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나는 타이어
이케이도 준 지음, 민경욱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9.9







 중고 서점이 활성화된 후로 정말 고마운 마음으로 자주 이용하고 있다. 책을 팔 수도 있고 읽고 싶던 책을 싸게 살 수 있는 중고 서점의 이점은 내 독서 생활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의 만만치 않은 가격이나 늘어가는 책의 보관 같은 성가신 제약들에서 자유로워진 것이 새삼스럽지만 늘 반갑다.

 이러한 반가운 시스템은 다름아닌 중고 서점에 책을 파는 고객들에 의해 성립된다. 나 역시 책을 많이 팔았는데 대체로 두 번 읽을 정도로 재미는 없는 책, 혹은 어떤 식으로든 참고할 가치가 없는 책들을 팔았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기준을 들어 책을 파는지 모르겠는데, 간혹 중고 서점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의 대어를 발견할 때도 있다. 도대체 이 책을 판 사람은 누굴까 하며.

 서두가 너무 뜬금 없었는데... 이 책 <하늘을 나는 타이어>는 중고 서점에서 무려 1/3의 가격을 주고 구한 책이다. 싼 가격치곤 상태도 너무 좋아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놀라울 지경이다. 심지어 내용도 나무랄 데가 없으니 정말 말 다했다.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의 원작 소설을 쓴 것으로 유명한 이케이도 준의 몇 안 되는 국내 출간작 <하늘을 나는 타이어>를 읽었다. 수상작이 없던 136회 나오키상 후보작 중 하나였고 드라마로 2차 창작되어 원작엔 없던 상복을 가진 듯 드라마 관련 상을 거의 휩쓸다시피 했다고 한다. 이 작품과 더불어 방금 언급한 <한자와 나오키>와 나오키상 수상작인 <변두리 로켓> 등 이케이도 준은 드라마화된 원작을 다수 보유한 작가인데 어느 하나라도 접하면 도대체 이런 작품을 드라마화하지 않으면 뭘 드라마화할까 싶다. <한자와 나오키>에서 느낀 쾌감과 전율이 어디 가지 않았구나.

 책을 짧게 짧게 읽는 내게 이례적으로 새벽 3시까지 손을 못 떼게 만드는 흡입력을 이끌어낸 작품이었다. 억울해 미치겠는 사연의 주인공이 맞이할 결말은 물론이거니와 그 빌어먹을 호프자동차의 최후를 목도하는 것을 도무지 뒤로 미룰 수 없었던 것이다. 해피엔딩이 아니면 가만둘까 보냐는 심정으로 전에 없이 분노에 불타며 책장을 넘겼던 새벽의 시간은 돌이켜보면 무척이나 즐거운 기억이었다. 여담이지만 난독증 증상이 왔을 때 읽으면 딱 좋은 소설일 듯하다. 어쩜 이렇게 가독성이 있는지 히가시노 게이고, 오쿠다 히데오 못지않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람 미치게 만드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누명이 아닐까 싶다. 특히 타인이 잘못했는데 그게 나한테 불똥이 튀거나 아예 내 소행으로 오인된다면 그것만큼 열받게 하는 것도 없다. 하지만 그런 억울한 사정을 해명하려고 해도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들이 없어 더 화가 난다. 오히려 그렇게 목에 핏줄 세워가며 하소연할 시간에 참는 법을 배우라는 일갈이 날아올 정도니 사람 참 절망스럽게 만든다.

 남의 억울한 심정 따위는 조금도 궁금하지 않은 사람들의 비웃음 섞인 충고는 많은 사람들에게 참고 넘기는 것만이 원만히 해결법인 줄로 여기게 만드는 체념을 심어준다. 물론 체념은 현명한 처신이자 꼴사납지 않으며 심지어 양심적인 자세로까지 받아들여져 사회생활, 나아가 세상살이를 위해 눈 딱 감고 취해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누명의 내용이 도를 넘은 것이라면 얘기는 달라져야만 한다.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심정으로 분명히 잘잘못을 가려야 하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졸지에 '타이어 살인자'가 된 주인공 아카마쓰가 바로 그렇다. 사장인 그가 운영하는 아카마쓰 운송의 트럭이 주행 중에 바퀴가 빠져버리는 사고가 발생한다. 하늘을 나는 타이어는 정말 운 나쁘게도 근처에서 아들의 손을 잡고 걷고 있던 여성의 등을 덮쳤다. 아들의 바로 옆에서 타이어에 맞아 숨진 여성의 사고 소식은 뉴스로 전파되고 이후 아카마쓰 운송의 운명은 나락의 길을 걷게 된다.

