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 - 성매매라는 착취와 폭력에서 살아남은 한 여성의 용감한 기록
봄날 지음 / 반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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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일전에 읽은 <성매매, 상식의 블랙홀>에서 언급된 책으로 '성매매 여성으로 20년을 살아온 여성의 경험담'이라 언급돼 바로 구매해 읽었다. 400페이지라는 적지 않은 분량의 책으로 300페이지에 달하는 1부는 저자가 성매매 여성으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나머지 100페이지 가량의 2부는 탈성매매 이후 어떻게 사회에 적응했는지를 그리고 있다. 누군가는 이 책을 올해의 논픽션으로 꼽기도 하는데, 나 역시 동의하며 아마도 내가 올해 읽은 모든 논픽션 중 가장 으뜸이리라 감히 점쳐본다. 꼭 실화여서, 저자가 직접 경험했고 내가 애써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는 성매매 현장을 그렸기 때문이 아니라, 그만한 고통을 겪고도 살아남은 저자의 생명력에 진심으로 존경스러워서다. 

 저자는 성매매 여성을 둘러싼 갖은 모욕과 멸시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성매매를 했다고 커밍아웃하게 되는 순간이 있는데, 그때마다 그 사실을 부끄러워 해야 할 것은 성매매를 한 자신이 아닌 자신의 성을 구매한 남성임을 저자는 책에서 분명히 하고 있다. 착한 성 구매자는 없었으며 저자 나름대로 순화했을 자신의 경험 속 온갖 수난들은 모두 남성이 주도한 결과란 것을 톡톡히 강조한다. 


 누군가는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몸을 판 것이 아니냐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성매매를 시작한 순간 서서히 노예로 전락하고 그 과정에서 노동이란 숭고한 단어는 입에 올리기 힘들 정도로 비루한 대우를 받았음을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보여준다. 몇 분만 지각해도 지각비 50만 원, 업소에서 일한 조건으로 선불금 몇 백에 아가씨를 업소에 소개해준 소개쟁이에게 줘야 할 돈, 홀에서 입을 옷, 다쳤을 때 필요한 치료비 등 모든 돈은 여성들의 돈, 즉 빚으로 달리게 되고 그 안에서 여성들은 도대체 끝이 없는 빚을 갚기 위해 몇 년을 꼼짝없이 갇히게 된다. 사회와 단절되고 돈을 지불했다는 이유로 남자들한테 학대를 당하고 술도 먹어야 하고... 그렇게 몇 년을 일해 돈을 벌어서 업소를 벗어났다고 해도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트라우마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그간 사회와 격리된 탓에 세상 물정도 잘 모르고 할 줄 아는 일도 적으니 새로운 일을 배우는 것에 주눅들어 조금이라도 경제적으로 곤궁해지거나 심리적인 압박을 느끼면 업소로 돌아갈까 하는 충동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늪처럼 성매매의 경험은 해당 여성들에게 신체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매우 크고 지속적인 상흔을 남긴다. 이 책을 읽기 전엔 어쩌다 20년씩이나 성매매를 하게 됐느냐는 의문이 들었는데, 책을 읽는 내내 이토록 장기간 폭력에 노출되고 격리되면 그 이상의 시간도 순식간에 빼앗기리란 생각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수모를 겪고도 자기 파괴 충동이 일지 않고 끝내 업소에서 벗어나 사회에 적응 중인 저자가 진심으로 존경스러워졌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내내 절망적인 기분이 들었는데, 이 책의 내용은 전부 실화이며 아직도 비일비재하고 저자처럼 벗어나지 못한 여성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여성의 몸을 착취하는 시스템은 더 교묘해졌고 음험해졌으며 기껏 성매매 현장에서 살아남아 자신의 이야길 외치는 이 책의 저자 같은 사람이 나와도 세상은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아니, 귀를 기울이지 않을 뿐이라면 차라리 다행인 것이, 이미 마음 속 기저에 뿌리 깊게 내려진 '몸 파는 여성에 대한 멸시'가 남아있어 아무리 고통을 호소해도 자업자득이라거나 머리에 똥만 들어서 남자한테 기생한다는 모멸적인 말까지 돌아오는 실정이다. 

 성 구매 경험이 있는 남성은 말할 것도 없을 테고, 나처럼 성 구매 경험이 없는 남성도 자신과 무관한 일이라며 사회에 만연한 성매매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앞으로도 성 구매할 생각은 없고 아마 어지간하면 반대의 입장이 될 일도 없을 것 같아 나와 상관 없는 일이라 선을 긋고 살아왔다. 타인의 문제를 내 일처럼 여기고 몰입하며 분개하기엔 내 앞가림도 버겁고 이런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이야길 접하노라면 분노보다 절망이 앞설 뿐이다. 그렇게나 두텁게 체계화된 성매매 시스템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예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생각은 들었다. 어떤 기적이 벌어진 덕분이든 탈성매매 여성은 보다 자신감을 갖고 당당히 살아갔으면 했다. 그 긴 시간을 인내하고 살아남았고 눈치 싸움을 벌여왔고 심지어 비위도 좋은 당신들은 그 어떤 일이라도 잘할 수 있을 거라고, 꼭 술이나 몸을 파는 일이 아니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당신들은 견뎌냈고 살아남았을 뿐이라 생각할 수 있어도 내 눈엔 이미 살아남았다는 점에서 반 이상은 극복한 것으로 느껴졌으니까. 

 내가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이 대단히 주제 넘은 일일 수 있다. 하지만 그분들은 주제 넘든 아니든 누구에게나 위로와 격려의 말을 들을 자격이 있다는 생각도 든다. 꼭 그들이 어둡고 긴 터널을 통과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가족이나 친구에게도 외면당하거나,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조차 없는 일에 몸담은 적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 모두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살아남길 원하고 절망스러우면 울고 과거를 후회하기도 하는 사람들... 그들이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치욕적인 경험을 했다 한들 나는 그분들이 나와 똑같은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사람 아래 사람 없고 사람 위에 사람 없다. 돈의 유무로 모든 것이 갈리는 자본주의 시장에서는 공허하게 들리는 말일 수 있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논리가 극한으로 적용된 성매매 업계는 필요악이니 뭐니 하는 말로 정당화될 수 없다. 업계라 불려서도 안 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여 매우 현장감 넘치는 이 책의 내용을 통해 나는 비로소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됐다. 성매매는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 아래 사람 없고 사람 위에 사람 없어야 하니까, 누군가 행복하면 누군가 고통 받는 것이 아무리 필연적인 일이라 하더라도 그 아이러니함은 점점 사라져야만 하니까 말이다. 

