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케의 눈
금태섭 지음 / 궁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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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대중에게 가까이 소개하려는 작자의 의도가 충분히 전달되었을까? 오히려 이것이 법의 실체란 말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쉽게 풀어쓴 판례해설문에 가까운 일화와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몇 가지 소송사례와 배경 등 17개의 소재로 구성되어 있는 인간사회에 대한 작가 나름의 시선을 담고 있다할 수 있겠다.

작자가 검사출신이다 보니 형사소송에 치중되어 일반 대중들이 빈번하게 시달리는 민사부문과 관련한 법의 실상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법은 현실이다.”라고 했던가?, 그럼에도 실제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 못하거나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것이 법이란 이야기는 없다. 재판법정에 참여해 본 사람들은 불과 1~2시간 만에 수 십 건의 재판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우리의 재판현실을 목격할 수 있다. 변호사를 선임한 돈 많은 기업과 법에 대해 무지한 소시민과에 대한 재판부의 태도도 볼 수 있다. 짜증이 묻어나는 판사의 비난어린 목소리와 법적 용어와 지식이 전무(全無)한 원고의 초라한 모습을 보게 된다. 작자의 말은 옳다. 법은 현실이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인데 법적 판단의 원리와 재판부의 고심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섰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존중 욕구의 다른 표현 아닌가?

가볍게 그리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저술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많은 독자들의 대다수는 익히 인지하고 있는 내용들이기에 작자의 사변적 특성을 보여주는 소재로 선정된 17개의 항목구성이나 각 소재의 설명에 앞서 인용되고 있는 관련문헌을 찾아보는 재미와 같은 것이다.

진화론과 창조론과 관련한 일부 소재는 작자의 의도가 앞서 “디케의 눈”이라고 진지하고 거창하게 시작된 법 이론의 친절한 접근은 장황하게 과학과 종교의 논리를 대변하느라 슬그머니 본질이 실종된 느낌을 갖게 한다. 디케는 정말 왜 두 눈을 가리고 있을까? 이론과 현실, 말과 행동이 정말 일치하고 있는가? 불일치하는 그 틈새는 누가 감당하고 있는가? 감히 쳐다보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일체의 편견을 버리고 공정하게 양쪽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 재판부의 시각에서 할 말이다. 그러나 현실의 대중은 이렇게 평등하고 공정한 지위에 이미 있지 않다. 이것이 현실이다! 흥미롭고 유익한 법의 시선을 이론적이지 않은 이야기로 전달하고자 한 작자의 따듯한 노고를 이해하지만 보다 폭 넓은 입장(Stance)를 가지고 접근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떨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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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인간학 - 어진 사람은 적이 없다
렁청진 지음, 김태성 옮김 / 21세기북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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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어떠한 형태이든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사람은 소속이 된다. 작게는 가정에서, 직장, 단체, 학교, 정부조직, 그리고 국제기구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무리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인간답게 사는 것이라고 하는 것일까? 그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또한, 동료 사이에서, 상사와 부하로서, 조직의 리더로서 갖추어야 할 도리란 어떠한 것인가?

저자는 유가의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라는 5가지 덕목과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기본 이념으로 하여 대다수의 사람들이 익히 인지하고 있는 삼강(三綱)과 오륜(五倫)을 덧대어 중국 고대사회로부터 근대 봉건국가인 청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인물들을 통한 인간다움의 실체를 설명하고 있다.

중국 오대(晩唐五代)시기, 관료사회의 오뚝이라 불리는 수치를 모르는 인간의 전형인 ‘풍도(馮道)’를 통해 수오지심(羞惡之心)을 이야기할 때,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럴듯한 명분을 통해 국무총리직을 몇 차례나 맡았던 누군가가 떠오른다. 이와는 달리 중국 역사에 공과 훌륭한 사상, 그리고 품덕으로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 청대의 ‘증국번’은 모택동의『강당록(講堂錄)』에서 언급 하였듯이 ‘완벽한 인물’의 표상으로 소개되고 있다. “잠이 덜 깼어도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으려면 항상 긴장 할 필요가 있다”는 근면성과 수많은 곤경과 위기상황의 인내, 그리고 끈기와 가장 중요한 미덕이었던 ‘분배의 실천’을 그의 인간다움의 최고 선(善)으로 지적하고 있다. 즉, 자신의 성공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줄 안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청대 최고의 군사력과 재화, 학덕을 갖춘 이가 자신의 힘을 나누기란 수월한 일이 아니다. 우리의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의 부재를 생각할 때 남의 나라의 성인이 괜스레 부러워진다.

