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권일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7.1 


 막 출간했을 때 엄청 재밌게 읽었다는 것을 제외하곤 크게 기억이 남는 게 없던 작품이다. 추리소설은 보통 두 번 읽으면 재미가 반감된다는데, 그 말에 의하면 차라리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 어느 정도 유리한 점으로 작용됐으려나? 만약 내용이 생생하게 기억이 났더라면 이 전형적인 본격 미스터리 소설은 더욱 지루하게 읽혔을 공산이 크다.

 물론 87년도 작품이니 전형적이라 느껴진다고 해도 어느 정도 감안해야 할 부분일는지 모른다. 물론 다른 독자분은 액자식 구성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것, 에필로그에서 뜻밖의 트릭을 구사한 것 등 여타 본격 미스터리와 차별점을 둔 부분이 있는데 왜 전형적이라 여기느냐고 의아하게 여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뜻밖의 트릭마저 지금 시점에서 보면 그렇게 새롭지 않고 - 다만 왜 시시야 가도미란 인물이 굳이 자신이 겪은 일을 소설로 썼는가, 라는 의문을 말끔히 해결해준다는 점에서 좋은 트릭이자 반전이었다. - 극중극이라고 할 수 있을 미로관에서의 사건은 그야말로 본격의 극치라... 추리소설에 대한 애정이 10년 전보다 옅어진 지금의 내겐 다소 시들하게 읽혔다.


 도입부엔 놀랐지만 중반부부턴 기억이 나냐, 아니냐 여부는 중요하지 않게 됐달까... 개인적으로 감탄했던 부분은 미로관의 구조나 장치보다 분위기에 있었다. 대작가의 유산을 둘러싸고 후배 추리소설가들이 작품을 써 가장 놀라운 작품을 선보인 쪽이 유산을 물려받는다는 설정도 흥미진진했고 참가자들이 자신이 쓰고 있는 중인 추리소설의 내용대로 죽어가는 것은 가히 압권이었다. 이 설정에 굳이 아쉬운 점을 얘기하자면 여러 작가가 쓴 글들이 묘하게 천편일률적인 문체들이라 아야츠지 유키토의 필력이 그렇게 다채롭지 못하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던 것인데, 이것도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되면 납득이 가는 흠인 지라 대수롭지 않은 부분이었다.

 그런데 추리소설을 읽거나 쓰는 입장에선 은근히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요소들이 대동소이한 것 같다. 트릭과 반전, 탐정과 범인 사이 혹은 작가와 독자 사이의 두뇌 싸움을 위해 그 외의 다른 요소가 홀대당하는 것이다. 문체도 그렇지만 내가 여기서 언급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인명과 캐릭터성이다. 간혹 추리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개성이 부족하거나 아예 힌트를 주기 위한 도구로 전락하거나 허무하게 퇴장하는 일이 허다하지 않은가. <미로관의 살인>의 경우 진범의 정체가 뜬금없었는데 이래저래 사람의 마음을 묘사함에 있어 설명과 추리로만 공을 들이니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싶었다. 그렇다 보니 읽는 내내 공감이 가지 않고 그저 피곤해진다는 게 본격 미스터리의 단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중 대작가가 말한 것처럼 추리소설은 수수께끼 풀이를 위한 기형적인 형태의 소설이라 이런 단점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걸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바로 직전에 읽은 우타노 쇼고의 <밀실살인게임>은 본격의 전형을 넘어 거의 극한을 찍은 작품이고 등장인물들도 서로 앞다퉈 정신병자임을 과시하는 듯한 행보를 보인다. 하지만 오히려 작가의 뛰어난 식견이 가미돼 사회의 병폐라든가 반면교사 내지는 '인간은 놀이를 위해 이렇게나 윤리가 마모될 수 있는 존재인가' 하고 자문하게 만드는 묵직한 맛이 있는 작품이었다. 그래서 출간된 지 10년이 넘었음에도 젊은 소설로 느껴진 반면 <미로관의 살인>은 몇몇 기발한 변주가 있긴 해도 늙은 소설로만 여겨졌다.

