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러브레터
야도노 카호루 지음, 김소연 옮김 / 다산북스 / 201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9.7 






 '굉장한 반전'까지는 아니지만 몰입감이 엄청나고 잠시 동안 꿈쩍하기 힘든 결말이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서간문체의 형식이 십분 발휘된 등골 서늘한 연출도 인상적이었다. SNS 상에서 이뤄지는 대화, 이 글을 쓰고 있을 때 상대방이 짓고 있을 표정이 보이지 않는 데에서 오는 불안함, 무엇이 거짓이고 진실인지 파악하기 힘들어지는 엎치락뒤치락하는 후반부... 특히 새로운 진실이 드러날 때마다 두 주인공의 답도 없는 자기긍정을 읽고 있노라면 제3자 입장에서 실소를 넘어서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 자기긍정도 이 정도면 거의 병이다, 병. 

 말이 나와서 말이지만 범죄자들 중에 꼭 '세상을 살다가 이런 상처를 입어서 이런 죄를 저지른 거야' 하고 합리화하는 부류가 많은데, 그런 얘길 들을 때마다 내가 직접 그네들을 찾아가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네들이 불만이 쌓인 건 알겠는데 그 불만을 당사자한테 가서 풀 것이지, 왜 같은 성별이나 계급, 인종의 사람에게 대신 풀려고 하느냐, 결국 아무것도 해소되지 않는 걸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지 않으냐 하고 말이다. 작중에서 어떤 인물이 '누구나 죄인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다만 죄인이 될 기회가 올 뿐'이라며 타인을 용서하는 대목이 있었는데, 그 말은 곧 자기 자신을 향한 말이기도 하단 것이 최후반부에 밝혀졌을 때 소름이 돋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에게 한없이 나약하고 관대해지는 법이다. 그런데 대놓고 그렇게 살자니 자기가 생각해도 좀 찔리므로 타인을 챙겨주는 척하면서 스스로에게도 멍석을 까는 심리가 누구에게나 조금이라도 있진 않은지 생각해봤다. <기묘한 러브레터>는 전자책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는데 나는 그 비결로 바로 못났지만 현실적인 인물들의 심리를 들여다보며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낸 것을 꼽겠다. 그에 비하면 가독성이나 반전은 덤에 가깝다. 오히려 반전은 복선이 부족해 약간 급작스런 감도 있어 놀랍다기보다 얼떨떨했다. 접혀진 채 봉인된 페이지, 절대 먼저 읽지 말라고 출판사에서 엄금한 페이지엔 그리 대단한 내용이 있지 않았지만, 제목이 주는 인상과는 완벽히 결이 다른 한 문장이 적혀 있어 나는 읽고서 웃음이 실실 나왔다. 

 그 대사를 한 당사자도 그놈의 당혹스런 자기 긍정 때문에 마냥 과거가 떳떳한 인물이라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충분히 해봄직한 말이었다고 생각한다. 결혼까지 생각했을 정도의 두 남녀가 삼십 몇 년 만에 대화를 나누며 애틋함을 느끼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정색하며 눈을 희번덕거리는 것이 눈앞에 선명이 그려져 통쾌한 동시에 오싹한 장면이기도 했다. 나도 비슷하다면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인터넷이나 SNS 상에서 생판 얼굴도 모르는 남과 친밀한 척 대화를 하다가 간혹 비슷한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어 후반부에서의 두 인물의 설전 아닌 설전이 괜히 내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이 작품의 내용이 작가 지인의 이야길 각색한 것이라는데, 이런 일이 요새 은근히 비일비재한 모양이다. 얼굴이 보이지 않은 채로 거의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SNS는 때론 우리에게 큰 공포로 다가오곤 한다. 그 감각을 구현한 작가의 솜씨가 대단했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고 싶어졌다. 작가 소개란에 '복면작가'라고만 적혀 있어 더 궁금하다. 


