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스 - 단 한 사람만을 위한 규칙, 2007 뉴베리 아너 수상작
신시아 로드 지음, 천미나 옮김 / 초록개구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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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꽤 있고 그중엔 화자나 주인공이 장애아동의 형제자매인 경우가 있다. 이책도 그렇다. 화자는 캐서린이고 캐서린에겐 데이비드라는 남동생이 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우리나라 작품들에도 보면 장애형제는 주로 어른스럽게 자란다. 그래야할 수밖에 없으니 저절로 그렇게 되는건가 싶기도 하다. 동생 만으로도 벅찬 부모에게 자신의 요구를 있는대로 다 하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힘든 부모의 의지도 되어야 한다. 자신도 어린이일 뿐인데 말이다. 부모가 급하거나 불가능한 시간엔 장애아동의 돌봄을 형제가 맡아야 하기도 한다.

캐서린은 그 일을 꽤 잘하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인 <Rules>처럼 동생에게 필요한 규칙들을 눈높이에 맞게 만들어 가르치는 것도 캐서린이 쭉 해온 일이다. 너무 대견하다. 나보다 낫다.

하지만 이 책이 현실적인 점은 캐서린이 어른스럽기만 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건 건강하다는 뜻이라 생각하고 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캐서린이 완벽하게 어른스러웠다면 이 책에 나오는 지지고볶는 많은 일들이 훨씬 덜 일어났을 수 있다. 하지만 일어나는 편이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당사자(그 부모)가 아니라서 쉽게 말하는 건지도 모르지만.... 때로는 그 부모에게 이입되어 그 고단함에 슬퍼지기도 했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낫다는 외국인데도 힘들구나... 우리나라는 더할텐데 얼마나 힘들까.ㅠ

하지만 어느 인생이나 지지고볶는다는 점에선 마찬가지이듯이, 캐서린 가족의 일상도 희로애락과 함께 흘러간다. 돌발상황의 가능성이 언제나 있다는 점과 남들에게 죄송하다고 해야하는 순간이 많다는 점, 일반적 설득이 소용없어 대치하거나 기다려야 하는 일들이 많다는 점 등이 괴롭긴 하지만.

캐서린은 동생 데이비드 외에 장애인과의 교류가 또 생긴다. 동생 작업치료실에서 만난 제이슨. 그 아이는 휠체어를 타고 있으며 말을 하지 못해 낱말카드가 들어있는 책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아주 기본적이고 전형적인 낱말만 들어있는 그 책 속에 '낱말 불리기' 역할을 캐서린이 어쩌다 자임하게 되었다.

캐서린이 골라서 늘려주는 낱말카드. 그 과정이 내게는 정말 흥미로웠다. 그 또래 아이들의 감정을 분출하고 욕구를 표현할 말들은 그들의 생각과 소통에서 나왔다. 그 작업은 제이슨을 위한 것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캐서린 자신에게 필요한 과정이기도 했다. 제이슨에게 확장시켜준 그 말들은 사실 캐서린이 마음 깊은 곳에서 내뱉고 싶었던 말이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둘은 친구가 되었다. 이 서사는 다른 어떤 이야기에서도 볼 수 없었던 이 책의 특별함이다.

캐서린이 동생 데이비드에게 만들어준 규칙들(Rules)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느꼈다. 그중에는 '어항에 장난감을 넣지 않는다' 처럼 데이비드에게만 해당되는 것도 있지만 '늦는다고 안오는 건 아니다'나 '남의 말을 빌려야 한다면, 아놀드 로벨이 쓴 좋은 말이 많다' 같은 말들에는 이중 이상의 의미가 들어있다고 느꼈다. 즉 캐서린 자신에게도, 나아가 독자들에게도 적용되는 규칙인 것이다. 이런 점이 이 책의 독보적인 매력이었다.