 이 작품이 <밀실살인게임>보다 30년 전에 출간됐으니 당연한 감상이라고? 에이, 여기서 말하는 젊음과 늙음이 단순히 출간 연도를 의미하는 게 아님을 알잖은가. 이건 출간 시기와는 전혀 다른 문제일 수 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더 자세히 얘기하고 싶지만 지금은 이렇게 한 마디로 마무리하고 싶다. 소설의 생명력은 얼마나 정곡을 찌르는가 여부로 결정이 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미로관의 살인>은 그다지 정곡을 찌르지 못하는 아쉬운 소설이란 말밖엔 할 말이 없다. 10년 전에 이 작품을 극찬했던 나 자신한테 눈치가 보일 만큼 박한 평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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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살인게임 - 왕수비차잡기 밀실살인게임 1
우타노 쇼고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9.8


스포일러 있음


 정말 오랜만에 읽은 <밀실살인게임>이지만 처음 읽을 때처럼 재밌게 읽었다. 사실 설정 못지않게 5명의 캐릭터가 선보인 트릭이 모두 인상적이라 10년이 지나 다시 읽음에도 어제 읽은 것처럼 선명히 기억났지만 그럼에도 지루하지 않았다. 설정의 신선함과 충격엔 내성이 생겼지만 대신 캐릭터들이 개성적이고 캐미도 상당해 꼭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를 보는 기분도 들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작중 시점이 2010년도 되지 않았음에도 전혀 옛스럽게 읽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화상 채팅 같은 기술적인 차원이 아닌 마치 오늘날에도 이와 같이 익명성에 기댄 반윤리적인 놀이, 아니 행위를 서슴지 않고 저지르는 인간들이 있음을 예견하는 것 같아 작가를 다시 보게 됐다. 데뷔작은 전형적인 본격 미스터리였지만 이후 굵직한 사회파 추리소설도 몇 편 집필해온 작가답게 본격의 끝판왕인 요번 소설에서도 작가의 날카로운 시선, 미쳐 돌아가는 사회를 꼬집고 파헤치는 사고의 편린도 느껴져 마냥 엔터테인먼트 소설이라고만 여겨지지 않았다.


 작가가 작중 인물들에 빙의해 인명을 장난감처럼 여기는 언동을 실감나게 구사하다가도, 몇 걸음 물러나 얘네 꼬라지를 관조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드는 등 전반적으로 선을 넘지 않고자 작가가 노력하는 느낌이 들었다.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설정이기에 오히려 꼭 필요한 자세였을 텐데, 만약 그렇지 않고 정말 흥미위주로 살인게임과 트릭을 다뤘더라면 진즉에 19금 조치를 당하거나 정말 최악의 경우엔 이 작품을 읽고 잘못된 사고방식을 가져 모방범이 탄생하는 결과마저 유발됐을지 모른다.

 물론 잔인한 추리소설이라고 해서 그걸 접한 독자들이 다 모방범이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살인게임의 다섯 멤버가 모두 추리소설을 탐닉하다 못해 직접 탐정과 범인이 되는 게임을 주최한 자들이므로 작가의 입장에서 보자면 자신이 탄생시킨 캐릭터들로 인해 작품이 일말의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경시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때문에 뭐든 쉽게 싫증내고 돌발행위의 가능성이 가장 다분한 두광인을 이야기의 주역으로 설정해 막판에 그 난리를 치도록 결말을 지었던 것일 터다. 선을 넘은 스릴에 중독된 자, 타인뿐 아니라 결국 자기자신도 좀먹는다. 어떻게 보면 허무하면서도 어울리는 결말이었다고 본다.


