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 1 - 중국사의 시작
이희재 지음 / 휴머니스트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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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숨쯤은 태산에 비하면 기러기 터럭보다 가볍다. 내가 갖은 수모를 겪으면서 버텨 온 것은 오로지 이 역사서를 쓰기 위해서였다. (p36)

 

중국의 대표적인 역사서 사마천의 <사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이전부터 사기를 완독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가득했지만 이상과 현실 사이에 좌절한 채 책테리어의 역할을 톡톡히 하는 사기를 바라만 봤었다. 이희재 화백의 60대를 쏟아 부은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는 나처럼 사기를 읽어보고는 싶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 사람들에게 정말 좋은 책이다. 감히 3000년이란 긴 시간의 중국 역사를 완전히 알 수는 없겠지만 대략적으로나마 유명한 인물과 사건은 간추릴 수 있다. 사마천이 누구인지, 왜 그는 역사서를 쓰게 됐는지, 우리가 알법한 인물들을 추려 만화로 쉽고 재밌게 만나볼 수 있다.

 

신화처럼 전해지는 요순임금의 태평성대는 아주아주 먼 옛날이니까 가능했겠지? 라는 의구심을 지우지 못한 채 정말 전설처럼 읽었다. 세습이 아닌 선양제도가 지속됐더라면 하나라의 역사는 좀 더 지속됐을까? 강태공 에피소드는 좀... 아마 시대의 차이겠지만 앞으로 강태공을 때를 기다린 현인처럼 받아들이진 못할 것 같다. 낚시 하러가서 미끼조차 엮지 않고 한량처럼 탱자탱자 놀던 생활력 없는 남자를 무려 70년 동안이나 먹여 살리고 참다 참다 못 참아서 집 나간 아내에게 성공해서는 우리 인연은 이미 끊어졌다니 세상에. 강태공 저 분은 그냥 낚시나 하다 굶어죽였어야...... 뭐 하러 먹여 살렸나 모르겠다.

 

이전에 은나라 주왕의 말도 안 되는 난폭함과 잔혹성을 봐서 그런지 백이와 숙제의 의리는 정말 쓸데없어 보였다. 군신관계의 예를 지키는 것보단 굶어 죽어가는 백성들의 민심을 헤아리는 게 먼저 아닌가. 대체 누구를, 무엇을 위한 충정인지. 앞으로도 세상은 백이와 숙제의 지조를 굳이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저렇게 현실감각 없이 입으로만 의리를 떠드는 인간들이 정치를 하면 나라가 망한다. 내가 이래서 공자의 논어를 읽고도 별 감흥이 없었나싶다.

 

춘추전국시대가 개막하고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전면전이 시작되니 확실히 더 흥미로워 진다. 권력, 그게 뭐라고 제 자식조차 비정하게 내다 버릴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이 되길 포기해서 얻은 것이 그리고 귀한 것인가? 가져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아무리 어질고 현명한 이가 백날 충고해봤자 폭군은 그것을 잔소리로만 여기고 세기지 않지만 현명한 군주는 중심을 잡는다는 다소 뻔 하지만 아주 중요한 이야기가 여러 왕에 걸쳐 보인다. 결국 넘어간 건 왕인데 왜 신하의 꼬임에 넘어갔다는 건지. 사마천이 살아있다면 따져보고 싶다. 이건 마치 우리 애는 착한데 친구 때문에... 라는 핑계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지금 투덜대는 건 역사에 대한 작은 불만이고, 이 책 덕분에 사기의 내용도 알게 되어 이렇게 투덜투덜 거릴 수도 있다. 만화가 아니었다면 언감생심 사기의 자도 읽어볼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200페이지지만 한 컷당 크기가 커 금방 읽는다 총 7권 분량이라던데 빨리 2권을 읽고 싶다. 이번엔 또 어떤 막장이 펼쳐지려나 궁금해진다.

 

본 서평은 부흥 카페 서평 이벤트(https://cafe.naver.com/booheong/193672)에 응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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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헌법이 있다 - 당신의 행복을 지키는 대한민국 핵심 가치 서가명강 시리즈 10
이효원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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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한민국에서 국민주권은 지나치게 이데올로기로 작용되고 있다. 국민은 정치적 이념에 의해 극단적으로 나누어지고 소모적인 갈등과 대립이 격화되고 있다. (p86)

 

