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모크라티아 5
마세 모토로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8.8


 <헤드>와 <이키가미>로 독보적인 작풍을 선보인 마세 모토로 작가의 신작 <데모크라티아>는 작가의 여느 작품처럼 절판됐던 지라 어렵게 찾아 읽었다. 아무래도 작풍이나 그림체가 어둡고 작가가 묻지마 범죄나 방구석 폐인 등 인간의 추악하고 찌질한 민낯을 자주 그려서 대중성과는 동떨어진 편이긴 한데 그래도 신작을 찾아 읽으려는데 절판된 소식을 접할 때마다 씁쓸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전작 <이키가미>보다 화제성은 떨어질는지 몰라도 개인적으론 그 작품보다 진일보한 측면이 있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일단 분량과 속도가 그렇다. 다소 반복적이었던 <이키가미>에 비해 이 작품은 전개도 시원시원하고 결말까지 금방 도달한다. 물론, 화제성이 없어서 연재 종료를 '당한 것'일 테지만 그런 것치고 기승전결이 뚜렷하고 수습하지 못한 설정도 없다. 조금 뜬금없는 반전이 있긴 했지만 주제의식의 측면에선 필요한 반전이었다고 본다. 인간의 집단지성이 어떤 한계를 갖고 있고, 붕괴 직전인 집단지성이 어떻게 무너지지 않을지 작가 나름대로 고민한 흔적이 보여 생각 이상으로 결말이 산뜻하기까지 했다. 개인적으로 난 답이 없는 캐릭터가 일련의 사건을 통해 개심하여 결정적인 한 방을 보여주는 전개가 참 좋더라. 만약 악인을 악인인 채로, 선인을 선인인 채로 끝까지 규정한 채 진행했더라면 지금처럼 여운이 남지도 않았을 것이다.


 불특정 다수가 민주주의 방식으로 휴머노이드를 작동시켜 최대한 선한 일을 도모한다는 설정도 참신하고 그 과정에서 빚어지는 마찰, 휴머노이드가 마주하는 사회의 문제들도 흥미롭지만 사건의 규모 하나하나가 스케일이 작고 일부 캐릭터가 너무 비호감인 작품이라 영상화가 이뤄진다거나 이 이상 회자되긴 힘들 것 같다. 작가가 <이키가미> 이상의 작품을 내놓지 않으면 작가의 모든 작품이 묻히게 생겼는데... 대중성과 거리가 먼 작품만 그리지만 반대로 그렇게 꾸준한 개성을 지닌 작품을 그리는 작가도 흔치 않아서 부디 머징낳아 작가의 신작을 또 접할 수 있길 바란다.


‘다수결‘로 선별된 인류의 집단지성이 ‘궁극의 인간‘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처음부터 허황된 이야기였을지 모른다...
본디 인간은 개개인의 존재 자체가 이미 기적이며 ‘궁극‘이니까. - 5권 3rd season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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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흩날리는 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4
기리노 나쓰오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7.5


 기리노 나쓰오의 데뷔작 <얼굴에 흩날리는 비>를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탐정으로서 퍽 유능하지 않아도 독특한 매력을 갖고 있는 무라노 미로가 첫 등장하는 작품이자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해 나름대로 이름을 떨친 작품이기도 하다. 그런데 작가의 풋풋함을 엿볼 수 있었으나 전매특허인 날카로운 칼날 같은 문장력이 아직 덜 벼려진 즈음이라 상대적으로 흡입력이 떨어졌다.

 작품의 반전도 마찬가지다. 사실 반전이라기엔 다소 뻔한 측면이 없잖았으나 어쨌든 그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미로가 열심히 머릴 굴리고 발품을 팔았으니 반전이라 부르고 싶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읽고도 감흥이 덜한 건 참 아쉬운 일이다. 일이 크게 벌어진 것에 비해 실상은 여러 우연이 겹친 결과였고 진상에 접근하기 위해 지나치게 돌아가는 면이 있어 집중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아무래도 미로의 친구 요코가 르포라이터로서 보인 행적이 어딘지 현실감이 떨어진 구석이 있던 탓인 것 같은데... 차라리 요코의 글을 원본으로 직접 읽을 수 있었거나, 아니면 가능한 한 많은 챕터를 할애해 요코의 시점에서 쓴 글이 병렬식으로 전개됐으면 내가 요코의 내면에 집중하고 공감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통일된 독일의 혼란스런 상황이나 BDSM조차 귀엽게 보일 만한 엽기적인 취향(이라 쓰지만 병세로 판단하는 것이 타당함)을 가진 사람들을 작가가 묘사하는 방식도 그렇게 와 닿지 않았다. 다분히 흥미 위주의 무책임한 묘사는 아니었으나 엽기적인 결말을 위해 채택된 엽기적인 설정이란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굳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고, 요코가 베를린에서 겪은 일은 흥미롭지만 분량이나 비중이 미묘해 궁금증이 생기다 말았다. 이 부분이라도 더 집중했더라면 작품 전체의 인상이 달라졌을 수도 있는데. 그럼 작품이 좀 더 무겁고 깊이 있게 다가올 수 있었을 것이다.

