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1 - 시대를 일깨운 역사의 웅대한 산
한승원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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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茶山)으로, 그리고 탁옹(籜翁)이기도 한, 여유당(與猶堂) 정약용선생을 인간의 본질, 우주의 근원이라는 원초적 질문에 대한 풀이의 한 가운데 설정하였다. 작가는 19세기 초 조선사회에 일대 정신사(精神史)의 교란을 배경으로 하여 인간의 실존에 대한 끊임없는 사유의 여정으로 우리를 끌어들인다.

1801년 신유사옥이후 다산의 유배생활을 소설적 배경으로 하여, 노론 벽파의 천주교 탄압을 빌미로 시작된 정적의 피비린내 나는 숙청의 시대를 그리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한국소설 문학의 많은 작품들이 역사적 사건을 중심으로 한 팩션이란 형식을 취하고 있듯이, 이 작품이 역사라는 시간성을 차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한 인물에 대한 존경과 풍부한 현학적 성찰을 통해 인간의 극단적인 비극성과 숭고한 존엄성의 결합을 위해 시대적 사건은 지극히 허구적으로 인용되는 정도라 할 수 있다.

물론 이와 같이 극단적으로 우주와 인간에 던지는 최초의 질문에 대한 갈등과 깨달음과 같은 사색적 견지에서 작품을 대하기에는 다산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그의 행동양식, 사고방식, 신념과 같은 인물성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책1권의 서언격인‘다산비결’의 신비성을 시작으로 『서암강학기』,『도산사숙록』, 『흠흠신서』, 『목민심서』, 『방례초본』(『경세유표』,『다산비결』), 『아언각비』에 이르는 다산의 저술들이 그의 세상에 대한 시선, 즉 “진정한 깨달음은 어짊(仁)이고, 그 어짊은 세상을 환하게 꽃피워 장식하는 사업이다.”와 같이 주제에 녹아 흐른다.

이 작품은 이와 같이 만물생성에 대한 최초 기원요소로 주자학의 5행론(물,불,나무,흙,쇠)과 천주학의 4행론(물,불,흙,공기)의 대립으로부터, 영혼과 같은 본질의 사유를 끌어내거나, 혜장스님이나 초의선사와의 담론을 통해 “하늘의 별은 그냥 별이 아니고 내 눈이 그 별을 만든다 하네,~ 中略 ~ 인식의 차원을 넘어 내 눈의 창조와 개혁을 말 하네”와 같이 인간들이 감각하는 세계는 과연 진실인가? 표면적 무질서와 다양함의 심층 속에 있는 질서와 통일, 지속성의 세계를 통찰하는 철학적 사유체계를 아우르고, 한편은 “아, 덧없다, 꿈이다....그것은 하나의 허방이었다.”로  이 작품의 초입부와 같이 가시적 인간세계에서의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죽음이라는 비극성을 주제로 하고 있다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작가는 “고통이 없으면 세상도 없다. 고통을 비틀어 꼬면 빛이 된다. 그 빛은 깃털 찬란한 새가되어 짙푸른 하늘 한복판으로 날아간다.”고 몇 번씩이나 이 구절을 되뇐다.

또한, 우주율동론으로서의 『주역(周易)』의 등장은 “영기의 율과 음기의 여가 어우러진 소리(律呂)로써 천지를 화합”한다거나, 다산이 곡산군수로의 부임을 앞두고 자아를 진정시키는“향기로운 꽃그늘은 물로써 이기고, 물은 달빛으로 이기고, 달은 해로써 이기고, 해는 밤으로써 이기고, 기나긴 밤은 잠으로써 이긴다.”와 같이 자연의 섭리를 해설하는 수단으로 전편을 장식하고 있다.

작품 속에는 인상적인 싯구들이 꽤나 등장하는데 전편의 중요한 모티브가 되는 『시경』의 “어여쁜 저 아가씨와 노래 부르고 싶어라, 어여쁜 저 아가씨와 말을 하고 싶어라, 어여쁜 저 아가씨와 함께 얘기하고 깊어라”는 세상사의 논의에 절대적 요소로 정말 멋지게, 심오하게, 적절하게 가슴깊이 새겨지기도 하며, ‘연두색 머리처네와 쪽색의 치맛자락’이 은근한 관능과 인간 본성의 자질로서“비몸살 달몸살”과 같은 예스러움으로 소설적 재미를 놓치지 않는다. 또한, “거문고가 말없이 윤시유의 춤을 즐기고, 기름접시 불이 자지러질듯이 허리를 꼬면서 깔깔거렸다.”는 이 영상적인 문장은 가히 작가의 통찰과 상상력의 위대함을 느끼게 함에 충분하다.