 뉴스도, 경찰도, 이웃들도 사고의 원인을 아카마쓰 운송의 정비 불량으로 단정 짓는다. 뿐만 아니라 아카마쓰 운송은 거래처와 거래 은행에서도 지원이 끊기게 된다. 하루하루가 절벽 위에 놓인 것 같은 중소기업에겐 그야말로 죽음을 선고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그 죽음을 타인의 잘못 때문에 선고받은 것이라면? 어떻게 봐도 완벽하게 정비된 트럭임에도 불구하고 타이어가 빠진 것이라면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 것일까? 혹시 이 사건의 배경에는 트럭의 출처인 호프자동차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모든 것을 잃을 처지에 놓인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대결은 한숨이 나오리만치 답도 없는 것이다. 그 이전에 자신의 죄를 인정 않고 발버둥을 치는 썩어빠진 중소기업의 행태로 비춰져 말그대로 아군도 없이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상황 속에서 호프자동차의 부정과 맞서다니... 작중에서 기자가 말하길 유일하게 트럭 사고에 납득하지 못한 아카마쓰답게 그는 자신과 회사의 명예는 물론이고 날아간 타이어에 죽은 어머니를 추억하는 소년이 나오지 않게 실로 고군분투한다.

 실제로 일본에서 일어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 소설은 세상에 버젓이 자행되고 있는 리콜 은폐 사건의 내부를 낱낱이 드러낸다. 온실 속의 화초같은 대기업의 테두리 안에서 군림했던 전근대적이고 안일하고 몰상식한 몇몇 인물들의 모습이 아주 가관이었다. 대기업의 정치로 인해 버젓이 무시된 양심이 어떤 식으로 파장을 불러일으키는지 화끈하게 경고해 속이 시원했다.


 올곧게 누명을 벗으려는 사람, 사내 정치에 휘말려 양심을 시험받는 사원, 사태를 조망하는 제3자, 일상이 무너져내린 주인공의 일상 등 아주 방대한 내용이 들어찬 소설이었다. 그러면서도 지루하지 않았고 오히려 드라마를 보는 듯 심리 묘사가 눈에 시원하게 그려져서 위에서 말했듯 누구라도 한 편의 드라마를 떠올리게 만들 정도다. 하나의 사건으로 말미암은 다양한 드라마를 부족함 없이 감상할 수 있어 좋았고 특히 인간의 양심과 올곧은 정의감, 신념을 절대 저버리지 말 것을 다짐하게 만들어 그 무엇보다도 뭉클했다. 정의라는 것이 이미 낯간지럽게 들리는 만큼 빛이 바랜 가치들이긴 하지만 그 가치를 등졌을 때 무슨 일이 초래하는지는... 굳이 확인해야할 것들이 절대 아니지 않은가.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면 안 돼. 당신 회사의 경우, 그건, 소비자야. - 196p




혐의를 부인해서 더 불쾌하게 만들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납득할 수 없는 혐의를 인정하는 게 오히려 더 무책임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 225p




호프자동차는 대기업입니다. 잘 들으시죠. 그런 회사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은 리콜이 아닙니다, 부정이지. 알겠습니까? - 570p




그보다 사건을 잊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법이나 돈과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 59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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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먼트
혼다 다카요시 지음, 이기웅 옮김 / 예담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9.3






 죽음은 수많은 창작물에서 다뤄져서 진부하긴 해도 진지하게 마주하면 한없이 두려운 미지의 개념이다. 이 세상 살아가는 그 누구도 '죽어본 적' 있는 사람은 없다. 죽음에 이를 정도로 고통스러웠던 사람은 많았지만 결국 죽지 않은 걸 보면 죽음은 상상 이상의 영역의 개념인 듯하다.

