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살인게임 - 왕수비차잡기 밀실살인게임 1
우타노 쇼고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9.8


스포일러 있음


 정말 오랜만에 읽은 <밀실살인게임>이지만 처음 읽을 때처럼 재밌게 읽었다. 사실 설정 못지않게 5명의 캐릭터가 선보인 트릭이 모두 인상적이라 10년이 지나 다시 읽음에도 어제 읽은 것처럼 선명히 기억났지만 그럼에도 지루하지 않았다. 설정의 신선함과 충격엔 내성이 생겼지만 대신 캐릭터들이 개성적이고 캐미도 상당해 꼭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를 보는 기분도 들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작중 시점이 2010년도 되지 않았음에도 전혀 옛스럽게 읽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화상 채팅 같은 기술적인 차원이 아닌 마치 오늘날에도 이와 같이 익명성에 기댄 반윤리적인 놀이, 아니 행위를 서슴지 않고 저지르는 인간들이 있음을 예견하는 것 같아 작가를 다시 보게 됐다. 데뷔작은 전형적인 본격 미스터리였지만 이후 굵직한 사회파 추리소설도 몇 편 집필해온 작가답게 본격의 끝판왕인 요번 소설에서도 작가의 날카로운 시선, 미쳐 돌아가는 사회를 꼬집고 파헤치는 사고의 편린도 느껴져 마냥 엔터테인먼트 소설이라고만 여겨지지 않았다.


 작가가 작중 인물들에 빙의해 인명을 장난감처럼 여기는 언동을 실감나게 구사하다가도, 몇 걸음 물러나 얘네 꼬라지를 관조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드는 등 전반적으로 선을 넘지 않고자 작가가 노력하는 느낌이 들었다.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설정이기에 오히려 꼭 필요한 자세였을 텐데, 만약 그렇지 않고 정말 흥미위주로 살인게임과 트릭을 다뤘더라면 진즉에 19금 조치를 당하거나 정말 최악의 경우엔 이 작품을 읽고 잘못된 사고방식을 가져 모방범이 탄생하는 결과마저 유발됐을지 모른다.

 물론 잔인한 추리소설이라고 해서 그걸 접한 독자들이 다 모방범이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살인게임의 다섯 멤버가 모두 추리소설을 탐닉하다 못해 직접 탐정과 범인이 되는 게임을 주최한 자들이므로 작가의 입장에서 보자면 자신이 탄생시킨 캐릭터들로 인해 작품이 일말의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경시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때문에 뭐든 쉽게 싫증내고 돌발행위의 가능성이 가장 다분한 두광인을 이야기의 주역으로 설정해 막판에 그 난리를 치도록 결말을 지었던 것일 터다. 선을 넘은 스릴에 중독된 자, 타인뿐 아니라 결국 자기자신도 좀먹는다. 어떻게 보면 허무하면서도 어울리는 결말이었다고 본다.


 그런데 말이 나와서 말인데 두광인이 러시아룰렛을 한 데엔 단순히 스릴만을 위해서였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aXe가 비슷한 의문을 갖고 두광인을 말리려 하자 그녀는 딱 잘라 코웃음을 치지만, 초조하게 수다를 떨던 그 태도는 어떻게 봐도 정상적이지 않아 내심 자신의 오빠인 044APD를 죽인 것이 원인이었나 하는 추측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두광인은 친오빠를 죽여서가 아니라 그 친오빠가 정말 우연찮게도 자신과 같이 게임을 하는 동지인 044APD인 것에 큰 충격을 받은 것일 수 있다. 언젠가 크게 한 방 먹여주고 싶던 경쟁자이자 게임을 같이 할 정도로 비슷한 수준으로 정신나간 동지를 자기 손으로 죽인 것에 대해 두광인 나름대로의 뒤틀린 상실감을 느꼈고 러시아룰렛에도 그 상실감이 알게 모르게 작용했던 게 아닐까. 사실 이 부분은 독자가 해석할 여지로 작가가 남겨둔 부분이라 뭘 얘기해도 정답이라고 할 수 있을 테지만, 이런 두광인의 미친 짓이 불러일으킬 <밀실살인게임 2.0>, <밀실살인게임 마니악스>에서의 후폭풍을 생각한다면 나는 작가가 이와 같이 결말을 낸 데엔 도덕성이 함몰된 인터넷 세계의 범죄자들은 결국 자멸에 이르게 된다고 조소하기 위함이 크지 않았나 싶다.