이 책의 서사 속에 두 장애가정의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그러면서 생각한 점이 있다. 가정의 단단함과 따뜻함은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 캐서린네도 바쁘고 힘든 가운데서도 가족애만은 굳건했고, 제이슨네도 그래보였다. 그걸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 일단은 부모의 성품도 영향이 없진 않을거다. 하지만 사람의 성품이란 극단에 치받히면 얼마든지 변형될 수 있는 것이다. '가정'이 숨을 쉬고 유지될 수 있는 여유를 주어야 그 안에서 장애아동들도 안정감있게 성장할 것이다. 사회에서 장애 관련 지원을 논할 때 가정을 잘 지킨다는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다듬어지지 않은 생각이라 조심스럽게 한번 말해봤다.

작가님도 남매를 키우고 있으며 아들에게 데이비드처럼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다고 한다. '더는 바랄 게 없었다'는 마지막 문장의 해피엔딩을 쓸 수 있었던 건 작가님도 고난 중에 행복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거듭 말하지만 이 책은 지지고볶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다만 그게 불행이 아닌 사회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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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키 창비아동문고 332
전수경 지음, 우주 그림 / 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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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경 작가님의 이전 작품들을 거의 다 읽었는데 그중 특히 sf로 분류되는 우주로 가는 계단별빛전사 소은하를 읽으면서 감탄했다. sf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을텐데 그 작품들은 그중 어딘가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했다. 이어지는 이 작품 무스키도 그 연장선에 있는 느낌이다. 소재와 내용은 전혀 다른 새로운 작품이면서 뭔가 한줄기로 흐르는 느낌이 있었다.

 

우주로 가는 계단이 특히 그랬는데 작가님이 과학에 대한 소양이 높고 그 바탕 위에서 새로운 상상을 펼쳐나간다는 느낌이 든다. 이번 작품은 전작에 비해 과학적 느낌이 강하진 않지만 생물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만든다. 이롭다, 해롭다는 기준은 무엇인가? 사람이 판단하는 그 기준은 지구의 기준으로도 옳은가? 그렇다면 사람이라는 종은 어떠한가?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 무스키는 어이없게도 모기다. 그런데 지구의 모기가 아니다. 외계에서 특수 임무를 띠고 지구로 파견된 모기란다.ㅎㅎㅎ 아 어찌보면 황당한 이런 설정이 우습게 느껴지지 않는 진지한 서사가 펼쳐진다. 아이와 모기의 우정에 가슴이 찡해진다 해도 절대 오버가 아닐 것이다.

 

이 모기와 만난 주인공 수호는 하필 스키터 증후군이라는 모기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다. 도입부에서 수호는 좀 생긴 얼굴과 인기만 믿고 까불다 여친한테 이별 통보를 당하는 좀 재수없는 아이로 나온다. 이 아이의 문제는 상대의 마음을 볼 줄 모른다는 것. 인간과 소통 부재이던 아이가 모기와의 소통으로 변해가며 깊은 우정의 세계로 들어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외계에서 온 모기 무스키. 아카 행성에서 왔다. 역할은 DNA 전달자다. 작가의 설정은 이러하다.

아카는 우주에 있는 행성들이 재난이나 충돌, 전쟁 등으로 파괴되거나 사라질 때를 대비해 여러 행성의 미세 동식물 DNA를 저장하는 행성이었다. 오래전부터 지구를 포함한 우주 행성 연합은 비밀 협약을 통해 아카에 DNA 저장고 역할을 맡겼고, 저장된 DNA는 재난으로 멸종된 생명체를 복원할 때 사용된다고 했다. 우주 생태계를 위한 중요한 업무를 맡고 있기 때문에 아카는 비밀리에 존재를 보호받고 있었다.

여기서 지구를 포함한이라는 대목이 조금 갸우뚱했지만 그냥 넘어가고 읽었다. 이어지는 무스키와 수호의 대화에 이 책의 가장 큰 메시지가 들어있다고 느꼈다.

 

- 인간 DNA 수집에 대해서는 아직 협정이 체결되지 않았어.

- 하긴, 인간은 멸종될 가능성이 없을 테니까.

- 무슨 소리야. 현재 아카 빅데이터에 의하면 인간이 멸종될 확률이 아주 높아.

- 게다가 인간은 다른 동물을 함부로 죽이고 잘 협력하지도 않잖아. 교만하고 독선적인 생명체는 사라지게 되어 있어. 그것이 생태계의 원리야.

