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3
J. D. 샐린저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아득한 낭떠러지 옆에 서 있는 거야. 내가 하는 일은 누구든지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것 같으면 얼른 가서 붙잡아주는 거지. 애들이란 달릴 때는 저희가 어디로 달리고 있는지 모르잖아? 그런 때 내가 어딘가에서 나타나 그 애를 붙잡아야 하는 거야. 하루 종일 그 일마 하면 돼. 이를테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는 거야. (p256)

 

성장소설의 대명사로 불리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무릇 성장소설이 그러하듯 이 책 역시 참 난해하다. 내가 꼰대가 된 건지 사회 부적응자를 포용하는 넓은 마음이 없는 건지. 이 책의 주인공 홀든 콜피드는 분명 나쁜 아이는 아니다. 남들보다 조금 더 예민하고, 호기심 넘치며, 감수성이 풍부할 뿐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묵묵히 지나칠 수 있는 것들에 민감하게 반응해 유별나다는 평을 들을 법한 아이다. 작가의 이력도 퇴학으로 가득한데 주인공 역시 퇴학을 밥 먹듯이 당한다. 공동체에 익히 적응할 수 있는 성격은 아닌듯하다. 내가 너무 세상에 찌들었는지, 위선적인 세상을 견디지 못하는 홀든의 돌발행동이 참 답답하게 느껴진다. 다들 그러고 사는 거 아니겠어? 홀든의 주변에는 그를 괴롭게 하는 사람들만 가득하다. 그런데 또 마땅히 미워해야 할 상황에서 마음껏 미워하지 못하는 여린 마음을 보면 애는 애구나 싶고. 동생을 지극히 아끼는 그 마음이 너무 예쁘다. 안타까운 건 결국 아이의 성장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부모의 사랑과 관심이라는 거다. 아마 그의 부모가 홀든과 아이들에게 조금만 더 관심이 있었더라면 그의 천진난만하기만 할 그의 청소년 시절이 이렇게 온갖 우여곡절을 겪지 않았겠지.

 

다만 그 수호자의 역할을 자신이 하겠다며 호밀밭의 파수꾼을 자처하는 그의 대사를 보며 이 책의 제목이 지닌 의미를 알게 되었다. 홀든에게 호밀밭의 파수꾼이 있었다면 그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안락한 가정에서 사랑만 받으며 자라도 모자랄 한 아이가 너무 세상에 일찍 내던져져 죽음 너머의 삶까지 생각하는 대사를 보며, 내 마음이 미어진다. 여동생 피비 덕분에(?) 그는 완전 나락으로 추락하진 않지만 여전히 끝 맛이 씁쓸하다. 이것이 해피엔딩인걸까. 나는 잘 모르겠다. 10대 소년의 삶 치곤 너무 스펙터클해 비교적 평탄한 삶을 살았던 나는 참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도대체 작가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 궁금해지는 책이다. 어떻게 이런 책을 쓸 수 있는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판본 벤허 (1900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 그리스도 이야기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루 월리스 지음, 공경희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로마에게 배운 모든 것으로 로마와 싸울 겁니다. 그러면 로마는 패악들을 책임져야 될 겁니다. 제 대답은 이것입니다, 족장님.” (p453)

 

예루살렘 허 가문의 외아들 벤허, 평탄했던 그의 인생은 로마 총독 그라투스의 암살범으로 누명을 쓰면서 큰 돌풍에 휘말린다. 어릴 적부터 절친했던 친구 메살라는 오히려 벤허를 모함하고, 결국 그는 갤리선의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하루아침에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고 그는 죄인으로 전락하는데...... 주인공은 역시 주인공, 로마 총사령관 아리우스의 목숨을 구한 공으로 그의 양자가 되어 화려하게 부활한다. 죄인에서 로마의 부유한 귀족이 되었지만 벤허는 공허함을 느낀다. 죽을 만큼 힘들었던 시절도, 안락한 삶이 보장되는 삶도, 그가 자발적으로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생이별한 어머니와 누이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난다. 영화 벤허를 본 적은 없지만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을 꼽자면 벤허와 메살라의 전차 경기 장면이라 한다. 책에서도 역시 이 장면이 가장 백미다. 메살라의 모함으로 나락으로 떨어진 벤허의 관계는 로마인에게 탄압받는 유대인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유대인 벤허는 온갖 역경에도 굴복하지 않고, 결국 자신을 파괴한 로마인 메살라에게 복수한다. 메살라의 방해공작에도 그는 굴복하지 않는다. 소설 벤허의 작가 루 월리스는 이 이야기를 단순히 유대인과 로마인의 대립으로만 풀지 않는다.