전라도 강진 땅 유배지에서 고향과 가족을 그리면서 다산이 읊는 아래의 詩(청산도)에서와 같이, 작가는 감정을 과장하지 않으면서 정제된 어조로 다산에 대한 근엄한 존경에 행여 누가 될까 한 걸음 한걸음 조심스럽고 올 곧게 걷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청산은 어찌하여 청산인가,

  두물머리 말재의 넋이

  고향의 그리움을 읊어낸 시

  열매로 마디마디에 열려 있어서 청산이지...

         (後略)

다산의 영검하고 웅대한 산에서 혜장스님처럼 길을 잃고 조난당하지 않기 위해 작가는 지난한 노력을 이 작품이란 결실로 내 놓았다. “천명에 따라 살아야 하는 인간은 누구든지 자기를 노예처럼 부려야”함을 손수 실천 하신 듯하다. 작가가 다산을 존경하듯이 우리 문단의 큰 산인 한승원 선생의 이 위대한 작품에 경의(敬意)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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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과 모험의 고고학 여행
스티븐 버트먼 지음, 김석희 옮김 / 루비박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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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6가지의 고고학적 소재로 엮여있다. 그러나 고고학이란 성찰적 지식의 접근이라기보다는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에세이에 가깝다. 인류문화사나 고대서양사에서 즐겨 소개되고 있는 낯익은 소재들이지만 저자의 감성적인 시선과 문학과 예술의 교감을 형성하는 글맛은 나름 새롭고 흥미롭다 할 수 있다.

모든 학문의 동기가 그렇듯이 고고학 역시 인류의 기원에 대한 강한 호기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켜켜이 쌓여있는 지층을 파헤치고, 도시의 빌딩숲 아래 잠자는, 그리고 심해의 모래 속에서 건져 올린 수 천 년 전의 물질에서 우린 인류의 모습을 재확인한다. 그들은 그들의 감정과 생각을 물질 속에 어떻게 새겨 넣었을까? 그 상징과 추구하는 바는? 그리고 그들의 의식수준은? 전설, 신화는 혹 역사적 사실은 아니었을까?

인류 최초의 문명이라 하는 오늘의 이라크 남부지역인 메소포타미아의 서사시인 당시 번영했던 수메르의 홍수설화에서 인더스 문명을 대표하는 하라파, 그리고 모헨조다로의 출토된 석상에서 사제(주술사)와 군주를 겸한 모습을 발견하고, 순간 사라진 문명의 원인을 사색해보기도 한다.

호메로스의 대서사시『일리아드』와『오디세이』를 중심으로 1871년 터키해안인 ‘히사를리크’에서의 트로이 유적 발굴에 얽힌 설명등이 문학적 감수성과 학문적 성과를 적절히 버무려 고고학적 이해로 안내하기도 한다. 또한 미노타우르스 전설의 실제를 찾아 지중해 유적의 발굴이야기를 들려주며 라비린토스(미궁)에 얽힌 이야기와 ‘이카로스’의 죽음을 재미있게 풀어주기도 한다.

인간의 시간적 감각뿐 아니라 자연의 성상으로도 인간이 조작해낸 물질을 수 천 년 간 남겨놓기에는 긴 세월이다. 더구나 중세 기독교도들의 우상 파괴명분하에 자행된 그리스 예술품의 마구잡이식 파괴는 오늘날 단 한 점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인간의 고의적인 파괴를 피하고 우리에게 고고학적 발굴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오히려 자연의 난폭한 행동(화산폭발, 지각변동, 침식, 퇴적 등등)이라는 아이러니는 보잘것없는 인간의 방자함을 돌아보게 한다.

기원전 1450년경의 지중해 연안의 대규모 지각변동, 서기 79년 8월의 베수비오화산 폭발, 덴마크의 이탄층 과 같이 파괴적이었던 자연이 오늘의 우리에게 더 멋진 일상의 고대를 현실로 안내한다.

저자는 이야기한다. “대부분의 경우 고고학자에게 남겨진 유물은 개선문이나 성벽 같은 강자의 오만한 기념물뿐이지만, 폼페이에서는 평범한 보통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고.