내 경험이 나를 갉아먹지 않도록 하는 유일한 방법은 폭력을 폭력이라고 계속해서 말하는 것이다. - 40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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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칭
꼬마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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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성매매, 상식의 블랙홀> 이후로 성매매 여성이 등장하는 작품을 골라 읽고 있다. <O 이야기>는 뒤로 갈수록 동정의 여지가 없는 능동적 성노예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그런데, 소년은 눈물을 그쳤나요>에선 사창가를 전전하던 자신의 빚을 갚아준 정부에게 그 이상의 시련을 겪는 모습이 소년인 주인공의 시선에서 그려진다. 남성 독자로서 말하자면 이 작품들의 섹슈얼한 묘사는 구역질과 연민, 치욕스러움과 절망을 안겨주면서도 내가 남성이라 그런지 상상력이 자극돼, 성적으로 자극적으로 읽히기도 했다. 

 만화 <3인칭>은 일본 AV 배우를 사랑하게 된 한국 남자 노조기를 3인칭의 시선에서 바라보면서 전개되는 이야기다. 우연히 접한 몰카 설정의 AV를 본 노조기는 그전까지 한 번도 야동을 본 적도, 관심도 없었기에 그 영상을 진짜 몰카로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처음에 그 영상을 보고 화가 났으면서도 두 번째 세 번째 찾아보면서 그 여자를 만나야만 한다는 강렬한 생각에 사로잡혀 무작정 일본으로 가면서 시작된다. 


 이제 그는 일본에서 살고 있는 고등학생 동창 집을 거점으로 삼으면서 자신이 본 몰카 속 공간을 마치 사막에서 바늘 찾듯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일종의 광기에 사로잡혀 하염없이 매달린다. 동창인 종원은 친구의 모습이 여간 이상해 보여 자초지종을 물었는데, 고등학생 시절부터 성에 관해 유독 보수적이고 꽉 막힌 사고방식을 갖고 있던 노조기가 그토록 뒤틀린 '사랑'에 빠진 것이 웃기면서도 압도당해 그에게 진실을 알려준다. 영상 속 그 여자는 나도 알고 있는 여자다. 

 몰카 영상이 실은 컨셉이 있는 AV였고 그 여자가 AV 배우인 나카지마 후미히메임을 알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노조기의 너무나 꽉 막혀서 대화가 통하지 않는 그의 사고방식이 유일한 걸림돌인 상황이었다. 자신이 혼자 짝사랑한 여자가 실은 AV 배우였던 것도 그의 입장에서 충격적인데 AV 업계에 너무나 박식한 동창의 모습도 그로선 역겨운 나머지 일본에서 체류할 동안 집에서 재워준 동창에게 적반하장 따지기까지 한다. AV 보는 게 정상이냐고. 


 실상이 어떻든지 간에 자신이 몰카라고 생각한 영상 속 당사자를 사랑하고 직접 찾으러 나선 사람이 할 말은 아니었고, 정상이고 어떻고 떠나 성적으로 유난히 무균 상태인 듯한 인간은 솔직히 말해 무슨 말을 하건 공감이 되기는커녕 공허함만 주기 마련이라 노조기가 'AV 보는 게 정상이냐'고 따지는 것이 우습게만 들린다. 그 나름대로는 진지하게 사랑을 하는 것일 테지만, 그 사랑의 고충에서 오는 화를 남한테 풀거나 누군가에게 이해받으려는 듯한 모습은 어떻게 봐도 호감은 아니다. 설령 그의 사랑이 영상 속 배우와 결실을 맺어 짧게나마 진실된 관계를 맺었다 해도, 그가 나중에 동창이나 이 일과 관련된 몇몇 사람에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 해도 그가 비호감에서 호감으로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니다. 적어도 내 안에선 노조기는 답답하기 그지없으나 그놈의 진실된 태도로 평생 그 누구도 경험하기 힘든 일을 경험한 행운아에 불과하다. 

 행운아? 일본인도 아닌 한국인이 일본 AV 배우와 동거를 하고 관계를 가진 것을 두고 나는 그를 행운아라 여긴 것일까? 오해할까봐 하는 말이지만 그건 아니다. 노조기가 후미히메를 AV 배우라 사랑한 것이 아닌 것처럼 그가 단지 사랑하는 누군가와 짧지만 진정성 있는 사랑을 나눈 것이 행운아라 여겨졌다. 비록 외국인이라 말이 100% 통하지 않지만, 본편에서 나오지 않은 그의 일기 속 내용을 보면 때론 언어만이 소통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리란 생각도 든다. 물론 노조기가 일본어를 배우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성립될 수 없는 관계였을 테지만, 언어보다 중요한 것은 후미히메의 영상을 본 것을 계기로 자신이 자신도 모르게 꽉 막힌 인간이었음을 자각한 것이 둘의 관계에 대해 얘기할 때 가장 핵심적인 부분일 것이다. 그렇기에 AV 배우와 뒤틀린 애정을 가진 남자의 사랑이 그리 자극적으로 읽히지 않았던 것이겠다. 


