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코다 이발소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로드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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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가볍지만 가볍지만은 않은 이야기. 모순된 말 같지만 추구하는 소설가가 의외로 많다 보니 '가볍지만 가볍지만은 않은 이야기'라고 감상을 풀어내는 것은 마치 내 어휘력이 폭넓지 못하다고 시인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가볍지만 가볍지만은 않다고 꼭 감상을 풀어내야겠다. 다름 아닌 그런 이야기를 짓기로 아주 일가견이 있는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홋카이도에 있는 쇠락한 시골 마을 도마자와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는 무코다 야스히코 - 이하 야스히코로 적음 - 가 귀촌한 아들 가즈마사를 바라보며 착잡해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통념적으로 생각해보면 아들의 귀촌을 가장 반길만한 사람이 바로 부모일 같은데 이 작품에서는 그렇지 않다. 일단 그 점에서 이 소설은 종을 달리 하는 시골 소설의 입지를 구축하게 된다.


 '이 깡촌에는 앞날 따윈 없다. 그러니 내 자식들은 도시에서 승승장구하면 좋겠다. 그런데 아들 녀석이 하는 말이 시골에 돌아와서 이발사를 하겠다고? 혹시 도시의 직장생활에 지쳐서 고향으로 도망친 거 아냐? 그렇다면 웃기지 말라 그래!' 라는 게 야스히코의 심정이다. 사람들은 야스히코가 아버지의 허리 디스크로 인해 삿포로에서의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고향의 이발소를 이어받았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야스히코는 도시의 직장 생활에 나가 떨어져 시골의 이발사로 살아가는 스스로를 열등감 안에 가두고 있다.

 그 열등감은 좀처럼 고개를 들지 않지만 간혹 자다가도 벌떡 일으켜 세울 만큼 겉잡을 수 없이 찾아오곤 하는데 아들의 귀촌으로 완전히 고개를 쳐들고 만다. 이용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자신의 이발소에서 일하는 한편 이발소 옆의 빈 창고를 카페로 탈바꿈 시켜 수입을 올리겠다는 꿈같은 소리만 해대는 아들을 보면 헛웃음이 다 나온다. 또 자신의 아들을 비롯하여 마을을 재건하고자 하는 청년들이나 파견 관료의 행동들이 어째 못미덥고 탁상 행정처럼만 보이니 어떻게 한소리 해주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다.


 오쿠다 히데오의 <무코다 이발소>는 몇 번이고 재건에 실패한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식상한듯 색다른 이야기를 무겁지 않으면서도 진지하게 보여준다. 나같은 경우에는 도시에서 나고 자라서 시골하면 아무래도 보수적이고 낡아빠진 이미지들만 떠오르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시골이나 시골 사람들의 현주소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당장 그들도 나와 같이 오늘을 사는 사람으로서 나랑 별반 다르지 않게 희로애락을 느끼며 앞날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인데도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들의 장래를 걱정하고 시골의 삶에 일종의 열등감을 품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이 익숙하리만큼 낯설었고 낯설면서도 공감대를 불러일으켰다. 익히 들어왔건만 새겨듣진 않았던 시골의 모습이 눈앞에 생생히 그려지며 나도 모르게 걱정이 들었던 것이다.

 나같은 사람이 이제와 걱정한들 도마자와는 이미 우스겟소리로 '몰락한 배'라고 불릴 만큼 쇠락해버렸다. 과거엔 탄광 도시로 번성했다지만 주요 산업이 침체하자 사람들이 떠났고 어떻게 재건하고자 이것저것 시도하며 새로운 시설도 짓고 그랬지만 지금은 휑뎅그렁한 건물들이 늘어선 을씨년스런 마을이 됐다. 이런 와중에 젊은이들이 굳이 귀촌해 뭔가를 시도한다는 것은 그 저의가 가히 의심될 정도로 덧없게만 보인다는 것이 야스히코의 솔직한 심정이고 그 열등감이랄지 패색감이랄지 하여튼 비관적인 시선은 거두어질 길이 없다.


 야스히코를 화자로 세운 도마자와의 이야기 6편을 통해 다양한 시골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젊은이의 귀촌을 바라보는 부모의 착잡한 마음, 독거 노인, 외국인 신부, 도시에서 돌아온 고향 사람에 관한 추문이나 영화 촬영기, 마을 출신 범죄자 등 각양각색의 이야기 갈래와 그에 따른 인간 군상도 감상할 수 있는데 이게 아주 인상적이었다. 처음 이 책의 기본 줄거리만 읽었을 때는 그저 무난해 빠진 이야기일 것 같았는데 실상은 많이 달랐다. 특별히 자극적인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고 화자인 야스히코도 제법 진중한 성격이라 사건에 직접적으로 엮이지 않음에도 이상하게 빠져든다.

 나는 이러한 가독성의 근원을 앞서 언급한 '가벼운 듯 가볍지 않은' 작풍과 더불어 오쿠다 히데오의 진정성과 통찰에서 찾을 수 있었다. 안 그런 작가가 어딨겠냐만은 - 오히려 그렇지 않은 작가는 수준 미달... 말을 아끼겠다 - 오쿠다 히데오는 간결하게 핵심을 잘 짚어낸다. 그래서 도마자와나 도마자와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이 마냥 불쌍하지도 않고 마냥 절망적이지도 않고 마냥 걱정되지도 않고 마냥 무관심하지도 않게 된다.


 위에서 말했듯 이 소설은 종을 달리 하는 시골 소설의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시골을 단순히 세대 갈등이 극심한 지역으로 단정짓거나 도시 생활에 대한 염원이 있는 젊은이들이 사는 곳으로 과장하지 않고 남들이 쇠락했다고 하든 아니든지 간에 차마 두고 볼 수만은 없으며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낯설지 않은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야스히코의 시선을 통한 도마자와를 보면 도대체 우리가 갖곤 하는 시골의 이미지가 어쩌다 생겼고, 그 전에 도시와 시골이라는 극심히 차이나는 두 이미지가 왜 구분지어졌는지조차 의문이 든다.

 시골에 대한 막연한 거리감과 이질감을 없애는 점, 그리고 쇠락해가는 수많은 마을을 재건하는 것은 탁상 행정이 아니며 그렇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준 덕에 어째 빚을 진 기분이 든다. 신기하게도 단 한번도 염두에 두지 않은 시골 마을에서 생활하는 내 모습을 그리게 됐는데, 정말 톡톡한 매력의 작품이지 않았나 싶다.

뭐 조금은 반한 것도 있지만. 그래 봐야 일시적인 오락이지. 인구 적은 동네에서 늘 똑같은 얼굴끼리 지내다 보니 많은 것들을 잊어버려. 여자에게 반하는 감정도 그렇지.

(중략)그런 것까지 다 알면서 어쩌다 몇 년에 한 번, 외부에서 자극이 들어오니까 다들 넋을 잃고 한동안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거지. 그런 거 아니겠어. - 213 ~ 21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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