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스 - 단 한 사람만을 위한 규칙, 2007 뉴베리 아너 수상작
신시아 로드 지음, 천미나 옮김 / 초록개구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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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꽤 있고 그중엔 화자나 주인공이 장애아동의 형제자매인 경우가 있다. 이책도 그렇다. 화자는 캐서린이고 캐서린에겐 데이비드라는 남동생이 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우리나라 작품들에도 보면 장애형제는 주로 어른스럽게 자란다. 그래야할 수밖에 없으니 저절로 그렇게 되는건가 싶기도 하다. 동생 만으로도 벅찬 부모에게 자신의 요구를 있는대로 다 하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힘든 부모의 의지도 되어야 한다. 자신도 어린이일 뿐인데 말이다. 부모가 급하거나 불가능한 시간엔 장애아동의 돌봄을 형제가 맡아야 하기도 한다.

캐서린은 그 일을 꽤 잘하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인 <Rules>처럼 동생에게 필요한 규칙들을 눈높이에 맞게 만들어 가르치는 것도 캐서린이 쭉 해온 일이다. 너무 대견하다. 나보다 낫다.

하지만 이 책이 현실적인 점은 캐서린이 어른스럽기만 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건 건강하다는 뜻이라 생각하고 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캐서린이 완벽하게 어른스러웠다면 이 책에 나오는 지지고볶는 많은 일들이 훨씬 덜 일어났을 수 있다. 하지만 일어나는 편이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당사자(그 부모)가 아니라서 쉽게 말하는 건지도 모르지만.... 때로는 그 부모에게 이입되어 그 고단함에 슬퍼지기도 했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낫다는 외국인데도 힘들구나... 우리나라는 더할텐데 얼마나 힘들까.ㅠ

하지만 어느 인생이나 지지고볶는다는 점에선 마찬가지이듯이, 캐서린 가족의 일상도 희로애락과 함께 흘러간다. 돌발상황의 가능성이 언제나 있다는 점과 남들에게 죄송하다고 해야하는 순간이 많다는 점, 일반적 설득이 소용없어 대치하거나 기다려야 하는 일들이 많다는 점 등이 괴롭긴 하지만.

캐서린은 동생 데이비드 외에 장애인과의 교류가 또 생긴다. 동생 작업치료실에서 만난 제이슨. 그 아이는 휠체어를 타고 있으며 말을 하지 못해 낱말카드가 들어있는 책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아주 기본적이고 전형적인 낱말만 들어있는 그 책 속에 '낱말 불리기' 역할을 캐서린이 어쩌다 자임하게 되었다.

캐서린이 골라서 늘려주는 낱말카드. 그 과정이 내게는 정말 흥미로웠다. 그 또래 아이들의 감정을 분출하고 욕구를 표현할 말들은 그들의 생각과 소통에서 나왔다. 그 작업은 제이슨을 위한 것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캐서린 자신에게 필요한 과정이기도 했다. 제이슨에게 확장시켜준 그 말들은 사실 캐서린이 마음 깊은 곳에서 내뱉고 싶었던 말이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둘은 친구가 되었다. 이 서사는 다른 어떤 이야기에서도 볼 수 없었던 이 책의 특별함이다.

캐서린이 동생 데이비드에게 만들어준 규칙들(Rules)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느꼈다. 그중에는 '어항에 장난감을 넣지 않는다' 처럼 데이비드에게만 해당되는 것도 있지만 '늦는다고 안오는 건 아니다'나 '남의 말을 빌려야 한다면, 아놀드 로벨이 쓴 좋은 말이 많다' 같은 말들에는 이중 이상의 의미가 들어있다고 느꼈다. 즉 캐서린 자신에게도, 나아가 독자들에게도 적용되는 규칙인 것이다. 이런 점이 이 책의 독보적인 매력이었다.

이 책의 서사 속에 두 장애가정의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그러면서 생각한 점이 있다. 가정의 단단함과 따뜻함은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 캐서린네도 바쁘고 힘든 가운데서도 가족애만은 굳건했고, 제이슨네도 그래보였다. 그걸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 일단은 부모의 성품도 영향이 없진 않을거다. 하지만 사람의 성품이란 극단에 치받히면 얼마든지 변형될 수 있는 것이다. '가정'이 숨을 쉬고 유지될 수 있는 여유를 주어야 그 안에서 장애아동들도 안정감있게 성장할 것이다. 사회에서 장애 관련 지원을 논할 때 가정을 잘 지킨다는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다듬어지지 않은 생각이라 조심스럽게 한번 말해봤다.

작가님도 남매를 키우고 있으며 아들에게 데이비드처럼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다고 한다. '더는 바랄 게 없었다'는 마지막 문장의 해피엔딩을 쓸 수 있었던 건 작가님도 고난 중에 행복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거듭 말하지만 이 책은 지지고볶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다만 그게 불행이 아닌 사회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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