 이 작품의 원제는 '기묘한 러브레터'가 아닌 두 인물이 대학 시절에 공연한 연극의 제목이라고 한다. 엄밀히 말해 뜬금없기로는 원제가 더한 편이지만, 그렇다고 기묘한 '러브레터'라고 바꾼 우리나라 버전의 제목이 더 좋다고 보기도 애매하다. 아~아주 넓은 의미에서 두 인물의 글이 러브레터의 범주에 들어간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일단 사랑이 완전히 진 뒤에 시작되는 이야기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결말까지 읽으면 러브레터와는 정반대의 글이기도 해 다소 무성의한 제목이란 생각도 들 수 있다. 

 하지만 초반부의 애틋한 분위기나 흥미를 끌어내는 측면을 생각한다면 러브레터라는 단어와 그 단어를 수식하는 '기묘한' 이라는 형용사는 비록 최선은 아닐지언정 차선으로는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여겨진다. 다시 말하지만 이 작품에서 두 인물이 SNS로 나누는 대화는 러브레터와는 근본적으로 결이 다르다. 서로에게 향했었던 감정을 고백한다는 점에서 러브레터라고도 볼 수 있겠으나 그 고백의 진의가 일반적인 러브레터하고 아주 달라서... 이 다음부터는 스포일러라 말하지 않겠다. 


 이 작품에 대해 얘기할 때 스포일러 신경 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얘기하다 보니 본작의 내용을 최대한 숨길 대로 숨긴 채로 감상을 밝히고 추천도 그런대로 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그만큼 아무런 선입견 없이 접하길 추천하는 작품이며, 출판사의 광고에 낚여 너무 기대하지 말고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길 바라는 작품이다. 한 호흡 안에 독파할 수 있는 몰입도를 자랑하는 작품이니 여행 갈 때 비행기나 기차 안에서 읽기 이보다 적합한 작품은 없을 듯하다. 물론 어디서나 읽어도 괜찮을 작품이지만 얇은 책이고 페이지도 빨리 넘어가니 나처럼 여행 갈 때 기차 안에서 읽어보는 걸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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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부메의 여름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 손안의책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8.7 






 흔히 재밌지만 어려운 책을 읽고 나면 두 번째 읽었을 땐 더 이해가 잘 되겠지 하고 착각하기 마련이다. <광골의 꿈>을 읽고 문득 다시 읽고 싶어져 펼쳐든 <우부메의 여름>은 교고쿠 나츠히코의 작품 중 진입 장벽이 가장 낮다고 평가를 받지만, 어디까지나 '그나마' 낮을 뿐이지 실질적으로 이 책으로 작가의 문학 세계관을 처음 접할 독자들 입장에선 여지없이 극악의 난이도로 다가오고도 남을 작품이다. 

 고백하자면 오히려 두 번째 읽은 지금이 조금 더 힘겹게 읽힌 것도 같다. 이해하려고 눈을 부릅뜨고 읽어 내려가니 난해한 어휘와 전개에 내가 지금 무얼 읽고 있고 이 얘길 얘네는 왜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피어올랐다. 실상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의 장광설을 걷어내면 사건의 이면은 비교적 쉽게 정리할 수 있는 편인데, 작가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이상하고도 기이한 이야기라 생각했는지 독자들이 납득을 할 수 있게끔 최대한 멍석을 깔다 보니 그 유명한 장광설이 탄생하지 않았나 싶다. 덕분에 나름대로 흥미로운 지식이 입력되긴 했지만 그 많은 내용이 사건 해결이나 진상 규명에 100% 도움이 됐는지 모르겠고 어느 순간부터 궤변으로 들리는 데다가 작가의 자기 만족적인 성향도 느껴져 뒷내용을 기억하는 나로선 갈수록 흥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정작 중요한 내용은 후반에 너무 주입식으로 풀어내 혼란스러움에 익숙해질 틈도 없이 이야기가 결말이 난 것도 문제지만, 이조차도 이야기의 화자인 세키구치의 정신 상태에 비하면 가벼운 문제에 불과하다. 