 

선생이시여, 저는 친구이고 당신을 흠모하는 사람입니다. 제게 말해주소서, 제가 구해 드린다면 허락하시겠습니까?” (p741)

 

복수심으로 가득했던 벤허, 그가 기마대에 끌려갔을 때 물을 건넸던 한 사내가 있었다. 서로 말 한마디 주고받지 않았던 너무도 짧은 장면이라 그저 누군가 억울하고 힘겨운 청년에게 물 한 모금 전해준거라 큰 의미를 두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장면은 유다와 마리아의 아들이 처음으로 만나고 헤어진(p183) 의미심장한 순간이다. 예루살렘의 왕자 벤허와 유대인의 왕이 처음 조우했을 때, 그들의 인연은 그저 바람에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벤허가 예수를 다시 찾아 헤맬 때, 그는 큰 꿈이 있었다. 유대인을 핍박한 로마를 무릎 꿇게 하는 것, 하지만 유대인의 왕 나사렛사람은 너무도 보잘 것 없었다. 십자가형에 처한 그가 진정 구원자인가. 어째서 그 낙원은 이승에 없는 것인가.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여전히 불신 가득했지만 벤허는 다행히 깊은 감명을 받은 것 같다. 단순 복수극으로 끝낼 수 있는 소설에 종교적 의미까지 더하다니, 엄청난 스케일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을 떠나고 여전히 신실하고 부유한 벤허는 저만의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섬기며 살아간다. 이 내용을 이렇게 연결하다니, 작가의 작품 구상능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무려 800페이지에 육박하는 대작이지만 짜릿한 복수극은 모두를 열광하게 하지 않는가, 중동 지역의 해묵은 원한의 기원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하기도 하지만 한 사람의 일생을 통해 세계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소설을 다 읽고 다니 3시간에 육박하는 러닝타임을 가진 영화 벤허가 궁금해진다. 책에서의 감동을 어떻게 표현했을지! 종교와 상관없이 한번쯤은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만의 색깔을 만들어가는 중입니다 - 인생은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지만
류형정 지음 / 뜻밖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제나 부정적이고

삶에서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믿는다.

언젠가 나의 꽃이 피리라는 것을.

 

보이지 않는 틈에서 필 수 있으니

나를 많이 들여다봐야지. (p43)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처음 사는 인생이다 보니 아무도 내가 잘 살고 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특별할 것 없는 하루하루를 잘 견뎌내며 이게 맞는지 의구심을 가질 뿐. 류형정 작가의 나만의 색깔을 만들어가는 중입니다는 소소한 일상 속에서 의미를 만들어가는 작가의 일상을 담은 공감툰이다. 길지 않은 내용이지만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지금 내가 하는 고민이 나만의 고민이 아니라는 생각에 눈물 글썽이게 한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뒤처지는 것이 두렵지만 그래도 별 것 없는 하루를 보내는 나를 언젠간 그리워하지 않을까.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는 인생이지만 오늘을 충실하게 사는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대견하다 말해본다.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묵묵하게 제 할 일을 하며 사회의 구성원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의 인생이 이 책 한 권에 담겼다. 언젠가는 예쁘게 피어나리라 믿으며 그날이 오기까지 부서지지 않고 나를 다독이는 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이 책에 부록으로 작가가 오른손이 아닌 왼손으로 그린 그림이 수록되어 있다. 평소 당연하게 사용하던 오른손을 쓸 수 없을 때, 그럼에도 펜을 놓지 않는 작가의 열정을 엿보자 가슴이 먹먹해졌다. 오른손을 쉬게 할 때 왼손도 같이 쉬게 해주지는. 그렇게 다른 곳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왼손의 투혼으로 탄생한 그림은 이 책만이 가진 백미다. 왼손으로 그리며 바라 본 세상은 왠지 모르게 달랐다. 엉성해 보이면서도 간결하달까. 한정된 상황에서 가장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감정, 상황을 그린 것이 아닐까.

 

 

 

남들은 쉬워 보이는데 내 인생은 왜 이렇게 힘겨울까, 지치고 힘이 나지 않을 때 소소하게 보기 좋은 책이다. 결국 내 인생의 색깔을 만들어 가는 건 나 자신이니까.

 

p 63

결국 의미를 두면서

별 의미가 없었던 것까지 멈춰버리게 된 것이다.

의미라는 것은 하지 않으면

생기지도 않는 것을 모르고 말이다.

 

-

 

p 73

 

느린 것은 느린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길로 나아가기 위해

그 시간을 잠시 즐기고 있는 것이다.