작가는 인간이 가장 하찮게 여기면서도 혐오하는 모기의 입을 빌려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무스키는 특수신경전달물질을 상대에게 주입하여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걸 주입받은 수호는 무스키와 깊은 교감을 나누며 밀착하여 생활한다. 그 과정에서 수호의 일상의 많은 사건을 공유하며 마음을 나누게 된다. 수호의 변화는 그 모든 과정들에서 일어난다.

 

무스키는 아카 행성의 말로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란다. 무스키는 자기의 별로 돌아갔다. 모기와의 이별이 이렇게 찡할 수도 있다니. 나는 앞으로도 잠자리에서 귓전에 모기가 앵앵거리면 짜증을 내며 남편한테 호소할 테고, 방 안의 모기를 절대 용납 못하는 남편은 신출귀몰한 솜씨로 그놈을 처치하고야 잠자리에 들 것이다. 하지만 아카의 인사, 무스키는 기억하겠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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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도그 씨, 미술관에 가다 바람어린이책 27
전은숙 지음, 남미리 그림 / 천개의바람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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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하지 않아도 되는 편한 휴일에 이런 책을 펼쳐드는 건 일상의 작지만 큰 행복이다. 공부로 읽어야 되는 책도 도움이 되지만 이런 책은 내게 휴식과 달달한 간식 한조각 같은 거다. 아!! 핫도그 같은 것? 나도 핫도그 좋아하거든. 빵 사이에 소시지 끼운 비싼 핫도그 말고 나무꼬챙이에 끼워 튀겨서 설탕이랑 케찹 뿌린 핫도그.

시작이 반이라고 했는데 이 책의 작업에서 그 훌륭한 시작은 캐릭터 창조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핫도그 씨, '불도그'이면서 '핫도그'를 좋아하는 주인공. 그림을 사랑하고 화가 엘리자베스 오슬러를 좋아하는.

시작과 함께 마지막도 중요한데, 이 책에서 그 마무리는 그림이 해주지 않았나 싶다. 주인공의 캐릭터와 감정을 너무 잘 살리고, 상황도 생생히 살아있으며 색감도 디테일도 뛰어난 그림. 배경이 주로 미술관이어서 액자 속의 그림들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 난이도가 높은 작업이 아니었을까 짐작한다. 이리하여 이야기와 그림이 찰떡궁합인 이 책, 완전 맛있는 책이 되었다!

핫도그 씨는 최애 엘리자베스 오슬러의 전시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들떠 준비한다. 연극배우를 하는 사람친구한테 낡은 차도 빌렸다. 가는 길의 에피소드들도 재밌어서, 이 책은 묵직한 메세지와 깨알재미가 결합된 책이라 해도 되겠다. 그 에피소드는 모두 '핫도그'와 관련된 것. 문닫으려는 핏불테리어의 푸드트럭에 애원하여 겨우 받아낸 핫도그 한 개! 그걸 오토바이를 탄 날치기 놈들한테 빼앗기고. 그렇게 겨우 전시장에 도착했지만.....

'개라서' 입장이 안된다는 것 아닌가? 핫도그 씨는 절망했다. 얼마나 간절히 원했고, 얼마나 힘들게 왔는데 눈앞에서 돌아서야 한다니. 도저히 그럴 순 없었던 핫도그 씨는 연극배우 친구의 차 트렁크에 있던 의상과 소품들로 변장을 하고 겨우 입장에 성공한다. 과연 핫도그 씨는 무사히 관람을 했을까? 이후 에피소드들도 아주 재밌지만 여기까지만.

