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순간들 - 박금산 소설집
박금산 지음 / 비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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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줄여 말할 수 있어야 진정한 소설이다. 한 마디로 줄여 말했는데 그게 재미있어야 영원한 소설이다. (p61)

 

참 특이한 책이다.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로 이뤄진 소설의 구성 순간을 따로 떼어내 각 순간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설명하다니, 박금산 작가의 소설의 순간들25편의 단편을 엮어 소설의 짜임새를 소개한다. 소설을 어떻게 써야할지,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막막한 사람들에게 이것이 발단이고, 전개고, 절정이며, 결말이다를 명확히 알려준다. 흥미로운 점은 위기가 빠졌다는 거다. 위기가 절정 이후, 결말 이전이라는 한 순간의 단계로 작용하는 게 아니라 소설 구성의 매 단계에 배경처럼 깔리는 요소여야 한다는 것이 기술되지 않고도 기술되어 있는 셈이라는(p177) 김나영 평론가의 해설 덕분에 작가님의 본심을 설핏 알 수 있었다.

 

소설의 구성 순간을 야구로 비유해 야구 덕후에게는 매우 이해하기가 쉬웠다.

 

발단 : 9회 말 투 아웃 만루 상황 마지막 타자를 세워두고 던지는 첫 투구

전개 : 9회 말 투 아웃 만루 상황 공을 때린 다음에 취하는 것

절정 : 9회 말 투 아웃 만루에서 홈런 or 삼진

결말 : 9회 말 투 아웃 만루가 끝난 상황

 

야구에서 9회 말 투 아웃 만루 상황에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정말 무궁무진하다. 특히 점수 차에 따라 나올 수 있는 수많은 작전은 고작 아마추어인 나조차도 여러 개를 꼽을 수 있다. 야구장에서 투수와 타자의 수싸움을 글로 옮겨온다면 작가와 독자의 매력 쟁탈전이 되는 건가. 작가가 이야기를 어떻게 끌어가는가에 따라 독자가 느끼는 긴장감은 다르다. 투수는 첫 투구에 타자의 반응이 예상되어 있는 어떤 공을 던져야한다(p17). 작가는 발단 과정에서 독자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염두에 두며 소설을 시작해야 한다. 이 책에서는 발단 과정에서 5개의 단편을 소개하는데 내가 느끼기에 확실히 다음 이야기가 있다는 인상을 깊게 받았다. 특히 <에이스는 신촌에 갈 것이다>편에서는 대체 테니스장 노인의 정체는 누구인지, 왜 신촌에 오라 한 건지, 그래서 결국 회비는 냈는가? 풀리지 않는 떡밥이 가득했다.

 

 

 

좋은 전개는 그것을 따로 떼어놓았을 때 독자가 앞뒤를 상상하면서 흥미를 느끼게 한다. 앞도 있고, 뒤도 있으니, ‘전개는 외롭지 않아 참 좋겠다. (p41)

 

발단에 수록된 단편들이 뒷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든다면, 전개에 소개된 이야기들은 앞과 뒤가 빠졌다는 느낌이 든다. 이야기의 시작이라 보기에는 뭔가 부족하고 끝이라고 보기엔 더 엉성한. 이 책을 읽다보면 신기한 게 수록된 짧은 단편을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한 편의 완성된 소설로 느껴지기도 한다. <네가 미칠까 봐 겁나>를 읽으며 혼자라는 것이 두려운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과 부부간의 신뢰에 대해 생각해보며 대체 이들에게는 어떤 일이 있으며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지 궁금해진다. <소설을 잘 쓰려면>편에서는 글을 쓰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담은 게 아닐까싶다. 작가는 책의 머리말로 헤밍웨이의 여섯 단어 소설을 소개했는데, 잘 쓴 소설은 간결하다는 걸 다시금 각인시킨다.

