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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자리 친구
오츠이치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7년 6월
평점 :
품절
9.5
이 작품은 오츠이치의 작품집 <메리 수를 죽이고>에 수록된 동명의 중단편을 원작으로 둔 만화이자 내가 오랜만에 접한 작가의 작품이다. 작화를 맡은 미요카와 마사루의 아주 유려한 그림체가 깔끔하게 떨어지는 서사와 굉장히 잘 어울렸다. 사실상 미래를 예언하는 신문을 제외하면 현실적인 전개가 일품이었던 이 작품에 참 잘 어울리는 그림체가 아니었나 싶다. 이지메를 소재로 다룬 이야기가 불쾌한 독자라도 그림체에 딴지를 걸 순 없을 듯하다.
물론 소설을 원작으로 둔 작품답게 그림체 못지않게 문체도 훌륭하다. 그렇기에 원작 소설도 읽어보려고 한다. 유려한 그림체를 뚫고 어필되는 날카롭고 진정성 있는 주인공의 독백과 죄의식이 원작에서 어떻게 표현됐을지, 내지는 만화가 얼마나 잘 살렸는지 비교하고 싶어졌다. 이지메를 당하는 급우를 방관하던 주인공이 느닷없이 그 친구를 도와주게 되는 전개를 비롯해 어색하면서 의심스러우면서 긴장감 넘치는 두 소년의 로드무비가 깔끔하고 개연성 있게 전개됐기에 만화나 소설로나 여러 번 접해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이야기에 내제된 환상성은 메타포로 기능하고 있을 뿐이지만 엄연히 추리 서스펜스의 장르를 띄고 있는 작품인 만큼 논리적인 추리와 반전도 제법인 편이다. 단편이란 한계 때문에 반전이 다소 뻔하고 작위적인 편이지만 그 결론에 도달하는 주인공의 추리가 합리적이고 그 추리가 인도한 결말은 살짝 예상 밖이어서 '방심은 금물'이란 말은 이 작품을 두고 하는 건가 싶었다. 그리고 오츠이치는 단편에 일가견이 있다는 세간의 평에 걸맞게 매력적인 소재와 주인공들과 미련없이 결말을 내준 덕분에 다 읽고 나서 오히려 여운에 젖었던 것도 좋았다. 간혹 후속작을 암시한다든가 세계관 확장을 노리거나 아니면 에필로그를 지지부진하게 추가하는 식으로 기어코 조개처럼 꾹 닫힌 결말을 선보이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이렇게 뒷일을 상상하게끔 유도하는 열린 결말을 선보이는 작가도 있다. 당연히 나는 후자에 더 마음이 가는데 후자의 작품이 적은 경우는 작가로서 자신의 작품에 미련을 버리기 쉽지 않아서 라고 생각됐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미련없이 결말낼 수 있는 비결이라고 한다면 나는 이 작가가 다음에 쓰고 싶은 이야기가 산더미라서 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하고 짐작했다. 실제로 이 작가는 단편을 정말 많이 썼고 내가 작가의 작품을 읽지 않았을 때도 많은 작품집이 국내에 출간됐다고 한다. 한때 히트친 작가가 아니라 지금도 왕성히 활동 중인 작가라는 사실도 무척 반가웠다. 일단 이 작품의 원작이 수록된 작품집 <메리 수를 죽이고>부터 찾아 읽어야겠다. 오랜만에 읽은 작가의 이야기라 그런지 더욱 매료됐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