 나 역시 죽음이란 무척 추상적이고 솔직히 진지하게 사색해본 적도 없는 대상이다. 아직 어리기도 하거니와 나와는 거리가 먼 개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크나큰 오만이다. 당장 오늘 내가 조조 영화를 보러 가는 길에 버스를 타다 사고를 겪을 수 있지 않은가. 이처럼 죽음이란 느닷없이 마주칠 수 있는 - 이 작품에선 이런 종류의 죽음은 다루지 않지만 - 것치곤 너무 막연하게 여겨온 경향이 있는데 이 작품을 읽고 약간이나마 생각할 시간을 가졌던 게 어딘가 싶다.


 처음으로 접한 혼다 다카요시의 작품을 7년 만에 읽는다는 설렘은 예전만큼 감동을 느끼지 못해 빛이 바랬다. 하지만 당시, 소설을 읽는 재미를 늦게라도 깨달은 나에게 가네시로 가즈키와 이사카 코타로보다 먼저 스타일리쉬한 문체를 선보인 작가라서 상당히 반가웠다. 다시 읽으니 7년 전처럼 참신하진 않았지만 특유의 분위기에 다시금 취할 수 있었다.

 양심적인 차원의 '어떤 빚'을 청산하려는 주인공 간다는 - 주인공 이름이 '간다'다. 오해의 소지가 있을까봐; - 평소에는 병원 청소부, 죽음을 거의 마주한 사람에겐 어떤 소원이든 들어주는 필살 청부업자로 병원 내에서 소문이 나 있다. 책은 간다에게 의뢰를 하는 환자들과의 에피소드로 구성됐으며 추리/미스터리 소설의 묘미가 짙은 반전과 어정쩡하지 않은 사색이 적당히 균형을 이룬 작품이다. 위에서 말했듯 감동이 예전에 읽은 것만 같지 않았지만 처음 읽는 사람에겐 기대 이상의 작품일 것이고 두 번 읽어도 몇몇 포인트에서 여전한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수작이다.


 이래저래 평이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 게 이 작품의 매력이다. 모든 단편이 완성도가 고른데 특히 첫 번째, 두 번째 단편만 읽었을 때는 퍽 신선하기만 할 정도다. 죽기 전에 꼭 이루고 싶은 소망을 떠올리면 꼭 착하고 밝은 이미지가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런 이미지들을 철저히는 아니지만 비웃으며 꼬집는 게 신선했다. 또 명중률이 높진 않지만 간혹 튀어나오곤 하는 유머나 독특한 개성의 캐릭터나 그에 관련한 자잘한 에피소드 덕에 한쪽으로 치우칠 법한 분위기가 환기된 것도 적절했고 무엇보다 이 모든 요소들이 예상치 못하게 이어진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추리소설은 아니지만 전개상 유사한 부분이 있어서 은근히 뒤가 궁금하다.

 추리소설에서 죽음이 으레 도구로 소모되는 것에 질렸다면 이 작품의 낯간지러우리만큼 짙은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더욱 의미가 있을 것이다. 죽음에 이르기 전에 어떻게든 하고 싶은 일이란 게 이토록 예측불허하고 또 사람마다 다 다르게 처신하는 걸 보면 어떤 때는 소름이 돋고 어떤 때는 경악스럽고 어떤 때는 울컥하고 어떤 때는 또 기가 막힌다. 도무지 어쩔 수도 없이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서 이루고 싶은 일이란 건 생각해 보면 무척 궁금한 일이기도 한데 그 안에 담긴 속내들이 작가적 상상이 결합됐음에도, 그리고 죽음을 한 번도 진지하게 마주본 적 없는 나임에도 어째 공감하게 된다.


 육체적 죽음과 더불어 극한의 고통으로 추정되는 마음의 죽음, 그를 잠깐이나마 상상할 수 있는 상상력과 공감 능력이 자연스레 요구되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누구도 넘보지 못한 소재이고 그건 작가도 마찬가지인 듯 꼭 기교를 부려가며 묘사한 감이 있지만 한편으론 가감없고 솔직한 속내란 것도 감상할 수 있었다. 그만큼 전형적이지 않고 입체적이라서 자꾸 생각난다. 그 복수가, 분풀이가, 일탈이, 결심들이. 그리고 한없이 오지랖에 가까운 간다의 여정도.