살면서 송사에 얽히는 일만큼 피곤한 일을 없다. 이 때문에 법을 모르고 사는 사람이 가장 복 받은 거라고 말하곤 한다. 법적 송사에 얽힌 게 아닌 이상 민법, 형법과 같은 법은 모르고 사는 게 속 편한 건 맞다. 그런데 이란 위압감 때문에 모든 법을 멀리하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이효원 교수의우리에게는 헌법이 있다를 읽기 전까지만 해도 나도 법은 멀리하면 멀리할수록 좋은 거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의 근본이 되는 국가의 철학인 헌법을 알고자 하지 않는 건 나 자신을 모른 체하는 것과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좌절됐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중 하나가 개헌이었다. 역사적으로 개헌을 통해 독재자의 권력을 공고히 한 경우가 많다보니 왜 굳이? 어떤 내용을 개헌하겠다는 건지, 왜 개헌이 필요한 건지 공감하지 못했었다. 헌법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국민주권, 법치국가, 자유민주주의, 평화와 통일 4개의 키워드로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를 서술한 이 책은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헌법적 가치들을 바로잡아 준다. 밀실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의 새로운 규범이 탄생하기 까지 ‘49일의 기적동안 어떤 가치를 담았는지 정의한다. 흥미로운 점은 헌법을 바라보는 시선이 법학자정치학자가 다르다는 점이다. 이효원 교수는 우리의 헌법이 비교적 잘 만들어졌다고 보는 한편 얼마 전 읽었던 서가명강 정치학과 교수님이 쓴 책에는 헌법의 첫 탄생부터 권력자의 입김이 들어갔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헌법이 대한민국의 근간이 된 것은 사실이며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삼권분립, 기본권과 같은 것들이 보장된 것도 다 헌법에 의해서였다. 이효원 교수가 지적하듯 국민주권과 같은 개념도 너무 이데올로기적 성향이 짙어 그 본래의 가치를 훼손시키는 것이 문제다. 책에서도 말하듯 보수와 진보를 무 자르듯 딱 잘라 말할 순 없으면서도 무엇이든 극단적으로 치달아 자신의 생각을 자유라고 말하는 점이 안타깝다. 이로 인해 분단국가인 한반도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평화적 요소가 헌법에 부재하다. 이는 개헌을 통해 한반도가 나아갈 방향을 함께 논의해봐야 한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헌법에 대한 왠지 모를 거부감이 있었는데 지금 우리의 자유가 보장된 것도,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도 모두 다 헌법에 근거했음을 알게 되었다. 놀라운 건 지금껏 단 한 번도 헌법 일독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마 이 책이 아니었다면 앞으로도 이 부분에 대해 문제 의식조차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기회에 내가 가진 권리와 대한민국이란 국가 정체성을 알기 위해 직접 헌법을 정독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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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셰익스피어 4대 비극 (1577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금장 양장 에디션) - 햄릿, 오셀로, 맥베스, 리어왕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민애.한우리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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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어느 쪽이 더 고상한가?

기혹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참고 맞는 것과

밀려드는 역경에 대항하여 맞서 싸워 끝내는 것 중에.

죽는다는 건 곧 잠드는 것. 그뿐이다. (p108)

 

덴마크의 왕자 햄릿,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죽음은 왕가의 후손인 그에게 닥친 비극의 시작과도 같다. 마땅히 자신이 올라야 할 그 자리는 숙부가 차지했고 그 옆에 선 여인은 자신의 어머니이다. 유령이 되어 자신을 찾아온 아버지의 원한을 갚는 건 햄릿의 숙명이다. 사랑하는 여인에게는 모진 말을 쏟아내고, 행동해야 할 순간에 찾아온 망설임. 어머니의 심장도 두 쪽 내면서 미친 척 살아야했던 가련한 왕자의 슬픔을 누가 알아줄까나.

 

햄릿, 오셀로, 리어왕, 맥베스, 영국의 위대한 작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라 부르는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결국 인간의 탐욕이다. 탐욕은 신뢰를 무너트리고 이는 스스로를 파멸에 이른다. ‘비극이란 말이 암시하듯 탐욕의 늪에 빠진 인물들의 말로는 결국 죽음이다. 이들은 죽음으로써 모든 것을 끝낸다.

 

인간은 왜 이리도 어리석을까, 고작 다른 이의 세치 혀에 놀아나 제 친우를 버리고 아내를 죽인 오셀로. 누가보아도 입 안의 혀처럼 아부하는 딸들에게 홀라당 넘어가 진정 효심 깊은 딸을 알아보지 못한 리어왕. 마녀의 속삭임에 제 안의 탐욕을 깨달은 맥베스. 3자인 우리의 시선에서 보자면 정말 이해할 수가 없지만 이들의 눈과 귀는 뭐에 씌이기라도 한 듯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자신의 비극이 다른 누군가가 아닌 온전히 나의 오판 때문에 생긴 것이라면? 이 황망함을 어떻게 견딜 수 있겠는가. 자신의 실책을 속죄하는 길은 결국 목숨으로 갚는 것인가. 사람 목숨이 아무리 파리 목숨이라지만 너무도 허망하게 사람들이 죽어나가니까 섬뜩하긴 했다. 셰익스피어는 스스로의 잘못은 목숨으로 갚아야 한다고 믿은 것일까.