다양한 고고학적 발견으로 이탈리아의 첫 번째 문명인 오늘날 토스카나 지방인 에트루리아의‘자연과 감각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는 남녀의 모습’이 묘사된 고분벽화에서, 햄릿의 무대인 덴마크 항구도시 엘시노어(헬싱괴르) 이탄의 늪지대에서 발견된 서기 1~5세기 시신의 원형보존에서 인신공회의 관습을, 그리고 잉글랜드 서턴후, 캐멀럿의 전설, 이스터섬의 수수께끼, 마야와 아즈텍 유적, 진시황제의 도용무덤 등 흥미로운 고고학적 경이로움을 이 저술은 풍부하게 설명해 내고 있다.

그리고, 퇴적된 옛 쓰레기를 순서대로 꺼내는 층서적(層序的)발굴이란 고고학 이론의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소개에서부터, 오늘의 현대화된 도심의 길거리 밑에 감추고 있는 과거의 이야기들은 2천년의 도시 런던 뿐 아니라, 우리의 심장인 서울도심의 밑까지 그 고고학적 호기심을 부추기기도 한다.

이 저술의 처음과 마무리는 지극히 동질의 사색적인 구절로 장식되고 있다. “파괴가 있으면 창조도 존재하고, 소멸하는 삶이 있으면 새로 태어나는 삶도 존재한다는 사실, 때로는 바람이 불어와 나뭇잎을 땅위에 흩뿌리지만 봄이 오면 숲속에서는 다시 싹이 트고 파릇파릇한 잎사귀가 돋아난다. 인간세상도 마찬가지여서, 한편에서는 태어나고 다른 한편에서는 떠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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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탄생 - 현상과 실재, 인식과 진리, 인간과 자연에 던지는 첫 질문과 첫 깨달음의 현장
콘스탄틴 J. 밤바카스 지음, 이재영 옮김 / 알마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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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대중의 평범한 지식이란‘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를 서양 철학의 근간으로 인식하는 것이 전부였으며, 또한 철학이 우리 인간에게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서도 여전히 모호한 느낌을 갖는 것이 지극히 정당해 보였다. 그러나 이 저술을 통해 주술적 단계에만 머물러 있을법한 기원전 7세기의 그리스인들의 사유를 접하곤‘철학이란?’하는 본질적 의문이 해소됨을 느끼게 된다.

철학은 바로 “자기인식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욕구, 다시 말해 세계와 삶에 대한 우리자신의 관념과 사유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고자 하는 욕망”이며, 바로 이러한 욕망의 대상에 대한 경이, 경외심, 초시간성이 철학을 이해하고자 하는 동기임을 알게 한다.

콘스탄틴 박사의 이 저술은 21세기 오늘의 우리 사고체계와 과학의 출발이자 철학이 시작되었던 소크라테스 이전의 기원전 800년에서 200년 사이에 진행된 정신적 과정 속에서“세계사의 가장 심대한 전환기”의 그리스 정신을 그의 탁월한 통찰력과 천재 과학자들과 사상가들을 통해 추상적이고 상상력 넘치는 철학 의 세상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소개되는 10인의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우주의 기원과 현상의 본질에 대한 직관적 사유를 보고 있노라면 그 사고와 통찰력의 천재성에 대해 25세기(2500여년)가 지난 오늘에야 진정 무지함을 깨닫게 된다. “철학은 무지에서 벗어나기 위한”사색임을 겸허하게 인정하게 된다.

이러한 무지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리스의 정신이 스스로 비판적 사유를 통해 진리를 발견 할 수 있다는 통찰에 이르게 된 역사적인 순간은 기원전 7세기에 일어났다!”이 사건이라면 사건인 인류가 심오한 근원(archai)에 도달하려는 노력, 즉 뛰어난 추상능력과 체계화, 주술적 신앙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의지가 시작 된 것이다.

존경하는 이 저술은 이와 같이 인류사에 일대 전환을 가져온 철학의 발상지인 그리스의 사회와 종교, 그리고 신화와 서사시, 서정시, 미술, 지역간의 교류등과 같은 배경에서 인간의 자아의식과 자기인식의 출현에 이르는 배경과 철학적 근간의 요소들을 발견하고,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개관’이라 하여 저술의 본문인 10인의 철학자 개별에 대한 각론에 앞서 친절하게 그들의 우주관과 철학적 본질에 대한 세계의 변화를 연대기적으로 설명하여 이해를 돕는다.