 생각하기에 따라서 가볍고도 진중하게 다가오는 작품이었다. 느끼는 바가 많던지 작품 말미에서 한 걸음 나아간 간다가 그랬을 듯 나도 삶과 죽음이 마냥 무관하다고 여기지 못하게 됐다. 역자 후기에 인용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 '죽음은 생의 대극으로서가 아니고, 생의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죽음이 삶의 결말이면서 중간 과정에서도 적잖은 존재감을 과시했던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이 그랬으니까. 죽음이 밀접하다 못해 목적의식의 일부로 자리하고 있는 건 비단 일부 사람들만의 이야기는 아닐 테니까.

하지만 사람이 살아간다는 게 그런 거잖아요? 그 사람이 살아 있지 않았더라면, 저 역시 그 사람과 알게 될 일도 없었고 얘기할 일도 없었고 호의적인 감정을 가질 일도 없었겠죠. 살아 있기 때문에 자신이 모르는 곳에서 자신에 대한 호의와 악의, 선의와 미움 같은 감정이 생기겠죠. 그렇기 때문에 제 호의에는 그 사람이 살아 있다는 데 일정 부분 책임이 있습니다. 자기만의 사정으로 멋대로 죽고 싶다면 자신과 관련된 모든 사람의 동의를 구해야죠. - 313p




무엇에 의지하여 살아가는가, 라는 질문을 받으면 누구나 각자 나름의 대답을 준비하리라. 일, 또는 거기서 실현되는 충실감과 만족감, 가족, 그리고 그 안의 애정과 관계 그 자체. 하지만 무엇에 의지하여 죽어가는가, 라는 질문이 날아왔을 때 쉬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최소한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다.

비아냥거림이 아니라, 내가 종교를 신봉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생과 사를 모두 포함한 일련의 압도적인 픽션을, 설령 픽션이라 할지라도 신봉할 수 있다면, 그러한 삶은 풍요롭지 않겠는가. 허나 안타깝게도 나는 신앙을 갖고 있지 않다. 앞으로도 가질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그렇기에 나는, 죽음이란 존재를 살아가는 동안 어떤 방식으로든 간에 내 안에 구축해야만 한다. - 329~33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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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에게 고한다 미스터리, 더 Mystery The 10
시즈쿠이 슈스케 지음, 이연승 옮김 / 레드박스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9.0






 제법 화끈한 제목의 이 소설은 기대대로 화끈하게 시작됐다. 유괴 사건을 수사 지휘했지만 범인 검거에 실패하고 희생자가 나오자 유족들과 매스컴의 집중 포격을 받는 주인공이 버럭하는 것에서 예견된 비극, 그 비극이 낳은 주인공의 증오심이 어떻게 치닫게 될 것인지 너무도 궁금했던 소설이다. 그렇다 보니 630페이지가 넘는 분량은 전혀 두껍게 느껴지지 않았다. 모든 것을 바로잡기 위한 고군분투만큼이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게 또 있던가?

 매스컴의 질타를 받고 조직에서 좌천당하고 유족에게 범인만큼이나 씻을 수 없는 상처까지 안긴 주인공 마키시마, 온갖 감정을 뒤안은 채 살아가던 그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유괴 사건과 비슷한 성질의 사건, 더 나아가 극악무도한 남아 유괴 살해 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함에도 범인을 잡지 못하고 그 범인이 방송국에 협박 편지를 보내는 등 짐승과도 같은 행보를 일삼는다. 자신의 범죄를 과시하는 정신 나간 내용, 도무지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쓸 수 없는 장난스럽고 유치한 사상. 이른바 극장형 범죄로 하여금 세상의 반응을 즐기는 범인에게 맞서 과거에 매스컴에 노출된 적이 있는 마키시마는 '극장형 수사'를 펼치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TV 보도국과 반목하지 않고 오히려 손을 잡고 수사를 펼쳐나가는 전개가 신선했고 그와 동시에 범인만이 아니라 세상의 곱지 않은 시선에 둘러싸여 철저하게 고독해진 주인공의 활약이 그 무엇보다도 기대됐던 소설이다. 자신의 실수와 더불어 경찰 조직의 정치적 입장에 맞물려 나락으로 떨어진 걸 반면교사 삼은 마키시마가 이번엔 범인을 잡을 수 있을지, 그 귀추가 무척이나 주목됐다. 그 과정은 험난하기 이를 데 없지만 과연...?