 교고쿠도의 장광설도 지겨웠지만 세키구치의 우울한 정신 세계는 그야말로 답답해 두 번째 읽는 것임에도 감당하기 힘들었다. 내용을 기억하고 있기에 내성이 생겼으리라 여겼는데 정말 큰 착각이었다. 사건의 이면이 속속 드러날 때마다 세키구치의 울증에 연민이 들기는커녕 이 녀석이 좀 더 제대로 처신했더라면 책이 반 이상은 짧아졌을 것이고, 아니 애당초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고 원망했다. 책의 분량이 긴 건 그렇다 쳐도 이 비극을 유발함에 있어서 비중은 적어도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을 했으니까... 정신과와 더불어 안과에도 제발 가줘라 하고 소리 내어 말하는 대신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한숨을 토해내는 것에 그쳤다. 그래, 이만하면 책의 내적인 발암 요소지, 외적인 발암 요소는 아니니. 

 외적인 발암 요소, 즉 이야기의 전개도 다시 읽으니 불만이었다. 추리 과정이나 결론에 접근하는 방식은 너무나 초월적으로 이뤄지지만 이 작품은 딱 추리소설의 전형과도 같은 전개를 보인다. 후반부에 사건의 이면을 몰아서 파헤치는 것이 딱 전형적이다. 아무튼 궁금증을 실컷 부풀렸다가 터뜨리는 연출은 흥미로운데 문제는 교고쿠도의 추리를 통해 드러나는 구온지 가문의 온갖 막장스런 행보는 그것만으로 소설 대여섯 편을 뚝딱 지을 수 있을 만큼 흥미롭고 다종다양한 소재와 드라마가 즐비해서 이 요소들을 작품 전반부부터 차근차근 풀어내지 않고 교고쿠도와 세키구치의 대화로 소비한 작가의 선택이 못내 불만이었다. 물론 그 장광설에 공을 들인 작가의 박학다식함과 집념, 또 이 시리즈만의 독보적인 분위기는 인정하지만, 구온지 가문에 내려진 '저주'와 그 영향으로 인해 자매가 겪은 불상사 등 단지 짧게 설명하는 것만으로 넘어가기엔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지 않았는가. 


 내가 최근 들어 정보를 습득하고 머릴 싸매는 서사보다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사유하는 이야기 쪽으로 취향이 변해서 그런가, 처음 읽었을 때 파격적이고 흥미롭다 여긴 이 작품이 지금의 내겐 그저 TMI가 최정점인 곤란한 작품으로 다가왔다. 물론 여전히 작품의 분위기나 주제의식은 내 취향이지만 장광설은 더욱 버겁게 읽혔다. 다시 읽으면 나도 그동안 내공이 쌓였으니 눈에 쏙쏙 들어올 줄 알았는데, 내 스스로를 너무 과신한 모양이다. 아니면 내가 내공이 덜 쌓인 건지, 혹은 그냥 작품 자체가 어려운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단지 이 작품에 열광한 독자분들이 사실은 대단히 인내심이 뛰어난 분들인 건지... 이 작품의 비극적인 드라마보다 그런 외적인 요소를 더 궁금해하며 책장을 덮었던 것 같다. 

원래 이 세상에는 있어야 할 것만 존재하고, 일어나야 할 일만 일어나는 거야. 우리들이 알고 있는 아주 작은 상식이니 경험이니 하는 것의 범주에서 우주의 모든 것을 이해했다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만 상식에 벗어난 일이나 경험한 적이 없는 사건을 만나면 모두 입을 모아 저것 참 이상하다는 둥, 그것 참 기이하다는 둥 하면서 법석을 떨게 되는 것이지. 자신들의 내력도 성립과정도 생각한 적 없는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나? - 23p



종교란, 다시 말해서 뇌가 마음을 지배하기 위해 만들어낸 신역이라는 궤변이니까. - 32~33P



우리들의 생은 복잡해짐으로써 보장되는 것과 같으니까 - 175p



생물은 아이를 낳기 위해 사는 셈이로군. 그리고 그 아이도 아이를 낳기 위해 태어난 것이고. 하지만 그렇다면 씨를 보존하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고, 살아 있는 것 자체에는 의미가 없다는 뜻이 되네. 생물이란 대체 뭔가?

