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에서 - SF 앤솔러지
고호관 외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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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작가 20명의 작품이 실린 단편집이다. 흡혈귀, 사후세계, 인류멸망, 외계어 통역, 바닥없는 싱크홀, 신경연결 서비스, 가상현실 시스템 등 다양한 소재가 각 소설에 담겼다. 소재와 작중 환경, 문체가 모두 달라서 한꺼번에 다 읽기보다는 시간을 두고 한 편씩 감상하는 편이 좋다. <테레비 부처님>, <토르말린 클럽>, <패나>, <대화>, <큐레이션>, <주자들>이 기억에 남는다. 몰랐던 작가들을 알게 되어 만족스럽다.

몇 백 년 동안 계속 달리는 로봇이 나오는 <주자들>이 가장 마음에 든다. 로봇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주자를 '인간을 구원한 신의 전령'으로 여기고 이를 구심점으로 결속하는 과정이 흥미롭게 서술된다. 멸망한 세상에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문명 재건에 큰 힘을 보탠 주자는 그 언젠가 로봇이 개발될 때까지 충실히 그 역할을 다하겠지. 세상에 이야기만큼 잘 퍼지는 게 있을까. 마음에 닿아 변화를 이루는 이야기의 힘을 잘 드러내는 소설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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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총을 쏴라 - 제8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김경순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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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 전문 잡지사에 들어간 인턴사원이 상사들을 총으로 쏴 죽인다. 입사하고 한 달만에 사람을 죽이다니. 그것도 둘씩이나. 총기 소지가 불법인 한국에서 총기를 다루는 잡지가 있다는 것도 생소한데 평범한 사람이 갑자기 총으로 살인하는 게 가능한가. 물음표를 몇 개 띄운 채 책장을 넘겼다. 추리소설 작가가 재소자와 면담한 내용을 풀어놓으며 시작되는 이야기는 평범한가 싶다가 스릴러 장르로 돌변한다. 예전에 근무했던 직원의 죽음, 폐쇄적인 인터넷 카페, 동료의 수상한 행동 등이 맞물리며 무슨 일이 벌어질 듯한 분위기가 조성된다. 이미 사건이 일어난 걸 밝히고 사건의 이유를 찾는 전개 방식이라도 괜히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인턴사원의 행적을 끝까지 따라가면서도 뭔가 석연치 않은 기분이었는데 역시나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 읽은 독자들은 모두 같은 행동을 하지 않을까. 복선이 된 문장들을 찾아 책장을 다시 앞으로 넘길 것이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찾으며 고심할 수도. 작가는 멋들어지게 장식된 장미총을 내밀며 이를 쏘는 사람이 그 누가 되더라도 이상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영광스러운 가문의 역사를 떠벌리는 사람은 누구인가. 사회에 섞이지 못하고 그 중심에 선 이를 동경하는 사람은 또 누구인가. 어떤 사건을 일으키는 데 역사가 필요한가. 개인 안에 웅크린 상처가 트리거가 되는 날, 손쓸 틈 없이 발사되는 총알은 어디로 날아갈까. 처음의 의문은 사라지고 새로운 물음표가 가지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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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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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읽는 시간 - 도슨트 정우철과 거니는 한국의 미술관 7선
정우철 지음 / 쌤앤파커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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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란 무엇일까. 사람마다 다른 의견을 내겠지만 저자는 어려운 무엇이 아닌, 사람에 관한 이야기라 말한다. 화가의 삶을 알고 작품을 바라볼 때 폭넓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그가 한국의 미술관과 화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중섭 화백의 삶을 떠올리면 마음이 아프지만 좋아하는 화가라 먼저 읽었다. 이중섭이 일본에 있는 가족에게 쓴 편지는 지금까지 각기 다른 지면으로 몇 번이나 읽었는데 볼 때마다 눈물이 맺힌다. 그토록 다정한 사람이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하는 고통은 얼마나 컸을까.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그림을 놓지 못했던 것은 괴로움을 잊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그가 죽기 직전 그린 <돌아오지 않는 강>에는 그립고 외로운 마음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보고 있자니 그저 먹먹하다.

동양의 전통과 서양의 양식을 조화롭게 매만져 추상화로 표현한 김환기, 불안과 공포 등 모든 것을 물방울로 용해시키며 평안과 평화를 바랐던 김창열, 우둘투둘한 질감이 독특한, 한국적인 그림을 남긴 박수근, 그림과 글에 능했지만 시대를 앞선 생각과 개인적인 사건으로 사람들에게 외면받은 나혜석, 세상 사람 모두가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세상을 꿈꿨던 이응로 등 책에 실린 화가들의 삶을 알게 될수록 그들의 그림이 새삼 달리 보인다. 책에는 환기미술관, 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 이중섭미술관, 양구국립 박수근 미술관, 수원시립미술관 나혜석기념홀, 이응로 미술관이 차례로 나온다. 시간을 내어 소개된 미술관에 들러 오래도록 머물고 싶다. 제주도에 여행가면 가볼 곳이 두 군데나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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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 허풍담 6 - 터무니없는 거짓말
요른 릴 지음, 지연리 옮김 / 열림원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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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 허풍담 1권이 나왔을 때 친구가 재밌다고 했던 게 기억난다. 얼마 전에 6권이 나온 걸 보고 인기가 많은 걸 보니 재미있겠다 싶어서 책을 펼쳤다. 북극에 폭풍이 몰려오자 사람들이 모여 끝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으로 시작해 크리스마스 파티에 멀쩡한 집을 날리는 내용으로 끝나는 책을 읽으며 몇 번을 킥킥댔는지 모르겠다. 젊을 때 그린란드를 여행하다가 그곳의 매력에 빠져 16년이나 머물렀다는 작가가 어떻게 지냈을지 상상이 되어 흥미로웠고 너무나 추운데다 겨울에는 해가 뜨지 않고 여름에는 해가 지지 않는 날이 계속되는 곳, 이웃을 만나려면 개 썰매를 타고 오랫동안 달려야 하는 곳에 도대체 무슨 매력이 있는지 살피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한 명 두 명씩 이곳을 찾는 이유가 분명 있을 테니 말이다.


사냥꾼들의 삶을 그린 내용이니만큼 등장인물들이 나누는 이야기에는 죽음과 고독이 빠지지 않지만 내용은 그리 어둡지 않다. 밤에 곰을 만나 죽을 위기에 처하고 향수병에 시달리고 우울증을 앓기도 하지만 이들에게는 삶을 긍정하는 북극의 인생관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사람들은 한데 모일 때마다 허풍과 거짓말을 섞어 이야기를 부풀리는데 이는 혼자 있을 때 느끼는 적막감을 상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든 사실관계를 따지지 않고 함께 하는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의 유대감을 느낄 수 있다. 작가가 머물던 때에는 1년에 한 번 보급품을 싣고 오는 수송선이 세계와 유일하게 연결되는 통로였다고 하는데 그렇게 외따로 떨어진 곳에 살면 너무 외롭고 무섭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런 곳에서 지내다 보면 어떤 사람이든 소중해지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추위를 너무 많이 타서 북극에 사는 건 상상도 못하지만 언젠가는 그린란드로 여행을 가고 싶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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