선 각각의 인간이 거대정신으로 통합되는 과정의 비유로 볼 수도 있다. 의천은 아직 국가라는 개념이 흐릿해 온갖 경계가 규칙 없이 뒤섞여 있던 고대 도시를 연상케 한다. 거대정신과 소통할 수 있지만 결코 감염되지 않고 심지어 그걸 지배할 수도 있는 초능력자 미향은 인도네시아에 피의 뿌리를 대고 있다. 머리도둑은 러시아인이고 이야기의 물꼬를 터주는 아빌라는 필리핀인이다.


흐릿한 건 국적뿐만이 아니다. 성별, 나이, 직업. 너와 나를 구분 짓는 모든 것. 화성의 미생물은 이 모든 것을 용광로에 넣고 녹여 하나로 만든다. 애초에 단일 세포에 불과했던 지구의 생물들은 수십억 년의 시간을 보내며 각자 다른 무엇으로 진화했다. 개성은 종의 구분을 허용했지만 종간 전쟁의 길을 열어줬다.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말했다. 안노 히데야키는 그 주제를 빌어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만들었다. 에바의 AT필드는 타자를 거부하는 인간의 심리적 장벽을 형상화한 것이다. 사도(angel)는 네르프의 터미널 도그마에 접근해 써드 임팩트를 일으키려 한다. 어떤 이의 입장에서 그건 인간의 멸종이지만 또 다른 이의 눈에는 모든 인간이 마음의 장벽을 허물어 동일자로 회귀하는 구원으로 보이기도 한다. <몰록>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통합의 대상을 인간이 아닌 모든 종으로 확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화성의 미생물은 다시는 물로 멸망시키지 않겠다던 신의 약속인지도 모른다. 하나였던, 까마득한 옛날을 잊은 종의 폭주를 단죄할 천벌, 혹은 구분에서 비롯된 고통을 치유할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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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먹는 존재들 - 온몸으로 경험하고 세상에 파고드는 식물지능의 경이로운 세계
조이 슐랭거 지음, 정지인 옮김 / 생각의힘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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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상 위에는 30개의 고수 새싹이 있고 이들은 늘 빛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깜빡하고 커튼을 닫아놓은 날에도 새싹은 빛이 놓였던 흔적을 따라간다. 고수는 하늘에서 날아온 빛 알갱이와 땅 밑에서 끌어올린 물방울을 합해 자신의 몸을 구성한다. 재료는 모든 식물에게 동일한데도, 고수는 자기만의 향을 뿜어낸다. 잎을 비빈 손을 코 밑에 가져가면 그 신선한 향기가 숨 속에 가득하다.


더 나아갈 것도 없이 이것은 기적이다. 누군가는 호흡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먹는다고 말할 이 행위가 탄소를 산소로 바꾸고 하나의 세포였던 존재를 복잡하고 깊은 생명으로 만들었다. 우리는 빛과 물로 만들어졌다. 인생의 대부분은 잊고 살지만, 사실은 그렇다.


식물을 인간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우리는 이 존재를 거의 이해하지 못한다. 식물은 우리를 비웃을지 모른다. 우리의 무지가 얼마나 거대하고 흉악한 지를. 예전에는 이런 걸 비유라고 불렀겠지만 차츰 발견되는 식물지능의 세계는 이게 그저 비유가 아닐 수도 있음을 얘기한다.


식물지능? 식물이 움직인다는 데는 이견이 없겠지만 그 움직임에 우리는 능동이라는 지위를 부여하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이 중력에 잡힌 것과 마찬가지로 식물은 뿌리에 묶여 있다. 식물은 가문 땅이 싫다고 뿌리째 걸어 나와 윤택한 흙을 향해 모험을 떠날 수는 없다. 맹모삼천지교는 가능하지만 식모삼천지교는 불가하다. 이동을 걷기로 제한한다면 이 말은 타당하다. 그러나 식물은 주어진 한계 안에서 생존을 위해 능동적으로 움직인다. 예컨대 마른 흙에 내린 뿌리는 가늘고 길어진다. 저 깊은 곳에 존재하는 물을 찾기 위해 온 힘을 다하기 때문이다. 식물은 모든 에너지를 쏟아 자신의 뿌리를 변형시킨다. 맹모가 이사를 가듯이.