 죽은 남편과의 과거가 발목을 붙잡고 있는 미로가 감정적이고 미덥지 못한 인물인 것은 작품의 흥미를 깎아먹는 요소라고도, 혹은 시리즈의 고유한 매력이라고 볼 수 있는 요소라고 볼 수 있겠다. 결과적으로 그대로 묻힐 뻔한 사건을 재구성해 해결하기까지 했으니 그만하면 유능하지 않나 싶겠지만, 하라 료의 사와자키나 다른 하드보일드 작품의 탐정에 비하면 프로패셔널함과는 어딘지 거리가 멀어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봐야 했다.


 이런 미덥지 못한 탐정 무라노 미로가 등장하는 작품은 <천사에게 버림받은 밤>, <물의 잠, 재의 꿈>, <로즈 가든>, <다크>까지 얼마 되지 않는데 일단 다 찾아 읽어볼 생각이다. 그녀가 이후 어떤 탐정으로 성장할는지 궁금한데 작품마다 평가가 들쑥날쑥해 불안하다. 뭐, 결국 직접 봐야 알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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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야마구치 마사야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7.2


 이 소설은 어떤 사람에겐 독특한 설정을 잘 살린 이색 추리소설로 읽힐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에겐 죽음에 대한 철학이 진지하게 녹아든 무게감 있는 소설로도 읽힐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매력적인 도입부 제시와 분량 조절에 실패한 벽돌 소설로 다가올 것이고 완독에 성공하는 경우도 제법 드물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분량이 제법 되는 소설은 어지간히 흡입력이 있지 않은 이상 읽는 이의 컨디션에 작품 만족도가 크게 좌우되는 것 같다. 이 소설처럼 분량 못지않게 내용의 무게감이 강조된 작품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설령 완독하더라도 이 소설에 만족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하는 의문도 든다.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0주년 결산에서 이 작품이 1위했으며 수많은 추리소설 팬들의 극찬의 이유를 확인하자는 게 아니라면 <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은 완독을 하고 싶은 동기부여가 매력적으로 이뤄지는 작품이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소설이 결말에 도달할 지점인 300페이지 중반 즈음에서야 본격적으로 사건다운 사건이 터지고 이후의 전개는 그간의 느릿한 전개와 달리 재빠르게 흘러가지만 오히려 그러한 속도감의 변화 때문에 당혹감을 느낄 독자도 있을 듯하다.


 그전까지 작품 전체를 지배하고 지탱하다시피 했던 죽음에 대한 철학도 작품 이해나 '갑자기 살아나는 시체들'이란 설정을 해석할 중요한 장치로 기능하진 않아 작품 후반부의 활극이나 끝없이 엎어지고 난무하는 추리들이 갈수록 어찌 돼도 상관없는 내용으로 느껴지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문제다. 인물들의 사망 여부, 언제 사망했는지 여부가 굉장히 중요하단 점, 그리고 범인의 동기가 독특하고 설득력 있지만, 그것만으로 만족도나 고양감을 느낄 독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싶다.

 과거엔 시대를 앞서간 독특함으로 크게 주목을 받은 작품이고 나 역시 10년 전에 읽었을 땐 재밌게 읽었지만, 그 이후에 깊이나 분량면에서 이 작품보다 압도적인 작품을 적잖이 접한 지라 요번에 다시 읽으니 과거에 좋았던 인상마저 빛이 바랬다. 죽음에 대한 흥미로운 사유마저 지금은 아무래도 좋을 형이상학적인 토론으로만 읽혀서... 작품의 6할이 사유라 볼 수 있는데 일주일이 지난 다음엔 특별히 기억나는 내용이 없다.


 내가 컨디션이 별로여서 유독 이렇게 삐딱한 감상을 내놓는 것인지 모르지만, 한편으론 독자의 컨디션에 좌우되는 작품성이라는 것도 요즘 들어선 영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이 취향에 맞았거나 대단히 뛰어난 작품이라 평가한 사람들의 신경을 건드리는 말밖에 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럼에도 이제는 조금 고리타분한 작품이 돼버렸지 않나 싶다.