 그런데 말이 나와서 말인데 두광인이 러시아룰렛을 한 데엔 단순히 스릴만을 위해서였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aXe가 비슷한 의문을 갖고 두광인을 말리려 하자 그녀는 딱 잘라 코웃음을 치지만, 초조하게 수다를 떨던 그 태도는 어떻게 봐도 정상적이지 않아 내심 자신의 오빠인 044APD를 죽인 것이 원인이었나 하는 추측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두광인은 친오빠를 죽여서가 아니라 그 친오빠가 정말 우연찮게도 자신과 같이 게임을 하는 동지인 044APD인 것에 큰 충격을 받은 것일 수 있다. 언젠가 크게 한 방 먹여주고 싶던 경쟁자이자 게임을 같이 할 정도로 비슷한 수준으로 정신나간 동지를 자기 손으로 죽인 것에 대해 두광인 나름대로의 뒤틀린 상실감을 느꼈고 러시아룰렛에도 그 상실감이 알게 모르게 작용했던 게 아닐까. 사실 이 부분은 독자가 해석할 여지로 작가가 남겨둔 부분이라 뭘 얘기해도 정답이라고 할 수 있을 테지만, 이런 두광인의 미친 짓이 불러일으킬 <밀실살인게임 2.0>, <밀실살인게임 마니악스>에서의 후폭풍을 생각한다면 나는 작가가 이와 같이 결말을 낸 데엔 도덕성이 함몰된 인터넷 세계의 범죄자들은 결국 자멸에 이르게 된다고 조소하기 위함이 크지 않았나 싶다.


 마지막으로 작중에 나온 트릭에 대한 감상을 풀고 이 글을 끝마치려 한다. 그래도 명색이 게임을 하는 개념으로 집필된 작품인데 너무 진지한 얘기만 한 것 같아서...


 aXe의 십이지 미싱 링크는 작중에서 첫 번째로 소개된 트릭인데, 도쿄 지리를 모르면, 또 나라마다 다른 십이지 동물을 알지 못하면 공정한 추리가 성립하지 않아서 약간 시큰둥한 자세로 읽을 수밖에 없었다. 기발한 건 인정하는데, 게임 참가자들도 입을 삐죽거릴 만큼 질질 끌어서 그 점은 아쉽다. 하지만 이 문제를 위해 피해자를 대략 서른 명 정도 선정했다는 출제자와 그런 말에 감탄 일색인 게임 참가자들의 모습을 통해 작품이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정신나간 행보를 보이리란 불안과 기대를 선사한다는 점에서 미싱링크는 나쁘지 않은 출발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잔갸군의 트릭은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 여담이지만 2.0에서도 엄청난 트릭을 선보인다... - 044APD 다음으로 뛰어난 추리력을 갖고 있는 인물인 만큼 문제에도 기발한 발상, 그리고 잔학하단 뜻의 닉네임답게 잔학성이 담긴 알리바이 트릭이 개성적이라 순수한 의미에서 감탄했다. 이런 미친 놈을 봤나.


 반도젠 교수는 5명 중 최약체로 추리력도 문제를 만드는 발상도 가장 떨어진다. 뭐, 문제를 만드는 발상은 아무래도 학교에 다니는 미성년자니 제약이 많다고 치더라도 추리력은... 아무튼 여행 미스터리, 알리바이 트릭이란 컨셉을 집중적으로 선보이는 출제자인데, 내가 최근에 여행간 호찌민을 등장시킨 문제를 출제한 것, 그리고 은근히 허당이란 것과 말투까지 이래저래 트릭의 완성도와 별개로 개인적으론 호감이 가는 캐릭터였다. 그럼에도, 살인게임에 능동적으로 참가하고 문제도 출제하는 등 묘한 서늘함을 주기도 해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겉으론 호감이 가는 인물이라 하더라도 실상은 인면수심의 살인마일 수도 있다...

 044APD는 가장 사교성 떨어지고 쉽게 말해 개념이 없으며 그 점은 트릭에도 여지없이 반영된다. 간단하지만 실현 불가한 트릭이라 잔갸군 못지않게 큰 인상을 남겼는데, 개인적으론 트릭보다 이 인간이 천장에 숨어서 엿들은 가족의 대화를 소설처럼 써내 힌트로 제공한 게 더 소름 끼쳤다. 게임의 다른 참가자들이 살인마라면 이놈은 진짜 악마라는 느낌이 들었달까. 그리고 여담이지만 044APD가 쥐를 죽여서 가족을 놀라게 했다는 대목에서 몇몇 참가자들이 거부감을 보인 것엔 정말 헛웃음이 나왔다. 게임을 위해 사람은 죽이면서 쥐를 죽이는 건 거부감이 있다? 실소가 다 나왔다.