 기대했던 만큼 후반부가 지루해서 많이 아쉬웠다.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이야기의 실타래가 풀리는 느낌은 드는데 그게 너무나 서서했다. 분량이 이렇게까지 길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에선 자유로울 수 있어도 이렇게 느리게 진행될 필요가 있었느냐는 질문에서 할 말이 없을 듯하다. 아무래도 매스컴에 관해 묘사한답시고 우에쿠사와 스기무라의 이야길 집어넣은 게 원이었다. 이 둘의 관계는 마키시마의 수사에 어떤 식으로든 훼방을 놓아 극의 긴장을 불어넣긴 했지만 다소 어정쩡했다. 작품이 풍성하게 보이는 역할은 해줬으나 본문과 따로 놓는 감이 없지않아 있어 점점 몰입을 방해할 뿐이었다.


 마키시마의 언론 플레이와 함정 수사는 그래도 볼만 했지만 긴 분량을 할애해가면서 읽어온 것치곤 의외로 싱겁게 잡히는 범인을 보노라니 김세기도 했다. 중간중간 분명 긴장감을 조성됐고 또 분노를 요하는 부분 또한 있었지만 정작 잡혀버린 범인은 그 인상이 너무나 흐릿해서... 마키시마의 말마따나 그런 흐릿한 인상의 범인이라서 더 무시무시했던 것이려나?

 아무튼 약간 지지부진한 감은 있지만 자신을 괴롭힌 감정의 편린들을 거의 원만히 떨쳐버려 개운하게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막판에 신파 비슷한 사족이 격하게 사건 속에 개입돼서 좀 질릴 법도 했는데 주인공이 속죄를 하는 아주 중요한 포인트를 이끌어냈기에 그리 불만족스럽진 않았다.

실패한 정치가가 책임을 지던가? 지지 않지. 그리고 정말 유능하다면 그런 것과 상관없이 어디서든 영향력을 발휘하기 마련이야. 회사를 위기에 빠뜨린 경영자는 어떻지? 그가 만약 유능하다면 회사를 떠난 바로 다음 날, 다른 회사의 중역으로 스카우드될 거야. 자네는 그걸 책임졌다고 할 수 있겠나? 이 세상은 그렇게 만들어져 있어. - 174~17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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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도둑
매튜 딕스 지음, 노은정 옮김 / 까멜레옹(비룡소)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9.9







 이사카 코타로는 어느 작품에선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살인을 저지를 순 있어도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성추행을 저지를 순 없지 않느냐고 했다. 같은 범죄자라 할지라도 범죄의 성질이나 정도에 따라 사람들의 평가는 갈리는 법. 반면에 같은 종류의 범죄임에도 범인의 가치관이나 행적에 따라 평가가 극명히 갈리는 경우도 있다. 돈 없는 사람들이 쉽게 도둑질을 범하는 걸 보면 어째 좀스럽게 느껴지다가도 도둑질을 위해 살인도 불사하는 얘길 들으면 내가 다 기분이 착잡해지며 홍길동이나 괴도 뤼팽 같은 의적을 보면 현실에 이런 도둑이 얼마나 있을까 싶지만 말이다. - 생각이 또 달라진다.

 의적. 사전을 뒤져보니 탐관오리의 재물을 훔쳐다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의로운 도적이라고 한다. 탐관오리 운운하는 걸 보니 옛날부터 이런 도둑이 몇 있었는가 보다. 어쨌든 도둑질이고 범죄임엔 틀림없지만, 의적이란 단어를 들으면 도둑질에는 분명 다른 범죄에서는 풍기지 않는 매력이라는 게 있지 않나 싶다. 반드시 도둑이 될 것이라고 부르짖는 사람은 없지만 도둑의 행적이 멋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많은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도둑들>이 이를 어느 정도 반증하리라. - 듯하다. 굳이 의적에 한하지 않더라도 뉴스에서 접하는 기상천외한 도둑들을 보면 순수한 마음에서 대단하다고 감탄하지 않던가? 물론 그 감탄 뒤에는 저 머리로 다른 일을 했더라면.’ 이라고 혀를 차곤 해도 말이다.

