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화해하기 - 관계가 내 마음 같지 않을 때, 그림이 건네는 말
김지연 지음 / 미술문화 / 2020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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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명화를 소재로 한 에세이나 서적을 보면 알게 모르게 저자들의 주제의식이나 말하는 바가 대동소이한 경우가 많다. 레퍼토리도 비슷하고 명화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거의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전달하는 경우도 많고 심지어 다루는 명화들의 구성도 흡사하기까지 하다. 이는 독자 입장에서 알아서 걸러 읽었더라면 마주치지 않았을 아쉬움이긴 한데,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대개 책이라는 물건은 저자의 문장력이 아주 형편없지 않은 이상 적어도 50페이지까지는 신선하게 읽히기 마련이다. 그렇게 독자들을 낚은 책들은 뒷심과 신선함이 부족한 중후반부에 도달하게 만들어 괜찮았던 첫인상을 뒤집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그림으로 화해하기>는 비록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으나 명화를 통해 저자가 개인적인 아픔을 위로받았거나 막막한 세상살이를 이겨낼 수 있을 만한 일종의 실마리를 얻었음을 약간 장황하긴 해도 진정성 있게 풀어낸다. 각 장마다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의식도 다양하고 무엇보다 다루고 있는 명화가 정말 유명한 작품이 아닌 것들도 많이 선정했고 심지어 이름을 처음 접해본 화가가 많아 그것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충분했다. 거기다 내가 제일 마음에 들고 저자를 신뢰할 수 있던 부분은 바로 저자가 현대 예술에 대해 갖는 시선이었다. 자기가 봐도 이게 왜 유명한지 바로 와 닿지 않는다거나 어쩌면 내가 범인이라 이해를 못하는 것이지 훗날 엄청난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는 등의 문장은 겸손하면서 솔직해 호감이 갔다. 그리고 다행이게도 그 호감은 끝까지 유지됐다. 


 로트레크나 젠틸레스키, 쿠르베, 피카소, 세잔, 밀레처럼 익히 알려진 화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은 그리 새롭게 읽히지 않은 반면 제일 첫 장에서부터 소개된 에밀리 메리 오즈번처럼 생소한 화가에 대한 소개나 아니면 고흐와 벨라스케스처럼 유명 화가가 그린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작품에 대한 저자의 감상은 인상적이었다. 케테 콜비츠와 무리요가 그토록 따뜻한 화풍의 화가임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것도 값진 경험이었고 무엇보다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 세계에 대한 저자의 감상이 평소 내가 느꼈던 것과 비슷해 반갑기도 했다. 오늘날 봐도 굉장히 현대적인 감성이 충만한 호퍼의 그림에서 쓸쓸함보다 편안함이 느껴진다는 말은 정말 공감했다. 때론 독립되고 적막할 수도 있는 분위기여야 느껴지는 안도감도 있는 법이다.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란 점에서 이 책을 읽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글인 것 같다가도 꽤 전문적인 미술 지식이나 역사가 튀어나와 지식을 습득하는 맛이 있었고 평소 잘 모르는 화가도 많이 소개받아 전반적으로 만족도 높은 책이었다. 책에 수록된 모든 글의 퀄리티가 고르지 않고 약간 기복이 있는 편이었지만 적어도 '그림을 통해 세상과 화해했다'는 추상적인 개념만큼은 제대로 전달해 약간 과할지언정 불필요하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저자가 출간한 책이 딱 이 책 한 권밖에 없던데 나중에 새로운 책이 출간된다면 찾아 읽을 의향이 있다. 새로운 책의 출간이 머지않았길 바란다. 

고통으로 가득한 삶의 시간을 버텨 내는 것에 어떠한 가치가 있을까? 나는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무의미한 바람을 떨치기 어렵다. 그때의 일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씩씩하게 그 시간을 극복해 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극복이라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그것을 향해 계속해서 나아가는 과정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 58~5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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