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라는 발명 - 1572년에서 1704년 사이에 태어나 오늘의 세계를 만든 과학에 관하여
데이비드 우튼 지음, 정태훈 옮김, 홍성욱 감수 / 김영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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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과학은 튀코 브라헤가 신성, 새로운 별을 관찰했던 1572년과 뉴턴이 그의 <광학>을 출간했던 1704년 사이에 발명되었다. (p12)

과학이란 무엇일까? 지금 우리가 과학 하면 떠오르는 물리, 생물, 화학과 같은 학문들을 과학이라 통칭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무려 1000페이지에 육박하는 데이비드 우튼의 『과학이라는 발명』은 학문적으로 과학이란 무엇인가를 논의하는 것이 아닌 말 그대로 과학의 역사를 거시적으로 훑는다. 찐문과생인 나는 책 제목만 보고 당연히 과학책 일거라 예상했는데 역사학자가 쓴 역사책이라는 것이 흥미로웠다. 과학사를 저술하는 건 누구의 몫인가? 과학자인가, 역사학자인가? 같은 사건도 두 학자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기에 둘 다 과학사를 집필할 자격은 있다지만 뭔가 밥그릇 왠지 모를 밥그릇 싸움이 느껴 지기도 했다.  

마술은 과학으로, 신화는 사실로, 고대 그리스의 철학과 과학은 우리의 철학과 과학으로 인식될 만한 무언가로 대체된(p26) 1600년에서 1733년경을 살아간 엘리트들이 겪은 혼란은 지금껏 자신이 알아왔던 모든 것을 부정당하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은 발명하는 건가 발견하는 건가? 1572년 이전에 사람들이 살아온 세상과 소위 근대 과학이 발명된 시기를 살아간 과학자들의 상황은 너무 달랐다. 애당초 과학자가 돈 벌이를 할 수 있는 직업으로 인식되지도 않던 시절도 있었다. 천문학의 발전으로 지금껏 주류 사상이었던 신 중심의 사고가 부정당한다. 새로운 과학을 주장하는 과학자들은 이단으로 몰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시기에 대체 어떤 일이 있었기에 인류는 과학혁명으로 나아갈 수 있었을까? 아니, 애당초 17세기에 일어난 과학 혁명은 실존하는 개념일까?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과학 혁명을 부정하고 이 시기에 일어난 변화를 과소평가하는 이들의 주장을 타파한다.

과학을 언어적으로 접근해 이 단어에 대한 정의가 언제부터 형성된 것인지, 어떤 의미를 담아 발전해 온 것인지 하나하나 뜯어보기도 한다. 문과생이지만 문사철과 거리가 먼 내게는 마치 철학책을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 책 속에 익숙하게 등장한 인물들의 업적을 여전히 말할 수 없는 나의 무지함이 안타까웠다. 이 사람이 과학사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것은 알겠는데 그 발견이 왜 위대한 건지 잘 상상이 되지 않으니 조금 막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결국 저자의 주장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과학은 발명된 것이고 이 역시 독자적으론 해낼 수 없는 과업이었다, 정도로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혼동해서 쓰던 언어들을 하나하나 정의해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지만 막연히 나는 몰라도 된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을 다시 되짚어볼 수 있는 책이다.