 

난 이제 공포의 맛도 거의 잊어버렸다.

밤에 비명 소리를 들으면 오감이 얼어붙어 섬뜩해지던 때가 있었지.

끔찍한 얘길 들으면 살갗의 털이 곤두서 거기에 생명이라도 있다는 듯 꿈틀대던 때도 있었지. 그러나 나는 이제 공포를 한껏 맛보았다.

살기를 품은 내 생각은 이제 남들이 흔히 놀라는 섬뜩함에도 전혀 놀라지 않는구나. (p857)

 

왜 인간은 이 길이 비극을 자초하는 걸 알면서도 속수무책으로 빠져드는 것일까. 왜 나만은 다를 거라고 믿는걸까? 설마 나도 이런 말도 안 되는 환상 속에서 살고 있는 걸까 문득 두려워진다. 제가 닥친 공포조차 이겨냈다고 믿는 멕베스의 오만함, 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는 자신의 비겁함과 나약함을 숨기기 위해 용맹한 척 보이기를 택했다. 사실 이런 주인공들의 특징은 멕베스에서만 보이는 게 아니다. 오셀로 역시 무어인이라는 콤플렉스가 작은 부채질에도 활활 타오를 만큼 가슴 속 깊이 자리 잡았으리라. 약함을 드러내고 싶지 않기에 제 앞의 적과 싸웠고 실상 그 적은 실존하는 인물이라기 보단 자기 자신과의 싸움처럼 느껴진다. 맥베스와 그 부인이 두려움에 떨지 않았더라면 좀 더 침착하게 전쟁에 대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신분을 훌쩍 뛰어넘을 만큼 사랑한 여인의 부정을 묻지도 못할 만큼 어리석었던 한 사내는 어떠한가. 햄릿의 우유부단함, 오셀로의 열등감, 멕베스의 탐욕, 사실 이들의 마음은 나도 조금씩 공감이 갔기에 그들은 어떤 생각으로 그때 그 선택을 내렸을까 여러 방면으로 생각해보게 된다. 하지만 제 자식에게까지 그저 좋은 소리만 듣고 싶은 리어왕과 뭐 때문에 저리도 지극히 효심이 깊은지 모르겠는 막내딸 코딜리어는 별로 공감도 안 되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아 자꾸 빼먹게 된다.

 

놀랍게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완독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렇게 유명한 작품들을 이제야 읽었다니! 너무도 유명한 셰익스피어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은 4대 비극에 들어가지 않으며 실제 4대비극의 제목과 이야기는 이러이러한 것이라며 어디 가서 자랑할 수 있다는 생각에 괜스레 뿌듯해진다. 900페이지에 육박하는 벽돌이란 위압감에 살짝 쫄았지만 생각보다 금방금방 페이지가 넘어간다. 책 속의 등장인물이 생동감 있게 살아 숨쉰달까. 이래서 셰익스피어를 대문호라 칭송하는 거겠지!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금장 에디션으로 만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은 바라만 봐도 눈을 즐겁게 해준다. 소장욕구 뿜뿜 차오르는 금장으로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쯤은 상식처럼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이 책을 강력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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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일 (포켓 에디션) - 생물.도시.기업의 성장과 죽음에 관한 보편 법칙
제프리 웨스트 지음, 이한음 옮김 / 김영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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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일링(규모 변화)과 규모성, 즉 만물이 크기에 따라 변하는 양상 및 만물이 따르는 근본 법칙과 원리는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이며, 이 책에 제시된 거의 모든 논증을 전개하는 출발점으로 쓰인다. (p30)

 

생물과 도시 그리고 기업의 성장 죽음까지. 서로 무관해 보이는 이 요소들에게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저명한 이론물리학자 제프리 웨스트는 본인의 저서스케일을 통해 크기가 변할 때 영향 받는 계에 대해 분석한다. 이에 따르면 다른 동물보다 몸집이 2배 큰 동물이 추가로 소비해야 하는 에너지의 양은 100퍼센트가 아닌 75퍼센트에 불과하단 결론이 난다. 이처럼 몸집이 더 클수록 살아가는 데 필요한 단위당 에너지의 양이 더 적은(p36) 상황을 규모의 경제라 부른다. 다시 말해 생명체의 경우 크기가 2배 커지면 대사율이 증가해 대사량은 2배보다 적게 필요하다. , 크기가 2배로 늘 때마다 무려 25퍼센트가 절약된다는 뜻이다(p45).

