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벤허 (1900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 그리스도 이야기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루 월리스 지음, 공경희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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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게 배운 모든 것으로 로마와 싸울 겁니다. 그러면 로마는 패악들을 책임져야 될 겁니다. 제 대답은 이것입니다, 족장님.” (p453)

 

예루살렘 허 가문의 외아들 벤허, 평탄했던 그의 인생은 로마 총독 그라투스의 암살범으로 누명을 쓰면서 큰 돌풍에 휘말린다. 어릴 적부터 절친했던 친구 메살라는 오히려 벤허를 모함하고, 결국 그는 갤리선의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하루아침에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고 그는 죄인으로 전락하는데...... 주인공은 역시 주인공, 로마 총사령관 아리우스의 목숨을 구한 공으로 그의 양자가 되어 화려하게 부활한다. 죄인에서 로마의 부유한 귀족이 되었지만 벤허는 공허함을 느낀다. 죽을 만큼 힘들었던 시절도, 안락한 삶이 보장되는 삶도, 그가 자발적으로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생이별한 어머니와 누이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난다. 영화 벤허를 본 적은 없지만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을 꼽자면 벤허와 메살라의 전차 경기 장면이라 한다. 책에서도 역시 이 장면이 가장 백미다. 메살라의 모함으로 나락으로 떨어진 벤허의 관계는 로마인에게 탄압받는 유대인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유대인 벤허는 온갖 역경에도 굴복하지 않고, 결국 자신을 파괴한 로마인 메살라에게 복수한다. 메살라의 방해공작에도 그는 굴복하지 않는다. 소설 벤허의 작가 루 월리스는 이 이야기를 단순히 유대인과 로마인의 대립으로만 풀지 않는다.

 

선생이시여, 저는 친구이고 당신을 흠모하는 사람입니다. 제게 말해주소서, 제가 구해 드린다면 허락하시겠습니까?” (p741)

 

복수심으로 가득했던 벤허, 그가 기마대에 끌려갔을 때 물을 건넸던 한 사내가 있었다. 서로 말 한마디 주고받지 않았던 너무도 짧은 장면이라 그저 누군가 억울하고 힘겨운 청년에게 물 한 모금 전해준거라 큰 의미를 두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장면은 유다와 마리아의 아들이 처음으로 만나고 헤어진(p183) 의미심장한 순간이다. 예루살렘의 왕자 벤허와 유대인의 왕이 처음 조우했을 때, 그들의 인연은 그저 바람에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벤허가 예수를 다시 찾아 헤맬 때, 그는 큰 꿈이 있었다. 유대인을 핍박한 로마를 무릎 꿇게 하는 것, 하지만 유대인의 왕 나사렛사람은 너무도 보잘 것 없었다. 십자가형에 처한 그가 진정 구원자인가. 어째서 그 낙원은 이승에 없는 것인가.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여전히 불신 가득했지만 벤허는 다행히 깊은 감명을 받은 것 같다. 단순 복수극으로 끝낼 수 있는 소설에 종교적 의미까지 더하다니, 엄청난 스케일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을 떠나고 여전히 신실하고 부유한 벤허는 저만의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섬기며 살아간다. 이 내용을 이렇게 연결하다니, 작가의 작품 구상능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무려 800페이지에 육박하는 대작이지만 짜릿한 복수극은 모두를 열광하게 하지 않는가, 중동 지역의 해묵은 원한의 기원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하기도 하지만 한 사람의 일생을 통해 세계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소설을 다 읽고 다니 3시간에 육박하는 러닝타임을 가진 영화 벤허가 궁금해진다. 책에서의 감동을 어떻게 표현했을지! 종교와 상관없이 한번쯤은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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