 하지만 자기 가족을 죽이는 두광인에 비하면 다른 놈들은 약과다. 원한이 있어서도 아니고 가장 죽이기 쉬운 가족이 오빠여서 죽인 것도 그렇고, 자기 사생활을 걸고서 쓸 만한 트릭이란 생각에 망설임 없이 저지른 것도 머릴 지끈거리게 만드는 부분이다. 하지만 익명성에 기대 살인을 저지른 살인마에게도 내심 자기 정체를 밝혀 자랑하고 싶은 욕구가 있음을 통찰한 작가에 의해 두광인은 이 게임 자체를 파멸시켜버리는 미친 행보를 보이게 되는데...

 머지않아 2편을 읽을 거라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는 거기서 마저 풀도록 하겠다. 그런데 내 기억에 2편과 3편은 이야기나 트릭이나 1편에 못 미쳤던 것 같은데... 그래도 읽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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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자리 친구
오츠이치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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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9.5 






 이 작품은 오츠이치의 작품집 <메리 수를 죽이고>에 수록된 동명의 중단편을 원작으로 둔 만화이자 내가 오랜만에 접한 작가의 작품이다. 작화를 맡은 미요카와 마사루의 아주 유려한 그림체가 깔끔하게 떨어지는 서사와 굉장히 잘 어울렸다. 사실상 미래를 예언하는 신문을 제외하면 현실적인 전개가 일품이었던 이 작품에 참 잘 어울리는 그림체가 아니었나 싶다. 이지메를 소재로 다룬 이야기가 불쾌한 독자라도 그림체에 딴지를 걸 순 없을 듯하다. 

 물론 소설을 원작으로 둔 작품답게 그림체 못지않게 문체도 훌륭하다. 그렇기에 원작 소설도 읽어보려고 한다. 유려한 그림체를 뚫고 어필되는 날카롭고 진정성 있는 주인공의 독백과 죄의식이 원작에서 어떻게 표현됐을지, 내지는 만화가 얼마나 잘 살렸는지 비교하고 싶어졌다. 이지메를 당하는 급우를 방관하던 주인공이 느닷없이 그 친구를 도와주게 되는 전개를 비롯해 어색하면서 의심스러우면서 긴장감 넘치는 두 소년의 로드무비가 깔끔하고 개연성 있게 전개됐기에 만화나 소설로나 여러 번 접해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이야기에 내제된 환상성은 메타포로 기능하고 있을 뿐이지만 엄연히 추리 서스펜스의 장르를 띄고 있는 작품인 만큼 논리적인 추리와 반전도 제법인 편이다. 단편이란 한계 때문에 반전이 다소 뻔하고 작위적인 편이지만 그 결론에 도달하는 주인공의 추리가 합리적이고 그 추리가 인도한 결말은 살짝 예상 밖이어서 '방심은 금물'이란 말은 이 작품을 두고 하는 건가 싶었다. 그리고 오츠이치는 단편에 일가견이 있다는 세간의 평에 걸맞게 매력적인 소재와 주인공들과 미련없이 결말을 내준 덕분에 다 읽고 나서 오히려 여운에 젖었던 것도 좋았다. 간혹 후속작을 암시한다든가 세계관 확장을 노리거나 아니면 에필로그를 지지부진하게 추가하는 식으로 기어코 조개처럼 꾹 닫힌 결말을 선보이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이렇게 뒷일을 상상하게끔 유도하는 열린 결말을 선보이는 작가도 있다. 당연히 나는 후자에 더 마음이 가는데 후자의 작품이 적은 경우는 작가로서 자신의 작품에 미련을 버리기 쉽지 않아서 라고 생각됐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미련없이 결말낼 수 있는 비결이라고 한다면 나는 이 작가가 다음에 쓰고 싶은 이야기가 산더미라서 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하고 짐작했다. 실제로 이 작가는 단편을 정말 많이 썼고 내가 작가의 작품을 읽지 않았을 때도 많은 작품집이 국내에 출간됐다고 한다. 한때 히트친 작가가 아니라 지금도 왕성히 활동 중인 작가라는 사실도 무척 반가웠다. 일단 이 작품의 원작이 수록된 작품집 <메리 수를 죽이고>부터 찾아 읽어야겠다. 오랜만에 읽은 작가의 이야기라 그런지 더욱 매료됐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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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 미사일
야마시타 타카미츠 지음, 김수현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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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8.2 