 

절정이 소설의 전부임은 더 말할 필요 없다. (……) 절정은 끝이지만 절벽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p94)

 

절정에 이르러선 어떤 사건이 빵 하고 터진다. 이렇게 아슬아슬, 위태위태한 상황에서 앞으로 어떻게 될까가 아닌, 이미 터진 사건이 앞으로 어떻게 수습될지 그 추이를 지켜보게 한다. 다만 절정 부분을 읽다보면 이게 위기인지, 절정인지 잘 구분이 가지 않는다. 사실 소설을 무 자르듯이 딱 딱 나누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이긴 하지만. 대략적인 느낌이 이러하다는 걸 알아차린다면 이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스마트폰을 잃어버려 전전긍긍하다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남자, 조언을 엉뚱하게 악용하는 자전거 도둑, 이웃에게 퍽큐!를 날리며 스트레스를 푸는 남자 등, 모든 이야기마다 각자의 클라이막스에 다다른다.

 

결말은 말 그대로 지금까지의 일들을 수습한다. 승부가 절정이라면 환호가 결말이다(p134)는 작가의 비유처럼 이야기의 교훈과 의미를 전하며 끝을 맺는다. 결말이 소설의 끝이지만 이야기의 끝은 아니다. 사람의 인생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작가가 풀지 않는 그 뒷이야기는 독자의 상상에 달렸다. 소설의 순간들소설의 구성은 이러하다! 고 말해주는 교과서 같은 책이다. 지금까지 접했던 책과는 조금 달랐지만 색다른 재미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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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리커버 및 새 번역판) - 유동하는 현대 세계에서 보내는 44통의 편지 지그문트 바우만 셀렉션 시리즈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오윤성 옮김 / 동녘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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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제 더는, 두 번 다시는 혼자일 필요가 없다. 하루 스물네 시간, 일주일 중 어느 때라도 버튼 하나만 누르면 외톨이 집단 중 한 사람의 곁으로 소환될 수 있다. (p19)

 

세상은 빠른 속도로 변화한다. 이전에는 가치 있던 것들이 더 이상 그만큼의 값어치를 하지 못하고, 사람들은 많은 노력을 들이기보단 쉽고 빠른 걸 추구한다. 이제 우리는 더 행복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지그문트 바우만이 유동하는 현대 세계에서 보내는 44통의 편지를 엮은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속마음을 꿰뚫어본다. 지금의 우리는 이전처럼 타인과 관계를 쌓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도 된다. 핸드폰만 켜면 카톡과 인스타로 쉽고 빠르게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다. 약속을 잡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할 필요도 없고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굳이 대면할 필요도 없다. 현실에서 관계를 맺지 않아도 sns를 통해 관심사가 같은 사람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차단 버튼 클릭 한번으로 영원히 내 세상에서 지워버릴 수 있다. 사람이 필요할 때면 언제든 모든 사람을 이용할 수 있고, 그러면서도 나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언제든 이용 가능한 상황(p20),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직면한 세상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는 유동하는 이 세상이, 과연 우리가 꿈꾸던 유토피아인가? 바우만은 외로움으로부터 도망치는 사람은 고독의 기회를 놓친다(p21) 강조한다. 그는 오직 고독만이 줄 수 있는 숭고한 조건을 잃은 이들이 자신이 무엇을 박탈당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을 안타까워한다. 일득일실은 필연적이다. 고독을 잃음으로써 얻은 것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가치가 있을지 돌이켜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배제당하는 것, 쫓겨나는 것, 혼자 남는 것, 삭제당하거나 블랙리스트에 오르거나 차단당하는 것, 뒤처지거나 떨어져 나오는 것, 승인이 거부되고 무시당하고 계속 기다려야 하고 불청객 취급을 받는 것 …… 이런 것들이 우리 시대에 가장 흔한 악몽이다. 이 세계는 악몽마저도 이렇게 쓸데없이, 남아돌 만큼 많이 생산한다(p187).