 그럼에도 자초지종을 모르는 종원은 후미히메와 헤어진 노조기에게 '태극기 꽂았다'고 말한다. 술김에 한 말이지만 오히려 술김이었기에 진심이었을 것이다. 결국 이 작품의 제목 '3인칭'은 1인칭도 2인칭도 아닌 3인칭의 시선에선 타인의 진심이나 사랑 같은 감정은 한낱 얘깃거리에 불과하고 자기 관점을 보태 이야기의 무게를 퇴색시키기 마련임을 강조하기 위한 제목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기에 타인의 이야길 듣고 전달하는 일을 조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노력하고 노력해도 결국 내 흥미를 잡아끄는 방향으로 이야길 각색하고 전달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라 할 수 있겠으나 그래도 의식적으로 조심하다 보면 미연에 큰 실례를 방지할 수 있으리라 본다... 그래서, 이건 여담이지만, 맨 처음에 언급한 <O 이야기>나 <그런데, 소년은 눈물을 그쳤나요>의 경우 내가 감상을 남기면서 필요 이상으로 성적인 요소를 부각하며 글을 쓰지 않았는지 생각해보게 됐다. <O 이야기>는 성적인 요소를 부각시킬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지만 <그런데, 소년은 눈물을 그쳤나요>는 어땠을는지... AV 배우를 등장시켰음에도 섹슈얼한 묘사는 극히 적었던 <3인칭>을 생각하며 나 역시 글을 더 조심히 써야겠다는 다짐이 들었다. 

정말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그 일방통행이란 말, 들어도 그 사람한테 듣고 싶어. - 9화 만남



누구나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사랑의 무게가 있는 것이 아닐까?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얼마나 진실하게, 사랑을 끝까지 감당해냈는가 하는 것이 아닐까? - 권혁주의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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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소년은 눈물을 그쳤나요
이재웅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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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9.9 






 이 소설은 이복 누나를 제외한 모든 가족을 여읜 소년이 누나와 그녀의 정부가 사는 집에 얹혀 살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15살에 가출해 17살엔 룸살롱에서 인간 접시로, 19살엔 스트리퍼로, 23살엔 사창가를 전전하다가 그 다음해엔 자신의 빚을 갚아준 정부의 노예가 되어 아파트 단지에서 전문적인 매춘부로 지내고 있는 누나는 소년의 눈에 어떻게 비쳐졌을까? 소년은 처음 누나가 빚을 갚는 '용도불명'의 방에 있는 각종 도구를 바라보며 정확히는 몰라도 대강은 무슨 행위를 위한 방이고 누나가 무슨 일을 하는지 유추한다. 딱히 충격도 받지 않는다. 오히려 독자가 이러한 주인공의 담담한 시선에서 충격을 받는다. 소년은 자신을 늙은 소년이라 말하고 그 늙음의 기원이자 스승을 굳이 꼽자면 바로 '가난'이라 말한다. 

 겉으로는 티가 나지 않아도 사실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누나를 바라보는 주인공의 시선은 복합적이다. 세상 사람들이 누나가 다리 벌려서 받은 돈으로 키운다고 욕하는 걸 주인공은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이미 폭력에 길들여졌고 하염없이 울고 동생의 정서를 걱정하며 정부인 곽호와 대립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소년은 혐오감과 안쓰러움을 느낄 뿐이다. 소년은 자신은 늙었다고 하지만 충격에 내성이 생겼을 뿐,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없고 해결 방안이라고 제시하는 것도 현실적인 구석이 없으며 충동적이라 그가 겉늙었을 뿐 아직은 소년이긴 하다는 인상을 심어준다. 현재로서 모든 비극의 원흉이라 할 수 있는 곽호를 죽이면 다 해결될 일이지만, 그로 인해 감당해야 할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순수하게 느껴졌으니까. 


 눈물 없이 볼 수 없을 고통스러운 장면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던 소설이다. 주인공의 누나를 자신의 전용 매춘부로 두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기어코 '쪽바리들의 정액받이'로 넘겨버리겠다고 말한 곽호가 천벌을 받긴 할 것인지, 무력하지만 행동의 귀추 하나하나가 주목됐던 송봉권이나 작중 내내 끊임없이 수모를 겪던 소년의 누나와 소년이 어떤 결말을 맞이할 것인지 무척 궁금했기 때문이다. 중간중간 섹슈얼한 묘사가 있을수록 불쾌함과 비참함을 더하는 것은 직전에 읽은 <O 이야기>와 가장 다른 부분이었고 이 작품이 여성을 묘사하는 방식이 다소 전형적일지언정 하등 가볍거나 흥미 위주로 이뤄지지 않았음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가난한 여성은 몸을 팔고 가난한 남성은 살인을 저지른다... 상투적인 설정과 전개지만 이 소설은 세상이 그 꼬라지로 돌아가는 원인과 가난한 당사자들이 세상을 증오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소년이 희망을 품지 않는 이유 또한 개연성 있게 풀어낸다. 