 

이러한 스케일링의 법칙을 간과할 때 적절한 약물 투여량을 계산하지 못하는 대참사가 발생한다. 1967, LSD(환각제)가 코끼리에 미칠 영향력을 조사하던 연구팀은 고양이에게 안전한 투여량이 체중 1킬로그램에 약 0.1밀리그램이라는 것(p82)을 기준삼아 코끼리에게 투여할 양을 결정했다. 연구진은 3000킬로그램의 코끼리에게 LSD 297밀리그램을 투여했고 가엾은 코끼리는 1시간 40분 만에 죽는었다. 연구진은 효과적이면서 안전한 용량이 체중에 따라 선형적으로 증가한다고 암묵적으로 가정하고, 체중 1킬로그램당 용량이 모든 포유동물에게서 동일하다고 가정해(p82) 불쌍한 코끼리에게 대재앙을 불렀다. 비단 이는 코끼리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체중에 따라 선형으로 늘리는 식으로 용량이 적혀 있는(p84) 약병의 권고 용량은 어린 아이에게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인구 크기에 따라 저선형으로 증감하는 기반시설과 정반대로, 사회경제적 양들 도시의 본질적 특성-은 초선형적으로 증가하며, 따라서 수확 체증을 보인다. (p383)

 

생명체뿐만 아니라 도시에서도 스케일링의 법칙이 적용된다. 인구가 2배 늘어날수록 주유소와 같은 도시 기반시설은 0.85배 증가해 저선형 스케일링을 보인다. , 체계적인 규모의 경제가 작동함으로써, 도시가 클수록 1인당 필요한 주유소의 수가 더 적다는 의미다(p378). 이러한 현상은 주유소뿐만 아니라 전선, 도로, 수도관과 가스관의 총길이 같은 교통망 및 공급망과 관련된 기반시설의 양도 거의 동일한 지수 값, 즉 약 0.85에 맞추어서 거의 동일한 양상으로 규모가 증가한다는 것이다(p380). 결과적으로 인구가 2배 증가할수록 15%의 사회 기반 시설이 절약된다. 다만 초선형으로 증가하는 도시의 본질적 특성들은 도시 크기가 2배로 되면, 1인당 임금, , 혁신이 15퍼센트 증가하지만, 범죄, 오염, 질병 건수도 그만큼 증가한다(p383). 저자는 도시의 스케일링 법칙을 통해 서로 독립적으로 보이는 요소들 임금, 특허, 범죄, 질병의 규모가 세계 어디서나 거의 동일하고 예측 가능한양상으로 도시 크기에 비례하여 증가함을(p387) 보인다.

 

기업의 스케일링에서 한 가지 중요한 측면은 그 주요 척도 중 상당수가 도시처럼 초선형이 아니라 생물처럼 저선형으로 규모 증가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기업이 도시보다 생물에 더 가까울 뿐 아니라 혁신과 수확 체증이 아니라 규모의 경제가 지배함을 시사한다(p540).

 

제프리 웨스트는 기업의 흥망성쇠가 도시가 아닌 생물의 분포를 따른다고 주장한다. 그는 기업의 죽음은 혁신보다는 안정을 택해 정체된 상태에서 임계점에 달했을 때 발생한다고 본다. 왜 기업은 도시가 아닌 생물과 같은 양상을 띠는 것일까? 복잡한 세상을 단순한 패턴으로 정리하는 스케일링의 법칙을 통해 이 답을 찾을 수 있다. 교양 있는 일반인이 따라가기에 결코 쉽지 않은 책이지만 세상이 어떤 법칙으로 움직이는지 그 공통점을 찾으려는 저자의 통찰력과 결과에 경의를 표한다. 그의 바람처럼 세상을 보편 법칙으로 정의할 수 있는 날이 올까? 그의 도전을 응원하며 지금까지 박사가 발견한 보편 법칙을 일반 사람들도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실로 엄청난 책이라고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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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만든 공간 - 새로운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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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은 그 시대의 지혜와 집단의 의지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결정체로, 그 시대와 사회를 대변한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건축물은 시간을 뛰어넘어 후세까지 전달된다. (p25)

 

동양과 서양, 각 문화권의 건축물을 보면 겉모양부터 확연히 대비된다.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동양과 화려하고 압도적인 수학의 비례로 계획된 서양,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 것일까? TV 교양 프로그램 알쓸신잡을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유현준 건축가의 신작공간이 만든 공간은 각 문화의 건축물들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공간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상세히 설명해준다.