아무것도 아니야. 의미 따윈 없네. 그런 거야. 아니 그런 것이었네. - 332p



당신이 한 짓은 잘못되었어요.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자애로 가득한 어머니의 이해와 포용력, 그리고 낡은 인습을 끊어낼 용기와 근대성이었습니다. - 57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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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골의 꿈 1
시미즈 아키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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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9.1 






 만화 <광골의 꿈>은 내가 가장 처음 접한 교고쿠도 시리즈 작품이다. 무려 7년이 지나 다시 읽었고 그 사이에 나도 제법 내공이 쌓였을 테니 전보다 수월하게 읽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허튼 기대였다. 중간까지는 무난하게 읽었지만 후반부에 교고쿠도가 등판하자마자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의 장광설은 이 시리즈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묘미지만 그의 얘기를 쫓아가다 보면 작작해줬으면 싶은 순간이 수시로 찾아온다. 그런 의미에서 교고쿠도의 등장 횟수가 적은 것이 오히려 독자를 배려한 작가의 연출이 아니었을까 싶다. 너무 후반부에 등장해 추리를 주입하는 것은 당혹스럽기 그지없으나, 교고쿠도가 늘 말하듯 사건의 정체를 알고 나면 참 '바보'스러운 지라 최대한 추리 장면을 뒤로 빼는 것이리라 본다. 

 하지만 이 작품의 사건을 과연 바보스럽다고 봐야할는지는 잘 모르겠다. 일단 교고쿠도야 아예 사는 세계가 다른 천재적인 인물이니 그렇다 쳐도 독자 중에 작중에 제시된 단서만으로 사건의 진상은커녕 윤곽을 파악할 사람이 몇 있을까 싶다. 이미 시리즈 1편부터 공정한 추리소설의 범주에서 한참 벗어나긴 했지만 <광골의 꿈>은 전편 <망량의 상자>보다 훨씬 심하다. <망량의 상자>는 관련이 있어 보였던 사건이 별개의 사건이었던 것과 달리 <광골의 꿈>은 관련이 없어 보였던 사건이 사실 하나의 사건이었다는 차이가 있는데, 사건의 성질이 어떻든 간에 참 복잡하게도 꼬아서 한 번에 독파하지 않으면 내용 파악에 애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가령 얘는 누구고 그 사건은 무엇이며 그건 또 무슨 개념이냐... 장르의 특성상 정보를 많이 다루는 추리소설은 원래 한 번에 독파하는 것이 감상함에 있어서 일종의 철칙이긴 하나 이 시리즈는 정도가 심하다. 분량도 길고 내용도 어려운데 한 번에 독파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버거운... 정말 난이도 높은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 만화판 <광골의 꿈>을 원작 소설보다 높게 치는 데엔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까다로운 반전을 교묘한 작화로 그럴싸하게 소화한 것과 소설에서 묘사된 것보다 매력적으로 등장한 캐릭터들의 모습 덕분이 크다. 캐릭터 소설이란 정체성도 강한 시리즈이기에 캐릭터들의 매력이 직관적으로 와 닿는 만화 쪽이 더 몰입될 수밖에 없다. 1화에서의 이사마와 아케미의 묘한 성적 긴장감이 흐르는 상황도 흥미로웠고 세키구치 못지않게 답답함을 유발하던 후루하타와 등장이 짧은 게 아쉬웠던 우타가와의 호탕한 모습, 비록 전편보다 등장 횟수나 활약은 적어졌지만 시리즈 레귤러 4인방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캐미 등은 이야기를 다채롭게 꾸며줬다. 그리고 '악당'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는 캐릭터들의 답이 없는 수준의 사악함을 향한 이 작품의 비판 의식은 제법 유익하게 읽혔다. 이러한 전근대적인 가치관을 향한 비판 의식은 1편 <우부메의 여름>에서도 다룬 것이지만, 이 작품에선 무려 교고쿠도도 자신의 내공으로도 감당하기 힘들겠음을 인정하는 상대가 나오는 터라 제법 절망적인 기분을 안겨주기까지 했다. 시리즈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느끼지만 인간이 과거로부터 이어진 악습을 끊어내기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지 않나 싶다. 시간이 해결해주리라 믿고 싶지만 몇 백 년에 걸쳐 맹신하는 치들을 보노라면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낙관적으로 들린다. 