 글쎄, 이 작품에서 주인공의 누나를 향한 여성 독자들의 감상은 과연 어떨는지 궁금하다. 그저 그런 섹슈얼한 캐릭터라기엔 동생을 생각하는 마음이 깊고 자애로워 나는 그녀에게 동정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타의와 더불어 자의로 인해 빚을 산더미처럼 불렸고 치명적인 오판으로 인해 매춘부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체념한 모습에 대해선 약간 이야기를 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두 번 다시 그쪽 일을 하지 않겠다 마음 먹어도 오래도록 몸에 익은 일과 어수룩한 경제 관념, 대인 관계 때문에 금방 빚에 허덕이는 모습, 심지어 주인공의 누나는 '사랑'에 너무 쉽게 빠져 풀릴 일도 그르쳐버린다는 단점 또한 갖고 있다. 물론 그 모든 걸 자업자득이라 말하기엔 수업료를 지나치게 잔인한 방식으로 지불하고 있지만...... 특유의 무력한 모습 때문에 동정 이외의 감정을 품기가 어렵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이 소설의 강점이자 단점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어떻게 보면 내가 이 소설에서 가장 주목한 캐릭터는 바로 곽호다. 그는 돈을 중요시하고 돈을 위해 자신이 나쁜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세상이 다 그런 법'이라고 당당히 외치는 진정 쓰레기 같은 인물이다. 그 나름대로 세상을 거칠게 적응하며 살아왔을 테니 그런 극단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게 됐겠지만, 세상 핑계를 대면서 자신도 그런 세상을 만드는 이유 중 하나가 되어 주인공 남매를 괴롭히는 것은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이 책을 둘러싼 사람들의 감상을 둘러보니 곽호도 은근히 동정하게 되는 캐릭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던데, 기껏 누나의 빚을 없앤 다음에 다시 지옥으로 떨어뜨리는 행보를 보인 쓰레기에게 도대체 어떻게 동정을 느끼는지 이해가 참 안 됐다. 자신의 사랑을 외면하고 돈을 들고 튄 누나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한다고 쳐도, 그럼에도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는 것은 어른으로서 보여야 할 태도가 아니었을까? 만약 그럼에도 누나가 곽호를 배신했다면 또 모를까, 자신이 갚아준 돈 그대로 자신에게 도로 갚으라고 태세를 전환하는 것은 악마도 고갤 저을 모습이라 생각됐다. 곽호가 빚을 갚아주자 그의 청혼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나 하고 있던 누나도 문제라면 문제지만, 결국 원흉은 곽호 혼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세상이 다 그런 법이라고 자신을 벌레 보듯 쳐다보는 소년의 시선에 응수하지만, 소년에게 죽임을 당할 빌미를 스스로 제공하고 그래도 할 말이 없을 만큼 최악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본인은 알고 있을까? 아마 알고 있을 테지만, 다 떠나서 주인공의 누나를 향한 사랑이 배신당한 것을 배로 갚아주기 위해 그녀를 일본에 팔 계획까지 세운 것은 명백히 욕심 어린 행동으로 느껴졌다. 그야말로 소년으로선 이 세상은 증오하지 않고 싶어도 증오할 수밖에 없는 곳으로 인식하기에 충분한 계기였고, 소설의 결말은 어두워질 대로 어두워진 소년의 심상이 조만간 일을 내리란 암시를 준다. 스스로는 늙은 소년이라 칭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소년다웠던 주인공이 과도를 품고 곽호를 죽이려는 모습에선 그나마 남아있던 순수함이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이야기의 고통스런 전개와 수위, 새삼스럽고 단선적인 주제의식은 여운보다 후유증을 크게 남긴다. 가난한 사람의 절망스러움이야 문학에서 한두 번 다뤄진 것도 아니고 도대체 답이 없는 이야기를 다 읽고서 세상을 전처럼 평안하게 바라보기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난 이 책을 첫 번째 읽었을 때 남긴 포스팅의 부제를 '몰라선 안 될 불쾌함'이라 적었지만 사실은 이런 이야기는 모르고 싶은 불쾌함에 해당한다고 본다. 


 그렇기에 이만큼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끈질기게 풀어내고 완결을 낸 저자가 존경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명확하게 해피엔딩을 그리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도 있지만, 작품 속의 등장인물들과 같은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직접 작품에 등장시키며 그걸 찾아 읽는 독자들의 존재가 이 세상을 조금은 더 괜찮게 바꾸지 않나 하는 막연한 생각도 든다. 곽호는 '세상이 다 그런 법'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당신 생각일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이 세상엔 많아져야 한다. 작품을 읽는 내내 나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었고, 적어도 아이들에게 일부러 세상이 더럽다는 사실을 몸소 가르쳐주지 않는 어른이 돼야 한다고 단호하게 읊조리게 됐다. 

누구에게도 말은 안 했지만 난 이미 늙은 소년이었다. 나는 믿어야 할 말과 믿지 않아야 할 말을 구분할 줄 알았고, 항상 그러려고 노력했다. 누가 그것을 가르쳐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배웠다. 굳이 그 스승을 지명해야 한다면 ‘가난‘이었다. - 17p



난 한 번도 자유로운 적이 없었어.

그건 자유를 원하지 않을 만큼 충분히 자유롭기 때문이에요. 억지로 자유를 찾을 필요는 없어요. - 122p



맞아요. 사탄의 마음이에요. 나는 사탄이 좋아요. 사탄은 맨날 지고, 욕만 먹고, 쫓겨 다니기만 하잖아요. 선생님은 맨날 천사처럼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천사는 가난하지도 않고, 더러운 옷도 입지 않고, 저 하늘 위에서 웃을 일밖에 없는데 왜 제가 천사를 좋아해야 하죠? - 25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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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이야기
폴린 레아주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세계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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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O 이야기>는 에로티시즘 문학 사이에서 전설로 꼽히는 작품이며 <어린 왕자>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널리 읽힌 프랑스 현대문학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출간 이후부터 끊임없이 '예술이냐, 외설이냐' 라는 논란에 시달림에도 <어린 왕자> 만큼 읽힌 것이 의아하게 여겨질 사람이 있을 듯한데, 나는 호불호가 심히 갈릴지언정 특정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고 생각하기에, 또 반대로 작품성에 대한 논란이 오히려 화제를 낳아 여러 나라 독자들에게 읽히지 않았을까 싶어 그렇게 놀랍게 들리지 않았다. 

 한편 아흔이 넘은 나이에 자신이 이 작품의 저자라고 밝힌 폴린 레아주, 본명 안느 데클로스는 이 작품을 예술이냐 외설이냐, 반페니즘 작품이냐 아니냐에 대한 숱한 논란에 대해 '그저 어렸을 때부터 품어온 환상'이라고 답했다. 역자의 후기에서도 나오는 표현이지만 정말 우문현답이 아닐 수 없는 게, 확실히 에로티시즘은 판타지다. 이 작품의 주인공 O의 내면을 보면서 제대로 깨달았다. 


 작품의 주인공 'O'의 이름을 두고 여러 해석이 오갔다고 한다. 구멍Orifice, 물건Objet, 오르가슴Orgasme... 다 일리가 있지만 나는 O가 알파벳이 아닌 그냥 구멍 그 자체(O)를 뜻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O 이야기>는 말 그대로 구멍에 관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O가 자신의 애인 르네에 의해 성노예로 전락해 온갖 구멍이 학대당하면서 시작된다. 비밀스런 사교클럽 루아시에 입성한 O는 성의 남자들로부터 항문이 좁다며 꾸지람을 듣는다. 마치 그녀가 기본 소양도 갖추지 못했다는 듯 아주 혹독한 관심을 받게 된다. 