 

저자는 공간의 기원을 농사형태의 차이로부터 바라본다. 강수량이 많은 벼농사 위주의 동양은 필연적으로 이웃과의 관계가 중요해 협동심을 중요하게 보았다. 이에 반해 밀농사 위주의 서양에서는 이웃 간의 협업 없이 홀로 수확이 가능한 노동 방식으로 개인주의가 발달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비가 적게 내리는 유럽에서는 건축 방식도 폭우에 대비한 지붕 중심보다는 공간을 분리하는 중심으로 발전했다. 문제는 구조 역할을 하는 벽에 창문을 내기가 용이하지 않다는 점이다. 아름답고 화려한 서양의 건축물은 창문을 뚫는 게 쉽지 않아 안에서 밖을 보는 대신 내부를 화려하게 치장했다. 서양에 비해 비가 많이 내리는 동양에서는 방수를 위한 지붕이야 말로 건축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기둥 구조는 지붕을 받치기 위한 벽이 필요 없다. 따라서 창문을 내기가 용이했고 이는 집 내부에서 바깥을 바라보는 경치를 중요시하게 된다. 강수량의 차이는 농업 품종의 차이를 만들고, 품종의 차이는 농사 방식의 차이를 만들고, 농사 방식의 차이는 가치관의 차이를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건축에서 동서양의 강수량 차이는 건축 디자인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발전시켰고, 건축 공간은 행동 방식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행동 방식은 궁극적으로 사람의 생각에도 영향을 미쳤다. (p80)

 

외부의 색다른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문화권이 새로운 변종을 만들어 내게 되고, 그것이 시간이 지나면 시대를 이끄는 매력적인 문화가 되는 것이다. (p192)

 

콘크리트의 발전은 동, 서양을 막론하고 새로운 건축 패러다임을 가져왔다. 동양과 서양을 분리해 생각하기 보다는 각자의 특징을 융합해 하나의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낸 것이다. 근대 건축의 4대 거장 미스 반 데어 로에라가 설계한 건물을 살펴보면 그가 직간접적으로 동양 건축에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바로셀로나 파빌리온을 통해 동양의 기둥 구조를 도입해 공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고, ‘허블 하우스에서는 동양과 서양의 특징을 반반씩 섞은 짬짜면을 만들어냈다. 기하학적이고 수학적인 서양의 건축미와 자유롭고 유동적인 동양의 건축미를 한데 아울러 새로운 문화적 변종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가 동양을 의식하고 건물을 만들지 않았더라도, 생각은 창작자 자신이 의식을 하건 안 하건 상관없이 영향을 받고 진화하는 법이다(p245). 책에 동서양의 건축물이 서로 어떻게 닮았는지 사진이 수록되어 있는데 글로만 읽었을 땐 추상적인 닮음이 사진으로 보니 한눈에 파악됐다. 서로 다른 문화가 자연스럽게 융합되면서 새로운 건축 양식의 건물이 탄생하는 모습을 보니 공간은 생각을 만들고, 생각은 공간을 만든다(p145)는 저자의 말이 확 와 닿았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도시 속에 빈 공간이 생겨나고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새로운 도시 공간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우리가 어떻게 꿈꾸느냐에 따라서 다음 시대의 도시가 바뀌고, 라이프 스타일이 바뀌고 사회가 바뀔 수 있다. (p374)

 

현대의 유명한 건축물은 나같이 건축물에 문외한인 사람이 보면 참 난해하기 그지없다. 불규칙해 보이는 복잡한 형태의 건축물이 컴퓨터의 힘을 빌려 만들어진다. 더 이상 형태의 차별성이 두드러지지 않는 이 시대를 지나 미래에는 어떤 건축물이 그 시대를 대표할지 궁금해진다. 특히 저자가 말한 지하로봇 운송 시스템이 구축된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바뀔까? 유명한 건물에 담긴 뜻을 생각해보지 않고 단순히 인증샷 찍는 곳으로만 여겼던 과거의 내가 조금은 부끄러워진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공간을 바라보는 시선과 인류가 새롭게 창조해 낼 공간을 상상해보게 된다. 건축과 인문학을 엮어 새로운 통찰을 보여주는공간이 만든 공간, 쉽게 읽히진 않지만 모두가 한번쯤은 읽어보길 강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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