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권일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7.1 


 막 출간했을 때 엄청 재밌게 읽었다는 것을 제외하곤 크게 기억이 남는 게 없던 작품이다. 추리소설은 보통 두 번 읽으면 재미가 반감된다는데, 그 말에 의하면 차라리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 어느 정도 유리한 점으로 작용됐으려나? 만약 내용이 생생하게 기억이 났더라면 이 전형적인 본격 미스터리 소설은 더욱 지루하게 읽혔을 공산이 크다.

 물론 87년도 작품이니 전형적이라 느껴진다고 해도 어느 정도 감안해야 할 부분일는지 모른다. 물론 다른 독자분은 액자식 구성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것, 에필로그에서 뜻밖의 트릭을 구사한 것 등 여타 본격 미스터리와 차별점을 둔 부분이 있는데 왜 전형적이라 여기느냐고 의아하게 여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뜻밖의 트릭마저 지금 시점에서 보면 그렇게 새롭지 않고 - 다만 왜 시시야 가도미란 인물이 굳이 자신이 겪은 일을 소설로 썼는가, 라는 의문을 말끔히 해결해준다는 점에서 좋은 트릭이자 반전이었다. - 극중극이라고 할 수 있을 미로관에서의 사건은 그야말로 본격의 극치라... 추리소설에 대한 애정이 10년 전보다 옅어진 지금의 내겐 다소 시들하게 읽혔다.


 도입부엔 놀랐지만 중반부부턴 기억이 나냐, 아니냐 여부는 중요하지 않게 됐달까... 개인적으로 감탄했던 부분은 미로관의 구조나 장치보다 분위기에 있었다. 대작가의 유산을 둘러싸고 후배 추리소설가들이 작품을 써 가장 놀라운 작품을 선보인 쪽이 유산을 물려받는다는 설정도 흥미진진했고 참가자들이 자신이 쓰고 있는 중인 추리소설의 내용대로 죽어가는 것은 가히 압권이었다. 이 설정에 굳이 아쉬운 점을 얘기하자면 여러 작가가 쓴 글들이 묘하게 천편일률적인 문체들이라 아야츠지 유키토의 필력이 그렇게 다채롭지 못하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던 것인데, 이것도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되면 납득이 가는 흠인 지라 대수롭지 않은 부분이었다.

 그런데 추리소설을 읽거나 쓰는 입장에선 은근히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요소들이 대동소이한 것 같다. 트릭과 반전, 탐정과 범인 사이 혹은 작가와 독자 사이의 두뇌 싸움을 위해 그 외의 다른 요소가 홀대당하는 것이다. 문체도 그렇지만 내가 여기서 언급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인명과 캐릭터성이다. 간혹 추리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개성이 부족하거나 아예 힌트를 주기 위한 도구로 전락하거나 허무하게 퇴장하는 일이 허다하지 않은가. <미로관의 살인>의 경우 진범의 정체가 뜬금없었는데 이래저래 사람의 마음을 묘사함에 있어 설명과 추리로만 공을 들이니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싶었다. 그렇다 보니 읽는 내내 공감이 가지 않고 그저 피곤해진다는 게 본격 미스터리의 단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중 대작가가 말한 것처럼 추리소설은 수수께끼 풀이를 위한 기형적인 형태의 소설이라 이런 단점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걸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바로 직전에 읽은 우타노 쇼고의 <밀실살인게임>은 본격의 전형을 넘어 거의 극한을 찍은 작품이고 등장인물들도 서로 앞다퉈 정신병자임을 과시하는 듯한 행보를 보인다. 하지만 오히려 작가의 뛰어난 식견이 가미돼 사회의 병폐라든가 반면교사 내지는 '인간은 놀이를 위해 이렇게나 윤리가 마모될 수 있는 존재인가' 하고 자문하게 만드는 묵직한 맛이 있는 작품이었다. 그래서 출간된 지 10년이 넘었음에도 젊은 소설로 느껴진 반면 <미로관의 살인>은 몇몇 기발한 변주가 있긴 해도 늙은 소설로만 여겨졌다.

 이 작품이 <밀실살인게임>보다 30년 전에 출간됐으니 당연한 감상이라고? 에이, 여기서 말하는 젊음과 늙음이 단순히 출간 연도를 의미하는 게 아님을 알잖은가. 이건 출간 시기와는 전혀 다른 문제일 수 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더 자세히 얘기하고 싶지만 지금은 이렇게 한 마디로 마무리하고 싶다. 소설의 생명력은 얼마나 정곡을 찌르는가 여부로 결정이 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미로관의 살인>은 그다지 정곡을 찌르지 못하는 아쉬운 소설이란 말밖엔 할 말이 없다. 10년 전에 이 작품을 극찬했던 나 자신한테 눈치가 보일 만큼 박한 평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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