 작가가 본인이 쓰고 싶은 모든 걸 다 쏟아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경외심이 들지만 딱 그 정도다. 내가 이 소설에 대해 10년 전엔 '죽음이다' 라고 감탄한 어조의 포스팅을 올렸지만 지금에 와선 다른 의미로 '죽음이다' 라고 외쳐야 할 것 같다. 정신줄을 붙잡고, 마치 좀비처럼 퀭한 표정으로 완독해낸 나 자신이 뿌듯하다기보단 독하다고 느끼는 건 어째서일까? 좀비처럼 끝날 듯 끝나지 않은 지겨움 때문이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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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53회 나오키상 수상작
히가시야마 아키라 지음, 민경욱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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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독방이란 갇힌 젊은이를 괴롭히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 바람조차 허락 없이는 드나들 수 없는 곳이었다.'

 8월 중순에 예정된 대만 여행을 기다리면서 대만과 관련된 책을 찾아 읽다가 이 작품도 접하게 됐다. 위 문장은 주인공이 영창을 묘사한 문장 중 하나인데, 아주 효율적이면서 간결하게 상황의 참담함을 전달해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런 식의 폭발적이며 생생한 문장이 <류>에선 처음부터 질주하듯 구사된다. 그런 문장이 전개되는 모든 상황과 주인공의 심정을 어루만져 정말 오래간만에 소설 읽는 맛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었다.


 대만계 일본인 작가 히가시야마 아키라의 나오키상 수상작인 <류>는 작가의 유년 시절의 대만의 모습을 제대로 그려낸 작품이다. 대만은 우리나라 사람에게 가깝고 익숙한 나라지만 실상 그 나라의 역사까지 아는 사람은 무척 적은 편이다. 나 역시 그랬고 그렇기에 대만은 어떤 나라고 중국과 어떤 관계인지 알고자 여러 책을 읽고 있는데, 역시 역사 서적이나 인문 서적도 좋지만 소설만큼 전달력이 강한 매체도 또 없는 것 같다.

 대륙에서 공산당에 맞서 싸웠던 주인공의 할아버지는 자신의 지난날을 이렇게 회상한다. 이념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고 밥을 주거나 의형제들이 있는 곳에서 손에 피를 묻혀 가며 싸웠을 뿐이다. 그는 스스로 어떤 최후를 맞이할지 어렴풋이 예상했었을까? 결말까지 읽은 독자들은 이 질문에 비슷한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설은 원래부터 대만에 살았던 '본성인'과 공산당에 패해 대만이란 낯선 섬으로 쫓겨나 살아가는'외성인'이 - 주인공의 가족들이 외성인에 해당 - 아직 제대로 섞이지 못했던 과도기를 배경으로 두고 있다. 마오쩌둥이나 박정일 같은 위상을 가진 장제스가 죽은 다음날 할아버지가 죽고, 하필 할아버지의 시체를 주인공이 발견해버리면서 일종의 트라우마, 그리고 미스터리를 안고 일생 동안 방황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주인공이 입시에 실패하거나 폭주족과 패싸움을 벌이고 입대해서 개같이 고생하는 등의 모든 이야기가 촘촘하고 치밀하게 얽혀있지 않지만 문장의 위력과 70년대의 대만이란 시공간이 주는 절대적으로 독특한 분위기가 한몫해 대체로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그리고 후반부에선 드디어 주인공이 할아버지를 죽였다고 추측되는 범인을 찾아 본격적으로 떠나는 여정이 시작되는데, 이 부분의 연출은 정말 압도적이었다. 더 이상 이 소설의 장르를 규정하거나 몇몇 이야기가 가독성이 떨어졌거나 하는 건 부수적인 문제에 불과하고 진범과의 클라이막스에 다다른 순간 나도 모르게 숨소리를 죽이게 됐다. 한 문장도 놓치고 싶지 않고 이 여운을 오래도록 만끽하고 싶던 결말이 도대체 얼마만인지...


 다음달에 대만에 가지 않았더라면 이 작품은 한참 나중에 읽게 됐을 텐데, 지금 이 순간에 내게 필요한 이야길 읽은 기분이라 절묘하기까지 했다. 어떤 글을 써야 하고 내 글에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늘 고민하지만 지금 이 작품처럼 날 뒤흔든 작품은 흔치 않은 것 같다. 나는 치밀한 전개를 우선했고 문장은 소홀히 하는 감이 있었는데 그런 내 가치관에 완벽히 대척점에 있는 작품을 읽었더니 사고가 확장되는 느낌을 받았다.