 이 상황에 대한 묘사가 가관이면서 인상적인데, 일단 애인이라고 불릴 자격도 없는 르네라는 남자는 O의 항문을 넓히자는 다른 남자들의 얘기에 좋으실 대로 하라고 말하고, 어떤 남자는 너무 넓어도 곤란하다고 말한 뒤 도구를 이용해 충분한 시간을 들여 O의 항문을 너무 좁지도 넓지도 않은 넓이로 넓혀버린다. 

 초반부터 너무 수위가 센 말을 하는 건가 싶지만, 이 작품을 읽은 사람들은 나중에 O가 겪을 일에 비하면 항문 정도는 정말 애교에 불과함을 알고 있을 것이다... 아무튼, 너무 좁아도 너무 넓어도 곤란하다는 말은 이 작품의 분위기나 문체에도 해당된다. 강간, 학대 등의 장면을 거침없이 묘사하면서도 정작 어휘는 차분한 편에 속한다. 가령 신체 부위에 대해 ㅂ, ㅆ, ㅈ으로 시작하는 저속한 단어를 구사할 법도 하고 남성이 O를 비롯한 여성들한테 하는 말도 그대로 적을 수 있음에도 '깜짝 놀랄 정도로 저속한 말을 했다' 정도로 에둘러 서술하는 등 이른바 절제미가 느껴졌다. 그렇게 표현을 절제하고 직접적인 상황을 상상하게 만들어 더 야하게 읽히지만 기본적으로 이 소설이 적어도 초반부부터 중반부까진 단지 외설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문학, 예술의 묘미를 저버리지 않았음을 엿볼 수 있었다. 


 쉽게 말해 이 작품은 야동을 보는 감각으로 자극적인 부분에만 집중하는 방식으론 그 맛을 알기가 참으로 쉽지 않다. 문장도 길고 가독성도 떨어지고 서사보다 묘사의 비중이 훨씬 커 문장을 빠르게 훑거나 집중하지 않으면 그저 역겨운 소설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 소설은 역겹지만, O가 성노예의 역할에 충실히 임하고 몰입하며 내제화하는 등 나름대로 자기합리화하는 과정이 담긴 중반부까지는 역겨운 동시에 독특하고 흥미로운 지점도 상당했다.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왜 그녀가 르네를 애인이라 존경하며, 그런 찌질한 고자질쟁이의 어떤 면모에 반했는지 - 재력 때문인가? 그렇다기엔... - 직접적인 에피소드는 다뤄지지 않아 결국 O의 복종 어린 태도는 이해할 수 없지만, 그녀 스스로도 자신의 상황에 본능적으로 저항하면서도 점차 변화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긍정하는 과정을 디테일하고 심상치 않게 묘사해 이래저래 읽는 맛은 상당했던 작품이다. 

 O를 비롯해 비슷한 처지의 여성들은 채찍질을 당한다. 진짜 채찍 말이다. 별 대단한 죄를 저질렀기 때문은 아니다. 다릴 오므렸거나 남자들 앞에서 말했거나 남자들과 눈을 마주쳤거나... 이유는 사소하고 폭력적이며 일부 남성은 잘못을 유도하는 경우도 있는 등 한마디로 채찍질 하고 싶어서 채찍질하는 것이라 이해하면 편하다. 남자들은 여성들이 채찍에 맞는 걸 즐기기보다 고통을 호소하고 제발 멈춰달라 애걸복걸하는 모습을 즐기며 둔부에 채찍 자국을 남기고 싶어한다. O는 기가 막히게도 자신이 채찍에 맞는 걸 황홀하게 바라보는 애인의 표정에 황홀함을 느끼며 그 모든 고통을 감내한다. 


 루아시에서 성노예로 재탄생한 O는 파리로 돌아와 애인과 그의 이복형제인 스티븐 경이 공동 소유하는 여성이 된다. 웃긴 것은 두 남자는 그녀에게 언제든 떠나도 좋지만, 그녀가 승낙하면 자신들의 지도 하에 지금까지 받은 교육 그 이상의 교육이 실시된다고 한다. 정말로 그녀가 떠난다고 하면 보내줄지도 의문이지만 - 안 그런다에 건다. - 이미 두 남자가 원하는 답이 뭔지 아는 O는 두 남자가 공동 소유하는 여성이 될 것을 어렵사리 승낙한다. 

 하지만 O는 얼마 되지 않아 자위를 하라는 스티븐 경의 명령에 불복한다. 루아시에서 겪은 일을 생각하면 자위가 뭔 대수인가 싶지만, 사실 O는 르네를 비롯해 남자들이 명령을 했기에 다릴 벌린 뿐이라고 자위해왔지, 실제로 자기 스스로 성욕이 발동돼 자위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사랑과 복종을 헷갈리는 게 아니냐고 질책하는 스티븐 경은 - 이런 사람이 '경'이라 불리는 것이 정말 소름 끼치는 일 아닌가? - 스스로 가공할 수준의 주인임을 미리 공언한 대로 O가 스스로의 성욕을 인정하게끔 하는 방향으로 점점 그녀를 몰아붙인다. 

 결국 구멍도 활짝 열리고 채찍질을 견디는 것도 모자라 명령하면 언제든 자위하겠다고 직접 말하는 지경에 이른 O는 이전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주체적인 성노예로 거듭나게 된다. 처음 만났을 당시엔 수동적이었던 O는 스티븐 경과 대화를 할 때마다 겉돌았지만, 시간과 공을 들인 보람이 있게 O는 이 다음부턴 상당히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게 된다. 