 

나도 그렇지만 요즘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질 못한다. 과거 세대는 정보 부족에 시달렸다면 지금은 이 작은 기기로 인해 정보 과잉에 시달린다. 이 책에 나온 글을 쓴 시기가 2008-09년이다 보니 스마트폰에 대한 언급은 없는데 만약 10년 후에 이 글을 썼다면 스마트폰 문제를 심각하게 지적했으리. 우리는 왜 핸드폰에 집착하는 걸까? 바우만은 이를 공포증의 일환으로 본다. 빠르게 움직이고, 흐릿하고, 혼란스럽고, 예측 불가능한 시대, 이런저런 덫과 함정으로 빼곡한 유동하는 현대에 우리를 끈질기게 따라붙는 것은 바로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p185)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손에 쥠으로써 원하는 정보를 바로바로 찾아보며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안도감을 가질 수 있다. 특히 사람들은 공동체에서 낙오되는 것을 두려워하는데 이는 불행을 자기 혼자서, 속수무책으로 겪게 되리라는 예상(p186)에서 비롯된다. 누군가와 끝임 없이 연락을 유지하면서 소속감을 느낄 수 있고 이는 사람들이 연락에 많은 열정을 쏟는 결과를 낳는다. 무엇을 위해, 누구에게 나를 증명하고 있는 것인가? 고독을 통해 그 답을 찾아봤으면 좋겠다.

 

이럴 줄 몰랐다.”는 변명을 멈추기에 딱 좋은 때다. 이 종이 누구를 위해, 하루하루 더 크게 울리고 있는지 묻기에 더없이 좋을 때다. (p145)

 

바우먼은 전반적으로 고독을 회피하는 현대인의 습성을 꼬집는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는 인간이 파괴하는 자연에 대해서도 경종을 울린다. 당시 아이슬란드에서 대규모의 화산폭발이 일어났었는데 그는 이를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우발적인 사건이라 변명하지 말라 단언한다. 우리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변명을 멈추기에 딱 좋을 때라는 리처드 로티의 호소처럼 사회 전반적인 분야의 변화를 촉구한다. 창의적 인재를 바라면서 교수법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교육, 사람의 목숨마저도 불평등한 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어린 나이부터 고민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읽기 쉬운 책은 아니지만 내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들이, 온전히 나만의 의지인지 고민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고독을 바라면서도 단 한순간도 고독하지 못한 가련한 현대인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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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의 세균 박람회
곽재식 지음 / 김영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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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세균에 비하면 이제 막 지구에 모습을 드러낸 손님 같은 모습인데 자기 스스로 지구의 주인이고 지구의 지배자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p24)

 

세균하면 보통 어떤 이미지가 연상되는가? ‘이란 어감 때문인지 인간에게 해롭고 나쁜 존재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전형적인 문과형 인간으로서 생물과는 담쌓고 살아온 내게 곽재식의 세균박람회는 세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지금껏 알지 못했던 세균의 새로운 모습을 알려준다. 막연히 인간에게 해로운 존재로 인식했던 세균이 인간에게 얼마나 유익한지, 아니 실로 이 행성의 진정한 주인은 세균이었단 사실을 인지시킨다. 세균에 대한 심오한 지식을 정교하게 전달해주는 책이라기보다는, 세균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할 만한 이야기들을 소개하는 책을 목표로 했다(p6)는 저자에 바람처럼 지금껏 간과했던 세균의 위대함과 먼 훗날 세균이 우리에게 미칠 영향을 상상하며 읽으니 어려울 거란 걱정과 달리 술술 읽혔다.

 

40억년동안 이 지구를 지켰던 생명체는 다름 아닌 세균이다. 인간이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40억년의 시간을 뛰어 넘을 수 있겠는가. 살아남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끈기와 다른 종류의 세균끼리 주특기를 교환하며 환경에 적응하는 처세, 오랜 세월 젊음을 유지하는 영원불멸함까지. 무엇보다 세균이 언제 어디에나 있다는 점은 여전히 믿기 어렵다. 하지만 지구에서 세상을 떠나는 생물에게 건네는 마지막 작별인사는 언제나 세균의 몫이다(p163).