‘일일삼과(一日三過)’라는 유명한 고사(古事)의 주인공인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의 황제 경공과 재상이었던 ‘안영’의 일화는 리더가 갖추어야 할 겸양과 덕목, 그리고 충신이 품어야할 인의(仁義)에 대한 귀중한 예이다. “인의는 맹목적 너그러움과 의로움이 아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용기와 이를 바탕으로 한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황제에게 귀에 거슬리는 직언을 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시대였다. 안영의 매일 세 차례에 걸친 황제의 불의에 대한 꾸짖음은 진정 의로움만 가지고 할 일이 아니다. 시종일관 청렴과 훌륭한 품성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가히 군자의 자세이다.

 

의리(義理), 의협심(義俠心), 청빈(淸貧), 강직함을 큰 목소리로 부르짖으면 비웃음을 흘려대는 것이 오늘의 우리 모습이다. 상사를 모함하고, 동료를 시기하고, 부하를 억압하며, 자기가 하는 것은 작은 부정이라고, 아니 떡 값이라고 치부하는 것이 정상적인 삶의 자세가 되어버렸을 정도이다. 올 곧은 청렴의 태도는 오히려 융통성 없는 뒤떨어진 인간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 ‘렁청진(冷成金)’의 이야기는 현실 모르는 뒷방 늙은이의 부질없는 옛이야기에 불과한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그의 옛날 이야기는 21세기 비즈니스 세계의 최첨단을 걷는 조직전략을 품고 있기도 하다. “신하를 벗으로 대하라” 이제 기업조직은 상하의 수직적 의사소통으로서는 단속적이고 급격한 진보가 몰아치는 오늘에, 생존하기 불가능한 조직체계가 되어가고 있다. ‘파트너쉽(Partnership)’이라는 상하가 대등한 역량관계를 기초로 하는 관계로 발전하고 있음이다.

또한 “CEO인간학”이라는 부제와 같이 기업,단체,국가등 조직의 리더가 갖추어야 할 도량들이 사기, 삼국지등 걸출한 중국의 사료(史料)속에 감추어졌던 일화들을 발굴해 오늘의 우리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전달해주고 있다. 부하인 인재의 마음을 살피고, 신의로 대하면 충성하지 않을 자가 어디 있겠는가!, 자신보다 유능한 사람을 수하에 두기위해서는 넉넉한 도량이 우선되는 자질일 것이다.
유능한 인재에게는 그 만큼 무거운 책무를 위임하라, “커다란 배는 많은 물건을 실을 수 있다고” 수나라 시절 황제 양견이 재상 소위를 시기하는 무리에게 타이르며 한 말이다.

이 저작(著作)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권을 아우르는 유교의 뿌리에 연원을 두고 있다. 특히나 조선조를 되돌아볼 때 유교의 폐해와 구태의연함이 없지 않다 할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의 우리 사회가 건전한 처세, 투명하고 청명한 삶을 추구함에는 변함이 없지 않은가? 틀에 박힌 진부함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만물의 본질로부터 깊이 있는 오묘한 이치를 이끌어내는데 참 맛을 일깨워 줄 것이며, 또한 천차만별의 문제를 처리할 때 삼국지 이상의 모략과 음모, 즉 이해관계의 즉흥성 높은 탄력적 지혜를 제공할 것이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기는 인술(仁術)의 정치 세계 속으로 뛰어들어 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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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권택영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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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가지는 정염(情炎)의 대상에 대한 도덕적 기준이란 무엇인가? 1955년 우여곡절 끝에 프랑스에서 출간되자 미국을 비롯한 영국 등 유럽각국의 비난과 性的 기준의 논쟁을 불러일으킨 이 작품이 오늘날 현대문학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명작의 대열에 서게 된 것은 사회적 가치기준이란 변화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실증 예(例)라 할 수 있겠다.

12년 7개월의 세상을 산 사랑스런 소녀‘돌로레스 헤이즈’에 대한 37세의 남자‘험버트’의 격정적이고 치명적인 사랑이야기다. 그가 사랑의 열정에 휩싸여 부르는 이름은 ‘롤-리-타’, 그는 어여쁘지만 섹시하고 천박함이 어울린 사랑스런 소녀들을 ‘님펫’(요정의 별칭)이라 통칭한다. 어린 시절 겪었던 달콤한 사랑의 연인 ‘에너벨’의 죽음이 가져다 준 상처를 ‘프로이트 식’정신적 외상(外傷)이 가져다준 병적 성향으로 그 변질된 性的대상에 대한 취향을 정당화 하지만, 내심 험버트는 그런것만은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상상력의 자극을 극대화하는 감각적인 문장들은 압권이다. 작가의 후기에서 이 작품이 미국의 출판사에서 거절된 이유 중의 하나가 포르노그라피로 읽히기에 실패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듯이 외설이 난무하는 작품으로 접근하면 그 독서는 실패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체로서의 롤리타를 향한 험버트의 떨리는 욕정과 순간순간의 그 관능적 묘사의 미학은 감정적 공감을 뛰어넘는 그 무엇이다.