인류 최초의 자연철학자로 불리는 탈레스로부터 시작되는 이오니아 밀레토스 3인의 철학자인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의 만물생성에 대한 최초 기원요소로 물, 무한자, 공기라는 인식에서부터, 영혼, 대립, 필연성과 같은 본질의 사유를 칼 야스퍼스, 하이젠베르그, 포퍼, 베르너 얘거, 스티븐 와인버그 등 석학들의 관점을 인용하여 그 철학적 의미를 보다 다차원적으로 이해하게 한다.

피타고라스에 이르러서는 저술자의 서구철학에 대한 자부심이 다소 지나쳐 여전히 신화적이고 주술적인 차원과 완벽하게 결별하지 못했던 당시대의 사유에 대해 “그 자체가 목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스스로 확고한 활동적인 삶에 도달하기 위한 준비과정”이었다고 아쿠스마타, 심볼라(비밀표식)을 설명하는 그들의 종교적 삶을 근대 철학의 차원까지 상정하는 듯 미화하기도 한다.  급기야 ‘철학하기’란 “내 삶을 생각하고, 내 생각을 사는 것”이라는 앙드레 콩트 스퐁빌의 정의를 빌어 피타고라스는 이미 철학자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고 추켜세우기도 한다. 흥미로운 발상이고 지루한 철학서에서 이탈하려는 독자의 관심을 유발하는 적절한 순간이었다고 치부하고자 한다.

독자들은 이 10인에 철학자들의 개별적 주제를 모두 독파하려하지 않아도 이 저술의 취지나 목적을 상실하지는 않는다. 다만, “하나의 신은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전통종교의 수많은 신들을 대체하는 존재도 아니다”라는 전형적인 부정신학의 대표자였던 ‘크세노파네스’의 인간중심적 이론, “인간의 극단적인 비극성과 숭고한 존엄성이 결합되는 지극히 드문 순간을 목격하게 되는”‘헤라클레이토스’,그리고 “존재란 무엇인가?”하는 이 간단치만은 않은 숨 막히는 질문과 “있다”와 “없다”로 시작되는 존재의 속성, 존재와 비존재, 존재와 진리에 대한 사유로 유럽철학사에 결정적 전환점을 마련해주고, 인식론의 기초를 성립시킨 ‘파르메니데스’, 그리고 우주의 무계획적 생성론으로  후세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던 물리학적 사유의 기원을 마련한‘엠페도클레스’와 당대의 모든 지식을 철학 속으로 끌어들인 보편적 정신이라 일컬어지는 원자론의 ‘데모크리토스’는 꼭 읽어야 할 부분이다.

우리 인간들이 감각하는 세계는 과연 진실인가? 표면적 무질서와 다양함의 심층 속에 있는 질서와 통일, 지속성의 세계를 통찰해낸 그들과 그들의 철학세계를 데카르트, 칸트, 하이데거를 비롯해 러셀, 그리고 맥스웰, 에른스트 마흐,  러더퍼드, 슈뢰딩거, 하이젠베르크에 이르는 현대 물리학의 거장들의 단상과 연구 성과, 철학적, 과학적 결실들을 종횡무진 누비며 들려주는 철학의 심원한 이야기는 실로 탄성을 질러대게 한다. 인식과 진리, 우주와 인간에 던지는 최초의 질문에 대한 깨달음이 무성하게 들려온다. 일찌감치 올해의 책으로 추천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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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리셔스 샌드위치 - 서른살 경제학 유병률 기자가 뉴욕에서 보내온 컬처비즈에세이
유병률 지음 / 웅진윙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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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밥 먹여 준다! 뉴욕이 낳은 추상표현주의 화가‘잭슨 폴록’으로부터 오늘 세계의 재화가 모이는 뉴욕이 시작되었다고 첼시의 미술전시장, 공연문화의 심장부인 센트럴파크 남서쪽 링컨센터에 대해 열정적으로 거품을 물어댄다.