 

 가끔 집을 정리하다 보면 어떤 물건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리 찾아봐도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착각을 했던가 하며 넘기곤 한다. 그런 착상에서 떠오른 게 바로 이 작품의 주인공 마틴이다. 마틴은 아주 특별한 도둑 이 작품의 원제는 <Something missing>이다. 원제나 우리나라 제목이나 거기서 거기다. - 으로 치밀하면서도 무해無害에 가까운 도둑질을 행사한다. 마틴은 현장에 15분 이상 시간을 할애하지 않으며 절대로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물론 사람이 하는 일인 이상 흔적은 알게 모르게 남긴 했을 것이다. 하지만 마틴이 훔치는 물건의 성격상 절대로 그 흔적이 들춰질 일은 없다.

 마틴이 훔치는 물건은 가령 예를 들면, 냉장고에 넣어 놓고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홈쇼핑 음식이나 두루마리 휴지 몇 개나 서랍장 구석에 있는 오래된 접시 같은 것들이다. 있었는지 아예 인식도 못하는 물건이나 설령 없어진 걸 알았다고 해도 대수롭지 않게 넘길만한 것들, 그 이전에 설마 이런 걸 누가 훔칠까 싶은 것들마틴은 이 맹점을 파고들어 자그마치 9년이란 시간 동안 완전 범죄를 성사시킨 프로 중의 프로다.

 

 저런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훔침에 있어 어쩜 그렇게 치밀하고 만전을 기하는지 읽고 있으면 한심스럽다가도 푹 빠져든다. 어떻게 보면 사소한도둑질임에도 불구하고 무지 진지하고 또 스릴 있게 해내고 있어 허투루 읽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자고로 이 작품의 스릴로 말할 것 같으면 홍길동, 뤼팽을 읽는 것에서부터 PS2 게임 <슬라이 쿠퍼>를 플레이하는 재미에 비견될 정도로, 독자를 동심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로망 또한 겸비하고 있었다.

 도대체 마틴은 왜 이런 도둑질을 하게 된 것일까? 그리고 이렇게 규칙적인 도둑인 마틴이 어떤 사건에 휘말리게 될까? 어떤 사건을 통해 충동에 가까운 심정으로 도둑이 된 마틴은 그 유별난 가치관 덕에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도둑질을 수행해냈다. 그렇게 자신의 기술에 익숙해지는 한편 지나치게 고독한 직업(?)의 특성상 알게 모르게 매너리즘에 빠지는 마틴은 어느 날 전에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화장실에서 작업하다 고객 마틴은 자신이 들어가는 집의 주인을 고객이라 부른다. 이 고객을 선정하는 기준이 무척 까다로운데 여기서부터 빵터지고 시작된다. - 의 칫솔을 실수로 뚜껑 열린 변기에다 떨어뜨려버린 것이다.

 

 이게 무슨 대수일까 싶지만 마틴에겐 더없이 중대한 사고였다. 자신의 완전 범죄를 위한다면 그냥 칫솔을 털고 원래 자리에 놓는 게 상책일 것이다. 하지만 결벽증에 가까운 위생 관념과 더불어 마틴이 고객에 대해 품고 있던 일종의 인간적인 존중은 그로 하여금 차마 균 덩어리 칫솔이 고객의 입에 들어가는 것을 방관할 수만은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대로 칫솔을 처분했다간 고객이 의심을 품을지 모를 일이고 그렇게 되면 자신은 이 고객과 가졌던 지금까지의 관계를 청산해야만 한다.

 결국 마틴은 자신이 변기에 떨어뜨린 칫솔과 똑같은 모델의 칫솔을 사오기로 했고 우여곡절 끝에 똑같은 모델의 칫솔을 구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칫솔을 칫솔 꽂이에 넣었으니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데 주인이 집에 벌컥 들어온다. 양심과 도둑질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갈등했던 마틴은 일단 소파 뒤에 숨으면서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지 고민하다 뜻밖에 고객의 고민을 엿듣게 된다.

 

 보기보다 대단한 경지에 달한 소설이었다. 마틴처럼 선과 악이 분명치 않은 캐릭터를 구현하는 것은 자칫 잘못했다간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애매해질지 모른다. 그런데 이 작품을 읽다보면 마틴 같은 도둑이 우리 집에도 좀 와줬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리게 된다. 그만큼 매력적이고 단연 빠져들 수밖에 없는 캐릭터였다.