 이야기의 흑막이라고 할 수 있을 종교인들의 정체며 그들의 맹신적인 믿음이 너무나 초현실적이라 그들의 정체를 하나하나 밝혀내는 교고쿠도의 장광설은 명쾌하게 들리지 않고 혼란스러움만 가중시켰다. 뿐만 아니라 막판에 살인사건의 인과도 적잖이 복잡해 정작 범인의 동기나 사건 수사를 방해한 인물의 심리도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너무 많은 정보가 주입돼 정리되지 않았는데, 마지막엔 뒤가 궁금하다고 계속 페이지를 넘기는 대신 이해할 때까지 반복해 읽는 과정이 필요했다고 본다. 그런데 후반부에 전개가 너무 빠른 것에 비해 주입되는 정보량이 많아서 일일이 이해할 때까지 곱씹기를 반복하는 것도 지겨워져 나도 모르게 될 대로 되라며 반쯤 정신줄 놓고 읽었던 기억이 난다. 


 원작 소설보다 괜찮게 읽었지만 여전히 어려운 내용이라 시리즈 다음 작품인 <철서의 우리>를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원작 소설은 상중하 세 권으로 나뉘어졌는데 듣기로 시미즈 아키 작화의 만화는 5권으로 끝난다고 한다. 국내에 아직 번역 출간되지 않았는데 만약 출간된다면 사서 읽어볼 생각이다. 원작의 어려운 내용은 어려운 그대로 옮기되 시각적으로 이해하기 쉽도록 그 작가의 재량은 정말 믿을 만하다. 그야말로 임자가 만화화를 맡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시리즈의 악명이 겁나는 독자라면 만화로 먼저 입문하는 것도 꽤 괜찮은 시도라고 단언하겠다. 

 예전엔 곧 죽어도 원작 먼저 접하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다른 작품은 몰라도 '교고쿠도' 시리즈는 만화로 먼저 접하고 만화의 이미지를 기억 속에 저장한 채 원작을 읽는 게 더 도움이 된다고 본다. 그래야 원작 시리즈의 맛도 더 매력적으로 느껴질 확률이 크다. 원작 먼저 읽었다간 형이상학적인 대화만으로 기본 100페이지 채우는 전개에 질리거나 이 다음 장면이 재밌으리란 확신이 들기에 다소 호불호가 갈릴 테니 어지간하면 만화로 먼저 접하는 걸 추천한다. 

구원이란 하는 쪽이 아닌 받는 쪽의 문제일지도 몰라. 인간이 신이 아닌 인간에게 구원받는다면 그 또한 신의 뜻이겠지. - 4권 제 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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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혈맥 4
야스히코 요시카즈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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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러일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에 만주에 있는 광개토대왕릉비를 찾아간 일본인 역사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만화는 흥미로웠던 도입부와 지루한 중반부를 거쳐 역대급 용두사미의 전개를 내며 결말을 짓는다. 중반부가 지루하긴 해도 내게 일본 근대사가 생소해서 그런 거지, 원체 다사다난했던 시대인 터라 나름대로 공부하는 맛으로 읽어나갔는데 결말에서, 그것도 최종화에서 그런 식으로 결말을 짓는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캡틴 아메리카식 전개도 나쁘지는 않은데, 그렇다면 거기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대다수의 독자들의 추측대로 일본에서 역사물은 원하는 대로 이야길 풀어내고 끝맺기가 무척 쉽지 않은 모양이다. 안 그래도 일본의 정서가 역사를 직시하는 것을 민감하게 여기는데 본작에선 천황에 대해 다소 '무례하게' 묘사하기까지 하니 작가가 생명의 위협 같은 걸 느꼈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에 한국인으로서 퍽 재밌게 읽혔던 건데. 주인공이 못미덥고 철부지 같은 면이 있어 답답함을 유발하지만 그런 인물이 뭔가 역사의 한 획을 그을 것 같아 기대됐고,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장면을 이 일본인 만화가가 어떻게 그릴 것인지 궁금해 크고 무거운 책을 독파했던 것인데... 