그리곤 크리에이션(Creation)과 크리에이티브(Creative)를 극단적 정의로 설명한다.‘신이 우주를 만든 것이 크리에이션이다. 무에서 유를 만드는 의미가 강한 것이 크리에이션인 만큼 우린 크리에이티브할 수 있는 것이다’는 논리다. 바로 미국의 대중문화는 “크리에이션은 잘 못해도 크리에이티브 하다”는 것이다. 디즈니의 신데렐라 1,2,3시리즈의 해학적인 사례는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달리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는, 바로“바꾸고 뒤집고 비틀어 어필”하는 크리에이티브임을 설명한다.

뉴욕의 역동성 넘치는 오늘을 문화라는 키워드에 조망하면서 이러한 문화의 다양한 실천에 대해 저자는 웹2.0을 “다양한 삶의 방식이 전파되는 공간이자 놀이터”로 비유하고, 무궁무진한 비즈니스 카테고리를 열어가는 새로운 가치창출의 예로서 설명한다. 이제 소비자는 “제품의 기능이나 서비스 질 그자체가 아니라 서비스가 담고 있는 시대정신과 스토리와 라이프스타일을 소비하고 있다”는 것이며, 이를 유식하게 경제적 용어로 “더 이상 스톡(Stock)이 아니라 플로(Flow)를 소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즉, 문화소비자(Cultural Customer)가 부상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기업도 문화적 언어를 학습하고 발전시키려고 안달을 하고 있으나, 오히려 창조경영이니 문화마케팅이니 깃발 경영의 구태를 여전히 답습하고 있다고 우리의 현실을 꼬집는다. 구글의 기업문화를 예시하면서 “텁텁한 자판기 커피 한 잔이나 비상계단에서 눈치 보며 피우는 담배한대가 전부인 직원들이, 노천카페에서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에스프레소를 즐기는 이들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아이디어를 이길 수 있겠습니까?”라고 “도그마로서의 경영패러다임”을 버려야 함을 그의 예봉으로 찔러댄다.

오늘의 유행적인 답보적 경영기법이나 이론들에 대한 하버드 경영대학원 라케시 쿠로나 교수, 런던 경영대학원 게리하멜 교수의 비판적 논지를 통해 더 이상의 경영패러다임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이에 더해 ‘제록스의 CEO 앤 멀케이, 보잉의 제임스 맥너니, 프록터앤갬블의 앨런 래플리'와 같은 문화형 CEO가 뜨는 이유를 문화적 마인드라는 포용력과 유연성에 있음을 지적하기도 한다.

빅토리아대학 경영학 교수인 남상훈 교수가 “한국이 글로벌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중요한 것은 영어능력이 아니라 이(異)문화적응력을 높이는 것이라는 지적과 함께, 앞으로의 경제는 거대한 코끼리와 프리에이전트들로 이루어진 수많은 생쥐의 조합으로 구성될 것이라는 예상처럼 문화적 다양성을 배양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이 저술의 백미는 마지막장에 이르러‘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CEO 조너선 슈워츠’의 격식 없는 블로그의 예를 시작으로 하버드의 글쓰기 프로그램 익스포스(Expository Writing Program-논증적 글쓰기 프로그램),와튼스쿨, 인디애나大 캘리스쿨, 펜실베이니아大 스밀 비즈니스스쿨이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얼마나 강조하고 철저한 교육이 진행되는지, 그리고 우리기업 CEO들의 권위적 ‘조회문화’의 구태를 대비하여 글쓰기가 ‘마음의 문을 두드려라’라는 문화적 신념과 어떻게 조화하는지 공감에 머리를 계속하여 끄덕이게 만든다.

CEO가 완장을 찬듯한 어조로 하는 조회에서 그걸 듣는 회사원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카리스마가 눈곱만큼도 없어야 카리스마가 나오며, 안장을 벗어던져야 진짜 권위가 나온다는 것이다. 오히려 진정성을 담은 조너선 슈워츠의 이메일은 저장될 것이라는 점이다. 진실된 메시지는 소통을 원활하게 하여준다. 논리적 흐름이 잇고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한 줄의 글과 문장이 마음의 문을 열고, 세대간, 조직간의 소통의 길을 열어준다고 한다.
이제 글쓰기는 직장인의 능력 중 원 오브 뎀(One of Them)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능력이라는 것이다.