 

-

 

p 158

인생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가며

알게 모르게

주고받은

우리의 상처

헤아릴 수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믹스처 -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한 고대 DNA의 대답
데이비드 라이크 지음, 김명주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한 종으로서 우리는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탐구를 지고의 목표로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계몽된 사회라면 직접적인 경제적 이익 또는 실용적인 이익이 없는 지적 활동이라 해도 가치 있게 여겨야 하지 않을까? (p23)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누구인가, 이러한 근원적인 질문은 특별히 고고학이나 유전학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한번쯤은 생각해봤을 주제다. 세계적인 유전학자 데이비드 라이크는믹스처에서 유전학의 가장 최신 연구 방법인 게놈혁명을 통해 얻은 데이터를 통해 인류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DNA분석은 기존의 고고학 기록, 골격분석과 같은 방법으로 확인할 수 없었던 정보를 유추해낼 수 있다. 이를 통해 세계의 유전학 데이터는 이전의 연구 결과를 뒤집고 있다. 과학적 지식이 얕은 내가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건 역부족이었지만 책의 제목이 말해주듯 결국 우리는 모두 잡종이다!’ 가 이 책의 주제가 아닐까 싶다. 1부에서는 현생 인류의 교잡이 어떤 경로로 일어났는지, 다지역 기원설, 아프리카 기원설과 같은 현생 인류 기원 가설이 가진 오류를 밝히는데 고대 DNA 분석이 어떤 중추적인 역할을 했는지를 서술한다. 2부에 이르러 인류의 기원을 각 대륙별로 나누어 설명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한반도는 너무도 마이너한 집단인지 중국, 일본의 잦은 언급에 비해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반도에 살았던 인류에 대한 자세한 언급이 있었다면 한국의 독자로서 좀 더 흥미롭게 읽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3부에서는 왜 게놈 연구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상설한다. 과거 인종에 대한 연구가 차별에 이용되었다보니 단어 하나에도 조심해야하는 유전학자들의 고뇌가 느껴진다. 우리는 누구인가? 이 자체로 보자면 돈 되는 게 없어 보이는 연구지만 저자는 이로 인해 형성될 유형, 무형의 가치를 강조하며 연구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나는 고대 DNA를 유전학자의 영역으로만 두지 않고 고고학과 일반인에게도 소개하는 것, “우리는 누구인가를 밝혀내는 고대 DNA의 놀라운 잠재력을 실현시키는 것이 우리 유전학자들의 소임이라고 생각한다. (p378)

 

모계로부터 전해지는 미토콘드리아 DNA, 부계로부터 전해지는 Y염색체와 같은 기본적인 생물 용어조차 알지 못했던 내게 1, 2부에 나온 유전적 지식들은 너무도 거대했다. 아마 나와 같은 전형적인 문과형 독자들은 다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으리라 생각한다. 어렵고 쉽게 이해할 수 없기에 진입장벽도 높은 책이다. 이 책을 겨우겨우 완독한 사람으로서 힘든 부분이 나온다면 과감하게 넘기길 추천한다. 하나하나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역량이 된다면 좋겠지만 앞부분이 어렵다고 중도에 포기하기엔 3부에서 논의해볼 이야기가 너무 많다. 다만 아래 내용만큼은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고대 DNA는 매우 다른 집단들 사이의 대규모 이주와 교잡이 인간의 선사 시대를 만든 중요한 힘임을 입증했다. 순혈 신앙으로의 회기를 추구하는 이데올로기는 엄밀한 과학에 역행하는 것이다(p175).

 