이 책은 아주 재미나게 '차별'을 고발하고 있다.
"이건 차별이야, 차별! 미술관은 그림을 좋아하는 모든 이에게 문을 활짝 열어야 해!"
화가 나서 쏟아내는 핫도그 씨의 말은 그대로가 메시지다. 긴박한 추격전 끝의 행복한 결말 또한 그러하다. 우리 사회 곳곳에 놓여진 투명한 장벽. 그것들을 보라고 말한다. 단순하게는 노키즈 존에 대해 말할 수 있겠는데, 나는 그것은 성숙한 시민의식과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조건 철폐도 문제의 핵심을 다 보지 못한 거라는 생각. 특별히 한국 사회에 만연한 민폐에 뻔뻔한 문화, 속된말로 진상 문화를 함께 고쳐나가야 한다. 그러나 특정 대상에 대한 거부는 기본적으로 옳지 않으며 꾸준하고 세밀하게 방법을 찾아나가야 한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메시지가 하나 더 있었다.
"어릴 적부터 그림이 너무 좋았어요. 남들은 저한테 재능이 없다고 일찍 포기하라고 했지요. 빨리 다른 길을 알아보라고요. 하지만 재능 그런거 없으면 어때요. 그냥 이렇게 좋은 걸요." (92쪽)
하지만 핫도그 씨의 그림을 보는 상대방은 이미 감탄하고 있었다. 핫도그 씨 말대로 그는 타고난 재주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애정과 꾸준함은 그를 어느 경지에 오르게 했다. 나도 재주가 무재주라며 한탄만 하지 말고 노력했어야 됐던게 아닐까.ㅎㅎ 어쨌든 즐기는 자, 그는 독보적이다. 우리가, 그리고 아이들이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핫도그 씨들을 응원하며, 지나는 길에 핫도그 사먹고 싶다. 딱 표지의 저 핫도그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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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못 말리는 하우스메이트 - 도시에서 대형견과 산다는 건, 2023 학교도서관저널 추천도서 나무의말 에세이 1
나무의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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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자신을 '육견인'이라고 칭한다. '육'은 고기 육자도 있어서 어감이 썩 좋진 않은데, 육견이란 육아와 같은 선상의 단어다. 개를 기르는 사람. 이렇게 따지면 나도 육견인이었고 지금도 준육견인 정도 된다. 7년 전 어느날 딸래미가 덜컥 말티푸 한마리를 데려왔고, 딸을 나무랄 새도 없이 그 작은 털뭉치는 홀랑홀랑 뛰어올라 식구들을 핥아대어 순식간에 좌중을 평정하였다. 그렇게 우리의 육견은 시작되었다. 딸이 멀지 않은 곳으로 독립한 지금은 주2일과 딸이 놀러가는 주말이나 여행가는 휴가 때 우리집에 와 있는다. 두 집 다 자기 집이지만 더 오래 살았고 더 넓은 우리 집보다도 좁지만 주인1호인 누나집을 더 선호한다.

딸이 데려오겠다고 미리 말했다면 내가 허락을 했을 리가 없다. 나는 모든 화근은 '아예 만들지 않는다'가 원칙이기 때문이다. 화근이라니 말이 심하네 할 수도 있지만 돈 들어가고 힘든 일이 화근이 아니면 뭔가. 하지만 말이다. 그 화근까지도 사랑하게 되는 것이 이녀석들, 개의 마음이라는 것을 '육견인'이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닫게 된다. 한결같은 사랑, 환대, 때론 인간보다 더한 무언의 소통. 이걸 경험하면 그 모든걸 감수하게 되는 것이다. (마음으론 그렇지만 그와 함께 환경도 따라줘야 한다. 안 되는 일은 안 되는 일.)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에고고, 말티푸 정도는 명함도 못내밀겠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말티푸는 아빠 푸들이 토이가 아니고 미디엄이었는지 생각보다 훨씬 커져서 가족을 당황시켰다. 난 5kg 짜리 지인의 푸들도 크다고 생각했는데 이녀석은 글쎄 9kg에 가깝도록 크는게 아닌가. 길을 다니며 만나는 개들은 대부분 얘보다 작다. 거기다가 목청은 얼마나 큰지. 이놈아 그 목청을 사람들 놀래키는데 쓰지 말고 날 다오. 노래나 목청껏 불러 보게! 그럴 정도인데다 사회성이 부족해서 주인 외엔 다 적대적이고 흥분을 잘해서 딸이 자기가 번 돈으로 강형욱씨네 훈련소에 잠깐 다닌 적이 있을 정도다. 지금은 안심하고 산책을 할 정도는 되었다.

얘기를 하고보니 엄청난 애물단지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함도 못내민다고 한 이유는, 작가님의 천둥이가 대형견이기 때문이다. 우리 개도 큰데 그 세 배, 26kg라고 한다. 진도가 섞인 믹스. 맹견은 아니어도 다루기 쉬운 종도 아니다. 하긴 모든 대형견이 그렇겠지만.