“푹신한 세포 속에 있는 아주 작은 미친 남자”,“그 뜨겁고 귀여운 고양이의 앞발을 잡고 어루만지고 꼭 쥐었다”, 독자들 모두 상상이 가리라, 누군들 그가 말하는 앞발을 놓고 싶겠는가! 오, 그리고 “상아 같이 매끄럽던 감촉”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의 서문을 작성한 자가 작가 본인이 아닌 ‘존 레이 주니어 박사’로, 감옥에서‘험버트’가 작성한 유고의 출간편집자로 노출된다. 그러나 이는 서문이라기보다는 진실과 실제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작품 해석의 중요한 단서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작품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후기는 작가 자신 바로 ‘나보코프’의 서술로서 작품‘롤리타’가 가지는 소설적 위치와 그의 지속적인 고민의 하나였던 소설의‘실재’성에 대한 고뇌가 설명되고 있다. 작가는 어찌보면 실재성을 표현하려는 현대소설의 허구성만을 입증하려는 의도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지막 작가의 후기는 독자를 당혹스럽게 할 수도 있다.

어린소녀 롤리타를 향한 주인공 험버트의 광적인 탐닉은 분명 오늘에도 윤리적, 그리고 법적으로도 용인될 성질의 사랑이라고 순순히 수용하기에는 버겁다. 그러나 험버트의 롤리타에 대한 육체적 갈망에는 보호적 요인이 끝없이 등장되어 지고지순함과 희생적 열정으로 표현되고 있다. 오히려 롤리타의 게임에 놀아난 인상을 갖기에 이른다. 성적 대상의 선정에 있어 비정상적이고 모멸감을 갖기에 충분하지만 주인공의 운명적이자 마법적이라기 까지 할 수 있는 롤리타에 대한 격정은 인간에 내재된 어찌할 수없는 통제 불가능한 그런 것이라고 하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우려스러운 공감인가?

단순화해서 관능을 표현한 최고의 문학성을 지닌 최음성 강한 성도착자의 회고록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작가 ‘나보코프’ 소설의 실재성에 대한 실험을 볼 수도 있으며, 우리 인간 본성에 대한 모순과 분열된 이중성을 읽을 수도 있다. 그리고 성적 대상의 기준과 같은 성적 취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위선, 즉 도덕적 가치기준에 대한 회의라는 측면에서 접근 할 수 도 있다.

독서 내내 내밀한 관능의 향기가 쉬이 유실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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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톈, 중국인을 말하다
이중텐 지음, 박경숙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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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漢字)문화권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또한 공맹(孔孟)의 유교적 예(禮)의 사회에 살아가고 있어 저자의 논리와 설명은 낯설지 않다. 오히려 한국의 한자에 조예가 깊은 어느 문화인류학자가 한국인의 생각과 태도, 의식구조를 설명한 것이라 해도 크게 다름이 없어 보일정도이다.

단체, 집단의식의 뒤에 숨어 등 돌린 채 뒷담화만을 흘리는 태도나, 매사 먹을 것이 개입된 언어 상의 표현 습관과 생활양식에 베어있는 또 다른 음식의 모습, 체면치레와 평등의식 속에 내재한 본질의 성찰 등이 그러하다. 물론 21세기 오늘, 개방과 개혁의 대 격변기를 맞이하고 있는 중국사회와 중국인, 그리고 중국의 권력(官,軍)과 학문, 문화를 주도하는 중심세력에 대한 진실어린 충언이기는 하나, 주변국, 아니 이해당사자일 밖에 없는 우리에게도 그들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우리를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의미심장한 주석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할 수 있다.

음식, 의복을 비롯한 우정과 한담(閑談)등 총 9개장으로 구성되어 중국인의 의식을 해부하고 있으나, 크게 ‘체면’과 ‘단위’를 중심적 행동양식으로 구분하여 오늘에 이르는 중국인들의 습성과 태도, 의식구조, 그리고 표면에 나타나지 않는 이면의 본질적 양식을 관련지어 풀어내고 있다 할 수 있다.