 주인공이 도둑임에도 하는 행동들이 자극적이기는 커녕 웃음을 유발하고 그러면서도 스릴이 있었다. 또 마틴이 우연히 고객의 고민을 듣게 되면서 그들의 삶에 개입해 행복을 선도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한낱 도둑에 불과했던 마틴이 자연스럽게 선행을 베푸는 전개가 지극히 자연스러웠고 종국에는 자기 자신도 행복을 찾게 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양심과 도덕적 가치관을 우선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쾌감을 간접 체험하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이 유치하지 않으면서도 제법 교훈적이었다.

 읽는 내내 작중에서 마틴이 그랬던 것처럼 나 또한 정신적 고양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는데 인물에 대한 몰입과 더불어 마틴과 같은 안티 히어로의 떳떳하지 못한 입지를 명쾌하게 짚어내 이래저래 감상할 부분이 다분했다. 어떻게 보면 동화 같은 이야기지만 받아들이기에 따라서 천차만별로 다가올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



p.s 혹시 <바쿠만>이라는 만화에서 주인공 아시로기 콤비의 만화 <P.C.P>를 읽고 싶었던 사람이라면 이 작품을 정말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 가상의 만화에 가장 가까운 작품이다 .

마틴은 제아무리 값진 고가의 모포를 손에 넣었을 때도, 한 송이 장미꽃과, 아내를 사랑하면서도 말로 표현하는 것을 지나치게 번번이 잊어버리는 남자가 직접 손으로 쓴 카드를 보았을 때보다 더 흐뭇하지는 않았다. - 225p




네 불법적인 활동을 탈세라고 생각하자. 알았지? 그런 건 눈감아 줄 수 있다. 단 네가 그걸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 35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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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코다 이발소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로드 / 2017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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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가볍지만 가볍지만은 않은 이야기. 모순된 말 같지만 추구하는 소설가가 의외로 많다 보니 '가볍지만 가볍지만은 않은 이야기'라고 감상을 풀어내는 것은 마치 내 어휘력이 폭넓지 못하다고 시인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가볍지만 가볍지만은 않다고 꼭 감상을 풀어내야겠다. 다름 아닌 그런 이야기를 짓기로 아주 일가견이 있는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홋카이도에 있는 쇠락한 시골 마을 도마자와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는 무코다 야스히코 - 이하 야스히코로 적음 - 가 귀촌한 아들 가즈마사를 바라보며 착잡해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통념적으로 생각해보면 아들의 귀촌을 가장 반길만한 사람이 바로 부모일 같은데 이 작품에서는 그렇지 않다. 일단 그 점에서 이 소설은 종을 달리 하는 시골 소설의 입지를 구축하게 된다.


 '이 깡촌에는 앞날 따윈 없다. 그러니 내 자식들은 도시에서 승승장구하면 좋겠다. 그런데 아들 녀석이 하는 말이 시골에 돌아와서 이발사를 하겠다고? 혹시 도시의 직장생활에 지쳐서 고향으로 도망친 거 아냐? 그렇다면 웃기지 말라 그래!' 라는 게 야스히코의 심정이다. 사람들은 야스히코가 아버지의 허리 디스크로 인해 삿포로에서의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고향의 이발소를 이어받았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야스히코는 도시의 직장 생활에 나가 떨어져 시골의 이발사로 살아가는 스스로를 열등감 안에 가두고 있다.

 그 열등감은 좀처럼 고개를 들지 않지만 간혹 자다가도 벌떡 일으켜 세울 만큼 겉잡을 수 없이 찾아오곤 하는데 아들의 귀촌으로 완전히 고개를 쳐들고 만다. 이용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자신의 이발소에서 일하는 한편 이발소 옆의 빈 창고를 카페로 탈바꿈 시켜 수입을 올리겠다는 꿈같은 소리만 해대는 아들을 보면 헛웃음이 다 나온다. 또 자신의 아들을 비롯하여 마을을 재건하고자 하는 청년들이나 파견 관료의 행동들이 어째 못미덥고 탁상 행정처럼만 보이니 어떻게 한소리 해주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다.