 마지막으로 작중에 나온 트릭에 대한 감상을 풀고 이 글을 끝마치려 한다. 그래도 명색이 게임을 하는 개념으로 집필된 작품인데 너무 진지한 얘기만 한 것 같아서...


 aXe의 십이지 미싱 링크는 작중에서 첫 번째로 소개된 트릭인데, 도쿄 지리를 모르면, 또 나라마다 다른 십이지 동물을 알지 못하면 공정한 추리가 성립하지 않아서 약간 시큰둥한 자세로 읽을 수밖에 없었다. 기발한 건 인정하는데, 게임 참가자들도 입을 삐죽거릴 만큼 질질 끌어서 그 점은 아쉽다. 하지만 이 문제를 위해 피해자를 대략 서른 명 정도 선정했다는 출제자와 그런 말에 감탄 일색인 게임 참가자들의 모습을 통해 작품이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정신나간 행보를 보이리란 불안과 기대를 선사한다는 점에서 미싱링크는 나쁘지 않은 출발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잔갸군의 트릭은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 여담이지만 2.0에서도 엄청난 트릭을 선보인다... - 044APD 다음으로 뛰어난 추리력을 갖고 있는 인물인 만큼 문제에도 기발한 발상, 그리고 잔학하단 뜻의 닉네임답게 잔학성이 담긴 알리바이 트릭이 개성적이라 순수한 의미에서 감탄했다. 이런 미친 놈을 봤나.


 반도젠 교수는 5명 중 최약체로 추리력도 문제를 만드는 발상도 가장 떨어진다. 뭐, 문제를 만드는 발상은 아무래도 학교에 다니는 미성년자니 제약이 많다고 치더라도 추리력은... 아무튼 여행 미스터리, 알리바이 트릭이란 컨셉을 집중적으로 선보이는 출제자인데, 내가 최근에 여행간 호찌민을 등장시킨 문제를 출제한 것, 그리고 은근히 허당이란 것과 말투까지 이래저래 트릭의 완성도와 별개로 개인적으론 호감이 가는 캐릭터였다. 그럼에도, 살인게임에 능동적으로 참가하고 문제도 출제하는 등 묘한 서늘함을 주기도 해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겉으론 호감이 가는 인물이라 하더라도 실상은 인면수심의 살인마일 수도 있다...

 044APD는 가장 사교성 떨어지고 쉽게 말해 개념이 없으며 그 점은 트릭에도 여지없이 반영된다. 간단하지만 실현 불가한 트릭이라 잔갸군 못지않게 큰 인상을 남겼는데, 개인적으론 트릭보다 이 인간이 천장에 숨어서 엿들은 가족의 대화를 소설처럼 써내 힌트로 제공한 게 더 소름 끼쳤다. 게임의 다른 참가자들이 살인마라면 이놈은 진짜 악마라는 느낌이 들었달까. 그리고 여담이지만 044APD가 쥐를 죽여서 가족을 놀라게 했다는 대목에서 몇몇 참가자들이 거부감을 보인 것엔 정말 헛웃음이 나왔다. 게임을 위해 사람은 죽이면서 쥐를 죽이는 건 거부감이 있다? 실소가 다 나왔다.


 하지만 자기 가족을 죽이는 두광인에 비하면 다른 놈들은 약과다. 원한이 있어서도 아니고 가장 죽이기 쉬운 가족이 오빠여서 죽인 것도 그렇고, 자기 사생활을 걸고서 쓸 만한 트릭이란 생각에 망설임 없이 저지른 것도 머릴 지끈거리게 만드는 부분이다. 하지만 익명성에 기대 살인을 저지른 살인마에게도 내심 자기 정체를 밝혀 자랑하고 싶은 욕구가 있음을 통찰한 작가에 의해 두광인은 이 게임 자체를 파멸시켜버리는 미친 행보를 보이게 되는데...

 머지않아 2편을 읽을 거라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는 거기서 마저 풀도록 하겠다. 그런데 내 기억에 2편과 3편은 이야기나 트릭이나 1편에 못 미쳤던 것 같은데... 그래도 읽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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