 10년 전에 내가 이 소설에 대해 10점 만점을 주며 극찬 일색의 포스팅을 썼던데, 내가 과거에 그랬다는 것이 지금 내 입장에선 믿기지 않는다. 지금은 아무리 재밌어도 10점은 거의 주지 않는데 그 당시에 나는... 뭐랄까, 좋게 말하면 관대하고 나쁘게 얘기하면 헤펐다. 

 물론 다시 읽어도 실망스럽다거나 수준 떨어지는 작품은 아니다. 오히려 당장 세계 대전이 터질 만한 상황임에도 어쩐지 이역만리에서 펼쳐지는 이슈인 터라 주인공 일행은 고등학생이나 그 주변 사람들이 남의 일처럼 여기며 일상을 살아간다는 묘사는 지금 시점에선 대단히 의미심장하게 다가와 재밌게 읽었다. 인간은 엄청 큰 규모의 사건보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사건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법이다. 그 골때리면서도 당연한 상황을 작가는 유쾌한 문체와 캐릭터로 하여금 매력적으로 전개시킨다. 


 적당히 오글거리고 적당히 통쾌하고 개성적인 캐릭터와 대사들의 향연, 묘하게 쉴 틈 없는 사건들의 연속 등 작품은 500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 내내 호흡을 끊지 않으면서 밀도 높게 이야길 진행시킨다. 세계 정세가 불안정해지면서, 당장 미사일이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서 맥이 탁 풀려버리는 결말과 그와중에도 아랑곳 않고 자기들 내키는 대로 옥상의 평화를 지켜낸 주인공 일행은 어쩐지 장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내일 세상이 멸망해도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더니, 이 소설이야말로 그 말을 길게 풀어낸 아주 구체적인 예시로 들 만하지 않은가 싶다. 

 옥상의 평화를 지키는 옥상부라는 것도 그 나이대 학생들이나 입에 담을 만한 참 오글거리는 설정이지만 작중에서 우연한 기회로 모인 옥상부원들은 사뭇 진지하게 옥상의 평화를 지킨다. 뭐, 말이 옥상의 평화지, 실상은 개인적인 문제로 시무룩한 옥상부원의 문제를 다 같이 다방면에서 접근해 하나씩 계속 해결해나간다는 게 이 작품의 주된 내용이다. 10년 전에 나는 이들의 여정을 하나부터 열까지 꽤나 몰입하며 읽었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 10점 만점을 줬을 리는 없겠지. 


 현지에선 포스트 이사카 코타로로도 불린다는 작가의 대표작인 만큼 실제로 작중에선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 속 등장인물들처럼 귀엽고 엉뚱한 언동을 보이는 캐릭터가 꽤 많이 등장한다. 킬러나 백수들이 좋은 예시겠는데, 이러한 코믹한 요소가 덜했다면 오히려 세계의 위험 속에서도 일상을 영위하는, 혹은 영위하려고 노력하는 주인공 일행의 모습이 되려 우습게 보여서 작품의 매력이 퇴색됐을 것 같다. 그랬다면 정말 이도 저도 아닌 작품이 됐을 것이다. 

 결말도 나쁘지 않았고 나사가 조금 풀린 것 같은 주제의식도 괜찮았지만 아직까지도 내가 왜 10년 전에 10점 만점을 줬는지 잘 모르겠다. 그 당시엔 막 스무 살이 됐을 무렵이라 정해진 틀 없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옥상부의 모습에 선망을 느꼈던 걸까? 그러한 선망이라면 지금도 갖고 있는데... 그냥 10년 사이에 다양한 소설을 읽어서 눈이 높아진 것이라 생각하련다. 그게 아니라면 납득이 가지 않으니까. 