 

 

인류는 세균에 비하면 이제 막 지구에 모습을 드러낸 손님 같은 모습인데 자기 스스로 지구의 주인이고 지구의 지배자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p24)

 

세균하면 보통 어떤 이미지가 연상되는가? ‘이란 어감 때문인지 인간에게 해롭고 나쁜 존재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전형적인 문과형 인간으로서 생물과는 담쌓고 살아온 내게 곽재식의 세균박람회는 세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지금껏 알지 못했던 세균의 새로운 모습을 알려준다. 막연히 인간에게 해로운 존재로 인식했던 세균이 인간에게 얼마나 유익한지, 아니 실로 이 행성의 진정한 주인은 세균이었단 사실을 인지시킨다. 세균에 대한 심오한 지식을 정교하게 전달해주는 책이라기보다는, 세균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할 만한 이야기들을 소개하는 책을 목표로 했다(p6)는 저자에 바람처럼 지금껏 간과했던 세균의 위대함과 먼 훗날 세균이 우리에게 미칠 영향을 상상하며 읽으니 어려울 거란 걱정과 달리 술술 읽혔다.

 

40억년동안 이 지구를 지켰던 생명체는 다름 아닌 세균이다. 인간이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40억년의 시간을 뛰어 넘을 수 있겠는가. 살아남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끈기와 다른 종류의 세균끼리 주특기를 교환하며 환경에 적응하는 처세, 오랜 세월 젊음을 유지하는 영원불멸함까지. 무엇보다 세균이 언제 어디에나 있다는 점은 여전히 믿기 어렵다. 하지만 지구에서 세상을 떠나는 생물에게 건네는 마지막 작별인사는 언제나 세균의 몫이다(p163).

 

 

 

세균의 삶에 관한 자료들을 보다 보면, 아무래도 같은 생명이라는 점에서 문득 세균이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세균이 살려고 애를 쓰고, 음식을 먹으려고 노력하고, 적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방법을 개발하고, 다른 세균과 서로 힘을 합치고 배신하기도 하는 모습을 보다 보면 마치 우리의 삶 같다는 생각이 들고 자꾸 사람과 비교해서 생각하게 된다. (p256)

 

세균은 인간을 이롭게 할 수도, 해칠 수도 있는 존재다. 파상풍균이 상처에 들어가면 파상풍을 유발하며, 황색포도상구균은 식중독의 원인으로 꼽힌다. 탄저균이 내생포자로 변신하면 생화학무기로 악용될 소지가 높다. 하지만 세균의 불멸성에 착안해 노화를 방지하기 위한 보톡스를 만들기도 하며 인류를 괴롭힌 수많은 질병도 세균에서 추출한 물질로 정복할 수 있다. 사람들은 세균의 특징을 활용해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낸다(p218). 결국 세균을 어떻게 이용할지는 인간의 몫으로 남은 것이다.

 

세균의 미래편에서는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세균의 활용도가 높아 놀랐다. 흙 속에서 뽑은 세균으로 항생제를 발명했듯 세균을 통해 아직 정복하지 못한 바이러스를 무찌르기 위해 제약 회사들의 연구는 지금 이 순간도 계속되고 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건 세균 데이터를 통해 우리에게 미치는 내외부적 위험에 미리 대비하고 그 원인을 조사하는 과학 기술의 발전이다. 이미 2013년부터 뉴욕 지하철역의 세균 지도가 만들어지고 있다니. 소설 속에서만 있을 법한 일들이 현실이 되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해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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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정 - 흔들리지 않고 고요히 나를 지키다
정민 지음 / 김영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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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 묶음의 제목을 습정(習靜)’으로 정했다. 침묵과 고요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침묵이 주는 힘, 고요함이 빚어내는 무늬를 우리는 완전히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p4)

 