 중반부 이후부터 이 소설은 급격히 외설에 가까워진다. 처음엔 이 작품을 '남자 잘못 만나 성노예로 전락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라 생각했다. 루아시에서의 고분고분한 태도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은 탓에, 혹은 목숨이 아까워 자기 감정을 속이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파리로 돌아왔음에도 어딘가에 신고도 않고 도망을 칠 생각도 않고 아무것도 강제하는 것도 없고 떠나고 싶으면 떠나라는 남자들의 말에도 O는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랑을 위해 이 모든 시련을 견디겠노라는 그녀의 태도에 연민을 느꼈다. 사랑이 원래 바보같은 것이고, 전부를 주고도 아쉬워하는 것이라지만 이건 지나치다고, 그녀가 그걸 언제쯤 깨달을 것인지 걱정스런 마음으로 읽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이야기는 '성노예로서의 자질을 자각하지 못했던 주인공이 능력 있는 주인을 만나 잠재력이 개화되는 묘한 성장담'으로 읽히기 시작했는데... 그렇다 보니 솔직히 말해 O가 어느새 더는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알게 모르게 이 작품 속 남자들의 언행에 영향을 받은 탓인지, 길에서 엄청나게 애교를 부리는 개냥이를 보는 기분으로 O의 일거수일투족을 쫓게 됐다. 가령 스티븐 경의 명령을 받들어 모델 자클린의 육체를 탐하거나 루아시와 비슷한 성격의 사교클럽 사무아에서 인체 개조를 당하고, 스티븐 경의 사유재산임이 그대로 드러나는 자신의 몸을 자랑스러워하거나 음모가 깎이면서 스티븐 경이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면 어쩌지 걱정하거나 그런 자신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경멸하는 여성들에게 O가 기분 나빠하는 모습은, 이렇게 말해도 되나 싶지만 '귀여웠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O가 귀여웠다. 그리고 동시에 가여웠다. 공교롭게도 발음이 비슷한 이 두 단어는 내가 생각했을 때 종이 한 장의 차이만 있을 뿐 꽤나 비슷한 개념이지 않은가 싶다. 길에서 만난 고양이가 개처럼 사람 손을 타는 모습을 보면 우린 귀여움을 느낀다. 하지만 동시에 얼마나 굶주렸으면 본성과 반대로 행동할까 싶어 가여움을 느끼기도 한다. 내겐 O의 모습이 딱 그랬다. O가 어떤 가정 환경에서 자랐는지 자세히 그려지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그전까진 이성과 동성을 가리지 않는 문란한 성생활을 가졌을 뿐인 O가 사랑이란 개념을 잘못 이해해 남자들한테 휘둘리게 된 것은 아주 비극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책의 묘사에 따르면 O의 복종하는 성향엔 천부적인 요소도 없잖아 그녀 스스로 어떤 취급을 당할지 알고 있음에도 반항하지 않는 모습은 어떤 의미에선 읽는 이의 죄책감을 덜어내기도 했다. O가 르네나 스티븐 경에게 언젠가 버림받을 것이고 '사랑'은 단지 그녀의 일방통행적인 감정일 뿐, O를 취하는 남자들은 그녀를 쉽게 자기 입맛대로 구슬릴 수 있는 일종의 마법의 단어 정도로 '사랑'을 입에 담는 것이 너무나 뻔히 보여 불쾌하고 탄식을 자아냈지만, 정작 당사자인 O는 학대당할수록 '행복하다'고 말하니 원... 그렇다 보니 읽을수록 O의 다소곳한 태도가 순수하게 남성으로 하여금 가학성을 유발하는 감이 다분했는데, 그녀의 모습에서 더는 안쓰러움도 귀여움도 아닌 흐뭇함을 느끼는 나 자신의 모습에서 스스로 적잖은 충격을 받기까지 했다. 아, 이러니 19금 판정을 받은 건가? 


 어떤 사람들은 이 작품이 여성의 본성은 복종을 원하며 그 내면을 잘 드러낸 소설이라 인용하고, 어떤 사람들은 천인공노할 안티 페미니즘 소설이라 경멸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주인공이 주체적으로 피학성애를 실천하는 페미니즘 소설이란 궤변을 늘어놓지만, 위에서 언급했듯 이 작품은 예술이냐 외설이냐 이전에 그저 판타지다. 루아시에 간 O가 애인이 기대하는 그 이상의 엄청난 피학성을 내재했다는 것도 판타지고 나중에 등장하는 자클린이나 자클린의 이부동생 나탈리가 O와 결이 다를 뿐 마찬가지로 성노예의 소질이 있으며 그런 여성이 너무 타이밍 좋게 자주 등장하는 것 - 뿐만 아니라 피임이나 위생이나 성병에 대한 언급이 일절 없는 것도 작위적이기 그지없었다. 유일하게 현실적인 장면을 꼽자면 스티븐 경이 르네로부터 O의 항문 단독 사용권을 양도받자 그녀의 항문이 찢어지지 않을지 걱정하는 정도다... - 모두 판타지다. 현실에 O 같은 여성이 있을 수 있어도 이를 개인의 성향으로 이해해야지 여성 전체가 그렇다느니 어쩌느니 하는 것은 작품의 본질에서 벗어난 차원의 해석이라 생각된다. 

 한편 이 소설은 저자가 자신의 애인으로부터 '여성은 절대 사드처럼 소설을 쓰지 못할 것'이란 말에 자극을 받아 썼다는 말과 자신의 애인에게 보내는 일종의 지독한 연애편지라는 말도 있다. 후자의 경우엔 퍽 성공을 거뒀다고 본다. 정작 저자의 애인이라는 장 폴랑이란 작자는 자기 애인이 <O 이야기>의 저자인 줄은 모르고 죽었다지만 생전에 이 작품을 아주 극찬했다는데, 남성의 가학성을 자극하는 것도 모자라 발달시키기까지 하는 이 소설을 '연애편지'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정말 성공을 거뒀다고 할 수 있다. 성욕이 충만한 남성이 O 같은 여자를 만났다면? 그녀를 딱 잘라 거부할 수 있는 남성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다. 


 하지만 나는 이 소설이 연애편지로는 괜찮다고 생각해도 좋은 소설, 문학, 예술이라 봐야할는지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우리 독자들은 장 폴랑이 아니니까. 우리에겐 이 소설이 외설로 그치지 말고 좀 더 완성도 있는 결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 소설에 정식 후속작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면 허무한 결말이지만 그런대로 괜찮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소설엔 엄연히 <루아시로의 귀환>이란 정식 속편이 있고, 그 작품에서 O는 역시나 스티븐 경에게 버림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고 스티븐 경은 그걸 허락한다고... 한다. 역자 후기에서 소개된 후속작의 결말은 예술로 시작해 외설로 끝난 <O 이야기>의 단점을 잘 보완해준단 생각이 들었다. 