문화가 가지는 의미와 우리가 당면하는 글로벌 환경에서 우리국가가, 아니 우리 개인들 자신이 뉴요커들만큼 시간과 공간의 자유와 문화적 향수를 흠뻑 마시는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문화적 마인드를 우리의 가슴속에 심어주려는 작가의 열정이 뉴욕의 문화현장에서, 그리고 세계적 거대기업들의 성공적인 CEO들과 ‘스티븐 스필버그와 아인슈타인’의 피터팬 마력, 글쓰기 방법에 이르기까지 섬세하게 스며있다. 그래 이제 정말 딜리셔스한 문화족으로 변신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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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0-2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0
프레데릭 포사이드 지음, 이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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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의 냉전이 종식하고 인류에 평화의 기운이 찾아들자 다시금 종교를 앞세운 인간사회의 갈등이 서구와 근동의 무한적인 갈등으로 인간의 비극이란 원초적 사유의 세계로 회귀하게 하고 있다.

‘아프간’은 이러한 오늘의 무참한 폭력과 갈등의 근원적이자 상징적 의미를 제시하고 있다 할 수 있겠다. 두주인공 ‘마이크 마틴 ’과 ‘이즈마트 칸’의 삶의 교차적 설정과 그들의 삶이 종식되는 순간의 의미로부터 서구와 근동, 기독교와 이슬람이란 대립되는 투쟁의 표상은 실질적인 증오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작가는 탈레반, 알카에다, 지하드, 무자헤딘과 같이 막연히 공포의 용어처럼 인식되어온 이들 의미의 배경을 작품 속에 녹여내어 이슬람 근본주의, 그리고 타크피르(Takfir)라 불리는 초극단주의자들의 정서와 행동양식을 깊이 있게 서술해 내고 있다.

알라신의 지시에 따른 신성한 여행이란 의미를 지닌‘알-이스라’라는 단서를 시작으로 영국과 미국, 그리고 이슬람권과의 사생을 다투는 거대한 사건이 팽팽한 긴장과 치밀한 첩보전으로 사실성 높게 전개된다. 아프간 파슈툰 족의 한 남자아이‘이즈마트 칸’의 성장과정에 비친 서구인, 그들의 생존을 위해 선택해야 만 했던 삶, 그리고 이들 배경 속에서 종교가 가지는 의미와 그 속성, 그리곤 신의 전사인 무자헤딘으로서 조국 아프간을 모욕한 적들에 대한 증오는 지극히 당연한 선택이자 귀결일 밖에 없음을 연민어린 시선에 담아내고 있다.

알-이스라는 서구에 대한 어떠한 타격을 준비하는 프로젝트인가? 9.11 세계무역센타빌딩의 항공기 추돌사건으로 두 지역 간의 증오는 테러와 보복의 끊임없는 순환을 야기하고 그 해결의 실마리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생포되어 쿠바의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아프간인 이즈마트 칸으로 위장하여 알카에다의 조직에 침투하는 영국인 마이크 마틴은 파슈툰족 무자헤딘 이었던 아프간인으로의 삶에 성공하고 그 비밀에 접근하려한다. 이 작품의 소설적 위대성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한숨에 읽어버렸다”로는 표현이 부족 할 정도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정밀 첩보기‘프레데터’, 대양에서의 거대한 화물선의 잠적, 유령선을 찾는 미영 첩보기관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시간의 긴박과 스릴, 그리고 허를 찌르는 대 반전은 작품의 두께에서 상상 할 수 없는 가공할 스케일로 다가온다.

아프간인(THE AFGAN)은 마이크 마틴이기도 하고 이즈마트 칸이기도 하다. 엄청난 규모의 테러에 맞서기 위한 삶의 헌신, 가족과 조국을 모멸한 세력에 대한 증오와 이에 대한 복수의 행동은 그 본질적 의미에서 다르지 아니하다. 그들의 선택은 인간의 존엄한 본성이며, 인간위에 존립하는 종교의 본질, 그리고 그 종교적 권력의 본질은 무엇이란 것인가? 에 대한 지속적인 의문이 다루어지고 있다.

리처드 도킨스의 『The God Delusion』의 멋진 구절이 생각난다. “종교는 인간의 존엄성을 모독한다”고. 프레더릭 포사이스는 서로 다른 의미의 두 아프간인의 삶을 통해서 다르지 아니함, 즉, 동질성의 회복과 종교적 허위, 인류의 본성을 보여 주려 했던 것이 아닐까? 첩보소설, 추리소설이라는 협소한 장르를 넘어 인류에 대한 진중한 경고이자 인간본성의 존귀함에 대한 철학적 고뇌까지 녹여낸 거장다운 21세기 최고의 문학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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