바쁜 하루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침묵과 고요는 허상처럼 들린다. 내 바람과 달리 복작복작 거리는 일과 속에서 마음의 평정을 찾는 건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습정의 저자 정민 작가는 이 역시도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무에게도, 그 무엇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온전한 내 자신을 마주할 시간을 갖고 싶은 마음에 펼친 책에서 나는 보물을 찾았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하는 인생지침서 같은 책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별해내지 못해 이렇게밖에 살지 못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다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고 어영부영 하루를 보내는 나를 가장 잘 아는 건 나 자신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반발심이 들기 보단 잔잔한 호수를 마주한 것처럼 평온한 마음으로 웃으면서 읽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인간의 고민은 참 한결같다는 생각에 옛 선인들과 묘한 동질감도 느껴졌다. 모두가 처음 사는 인생이다 보니 넘어지기도 하고 부서지기도 한다. 어떻게 하면 부끄럼 없이 살 수 있을까, 내 마음의 출렁임을 진정시킬 수 있을까. 잘 살아보고 싶은 인간의 열망이 고스란히 담긴 100편의 지혜를 만나며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마음을 다스리는 1, 공부의 자세를 담은 2, 세간의 시비에 대처하는 3부 그리고 성쇠와 흥망을 바라보는 4. 어찌 보면 뻔한 이야기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은 그 뻔한 초심을 잃고 방황해왔다.

 

 

 

금년에는 작년이 그립고, 내년이면 금년이 그리울 것이다. 아련한 풍경은 언제나 지난해 오늘 속에만 있다. 눈앞의 오늘을 아름답게 살아야 지난해 오늘을 그립게 호명할 수 있다. 세월의 풍경 속에 자꾸 지난해 오늘만 돌아보다 정작 금년의 오늘을 놓치게 될까 봐 마음 쓰인다. (p39)

 

라떼는 말이야, 기성세대를 풍자하는 신조어지만 지금보다 더 찬란했던 과거의 나를 그리워하는 건 특정 세대만의 현상이 아니다. 아직 살아온 날이 많지 않기에 기성세대만큼 과거에 집착하지 않을 뿐 지금 이 순간의 나보다 더 자유로웠던 어린 날의 패기와 추억을 그리워하는 건 인간의 본성이지 않을까.

 

거년차일 (去年此日) - 눈앞의 오늘에 충실하자

이 단어를 보며 심장이 쿵 하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모두가 가슴에 새기며 살지만 하루를 돌아보면 왜 이리도 성실하게 살지 않았나 매일 후회한다. 지난해 봄도, 올해의 봄도 무심히 흘러간 것을 아쉬워하며 내년 봄을 기약하는 이학규의 춘진일언회. 통신사의 임무를 맡아 작년과 달리 이역만리 먼 땅에서 오늘을 맞이한 자신을 부평초라 표현한 정희득의 청명일전파유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을 잃어 눈물 짓는 서거정까지. 거년차일을 가슴에 새겼던 선인들을 생각하며 내년의 내가 올해의 나를 떠올릴 때 뿌듯할 수 있게 오늘을 살아야겠다. 지난 간 시간은 추억 속에만 있을 뿐 다시 되돌아오지 않으니 말이다.

 

내가 예전 절에서 책을 읽었을 때였지. 3월부터 9월까지 일곱 달 동안 허리띠를 풀지 않고, 갓도 벗지 않았네. 이부자리를 펴고 누워 잔 적도 없었지. 책을 읽다가 밤이 깊어 졸음이 오면, 두 주먹을 포개 이마를 그 위에 받쳤다네. 잠이 깊이 들려 하면 이마가 기울어져 떨어졌겠지. 그러면 잠을 깨어 일어나 다시 책을 읽었네. 날마다 늘 이렇게 했었지. 처음 산에 들어갈 때 막 파종하는 것을 보았는데, 산에서 나올 때 보니 이미 추수가 끝났더군.” (p84)

 