 O가 언젠가 버려질 것이라 불길한 예감만 들게 하고 끝낸 책의 결말은 허무하기 그지없었다. 다소 전형적이고 교훈적이더라도 한결같이 사랑에 대한 잘못된 관념을 관철한 O가 끝에 가서 지난 날을 후회한다든지, 아니면 끝까지 노예로서 자부심을 가지며 후회 없이 자살할 것인지 그 여부까지 묘사됐더라면 이 이야기가 지금보다 훨씬 고차원의 예술로 승화되지 않았을까? 지금 이 상태로는 외설적인 성격이 강한 채로만 끝이 나 아무래도 감상에 제한이 걸려버리게 된다는 것이 아쉬운 부분이다. 

 그러니 후속작이라도 꼭 출간됐으면 좋겠는데, 이 책이 국내에 출간된 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역자가 후기에서 이 작품이 충분한 각광을 받아 속편까지 완역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그런 날은 아주 요원해 보인다. 19금 판정을 괜히 받은 작품이 아닌 지라 아마 이대로 각광을 받지 못한 채 묻힐 가능성이 높다... 개인적으로 이와 같은 상황이 참 아쉽다. 이렇게 몰입되고 결말이 궁금한 책은 정말 오랜만이었으니까 말이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눈치는 보이지만, 누군가의 말마따나 294페이지가 아니라 2940페이지였어도 괜찮았을 만큼 몰입도 하나는 압도적이었는데, 이는 내가 남성 독자니까 할 수 있는 말일 듯하다. 

하느님이 주는 시련을 신자들이 오히려 감사해하듯, 그녀는 자신을 함부로 취급하는 걸 즐기는 애인의 뜻을 충실히 배려하면서 마냥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었다. - 120~121p



살아 계신 신의 손 안에 떨어지는 것이 무섭도다

‘천만의 말씀! 정말 무서운 건 살아 계신 신의 손 밖으로 떨어져나가는 것이지...... - 138p



즉, 고문을 당한다는 생각 자체가 즐겁다가도, 막상 고문을 당하는 순간에는 그걸 면하기 위해 온 세상을 팔아 치워도 시원찮을 것 같다가, 급기야 고문이 끝나면 모든 걸 견뎌낸 것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는데, 그 기분은 고문이 잔혹하고 길어질수록 배가되기 마련이다. - 2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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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상식의 블랙홀
신박진영 지음 / 봄알람 / 2020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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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어디 가서 대놓고 말하고 다니진 않았지만 난 공창제를 찬성했고 그 이유에 대해 얘기할 때 항상 '필요악'이라는 단어를 자주 입에 담았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과연 성매매가 '필요'악인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과 마주해야 했으며, 끝까지 다 읽으니 설령 성매매가 없어지는 것이 영원히 불가능한 일이더라도 금지시키는 방향으로 일을 도모해야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남자는 짐승이고 성욕은 본능이니 성매매를 못 하게 하면 성범죄자가 된다는 말에 진정 분노하고 저항해야 하는 것은 누구인가.'라는 저자의 질문에 머릴 한 대 제대로 맞은 기분이었다. 

 타란티노의 영화 <바스터즈>에서 나오는 한스 란다 대령은 '인간이 자신의 양심의 가책을 덜어냈을 때 어느 정도로 유능해질 수 있는지 총통(히틀러)께 증명해왔다'고 말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우리가 성매매에 대해 논할 때 양심의 가책을 외면하거나 자유로워지는 분위기가 조성됐을 때 어느 정도로 막장으로 치닫는지를 절감할 수 있었다. 평생을 거의 성매매 피해 여성을 위한 삶에 매진했던 저자 신박진영 씨의 힘있고 확신에 찬 문체, 일목요연하고 핵심을 잘 드러낸 글은 내 가치관을 바뀌게 만드는 데 충분했다. 


 내가 공창제를 찬성했던 이유 중 필요악이라고 여겨서 말고도 종사자들이 '성노동자'로서 권리를 보장받으려면 공창제가 필수적이란 어림짐작도 한몫했다. 하지만 저자는 성매매는 노동이 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진정한 '성진국'이라 할 수 있는 네덜란드나 독일이 공창제를 했음에도 침해되는 성노동자의 권리나 여전히 만연한 성차별, 그리고 그만큼 투명하게 공창제가 시행되기엔 현실적인 여건이 부족하다는 사례도 든다. 현실적인 여건이란 여성의 몸을 착취하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저열함을 가리키는 말일 터다. 공창제가 시행된들 정말 아무런 문제도 없이 유지될 리 만무하다. 이는 여성 징병제가 양성평등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도 반박할 수 있는 근거기도 하다. 여성은 약하니 남성이 아무렇게나 착취해도 되는 존재라는 인식에 변화가 없으면, 여자도 군대를 간들, 창녀가 성노동자로 호칭이 바뀐다 해도 젠더 문제가 일시에 해결될 수 없다. 한마디로 일의 순서가 뒤바뀌었다는 것이다. 

 반대로 저자가 롤모델로 가장 많이 언급한 나라는 스웨덴을 위시한 북유럽 국가들이다.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 2부인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에서도 언급된 적이 있는데, 바로 성매매 여성이 아닌 성을 구입하는 남성만을 처벌하는 법이다. 그 소설이 집필된 당시엔 아직 그 법이 통과가 된 직후거나 이제 곧 시행될 예정이라고란 언급돼서 실제로 그 법이 어떤 성과를 거뒀는지 알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 귀추가 궁금했는데 저자의 말을 들어보니 좋은 효과를 낳았던 모양이다.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놀라운 한편 참 부끄러웠다. 이런 대안이 있고, 또 알고 있었음에도 공창제를 필요악이란 이유로 찬성해왔다니... 