 전쟁 중에 역사를 탐구한다니, 이 무슨 팔자 좋은 소리인가 싶지만, 당시 일본은 조선을 순조롭게 병합하기 위해 일본과 조선의 조상은 같다는 내선일체라는 주장을 해댔고 그 근거를 역사학자들을 동원해 찾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 듣기엔 조상이 같다고 순조롭게 병합에 응할 나라가 어딨겠느냐고 비웃고 싶지만, 당시에는 자신의 정체성을 곧 국가와 동일시하는 사람이 많았고 그러한 성향은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다른 나라나 대동소이하지 않았나 싶다. 정작 주인공을 비롯해 주인공의 은사, 작중에 등장하는 대다수의 역사학자들은 내선일체를 지지하고 그를 위해 얼마간의 역사적 증거를 조작하는 짓을 거부하지만. 식민지라는 치욕적인 경험이 있는 우리나라에선 자주 간과되는 사실인데, 그 당시 일본인들 모두가 군국주의를 찬양하고 식민지 합병에 적극 동조한 것은 아니다.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진 지식인과 처세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동조한 척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사람들은 역사에 잘 기록되지 않는 것 같다. 

 러일 전쟁에서 이기고 조선도 순조롭게 집어삼킬 듯하지만, 거대한 역사적 움직임엔 당하는 입장 못지않게 피해를 가하려는 입장도 상당한 각오가 동반된다. 이래나 저래나 큰 혼란이 끊이지 않는 시기였고, 상대적으로 일본 본토는 평화로운 편이었지만 그 안에서도 곧 벌어질 예정인 역사적 대사건의 발발에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이 작품은 제법 잘 그려냈다고 본다. 대체로 어렵고 무거운 이야기임에도 개성적이고 매력적인 캐릭터, 아기자기하고 코믹한 장면은 분위기를 환기시켜줬고 그 덕분에 진행이 좀 느린 것 같아도 후반부에 주요 인물이 하나의 무대에 모이자 반가움과 흥분을 감추지 못했는데... 주인공 아즈미 혼자 냉동 인간이 돼 현재로 넘어오게 되는 결말 때문에 나는 지금도 황당함이 가시질 않는다. 


 작가의 다른 대하 역사물인 <무지갯빛 트로츠키>와 <왕도의 개>도 용두사미라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작품처럼 심하지는 않다고 한다. 아니 그건 당연한 건데... 어쨌든 용두사미라고 하니 망설여진다. 일단 책들의 무게와 분량이 어마어마하고 가격도 부담되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게다가 역사물이잖은가. 실제로 이 작품을 읽을 때도 4~50% 정도는 뭔 소리인지 못 알아들은 채 문맥으로 내용을 파악해야 했다. 

 다시 말하지만 굳이 냉동 인간이란 설정이 들어가야 했다면 차라리 아즈미가 2016년 병동에서 깨어나는 걸로 이 만화는 시작돼야 했다고 생각한다. 캡틴 아메리카가 딱 그런 설정이잖은가. 이렇게 아무 복선도 전조도 없이 시간대를 바꿔버리는 짓은 긴 이야기를 쫓아온 독자를 우롱하는 짓이나 다름없다. 설령 극우한테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해도 쉽게 용인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냉동 인간 설정 자체는 그 나름대로 여운을 남기긴 하지만 이게 최선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작품에서 한국과 한국인을 묘사하는 방식이 사뭇 신선한 데가 있어 그것만으로 눈길이 갔기에 한국인으로서 거슬렸던 전개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건데... 고작 이런 결말을 보기 위해 그 긴 이야기를 쫓아갔다니, 이렇게 허무할 수가 없다. 

진실에도 알고 싶은 진실이 있고 알려지길 바라지 않는 진실도 있어요.