우리(한국인)가 사용하는 많은 어휘, 속담, 관용어 등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동일한 표현으로 그들의 언어에 있음을 발견하고는 흠칫 놀라게 된다. 무엇이든 먹는 것과 연관짓는 범식주의(泛食主意)의 예에서 ‘입에 풀칠한다’, 강사보고 ‘입을 놀려먹고 산다’라든지, 직업이나 일을 ‘밥그릇 ’이라 하고, 나라 밥 먹는 관료를 ‘ 철 밥그릇’, ‘한 방 먹었어’, 곤경에 빠졌던 것을 ‘쓴 맛 보았다’와 같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유사함을 보게 된다. 이러한 언어표현의 방식과 어원에 대한 해석을 통해 친밀성, 정중함, 배려 등 식사문화가 갖는 그들만의 속내로 유연하게 연결짓고 있다.

이러한 해석의 방식은 의복의 장에서도 계속되어 자본과 물질의 홍수 속에서 그들이 보여주는 유행의  행렬에 대한 비교의식과 평등주의의 관념, 그리고 체면이라는 오래된 습속의 발현이라는 측면에서 중국인 자신을 적나라하게 해체하고 있으며, 그들의 앞날에 대한 우려스러운 목소리로 안타까움을 호소하고 있다.

제3장인 체면의 장은 『아Q 정전』의 '아Q'의 일례를 곁들여가며 흥미로움을 더해 수월한 이해의 장으로 나가게 한다. 그들의 체면의 법칙이나 가면과 체면의 관계, 의식과 무의식의 정의를 통한 ‘의식적 자기기만’에 이르는 해설은 가히 최고의 인문서로 손색이 없을 정도의 걸작에 이른다. 이 저술을 읽는 내내 매 페이지마다 밑줄을 긋지 않고 넘어 갈 수 없는 다양한 지식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음을 짐작 할 수 있을 것이다.

체면과 인정과 같이 중국인들의 오랜 태도와 행동 양식이 그들의 처세와 어떻게 관련되고 있는 것인지, 세상물정에 밝다는 것,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처세인 만큼 가식적일 수 있다는 것 등 그들의 ‘체면’이라는 것의 의식 속 배경과 의미를 이해케 된다.

단위의 장을 기초로  결혼, 가정, 우정의 장은 중국사회의 본위(本位), 즉 기초 단위와 관련하여 그들의 개인으로서의 개체 부존재와 오직 단체만이 존재하는 사회임을 통찰한다. 최소의 단위는 가정이라는 단체이며, 개인이란 단위는 존재치 않는다.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역사적 배경과 공산사회로 이어지는 불과 30여 년 전까지의 중국은 그러했으며, 이는 중국사회와 중국인의 의식과 행동의 근원이 되는 가장 중요한 인식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일상의 행동, 태도, 양식은 여기에 뿌리를 두고 파생되었다 할 정도로 그 근원적 의의는 깊다.

단체에 숨어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의식, 공사불분(公私不分)의 태도, 전통적인 등급사회로서의 관본위주의 등 오늘의 중국 관료사회의 부패와 부조리의 근원적 연결고리를 제시하고 있다. 이후 사랑 없는 결혼제도의 배경- 단체인 가정, 가정의 주체인 아버지의 선택이면 당사자와는 무관한 혼인제도 - 과 이혼문제, 우정과 관련한 의협심과 의리의 논의와 현재적 해석에서의 의미까지 중국인의 의식개혁을 위한 저자의 주장과 논리는 거침없이 전개된다.

끝으로 한담, 우리말로는 뒷담화라 할 수 있는 등지고 하는 타인에 대한 이야기가 가지는 해학과 풍자는 오늘 그들 사회에서 얼마나 혐오스럽게 횡행하는지 짐작케 한다. 반세기에 걸친 우리한국사회의 본격적인 서구화와 자본주의화, 민주주의를 위한 고통스런 학습과 체화의 시기가 오늘 중국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중텐의 이 저술의 의미는 다분히 그네들을 향한 자성과 변화의 방향을 제시하기 위한 탁월한 계몽서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기서 우리의 모습을 보고, 여전히 구태를 밟고 있는 변화 없이 고집스럽도록 어리석은 우리자신들을 목격 할 수 있다.