 스웨덴이 성을 구입하는 남성을 처벌하는 법을 제정할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성매매 금지법이 발의 및 시행됐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 관련 업계 종사자들의 반발이 극심했으며 그들은 주로 성매매가 더욱 음지로 들어가 감시와 처벌이 어려워질 것이란 논리를 내세웠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가졌으나 한 가지 의문 때문에 말문이 막혔다. 그렇다면 그 전엔 음지에서 성매매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단 말인가? 이러한 의문이 들었음에도 나는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것 같다. 이 작가의 글을 읽으니 내가 얼마나 무지했고 관심이 적었으며 성매매 금지법이 우리나라 같은 성매매 공화국에서 통과됐다는 것이 실로 기적 같은 일이었음을 진작 알아보지 못했는지 그저 민망할 따름이었다. 

 자본주의의 원리로 인해 성매매가 어디까지 악독하게 여성들의 몸과 마음을 착취할 수 있는지 저자가 직접 조사해온 풍경들, 그리고 한국 남성의 절반 가량이 성매매 경험이 있고 관여했다는 주장은 솔직히 바로 받아들이기엔 아연실색한 내용 천지였다. 내가 성매매 경험이 없는 나머지 절반에 해당해서 그랬던 걸까? 나 또한 저자가 언급했던 '남성 혐오 조장하려고 하는 말이죠?' 란 말처럼 너무 비현실적인 통계라 아니냐며 따지고 싶었다. 성매매 업계의 막장스러움에 한 번도 눈길을 준 적도 없는 주제에 말이다. 


 책의 후반부엔 결국 어떤 이유에서건, 자의든 타의든 빚이 있든 뭐든 성매매 여성이 처한 상황은 당사자인 여성들이 해결할 일이라고 고개를 돌리는 사회의 분위기에 일침을 가한다. 진지하게 따지면 과연 당사자를 여성이나 포주에 한정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자칫 이러한 주장은 '설령 성매매의 유혹에 빠지지 않았던들 남자라면 절반 가까이 성매매 문제에 있어서 당사자'라는 극단적 주장을 낳거나 논리적 오류를 범할 수 있으나 저자의 논조는 그렇게 강경하지 않았다. 대신 성매매를 개인의 문제 내지는 비극으로 삼아선 안 된다는 걸 강조하고 강조하고 또 강조할 뿐이었다. 

 물론 성매매를 체제적 문제라 인식하고 변화를 꾀하기엔 근 100년 동안 남성 주도하여 이룩된 성매매 사업이 워낙에 번창하여 현실적으로 무척 쉽지 않은 일로 보인다. 때문에 개인의 문제로 여기거나 개인에게 손가락질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물며 성매매 방지법 자체가 기적으로 여겨질 만큼 이 책엔 역겹고도 절망적인 성매매의 뿌리 깊은 역사가 열거돼 감히 개선해볼 엄두가 생기긴커녕 방관으로도 벅차지 않은가 하고 나약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저자라고 이 짧은 분량의 글로 많은 사람의 인식이 바뀌고 태도가 바뀌리라고 진심으로 기대하진 않을 것이다. 정말 잘 쓴 글이지만, 정말 잘 쓴 글만으로 세상이 바뀌기엔 이 세상이 결코 녹록지 않다. 지옥을 성큼성큼 들어가 성매매 피해 여성과 마주하는 일에 매진한 저자이니 '글로 세상을 바꾼다'는 순진한 감상을 안고서 글을 집필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이 글은 부제인 '상식의 블랙홀'이라는 말처럼 적어도 상식이 빨려들어가는 사태만은 막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블랙홀 자체를 와해시키긴 힘들고 그 힘을 같이 내줄 사람을 불러모으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적어도 옆에서 빈정대거나 헛소리로 앞을 막아서는 사람을 줄이는 것이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한 가장 큰 이유가 아닌지 생각해봤다. 나는 아마 저자가 행동할 때 빈정댄 사람이었을 텐데, 이젠 결코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내 가치관을 바꾼 것만으로도 이 책은 제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는지 모르겠지만, 난 아직 성매매를 심각한 문제로 여기기엔 가해자로도 피해자로도 피해자의 주변 사람으로도 경험한 적이 없기에 저자처럼 직접 행동하며 성매매를 반대할 일은 어지간해선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이런 말이 저자에겐 썩 달갑지 않게 들리겠지만, 이 책의 내용만 읽고서 행동으로 이어지기엔 아직 궁금한 점이 한가득인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은 다음부터 성매매 여성이 등장하는 책을 연달아 읽게 됐다. 그런 책들을 연달아 읽는 것은 여러모로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내 나름대로 궁금했던 부분들을 따로 떼서 사유할 시간을 가질 수 있어 그것만으로도 보람 있는 시간이었다. 그 책들에 대한 포스팅은 차차 올릴 것이다. 어느 책이나 마찬가지지만 이 책들이야말로 읽는 것보다 감상을 남기는 게 훨씬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일반화시키는 건 다른 무엇도 아닌 우리 사회가 만들고 재생산하는 이러한 통념이다. 남자는 짐승이고 성욕은 본능이니 성매매를 못 하게 하면 성범죄자가 된다는 말에 진정 분노하고 저항해야 하는 것은 누구인가. - 38p



거대 규모의 성매매 시장은 남성들에게 ‘돈만 있으면 너도 주인님이 될 수 있다‘는 망상을 심어준다. 그러나 대체 누구의 주인인가. 성 구매자는 섹스에서 소외된 시장의 노예일 뿐이다. - 123p



적절한 규제 없이 약자가 보호받는 시장이 역사상 존재는 했었는지 묻고 싶다. 모든 노동이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싸워온 역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수많은 법률이 있어도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은 저절로 지켜지지 않음을 우리는 보아왔다. - 200p



성매매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계급 구조를 집약한 거대한 착취의 시장이다. 성별과 자본과 인맥으로 인간의 급을 나눠 위력을 행사하고 폭력을 정당화하는 산업이다. 이 폭력에서 자유로운 사회 구성원은 없다. - 24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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