믹스처 -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한 고대 DNA의 대답
데이비드 라이크 지음, 김명주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한 종으로서 우리는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탐구를 지고의 목표로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계몽된 사회라면 직접적인 경제적 이익 또는 실용적인 이익이 없는 지적 활동이라 해도 가치 있게 여겨야 하지 않을까? (p23)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누구인가, 이러한 근원적인 질문은 특별히 고고학이나 유전학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한번쯤은 생각해봤을 주제다. 세계적인 유전학자 데이비드 라이크는믹스처에서 유전학의 가장 최신 연구 방법인 게놈혁명을 통해 얻은 데이터를 통해 인류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DNA분석은 기존의 고고학 기록, 골격분석과 같은 방법으로 확인할 수 없었던 정보를 유추해낼 수 있다. 이를 통해 세계의 유전학 데이터는 이전의 연구 결과를 뒤집고 있다. 과학적 지식이 얕은 내가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건 역부족이었지만 책의 제목이 말해주듯 결국 우리는 모두 잡종이다!’ 가 이 책의 주제가 아닐까 싶다. 1부에서는 현생 인류의 교잡이 어떤 경로로 일어났는지, 다지역 기원설, 아프리카 기원설과 같은 현생 인류 기원 가설이 가진 오류를 밝히는데 고대 DNA 분석이 어떤 중추적인 역할을 했는지를 서술한다. 2부에 이르러 인류의 기원을 각 대륙별로 나누어 설명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한반도는 너무도 마이너한 집단인지 중국, 일본의 잦은 언급에 비해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반도에 살았던 인류에 대한 자세한 언급이 있었다면 한국의 독자로서 좀 더 흥미롭게 읽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3부에서는 왜 게놈 연구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상설한다. 과거 인종에 대한 연구가 차별에 이용되었다보니 단어 하나에도 조심해야하는 유전학자들의 고뇌가 느껴진다. 우리는 누구인가? 이 자체로 보자면 돈 되는 게 없어 보이는 연구지만 저자는 이로 인해 형성될 유형, 무형의 가치를 강조하며 연구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나는 고대 DNA를 유전학자의 영역으로만 두지 않고 고고학과 일반인에게도 소개하는 것, “우리는 누구인가를 밝혀내는 고대 DNA의 놀라운 잠재력을 실현시키는 것이 우리 유전학자들의 소임이라고 생각한다. (p378)

 

모계로부터 전해지는 미토콘드리아 DNA, 부계로부터 전해지는 Y염색체와 같은 기본적인 생물 용어조차 알지 못했던 내게 1, 2부에 나온 유전적 지식들은 너무도 거대했다. 아마 나와 같은 전형적인 문과형 독자들은 다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으리라 생각한다. 어렵고 쉽게 이해할 수 없기에 진입장벽도 높은 책이다. 이 책을 겨우겨우 완독한 사람으로서 힘든 부분이 나온다면 과감하게 넘기길 추천한다. 하나하나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역량이 된다면 좋겠지만 앞부분이 어렵다고 중도에 포기하기엔 3부에서 논의해볼 이야기가 너무 많다. 다만 아래 내용만큼은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고대 DNA는 매우 다른 집단들 사이의 대규모 이주와 교잡이 인간의 선사 시대를 만든 중요한 힘임을 입증했다. 순혈 신앙으로의 회기를 추구하는 이데올로기는 엄밀한 과학에 역행하는 것이다(p175).

 

우생학과 같은 유사과학이 한때나마 유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결국 데이터 해석에서 비롯된다. 차별을 야기하는데 과학이 이용된 것이다. 인류는 여전히 인종주의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인류의 기원을 찾다보면 특정 인종 - 저자는 인종이 아닌 계통이라 명명했다-간의 차이가 분명히 발생할 것이고 이는 계통 간 우열을 나누는데 악용될 수 있다. 이는 단순 우려가 아닌 인류의 부끄러운 과거기도 하다. 연구를 통해 특정 계통의 유전병을 미리 예방하거나 순혈이란 존재할 수 없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지만 나 역시 선뜻 장밋빛 미래가 상상되진 않는다. 무엇보다 모두 종족이 과거를 알고 싶어 하진 않는다. 또한 DNA 연구를 위해 얼마나 많은 유해들이 뼛가루가 되었는가. 책을 읽으며 더 적극적인 고대 DNA 연구의 필요성을 납득하면서도 이 모든 것이 결국 연구자의 욕심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들었다. 인류의 과거를 파헤치는 건 분명 흥미로운 주제이다. 다만 과학자의 연구윤리는 어디까지 허용돼야 하는가? 이제 이 질문에 답해야할 차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