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녹는 Entanglement 얽힘 1
성혜령.이서수.전하영 지음 / 다람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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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세 편을 연달아 보면서 지나간 시절을 떠올렸다. 좋다고 붙들고 있을 수도, 싫다고 건너뛸 수도 없는 시절들. 지나고서야 보이는 각 시절은 모두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다. 만나고 헤어진 사람들과 있었던 모든 일과 느꼈던 기분은 점차 흐릿해지지만 잊을 수 없는 사람과 장면이 간간이 생겨 난다. 아쉽고 후회되는 일보다 진심으로 즐거웠던 일이 더 많지만 이상하게도 전자가 더 생각나는 이유는 뭘까.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이 슬퍼서일까.

각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서로를 알지 못하지만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장면을 바라본다. 이발소 앞에서, 도서관 벤치에서 각기 다른 생각을 하며. 배경에 불과했던 인물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주인공이 되는 모습이 흥미롭다. 오가며 스친 이들 모두가 자신만의 하루를 보내며 삶을 꾸려간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신기하다. 서로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이 우연히 겹치기도 하지 않을까. 어느샌가 끊어지고 갑작스레 파탄나고 의도치 않게 이어지는 게 관계이니만큼.

다 읽고 나니 살아 있는 것들을 더 많이 사랑하겠다고 중얼거리는 태주의 마음을 알 것 같다. 곁에 있는 사람들을 더 아끼고 사랑해야지.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해야지. 이 시절이 지나고 후회하지 않도록.

ㆍ관계라는 것도 유기체처럼 피고 지고 시들고 하는 것이구나 깨달아가는 중입니다. 그러나 관계가 끝났다고 해서 그 관계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건 아니더라고요. p.211 전하영 코멘터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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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북
파이돈 편집부 지음, 허윤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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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평화롭고 따뜻한 기운이 가득한 날, 사랑이 넘치는 날! 그날만큼은 마음이 너그러워져 웬만해서는 화낼 일이 없다. 12월이 되면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젖어들기 시작해 캐롤을 흥얼거리고 크리스마스가 나오는 책을 읽곤 한다. 이번엔 <크리스마스 북>을 이리저리 펼치며 시간을 보냈는데 벌써 다음주가 크리스마스라니. 매년 마주하는 날인데 어떻게 매번 이렇게 설레는지 모르겠다.

<크리스마스 북>은 아름다운 트리 장식과 장신구, 그림과 조각, 잡지 표지와 포스터, 전단지, 포장지에 이르기까지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자료로 가득하다. 크리스마스 문화와 음식, 역사도 실려있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민스파이, 플럼 푸딩, 파네토네, 케이크 등 맛있는 음식이 나오는 부분은 더 집중해서 읽었다. 백과사전이 너무 재밌어 코를 박고 들여다봤던 어린 시절처럼 한 글자라도 놓칠세라 꼼꼼히 봤는데 연계된 페이지를 찾아가는 재미도 있어 더 마음에 든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더없이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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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울의 살인법 - 독약, 은밀하게 사람을 죽이는 가장 과학적인 방법
닐 브래드버리 지음, 김은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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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대부분은 상상에 그치겠지만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다면 간단한 방법이 좋을 것이다. 독약은 어떨까. 음식이나 음료에 소량만 뿌려도 효과는 탁월하다. 즉사를 원한다면 청산가리를, 심한 고통을 주고 싶다면 스트리크닌을, 서서히 죽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비소를 선택하면 될 일이다. 다만 부검에서 탄로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어쩌겠는가. 남의 목숨을 빼앗으려면 자신의 목숨 정도는 걸어야 하는 법이니.

역사에 남은 독살 사건을 예로 들며 독약의 원리와 신체 반응을 설명하는 내용이 흥미롭다. 돈과 권력을 위해 독살을 일삼은 왕과 귀족, 연쇄살인범들의 이야기는 범죄 소설을 능가한다. 최첨단 검출 장비가 나오기 전,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독약에 희생되었을까. 지금이 19세기가 아니라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르겠다. 사용자의 마음에 따라 약이 독이 되기도 하고 독이 약이 되기도 하니 모든 독성 물질 앞에서는 신중해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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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건 싫은데 혼자 있고 싶어 - INFP 공감 100배 에세이
우유곽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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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성격 테스트인 MBTI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성격 유형을 16가지로 나눈 것인데 어떤 성향이 두드러지는지 알 수 있다. 사람들은 테스트 결과를 보고 자신과 비슷하다며 놀라고 이를 친구들에게 권하며 놀이처럼 공유한다. 사실, 성격은 정확히 구분할 수 없지만 큰 틀에서 보면 유형화할 수 있다. 보통은 자신이 조용한지 활발한지 논리적인 행동을 하는지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지 안다. 누구나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할 때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때로는 그렇게 행동하고 싶지 않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아 속상할 때도 있는데 MBTI 검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해주니 신기해하며 납득하기도 한다. 난 이런 유형에 속하니까 이렇게 행동하게 되는구나 하면서 말이다. 맹신하면 좋지 않겠지만 참고용으로 알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이 책은 16가지 성격 유형 중에서 INFP, 즉 인프피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먼저 잘해주려 노력하며 누구에게나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는 성격이라는데 이 유형에 속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이상하다고 느끼기도 하고 별것 아닌 일에 상처받고 관계를 포기하면서 자신이 유별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저자는 MBTI를 알게 된 뒤로 주변에 자신 같은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며 위로를 얻었고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다른 이들에게도 위로가 되어주고 싶어 그림을 그려 나누기 시작했다고 한다. 인프피가 아니어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 많으니 이런 성격 유형이 궁금하다면 보는 걸 추천한다. 외로운 건 싫지만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공감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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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의 꽃향기 - 베네치아 푼타 델라 도가냐 미술관과 함께한 침묵의 고백 미술관에서의 하룻밤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이재형 옮김 / 뮤진트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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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미술관에서 하룻밤 머무는 특별한 경험을 한다. 적막한 미술관에 홀로 앉아 그림과 사진을 보면서 자신이 거쳐온 삶을 관조하는 기분은 어떨까. 꼬리를 무는 질문에 자답하며 사색하는 그녀만의 시간은 어쩐지 몽롱하고 아름답다.

모로코에서 살던 시절을 회상하는 부분이 흥미롭다. 여성의 자리는 집 안에 있고 집에 머물러야 안전하다고 가르치는 사회에서 해방되고 싶었던 마음이 글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자기 자리에 머물러야 한다는 말로 강요되는 여성의 역할은 타의에 의한 것이니 유쾌할 리 없다.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왜 스스로 선택할 수 없나. 그러나 미술관에서 어린 시절의 야래향나무 꽃향기를 맡으며 눈물짓는 저자는 그 시절을 잊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자유를 맛보려고 밤에 몰래 나가던 소녀는 이제 묻혀 버린 이야기를 드러낼 수 있다. 그게 문학의 역할이기도 하므로.

저자는 일상을 지배하는 이슬람교 문화권에서 자랐지만 믿음이 없어 힘들었다는 고백을 한다. 왜 안 그랬겠는가. 자신만 다른 것 같았을 텐데. 대부분의 종교는 선을 표방하고 죄를 뉘우치는 사람을 포용한다. 사람들은 종교 단체 안에서 좋은 말을 듣고 나누며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기분을 만끽한다. 나쁠 건 없다. 다만 어떤 종교든 종교가 삶 그 자체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언덕 정도면 적당하리라. 종교가 없다면 저자처럼 문학에서 위로를 받아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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