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에게 고한다 미스터리, 더 Mystery The 10
시즈쿠이 슈스케 지음, 이연승 옮김 / 레드박스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9.0






 제법 화끈한 제목의 이 소설은 기대대로 화끈하게 시작됐다. 유괴 사건을 수사 지휘했지만 범인 검거에 실패하고 희생자가 나오자 유족들과 매스컴의 집중 포격을 받는 주인공이 버럭하는 것에서 예견된 비극, 그 비극이 낳은 주인공의 증오심이 어떻게 치닫게 될 것인지 너무도 궁금했던 소설이다. 그렇다 보니 630페이지가 넘는 분량은 전혀 두껍게 느껴지지 않았다. 모든 것을 바로잡기 위한 고군분투만큼이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게 또 있던가?

 매스컴의 질타를 받고 조직에서 좌천당하고 유족에게 범인만큼이나 씻을 수 없는 상처까지 안긴 주인공 마키시마, 온갖 감정을 뒤안은 채 살아가던 그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유괴 사건과 비슷한 성질의 사건, 더 나아가 극악무도한 남아 유괴 살해 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함에도 범인을 잡지 못하고 그 범인이 방송국에 협박 편지를 보내는 등 짐승과도 같은 행보를 일삼는다. 자신의 범죄를 과시하는 정신 나간 내용, 도무지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쓸 수 없는 장난스럽고 유치한 사상. 이른바 극장형 범죄로 하여금 세상의 반응을 즐기는 범인에게 맞서 과거에 매스컴에 노출된 적이 있는 마키시마는 '극장형 수사'를 펼치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TV 보도국과 반목하지 않고 오히려 손을 잡고 수사를 펼쳐나가는 전개가 신선했고 그와 동시에 범인만이 아니라 세상의 곱지 않은 시선에 둘러싸여 철저하게 고독해진 주인공의 활약이 그 무엇보다도 기대됐던 소설이다. 자신의 실수와 더불어 경찰 조직의 정치적 입장에 맞물려 나락으로 떨어진 걸 반면교사 삼은 마키시마가 이번엔 범인을 잡을 수 있을지, 그 귀추가 무척이나 주목됐다. 그 과정은 험난하기 이를 데 없지만 과연...?

 기대했던 만큼 후반부가 지루해서 많이 아쉬웠다.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이야기의 실타래가 풀리는 느낌은 드는데 그게 너무나 서서했다. 분량이 이렇게까지 길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에선 자유로울 수 있어도 이렇게 느리게 진행될 필요가 있었느냐는 질문에서 할 말이 없을 듯하다. 아무래도 매스컴에 관해 묘사한답시고 우에쿠사와 스기무라의 이야길 집어넣은 게 원이었다. 이 둘의 관계는 마키시마의 수사에 어떤 식으로든 훼방을 놓아 극의 긴장을 불어넣긴 했지만 다소 어정쩡했다. 작품이 풍성하게 보이는 역할은 해줬으나 본문과 따로 놓는 감이 없지않아 있어 점점 몰입을 방해할 뿐이었다.


 마키시마의 언론 플레이와 함정 수사는 그래도 볼만 했지만 긴 분량을 할애해가면서 읽어온 것치곤 의외로 싱겁게 잡히는 범인을 보노라니 김세기도 했다. 중간중간 분명 긴장감을 조성됐고 또 분노를 요하는 부분 또한 있었지만 정작 잡혀버린 범인은 그 인상이 너무나 흐릿해서... 마키시마의 말마따나 그런 흐릿한 인상의 범인이라서 더 무시무시했던 것이려나?

 아무튼 약간 지지부진한 감은 있지만 자신을 괴롭힌 감정의 편린들을 거의 원만히 떨쳐버려 개운하게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막판에 신파 비슷한 사족이 격하게 사건 속에 개입돼서 좀 질릴 법도 했는데 주인공이 속죄를 하는 아주 중요한 포인트를 이끌어냈기에 그리 불만족스럽진 않았다.

실패한 정치가가 책임을 지던가? 지지 않지. 그리고 정말 유능하다면 그런 것과 상관없이 어디서든 영향력을 발휘하기 마련이야. 회사를 위기에 빠뜨린 경영자는 어떻지? 그가 만약 유능하다면 회사를 떠난 바로 다음 날, 다른 회사의 중역으로 스카우드될 거야. 자네는 그걸 책임졌다고 할 수 있겠나? 이 세상은 그렇게 만들어져 있어. - 174~17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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