천둥이는 원래 작가님의 아버지가 강원도 산골에 거주하신다는 전제로 데려온 개인데, 상황이 달라져 도시로 오게 된 케이스다. 도시에서 대형견과 산다는 건 상상 이상의 어려움이 있었고, 많은 걸 포기하고 그 상황에 나를 맞춰야 했다. '육견'이라는 말에 실감하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단 엄청난 시간 투자가 있어야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난 이쁘다고 쓰다듬을 줄만 알았지 진정한 육견인은 아니구나 깨닫게 되었다. 시원찮은 나에게 딸이 산책을 맡기지 않기 때문에.^^;;; 산책이 견생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 개도 하루종일 그시간만 기다린다. 대형견은 더하다고 한다. 하루 세 번. 시간으로 따지면 서너시간내지 너댓 시간? 나는 절대 그런 시간은 못낸다. 시간을 낼 의향이 없는 사람, 개랑 인연을 절대 맺지 않으시길 바란다. 아프지 않고 크는 개는 없고, 병원비도 비싸다. 말하자면 육견은 돈과 시간으로 하는 것이다. 육아와 다를 바가 없다. 돈도 시간도 엄청 들지만 그게 아깝지 않을 정도의, 남들은 모르는 행복과 기쁨이 있다는 점도 육아와 똑같다. 하지만 낳아만 놓고 부모노릇 못하는 이들도 있듯이 덜컥 들여놓고 개를 고문하는 이들도 있다. 이 책이 널리 읽혀서 그런 이들이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산책길에 만난 검은 리트리버 코코와 단짝 놀이친구가 되는 천둥이. 그리고 '코코오빠'와 접선하다 마음이 통해 커플이 되신 작가님의 이야기도 영화같고 훈훈하다. 그리고 천둥이랑은 또다른 코코를 키우며 새롭게 알아가는 '동물과의 동행'에 대해 들려주는 작가의 목소리에도 진정성이 느껴졌다. 천둥이의 첫주인인 아버지, 작가님, 코코오빠가 나누는 대화에서도 배울 점이 많았다.

근본적으로 작가는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꿈꾼다. 옛날 시각을 갖고 본다면 뭘 그렇게까지...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나 어릴 적 외갓집 가면 마당에 한두마리 개가 꼭 있었지만 다 묶어놓았었고, 길게 키운 경우도 없었다. 다음 방학때 가보면 없어. 잡아먹어서...ㅠ 그때는 왜 그냥 그런가보다 했을까.ㅠㅠ 지금 우리와 함께하는 이들은 가축이라기보다는 마음을 나누고 삶을 동행하는 친구 내지는 가족이다. 그래서 작가의 이런 고민과 제언에 공감한다.

천둥이와 코코, 그리고 우리 눌눌이(누리) 모두 건강하게 천수를 누리다 떠나갈 수 있기를. 이 책을 덮으며 마지막으로 드는 생각이다. 이제 사람으로 치면 중년의 나이에 배를 까고 이쁜짓하는 너 왤케 귀엽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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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개맨 동시야 놀자 20
최문현 외 지음, 강은옥 그림 / 비룡소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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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시집을 꽤 자주 접하게 하는 편이다. 일단 내가 소장한 동시집이 50권 정도 되어 학급문고의 개방형 서가를 차지하고 있고, 도서실 시집도 가끔 추가해서 활용한다. 아이들은 거부감 없이 시집을 접한다. 시를 싫어하는 아이는 못본 것 같다.^^

 

국어 수업과 연관해서 시집을 읽힐 때는 포인트가 크게 두가지다. 공감 위주인가, 말놀이 중심인가. 그에 따라서 시집 구성이 조금 달라진다. 그 구분에 따른다면 이 책은 후자다. 그런데 어떤 시들에서는 전자도 함께 보인다. 시를 쓰는 어린이가 그것까지 고려하진 않았겠지만 대단하다!