 오쿠다 히데오의 <무코다 이발소>는 몇 번이고 재건에 실패한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식상한듯 색다른 이야기를 무겁지 않으면서도 진지하게 보여준다. 나같은 경우에는 도시에서 나고 자라서 시골하면 아무래도 보수적이고 낡아빠진 이미지들만 떠오르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시골이나 시골 사람들의 현주소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당장 그들도 나와 같이 오늘을 사는 사람으로서 나랑 별반 다르지 않게 희로애락을 느끼며 앞날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인데도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들의 장래를 걱정하고 시골의 삶에 일종의 열등감을 품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이 익숙하리만큼 낯설었고 낯설면서도 공감대를 불러일으켰다. 익히 들어왔건만 새겨듣진 않았던 시골의 모습이 눈앞에 생생히 그려지며 나도 모르게 걱정이 들었던 것이다.

 나같은 사람이 이제와 걱정한들 도마자와는 이미 우스겟소리로 '몰락한 배'라고 불릴 만큼 쇠락해버렸다. 과거엔 탄광 도시로 번성했다지만 주요 산업이 침체하자 사람들이 떠났고 어떻게 재건하고자 이것저것 시도하며 새로운 시설도 짓고 그랬지만 지금은 휑뎅그렁한 건물들이 늘어선 을씨년스런 마을이 됐다. 이런 와중에 젊은이들이 굳이 귀촌해 뭔가를 시도한다는 것은 그 저의가 가히 의심될 정도로 덧없게만 보인다는 것이 야스히코의 솔직한 심정이고 그 열등감이랄지 패색감이랄지 하여튼 비관적인 시선은 거두어질 길이 없다.


 야스히코를 화자로 세운 도마자와의 이야기 6편을 통해 다양한 시골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젊은이의 귀촌을 바라보는 부모의 착잡한 마음, 독거 노인, 외국인 신부, 도시에서 돌아온 고향 사람에 관한 추문이나 영화 촬영기, 마을 출신 범죄자 등 각양각색의 이야기 갈래와 그에 따른 인간 군상도 감상할 수 있는데 이게 아주 인상적이었다. 처음 이 책의 기본 줄거리만 읽었을 때는 그저 무난해 빠진 이야기일 것 같았는데 실상은 많이 달랐다. 특별히 자극적인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고 화자인 야스히코도 제법 진중한 성격이라 사건에 직접적으로 엮이지 않음에도 이상하게 빠져든다.

 나는 이러한 가독성의 근원을 앞서 언급한 '가벼운 듯 가볍지 않은' 작풍과 더불어 오쿠다 히데오의 진정성과 통찰에서 찾을 수 있었다. 안 그런 작가가 어딨겠냐만은 - 오히려 그렇지 않은 작가는 수준 미달... 말을 아끼겠다 - 오쿠다 히데오는 간결하게 핵심을 잘 짚어낸다. 그래서 도마자와나 도마자와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이 마냥 불쌍하지도 않고 마냥 절망적이지도 않고 마냥 걱정되지도 않고 마냥 무관심하지도 않게 된다.


 위에서 말했듯 이 소설은 종을 달리 하는 시골 소설의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시골을 단순히 세대 갈등이 극심한 지역으로 단정짓거나 도시 생활에 대한 염원이 있는 젊은이들이 사는 곳으로 과장하지 않고 남들이 쇠락했다고 하든 아니든지 간에 차마 두고 볼 수만은 없으며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낯설지 않은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야스히코의 시선을 통한 도마자와를 보면 도대체 우리가 갖곤 하는 시골의 이미지가 어쩌다 생겼고, 그 전에 도시와 시골이라는 극심히 차이나는 두 이미지가 왜 구분지어졌는지조차 의문이 든다.

 시골에 대한 막연한 거리감과 이질감을 없애는 점, 그리고 쇠락해가는 수많은 마을을 재건하는 것은 탁상 행정이 아니며 그렇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준 덕에 어째 빚을 진 기분이 든다. 신기하게도 단 한번도 염두에 두지 않은 시골 마을에서 생활하는 내 모습을 그리게 됐는데, 정말 톡톡한 매력의 작품이지 않았나 싶다.

뭐 조금은 반한 것도 있지만. 그래 봐야 일시적인 오락이지. 인구 적은 동네에서 늘 똑같은 얼굴끼리 지내다 보니 많은 것들을 잊어버려. 여자에게 반하는 감정도 그렇지.

(중략)그런 것까지 다 알면서 어쩌다 몇 년에 한 번, 외부에서 자극이 들어오니까 다들 넋을 잃고 한동안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거지. 그런 거 아니겠어. - 213 ~ 21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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