 훗날 내가 어떤 글을 쓰고 그 글이 어떤 결실을 맺을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이 작품 <류>를 읽은 순간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듯하다. 아마 올해 읽은 최고의 책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운이 좋다면 더 멋진 작품을 접할 수도 있겠지만 당분간은 <류>의 여운에 젖어있고 싶다.


단순한 불량과 시적인 불량에 차이가 있다면, 단순한 불량은 눈앞에 있는 적만 보지만, 시적인 불량은 자기 내면에도 적이 있다는 점이다. - 71p


우리는 서로에게 눈길을 피하지 않고 공격과 타협 그리고 도망칠 길을 암시하는 모든 조짐을 필사적으로 찾았다. 놀랍게도 싸움을 걸어온 레이웨이조차 도망칠 길을 찾고 있는 듯했다. 사람을 죽일 때만 성욕이 치솟는 짐승이 아니라면 누구나 이런 상황은 바라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어쩔 수 없이 자기는 아닌 척한다. 세상은 그렇게 우리를 길들였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 76p


우리 마음은 늘 과거 어딘가에 붙잡혀 있지. 억지로 그걸 떼어내려 해봤자 좋을 게 없단다. - 27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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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잔 진구 시리즈 5
도진기 지음 / 시공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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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전작 <모래바람>이 너무나 별로여서 다음 작품인 <세 개의 잔>도 크게 기대되지 않았다. 작가에 대한 애정만 아니었다면 이 작품을 펼칠 일은 없었으리라. 아니나 다를까 시작부터 오글거리는 의뢰(?)를 수락하는 진구의 모습이 그려져 요번에도 뇌절인가 하고 심드렁한 표정으로 페이지를 넘겼다.

 하지만 진구가 정말 밑도 끝도 없이 누명을 쓰고 일사천리로 유죄인 상황으로 몰리게 되자 나는 삽시간에 작품 속에 빠져들게 됐다. 주인공이 누명을 쓰는 이야기는 참담하게 읽히지만 이후에 어떻게 누명을 벗을 것인지, 또 어떻게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상대에게 복수할지 그 귀추가 주목돼 순식간에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이야기의 동력은 초반부에 강력하게 설정해놓는 데엔 성공했으니, 이제 중요한 건 디테일일 것이다. 전직 판사인 작가에게 법의 틈새, 구치소의 특수한 환경 같은 디테일을 작품 속에 녹이기란 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내는 만큼 수월한 일이다. 실제로 판결을 내렸던 사건에서 영감이라도 얻었는지 - 하지만 예전에 읽은 작가 인터뷰에 따르면 절대로 그런 일은 하지 않는다고, 자신의 글은 100% 창작이라고 한다! - 진구에게 누명을 씌운 범죄 조직 목적이나 그들의 계획성은 아주 참신하진 않아도 치밀하기 그지없어 읽어내려갈수록 결말이 어떻게 지어질까 궁금해 흥분이 가시질 않았다.


 그런데 잊을 만하면 조직의 규모를 언급하며 진구를 협박하던 조직은 후반부에서 진구의 반격에 순식간에, 그리고 허무하게 무너진다. 엄청난 장기전을 예상한 것과 달리 승패의 여부는 조직이 먼저 선을 넘으면서 진구를 건드린 시점부터 이미 진구 쪽으로 기운 것이나 다름없어서 다소 싱거운 감이 없잖았다. 조직의 브레인인 연부의 예측불허한 면모가 오히려 결말의 긴장감을 약간 떨어뜨린 편인데, 그래도 전작에 비해선 특유의 마성을 제대로 선보여 도진기 작가의 천재 캐릭터들 진구, 고진, 이탁오에 버금가는 존재감을 과시한 건 인상적이었다.

 이 작품에선 진구와 연부말고 이탁오, 그리고 짧게나마 고진도 등장하는데 훗날 출간할 작품엔 이 넷이 모두 주연급 인물로 등장해 본격적으로 맞붙게 될까? 이 네 명은 이들 중 두세 명만 있어도 뒷세계에서 암약하는 조직을 묵사발을 내버릴 수 있는 두뇌를 소유하고 있는 자들인 지라 후속작이 몹시 궁금하다. <세 개의 잔>에서 정작 트릭보다 서사가 더욱 흥미로웠던 만큼 그 네 명의 캐미와 서로 속고 속이는 서사도 역시 기대된다. 마블 이후로 팀업 작품이 기다려지긴 정말 오랜만이다. 작가가 눈건강이 나빠졌다며 후기에 다음 작품 출간이 많이 늦어질 수 있다며 미리 양해를 구하던데, 얼마나 걸리든 상관없으니 제발 출간해주길 바란다. 좋은 후속작을 위해 기다림이 뭐 대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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