우생학과 같은 유사과학이 한때나마 유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결국 데이터 해석에서 비롯된다. 차별을 야기하는데 과학이 이용된 것이다. 인류는 여전히 인종주의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인류의 기원을 찾다보면 특정 인종 - 저자는 인종이 아닌 계통이라 명명했다-간의 차이가 분명히 발생할 것이고 이는 계통 간 우열을 나누는데 악용될 수 있다. 이는 단순 우려가 아닌 인류의 부끄러운 과거기도 하다. 연구를 통해 특정 계통의 유전병을 미리 예방하거나 순혈이란 존재할 수 없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지만 나 역시 선뜻 장밋빛 미래가 상상되진 않는다. 무엇보다 모두 종족이 과거를 알고 싶어 하진 않는다. 또한 DNA 연구를 위해 얼마나 많은 유해들이 뼛가루가 되었는가. 책을 읽으며 더 적극적인 고대 DNA 연구의 필요성을 납득하면서도 이 모든 것이 결국 연구자의 욕심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들었다. 인류의 과거를 파헤치는 건 분명 흥미로운 주제이다. 다만 과학자의 연구윤리는 어디까지 허용돼야 하는가? 이제 이 질문에 답해야할 차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타인의 해석 - 당신이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
말콤 글래드웰 지음, 유강은 옮김, 김경일 감수 / 김영사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진실을 기본값으로 갖고 있다. 우리의 가정은, 우리가 상대하는 사람들이 정직하다는 것이다. (p101)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기준이 무엇일까? 보편적인 행동과 부자연스러운 행동의 차이는 어떻게 분별할까? 심리학을 전공하면서 느끼는 건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내가 내린 판단에 관대하다는 것이다. 내가 결정한 이상 이 선택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 이면에 의심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의심이 불신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매우 높은 벽을 뛰어넘어야 한다. 말콤 글래드웰은타인의 해석을 통해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사람들이 저지르는 흔한 오류를 지적한다. 우리가 과신하는 우리의 판단은 실제로 틀릴 확률이 꽤 높다. 책에서는 실제로 범죄자를 직접 대면하는 판사와 인공지능의 판단을 비교해 정량화된 정보만 가지고 판단하는 인공지능이 범죄자의 재범률에 있어 판사보다 더 예리한 판단을 내린다는 실험 결과를 소개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사람인 이상 내가 상대하는 낯선 타인의 비언어적인 행동을 무시할 수 없다. 그 사람의 표정, 어투, 시선, 이 모든 것을 종합해 그가 하고 있는 진술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판별해낸다. 이때 인간의 표정이 드라마 프렌즈처럼 감정과 직결되지 않는 점을 간과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정확히 알아본다. 하지만 거짓을 말하는 사람을 분별하는 눈은 부족하다. 이는 전문가 집단의 판단도 마찬가지다. 이는 그들의 판단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거짓말은 극소수의 사람들이 할 뿐이며, 이 때문에 우리가 실생활에서 거짓말을 탐지하는 데 무능한 것도 그렇게 크게 중요하지 않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 진실을 기본값으로 놓는 것은 논리적으로 타당하다(p131).

 

우리가 판단하는 사람의 태도와 내면이 일치하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는 형편없는 거짓말탐지기다. (p217)

 

다시 말해 인간은 기본적으로 타인이 진실을 말할 것이라 신뢰한다는 것이다. 그 사람의 행동이 보편적인 사고에서 특별히 어긋나지 않다면 조금 이상한 구석이 있더라도 좋게 좋게 넘어간다. 이는 쿠바의 스파이 몬테스가 오랜 시간 미국방부에서 스파이로 활동하면서도 사람들의 의심을 피할 수 있는데 기인한다. 의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 의심에 확신을 가지기 위해선 꽤 많은 증거가 필요한 것뿐이다. 이에 역사상 최대의 사기꾼 버나드 메이도프가 활개를 칠 수 있었고, 풋볼코치의 소아성애 행위를 목격하고도 그 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자기 룸메이트가 살해된 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살인범으로 몰린 한 여자가 있다. 그녀는 기묘한 사람이었고 이 때문에 무고가 밝혀지기 4년이란 시간을 감옥에서 보내야했다. 우리는 사람들의 태도를 근거로 정직성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p216). 사람의 표정을 해석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각 문화권마다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표정을 짓는다. 누군가에게는 화났다는 표정이, 누군가에게는 두려움내지 행복함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시선을 마주하지 못했다해서 그 사람이 거짓을 말한다고 연관시킬 수 없다. 우리가 마주한 타인의 진심을 우리는 알 수 없다. 나 자신조차 나를 알 수 없는데 어떻게 남을 함부로 판단한단 말인가? 서툰 판단은 언제나 비극을 불러온다. 타인을 한 없이 의심하며 서로 신뢰하지 못하는 사회가 되는 것을 원치는 않지만 적어도 내 판단이 틀렸을 수 있다는 가능성은 언제나 염두에 두어야한다. 잘못된 해석은 무고한 시민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앤시니아처럼 과오를 저지를 수 있다. 사람은 초조하고 압박에 시달릴수록 판단력을 잃는다. 이 책을 통해 내가 낯선 이를 대면했을 때 저지를 수 있는 착오를 가슴에 새겼으면 좋겠다. 어설픈 해석은 대참사를 부를 수 있다. 우리는 셜록 홈즈가 아니라는 점만큼은 꼭 기억했으면 싶다. 머리로는 알고 있으면서도 현실에서 참 많이도 실수를 하지 않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