신이 아니라도 용서는 할 수 있어. - 11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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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화해하기 - 관계가 내 마음 같지 않을 때, 그림이 건네는 말
김지연 지음 / 미술문화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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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명화를 소재로 한 에세이나 서적을 보면 알게 모르게 저자들의 주제의식이나 말하는 바가 대동소이한 경우가 많다. 레퍼토리도 비슷하고 명화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거의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전달하는 경우도 많고 심지어 다루는 명화들의 구성도 흡사하기까지 하다. 이는 독자 입장에서 알아서 걸러 읽었더라면 마주치지 않았을 아쉬움이긴 한데,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대개 책이라는 물건은 저자의 문장력이 아주 형편없지 않은 이상 적어도 50페이지까지는 신선하게 읽히기 마련이다. 그렇게 독자들을 낚은 책들은 뒷심과 신선함이 부족한 중후반부에 도달하게 만들어 괜찮았던 첫인상을 뒤집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그림으로 화해하기>는 비록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으나 명화를 통해 저자가 개인적인 아픔을 위로받았거나 막막한 세상살이를 이겨낼 수 있을 만한 일종의 실마리를 얻었음을 약간 장황하긴 해도 진정성 있게 풀어낸다. 각 장마다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의식도 다양하고 무엇보다 다루고 있는 명화가 정말 유명한 작품이 아닌 것들도 많이 선정했고 심지어 이름을 처음 접해본 화가가 많아 그것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충분했다. 거기다 내가 제일 마음에 들고 저자를 신뢰할 수 있던 부분은 바로 저자가 현대 예술에 대해 갖는 시선이었다. 자기가 봐도 이게 왜 유명한지 바로 와 닿지 않는다거나 어쩌면 내가 범인이라 이해를 못하는 것이지 훗날 엄청난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는 등의 문장은 겸손하면서 솔직해 호감이 갔다. 그리고 다행이게도 그 호감은 끝까지 유지됐다. 


 로트레크나 젠틸레스키, 쿠르베, 피카소, 세잔, 밀레처럼 익히 알려진 화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은 그리 새롭게 읽히지 않은 반면 제일 첫 장에서부터 소개된 에밀리 메리 오즈번처럼 생소한 화가에 대한 소개나 아니면 고흐와 벨라스케스처럼 유명 화가가 그린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작품에 대한 저자의 감상은 인상적이었다. 케테 콜비츠와 무리요가 그토록 따뜻한 화풍의 화가임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것도 값진 경험이었고 무엇보다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 세계에 대한 저자의 감상이 평소 내가 느꼈던 것과 비슷해 반갑기도 했다. 오늘날 봐도 굉장히 현대적인 감성이 충만한 호퍼의 그림에서 쓸쓸함보다 편안함이 느껴진다는 말은 정말 공감했다. 때론 독립되고 적막할 수도 있는 분위기여야 느껴지는 안도감도 있는 법이다.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란 점에서 이 책을 읽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글인 것 같다가도 꽤 전문적인 미술 지식이나 역사가 튀어나와 지식을 습득하는 맛이 있었고 평소 잘 모르는 화가도 많이 소개받아 전반적으로 만족도 높은 책이었다. 책에 수록된 모든 글의 퀄리티가 고르지 않고 약간 기복이 있는 편이었지만 적어도 '그림을 통해 세상과 화해했다'는 추상적인 개념만큼은 제대로 전달해 약간 과할지언정 불필요하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저자가 출간한 책이 딱 이 책 한 권밖에 없던데 나중에 새로운 책이 출간된다면 찾아 읽을 의향이 있다. 새로운 책의 출간이 머지않았길 바란다. 

고통으로 가득한 삶의 시간을 버텨 내는 것에 어떠한 가치가 있을까? 나는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무의미한 바람을 떨치기 어렵다. 그때의 일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씩씩하게 그 시간을 극복해 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극복이라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그것을 향해 계속해서 나아가는 과정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 58~5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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