 

나는 사실 전자를 선호한다. <말의 재미> 같은 특별한 단원이 아니면 후자로 감상을 시키는 일은 별로 없다. 교직 초반에 영향을 받은 이오덕 선생님의 책에서 이오덕 선생님이 경계하고 싫어하셨던 시들이 바로 마음이 담기지 않은 말장난 시, 경험 없이 기존의 관념으로만 쓴 시였다.

거울은 바보

나만 따라하니까.

뭐 이런 류의 시들.

 

그러다가, 교과서에 말놀이 단원이 들어오고, 아이들과 수업도 해보고 하니 이런 것도 마냥 배제하기보단 잘 지도하는 게 좋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바뀌게 되었다. 언어 유희는 센스의 영역이기도 하면서 다양한 분야에 쓰인다. 예를 들면 라임을 맞추는 랩 가사 같은 것. 잘하면 언어유희에서만 끝나지 않고 진심이 담기거나 신선한 창의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책에서도 그 가능성을 보여줬듯이.

 

어떤 시는 내 눈에 아직도 저 거울은 바보~’ 수준으로 보여서 조금 아쉬운 시도 있었다. 똑같이 지도해도 해마다 아이들의 시 수준이 다른데, 작년 아이들은 무난해서 내 속을 크게 썩인 적이 없는 데에 반해 반짝반짝한 시가 도무지 나오지 않았다. 하나마나한 소리만 늘어놓은 시. 그걸 나는 아이들에게 무맛 시라고 우스개소리를 하며 같이 웃기도 했다. 그러다가 서툴러도 느낌 포인트가 살짝이라도 들어간 시가 나오면 바로 이런 거야!” 하고 읽어주며 폭풍 칭찬을 해주었다. 이 시집에서도 내 관점에서는 무맛 시가 몇 편은 보인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정말 살아있고 톡톡 튀거나, 재미있고 기발하거나, 창의적이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시들이 가득 들어있다. 이건 순전히 주관적인 거지만 내 맘에 든 시를 몇 편만 소개하면,

전기 뱀장어라는 시에서 어린이는 자기 형을 전기뱀장어에 비유했다. 건드리면 찌릿찌릿 전기가 올라 아무도 건드리지 않지만, 그래서 외로운 형을 표현한 시이다. 몇 년 전 우리반 아이가 썼던 방의 문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좀처럼 열리지 않는 형의 방문을 표현한 시였는데, 정말 감탄한 기억이 난다. 이 시는 언어유희성은 다른 시들에 비에 좀 약하지만 내 마음에는 들었다.

그때가 좋았어라는 시는 초등학교 때는 유치원때가 좋았어”, 중학교 때는 초등학생 때가 좋았어.” 하고 한단계 전 과거를 좋았다고 회상하는 인생을 담았는데, 마지막 행이 인생은 다 좋은 날이다.”로 긍정적 결론이 난 게 인상적이다. 나라면 좋은 날은 영원히 오지 않는가?”로 할 것 같은데.ㅎㅎ

생각 화석이라는 시도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화석에 대해 배우거나 책을 읽고 쓴 게 아닐까 싶은데, 오랜 시간 딱딱한 암석 속에 잠겨 있는 화석의 특징과 내 생각의 공통점을 찾아 비유한 것이 훌륭하다. ‘언젠가는 암석을 깨서 내가 내 생각을 되찾을 거예요라고 했는데, 이 어린이의 사정은 모르지만 이런 시어가 관념이 아닌 진짜로 진정성에서 나왔다면 정말 휼륭한 시다.


겨우 세 편밖에 얘길 못했는데, 다 쓰자면 끝이 없을 것 같아 여기까지만... 이 시집은 공모에 의해서 모인 다양한 어린이들의 시집이며 공모 주제가 말놀이 동시라는 점에서 차별성이 분명하다. 어린이들이 쉽고 재미있게 읽을 만하다. 기성 시인들이 쓴 동시집도 물론 좋지만 어떤 시들은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 시들은 정말 딱 어린이들의 눈높이다. 어른이 맞추려고 노력한 눈높이와 저절로 맞춰진 눈높이는 아무래도 조금 다르다. 이 시집을 학급문고 시집코너에 추가하면 금방 인기를 끌게 될 것 같다. 올해는 반짝이는 시어들을 조금 더 캐어 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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