결정하는 것은 결국 거대한 힘이죠. - 4권 4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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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의 내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3
하라 료 지음, 문승준 옮김 / 비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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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전편 이후로 14년만에 출간된 이 후속작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전편 이상으로 실망스러웠다. 그나마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에선 금방 출간됐기에 망정이지, 정말로 일본 독자들처럼 10년 넘게 기다린 결과물이 이거라면 속이 부글부글 끓었을 것 같다. 사실상 시리즈에 대한 애정과 캐릭터들의 캐미, 찰진 대화에 의존하며 읽었지 순수하게 흡입력이 넘치는 이야기라 완독에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어찌나 논점을 알기 힘든 이야기던지 두 번의 시도만에 완독할 수 있었다. 처음엔 내가 이해를 못해서 재미가 없는 건가 싶었지만 두 번째 읽으니 설령 완벽하게 이해를 하고 파악을 마쳤다 해도 변함없이 재미없을 이야기란 결론이 나왔다. 

 전편에 비해서 재미가 없다는 것도, 기대가 커서 실망이 컸다는 얘기도 아니다. 책 뒤에 소개된 '소설의 진정한 재미, 그것만을 생각하며 쓰고 또 썼다'는 작가의 말이 무색하게 소설의 진정한 재미를 논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서사를 지니고 있는 작품이었다. 행방이 묘연한 의뢰인을 쫓는 전개는 전형적인 하드보일드스러운 도입부였고 사와자키가 탐문을 하는 이상한 집념, 니시고리를 비롯해 경찰에게 유난히 비협조적인 태도, 이번에도 어김없이 개입되는 세이와카이 등 이미 전편에서 다룰 대로 다룬 서사이고 이번이라고 흥미롭게 비틀지도 않는다. 지나치게 아날로그적인 사와자키의 모습도 작위적으로 비쳐졌고 - 전화 안내원은 덤이다 - 작품 말미에 녹아든 3.11 대지진에 대한 언급이나 감상도 다소 구태의연해 14년의 집필 기간치고 여러모로 애매한 깊이감을 지닌 작품으로 다가왔다. 하도 오래 고치고 쓰고를 반복했으니 시의성이 떨어지는 건 이해하겠지만, 가이즈란 캐릭터의 골때리는 면모와 은행 강도 장면 저도를 제외하면 의뢰인의 행방이나 의뢰의 동기 등 전편과 비교하나 객관적으로 보나 하드보일드적인 서사로 풀어내기에 보잘것없어서 내가 애당초 이 시리즈를 왜 좋아하게 됐는지도 가물가물해질 지경이었다. 


 데뷔작은 분명 이렇지 않았는데. 두세 장에 한 줄씩은 메모를 하고 싶을 정도로 문장력도 뛰어났고 복잡하지만 냉소적이고 분위기 넘치는 플롯과 사건 묘사는 이 작가를 가히 '아시아의 챈들러'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겠는데 싶을 정도의 '품질'을 자랑했다. 매번 이만한 품질의 작품을 선보이니 도가 지나쳤다고 말해도 무방할 만큼 과작 작가임에도 독자들이 이해해준 것인데... 2부 들어서 작풍만이 아니라 품질도 저하돼 내 눈이 의심스러웠다. 차라리 작품을 빨리 쓰던가, 아니면 20년, 아니 30년이 넘어도 좋으니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완성도의 작품을 쓰던가, 어느 한쪽을 잘 골랐으면 좋겠다. 

 일단 후속작이 나오면 읽긴 할 텐데, 이 작품의 마무리가 영 어정쩡해서 후속작에서 잘 이어나갈지 약간의 궁금증이 일기 때문이다. 그 안에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부터 읽어야겠다. 뭐랄까, 흐릿해진 눈을 그 작품으로 정화시켜야겠다. 

묻지도 않은 말에는 대답할 수 없지. 물어봤다 해도 답하고 싶지 않은 질문엔 대답하지 않아. 그다지 자랑은 아니지만 탐정도 그런 점에서는 경찰과 같아서 말이지. - 33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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