식물이 물이나 빛을 찾아내는 과정을 생각해 보자. 뇌도 없고 소리도 못 내는 그 바보들은 자기가 필요한 존재가 어디 있는지 어떻게 그리 잘 아는 걸까? 이것을 단순한 반응이라고 말하면 나는 하고 싶은 얘기가 더 있다. 그렇다면 식물에게도 신경계가 있다는 말인가? 우리가 우리의 손을 다 태울 때까지 불을 쥐고 있지 않는 이유는 뜨거운 감각이 전기 신호가 되어 뇌로 전달되고 당장 손을 떼라는 명령이 다시 전기 신호로 변해 팔 근육에 전달되기 때문이다. 전기 신호는 호르몬의 작용이다. 내 고수 새싹이 매일 아침 빛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게 하는 존재는 무엇인가? 광자가 잎을 때리면 호르몬이 발생하고 그 호르몬이 만든 전기가 줄기를 타고 흘러 뿌리에 숨어있는 뇌에게 전달되는 걸까? 나아가 그 행위를 유발하게 만드는 감각은 무엇으로 수용하는 걸까? 잎은 빛을 볼 수 있는가? 광자가 자기 몸을 때리는 충격을 느낄까? 뿌리는 물이 흐르는 소리를 듣는 걸까? 파고들수록 식물지능에는 경이로움이 가득하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불교도에게 금서가 될 여지가 충분하다. 위대한 고타마 싯다르타도 윤회의 굴레에 식물의 운명을 포함하지는 않았다. 불교도는 어떤 죄를 지어도 식물로 다시 태어나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식물을 마음 놓고 먹는다. 칼로 자르고, 돌로 두드리고, 불로 지지면서. 동물윤리학도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시대에 식물윤리학을 논하는 건 너무 나간 얘기일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하다. 식물에게도 감각이 있다. 그들에게도 지능이 있다. 그들은 누가 자기 잎을 뜯고, 자기 줄기를 꺾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들은 대화하고, 고통을 받고, 비명을 지른다. 아직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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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호르몬 - 나를 움직이는 신경전달물질의 진실
데이비드 JP 필립스 지음, 권예리 옮김 / 윌북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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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계의 작동을 유심히 보고 있으면 인간을 전자 기계로 환원하고 싶은 강한 욕망에 빠져든다. 인간이 느끼는 모든 감각은 결국 전기 신호로 변해 뇌로 전달되고 그 해석의 결과가 감정이라는 잔재로 남는다. 만약 우리가 머리를 강하게 내리치면 전기 신호가 발생되고 그 신호의 강도에 따라 비명 소리를 조절하는 기계를 만들었다고 하자. 그럼 이 기계의 비명을 우리는 고통이라고 불러야 할까? 강한 전기 신호가 반복되면 어느 순간 회로를 막고 있던 고무 패킹이 끊어지고 새롭게 열린 그 길을 통해 전달된 전기 신호를 CPU가 우울이라고 해석한다면, 우리는 이 기계에게 감정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끝까지 밀고 나가다 보면 경이롭고 고유한 척해봐야 인간도 별 거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신경전달물질은 진짜 재미있다. 알아갈수록 내 몸을 해킹하는 기분도 들고, 정신의 힘으로 호르몬을 조절해 감정을 정복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생긴다. 이 책을 집어든 이유는 이번 기회에 아주 유명한 호르몬 6개의 작용 원리를 완벽히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이제는 아주 흔해진 도파민부터 트렌디한 테스토스테론, 그 옛날 황수관 박사님이 활약하던 때의 엔도르핀, 스트레스로 가득한 내 몸에 장기 투숙 중인 코르티솔, 우울증의 원인 세로토닌, 후성유전의 주요 사례로 언급되는 옥시토신까지.


하지만 <인생은 호르몬>은 화학책이 아니다. 호르몬의 동작 방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은 사실상 '자기 계발서'에 가깝다.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테스토스테론을 뿜어 올리는 법을 설명하고 부족한 세로토닌을 채우기 위해 일광욕을 처방한다. 엔도르핀과 도파민을 끌어내기 위해 냉수욕을 한다는 얘기는 두어 번 한 것 같은데, 아무튼 틀린 말은 아닐 테니 원한다면 직접 체험해 봐도 좋을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내용은 도파민과 세로토닌의 길항 작용이었다. 도파민에는 현재 가지지 못한 것을 욕망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반면 세로토닌은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에 감사와 만족을 느끼게 하는 마력을 발휘한다. 도파민이 넘치는 사람은 지속적으로 자극을 찾아 떠나고, 세로토닌이 넘치는 사람은 현실에 안주해 좀처럼 변화를 허용하지 않는다. 두 개의 호르몬은 완전히 반대의 역할을 하지만 둘 모두 인간의 생존에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진화는 이런 게 참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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