저자가 말미에 이 저술을 한담의 격(대중적 문체로의 접근)으로 집필한 의도를 밝히고 있다. 그래서 많은 독자들에게 가까이하고, 많은 이야기와 지혜와 지식을 제공하려한 노력이 전체에 묻어난다. 밑줄 그어놓은 문장들과 아름다운 시구(詩句), 역사의 일화, 『홍루몽』을 마치 다 읽어 본 듯 할 정도의 다양한 참고문헌 등은 두고 두고 들춰 볼 만큼 유익한 언어들로 무성하다. 이중텐은 그야말로 멋진 수다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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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새 1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지음, 이재형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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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냄새, 악의 냄새, 어둠이 분비하는 즙의 냄새” 가 옅은 안개처럼 낮게 드리운 채 작품 전체를 아우른다. 외교관 부부의 양자로 하릴없이 젊은 삶을 지탱하는 ‘루이 앙티오슈’와 조류학자 ‘막스 뵘’의 만남은 이례적이다. 작품은 처음부터 복선과 암시, 그리고 독자를 긴장으로 안내한다. 역겨운 인간의 잔인성이란 극한적 치부를 드러내며 숨까지 멎게 할 지경으로 몰입을 재촉하고 두 권짜리 이 스릴러물을 단시간에 읽어내게 한다.

스위스 국적의 황새 전문 조류학자 ‘막스 뵘’은 쇠고리를 황새의 다리에 매달아 이동경로와 습성 등 생태 연구를 하던 중 유럽에서 터어키, 근동(이스라엘,요르단등)지역을 거쳐 중앙아프리카를 왕래하던 그의 황새들이 돌아오지 않는 상황에 직면한다. 주인공 ‘루이’는 막스 뵘의 의뢰를 받아 황새들이 사라진 이유를 찾기 위해 이동경로를 따르는 여정을 시작하려 한다. 그러나 막스뵘은 황새들의 부리에 심하게 손상된 사체로 발견되고, 스위스 경찰 ‘뒤마’의 석연찮은 수사와 의문을 시작으로 황새의 이동경로를 쫓게 된다.

경로를 쫓는 여정에서 의문의 미행자들을 만나게 되고, 황새의 경유지를 안내하던 자들이 무참히 살해당하는 상황에 처한다. 예리한 메스에 잘려나간 신체의 부위들과 장기들, 그리고 숲속에 버려져 동물들에 손상된 채 발견되는 막스뵘의 지역별 조력자들, 사악함의 냄새가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루이는 어느덧 이유도 모른 채 쫓기는 인물이 되고, 막스뵘의 죽음에 석연찮은 비밀이 도사리고 있음을 감지한다. 사건의 추적과 이동은 더욱 빠른 속도로 전개되고, 알 수 없는 두려움과 소스라침을 던지며 척추를 오르내리는 전율을 느끼게 한다.

이 미지(未知)의 두려움과 무서움은 바로 루이 앙티오슈의 앞에 펼쳐지는 끔직한 폭력과 흥건히 흐르는 피의 강과 황새의 관련성을 찾아내지 못하는 공포이다. 잔인하게 도살된 사람들과 황새는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그리곤 느닷없는 다이아몬드의 출현은 작품의 내용을 정교하고 풍부하게 해준다.

스릴러물들이 한결같이 진부하게 사용하는 작의적인 음울한 소재로서의 배경 등은 일체 사용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음습한 악의 냄새가 뇌에 각인된다. 작가의 의지와 강요되지 않는 주제의식이 독자의 적극적 의지와 무관하게 혈관에 흐르는 것 같다.

그리고 풍부하고 일관된 작가의 고발의식은 이렇듯 욕지기가 터져 나올듯한 서스펜스와 스릴에 내재되어 ‘세계는 하나’라는 의료구호단체의 도덕적 허위성 위에선 인간사회의 위선, 빗나간 부정이란 착란적이기 까지 한 인간 근원의 이기적 잔인성, 집시와 아프리카 흑인에 대한 인간적 질시 등 백인서구사회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 의식, 근동(近東)지역에서의 무차별적 복수와 반목 등 끊임없는 긴장과 종교적 악의성에 이르기 까지 끝없이 우리의 본성을 자극해댄다. 이러한 요소는 바로 우리의 지적 욕구를 진정시키고 작품의 높은 역량에 감동을 느끼게 한다.

“이 사건은 혼란과 감정과 폭력으로 점철된 하나의 사랑 얘기라고 말 할 수도 있습니다.”라는 주인공 루이의 열정적 선언과 같이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본원적이고 필사적이기까지 한 사랑에서, 삶의 언저리에서 방황하는 두 남녀의 열정적 사랑, 재화에 대한 무궁한 탐욕, 왜곡된 의술의 사악한 자선(慈善)까지 그 이기성과 이타성의 얼룩진 혼합물로 사랑이 그려지고 있다.

또한 극적(劇的)요소들의 적절한 배치와 반전의 반전, 크라이맥스의 가파른 고지로의 걷잡을 수 없는 속도감은 문자대로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재미와 지적흥분, 스릴러의 책임감, 가식과 위선의 폭로로 이어지는 카타르시스까지 완벽한 구성을 갖춘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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