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과 모험의 고고학 여행
스티븐 버트먼 지음, 김석희 옮김 / 루비박스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26가지의 고고학적 소재로 엮여있다. 그러나 고고학이란 성찰적 지식의 접근이라기보다는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에세이에 가깝다. 인류문화사나 고대서양사에서 즐겨 소개되고 있는 낯익은 소재들이지만 저자의 감성적인 시선과 문학과 예술의 교감을 형성하는 글맛은 나름 새롭고 흥미롭다 할 수 있다.

모든 학문의 동기가 그렇듯이 고고학 역시 인류의 기원에 대한 강한 호기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켜켜이 쌓여있는 지층을 파헤치고, 도시의 빌딩숲 아래 잠자는, 그리고 심해의 모래 속에서 건져 올린 수 천 년 전의 물질에서 우린 인류의 모습을 재확인한다. 그들은 그들의 감정과 생각을 물질 속에 어떻게 새겨 넣었을까? 그 상징과 추구하는 바는? 그리고 그들의 의식수준은? 전설, 신화는 혹 역사적 사실은 아니었을까?

인류 최초의 문명이라 하는 오늘의 이라크 남부지역인 메소포타미아의 서사시인 당시 번영했던 수메르의 홍수설화에서 인더스 문명을 대표하는 하라파, 그리고 모헨조다로의 출토된 석상에서 사제(주술사)와 군주를 겸한 모습을 발견하고, 순간 사라진 문명의 원인을 사색해보기도 한다.

호메로스의 대서사시『일리아드』와『오디세이』를 중심으로 1871년 터키해안인 ‘히사를리크’에서의 트로이 유적 발굴에 얽힌 설명등이 문학적 감수성과 학문적 성과를 적절히 버무려 고고학적 이해로 안내하기도 한다. 또한 미노타우르스 전설의 실제를 찾아 지중해 유적의 발굴이야기를 들려주며 라비린토스(미궁)에 얽힌 이야기와 ‘이카로스’의 죽음을 재미있게 풀어주기도 한다.

인간의 시간적 감각뿐 아니라 자연의 성상으로도 인간이 조작해낸 물질을 수 천 년 간 남겨놓기에는 긴 세월이다. 더구나 중세 기독교도들의 우상 파괴명분하에 자행된 그리스 예술품의 마구잡이식 파괴는 오늘날 단 한 점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인간의 고의적인 파괴를 피하고 우리에게 고고학적 발굴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오히려 자연의 난폭한 행동(화산폭발, 지각변동, 침식, 퇴적 등등)이라는 아이러니는 보잘것없는 인간의 방자함을 돌아보게 한다.

기원전 1450년경의 지중해 연안의 대규모 지각변동, 서기 79년 8월의 베수비오화산 폭발, 덴마크의 이탄층 과 같이 파괴적이었던 자연이 오늘의 우리에게 더 멋진 일상의 고대를 현실로 안내한다.

저자는 이야기한다. “대부분의 경우 고고학자에게 남겨진 유물은 개선문이나 성벽 같은 강자의 오만한 기념물뿐이지만, 폼페이에서는 평범한 보통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고.

다양한 고고학적 발견으로 이탈리아의 첫 번째 문명인 오늘날 토스카나 지방인 에트루리아의‘자연과 감각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는 남녀의 모습’이 묘사된 고분벽화에서, 햄릿의 무대인 덴마크 항구도시 엘시노어(헬싱괴르) 이탄의 늪지대에서 발견된 서기 1~5세기 시신의 원형보존에서 인신공회의 관습을, 그리고 잉글랜드 서턴후, 캐멀럿의 전설, 이스터섬의 수수께끼, 마야와 아즈텍 유적, 진시황제의 도용무덤 등 흥미로운 고고학적 경이로움을 이 저술은 풍부하게 설명해 내고 있다.

그리고, 퇴적된 옛 쓰레기를 순서대로 꺼내는 층서적(層序的)발굴이란 고고학 이론의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소개에서부터, 오늘의 현대화된 도심의 길거리 밑에 감추고 있는 과거의 이야기들은 2천년의 도시 런던 뿐 아니라, 우리의 심장인 서울도심의 밑까지 그 고고학적 호기심을 부추기기도 한다.

이 저술의 처음과 마무리는 지극히 동질의 사색적인 구절로 장식되고 있다. “파괴가 있으면 창조도 존재하고, 소멸하는 삶이 있으면 새로 태어나는 삶도 존재한다는 사실, 때로는 바람이 불어와 나뭇잎을 땅위에 흩뿌리지만 봄이 오면 숲속에서는 다시 싹이 트고 파릇파릇한 잎사귀가 돋아난다. 인간세상도 마찬가지여서, 한편에서는 태어나고 다른 한편에서는 떠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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