일승지공 (一勝之工) - 공부는 무릎과 엉덩이로 한다

라떼는 말이야 이렇게 공부했어 끝판왕이 아닐까! 조선시대 후기 문신이었던 후재 김간 선생이 제자에게 들려 준 자신의 공부법을 읽으며 혀를 내둘렀다. 이렇게 공부하는 것이 과연 인간인가! 책에는 수많은 공부법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결국 인내와 끈기가 인간 승리의 비결이다. 알고도 도저히 실천할 수 없는 괴물 같은 인간들에게 경의를 표할 뿐이다. 한 가지 확실한건 몇몇 소수를 제외하고는 예나 지금이나 공부는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행위라는 것이다.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징징거리는 조상들의 이야기를 몰래 엿본 거 같아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웃음 짓게된다.

 

나는 이 책의 매력을 과거와 현재의 동질감이라 말하고 싶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다 비슷한 고민과 후회를 하며 현재를 살아간다. 자신 앞에 직면한 문제를 잘 해결하고 싶을 때, 조상들의 지혜를 빌려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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냥송이 사계절 컬러링북 - 여섯 고양이들의 뭘 해도 괜찮은 하루
냥송이 지음 / 별글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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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러운 고양이들에게 색깔을 입혀 나만의 고양이를 만들어보자!

 

나만 없어 고양이를 외치며 랜선집사를 자처했던 이들에게 희소식!

,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마다 달라지는 한 마리도, 두 마리도, 세 마리도 아닌 무려 여섯 마리의 고양이를 만나볼 수 있다. 냥송이 사계절 컬러링북 은 냥집사로 간택된 작가가 덕질을 하기 위해 올렸던 그림들이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 사랑받은 그림을 직접 컬러링을 할 수 있는 책이다. 매일매일 고양이들을 염탐하며 귀욤뽀짝한 냥님들을 우리에게 생생하게 전해주는 이 은혜로운 책을 보았는가!

 

여섯 고양이들의 일상이라 말하기엔 상당히 고급져보이는 그림들이 시선을 확 사로잡는다. 나도 저렇게 즐기고 싶다, 휴식을. 한 장 한 장 넘기다보면 여기가 바로 파라다이스!

 

만나본 적도 없는 고양이지만 그림을 찢고나와 내 심장을 해롭게 한다. 소풍을 즐기는 고양이, 수족관을 구경하는 고양이(물고기를 탐스럽게 바라보는 여섯 냥이들이 매우 위험해 보인다), 알로하가 절로 나오는 한여름 밤의 바캉스, 물고기가 가득한 바다는 고양이의 고향과도 같은 곳인지 고래와 함께 망망대해를 가로지르는 터프한 냥이, 맛있으면 0칼로리라며 뻔뻔하게 냐옹~ 하는 모습을 보자면 정말로 그 말을 믿고 싶어진다. 냥이들의 입맛 = 내 입 맛인지 분식집 앞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이 익숙해 보이는 건 그래....기분 탓일 거야....

 

 

추운 겨울에는 이불 안에 쏙 들어가 귤이나 까먹으며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냥이들, 겨울하면 빼놓을 수 없는 펭귄과의 진한 포옹은 고양이만으로도 심장어택 당한 내 심장을 더 위험하게 만든다. 정말 이 장면을 보며 얼마나 가슴이 뭉클하던지!

 

 

 

 

똥손 오브 똥손이라 컬러링에 도전하는 게 두려웠지만, 내 손으로 태어난 냥이가 너무 궁금해 오늘만큼은 피카소도 저리가라는 아티스트가 되어 한 땀 한 땀 꼼꼼하게 칠해봤다. 예체능에 익히 재능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연한 색깔로 살살 칠하다 점점 진한 색으로 색을 덧입혀줬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것 같아서....

 

컬러링북이 정말 요물인 게 시간 순삭이다. 집에만 있다 보니 무기력해지는 요즘, 냥송이 사계절 컬러링북과 함께라면 그 어떤 근심 걱정도 싹 날아가는 것 같다. 다음에는 또 어떤 그림을 도전해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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