과학-연구 프로그램, 실험적 방법, 순수 과학과 새로운 기술의 연결, 해체 가능한 지식의 언어-1572년과 1704년 사이에 발명되었다. 우리는 여전히 그 결과와 함께 살고 있다. 그리고 인간은 항상 그러할 것으로 보인다. (p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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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지구, 물러설 곳 없는 인간 - 기후변화부터 자연재해까지 인류의 지속 가능한 공존 플랜 서가명강 시리즈 11
남성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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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해 여름과 겨울이면 기상관측 이래 최고라는 수식어를 어렵지 않게 접하고 지구환경이 여러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는 수많은 뉴스를 접하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지구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p11)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은, 지구를 잘 모른다. 서가명강의 11번째 책, 지구환경과학부 남성현 교수님이 쓴 『위기의 지구, 물러설 곳 없는 인간』 을 읽으며 우리가 말로만 지구를 생각하는 척 한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간은 자연을 한없이 훼손하고 파괴하고 있다. 이로인해 어떤 큰 사건이 터지면 항상 어쩔 수 없다는 변명으로,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는 재발 방지를 입으로만 약속한 채 지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함께 공존하며 살아야 할 사이가, 어느 누군가의 일방적인 관계로 거듭날 때 파멸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런 내용은 책을 읽지 않아도 우리 모두, 너무 잘 있다. 그리고 묻는다.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환경보호는 너무 거창한 남의 일 처럼 느껴진다. 일반인이 기껏 오염을 시켜봤자 얼마나 시킨다고, 상업적 이익을 취하는 공장을 규제해야지 일반인의 노력은 너무도 미약하게 느껴진다. 이걸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 없지 않은가?

인간은 아직까지 개척하지 않은 블루오션을 찾아 더 많은 개발을 하기 위해 호시탐탐 지구를 노리고 있다. 이 모든 게 다 특정 인간의 이기심때문인가? 결국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편리함을 지속하기 위해 새로운 대체 에너지를 찾는 것이다. 우리의 미래는 외롭고 삭막한 각자도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위기의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한 공존의 지혜 속에 있다며 저자는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누군가 한 사람의 책임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거다. 자연재해는 지속적으로 발발하고,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섬은 환경 보호의 경각심을 외치는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을 차지한다. 미세먼지로 상쾌한 공기는 옛 말이 되고 지구 온난화는 날이 갈수록 심각해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자는 바다에서 그 답을 찾았다. 우리가 지구와 공존하기 위해 어떤 세상을 만들어가야 하는지, 이젠 우리 모두의 일이라는 생각으로 지구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막연하게 느껴졌던 지구의 위험 신호가 점점 현실로 다가오는 이떄, 인간은 어떻게 해야하는지. 단순히 과학적 접근을 넘어 복합적으로 접근한다. 이게 또 요즘 시대의 트랜드기도 하다. 한 가지 학문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지구 문제도, 결국 모두의 힘이 합해져야 해결될 수 있고 여기에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지분도 무시할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해야 하는 일을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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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한번 해보았습니다, 남기자의 체헐리즘
남형도 지음 / 김영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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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이 신문사가 아닌 기자의 이름을 각인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야구 기자 말고는 기자의 이름을 눈 여겨 본 적이 없는 내가 어느 날 홀연히 팬이 된 기자가 있다. 바로 남기자의 체헐리즘을 연재하는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와 무슨 기자가 이런 걸 해? 처음에는 굉장히 신기한 생명체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꽤 오랜 기간 습관처럼 남기자님의 체헐리즘을 읽으며 내가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이 사회의 민낯을 직접 발로 뛰며 고발하는 내용에 쾌감을 느끼기도 했고 때론 부끄러워 지기도 했다. 2018년부터 연재한 기사를 엮어 출간한 『제가 한번 해보았습니다, 남기자의 체헐리즘』은 그가 직접 체험한 생생한 기록을 한 권의 책으로 담았다. 20편의 기사를 수록한 이 책은 보통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혹은 알면서도 그 수고로움을 추상적으로만 생각했던 것들을 굉장히 리얼하게 그려 더 이상 몰랐다는 핑계가 댈 수 없게 만든다.

어렸을 때부터 너무 당연하게 학습되어 왜 입는지 의문조차 가지지 않는 여성들의 브래지어, 남자인 남기자가 직접 입어보고 쓴 기사를 읽으며 사람들이 그에게 보냈을 시선을 생각하니 내가 다 민망했다. 그런데 왜 나는 부끄럽다고 여기는 걸까? 왜 브래지어를 입은 남자는 당연히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여기서부터 지금껏 당연하다고 여긴 것이 꼭 당연한 것인지 고민해봤다.

체험한 지 사흘 만에, 브라를 결국 벗었다. 육체적인 불편함보다 더 힘든 건, 버거운 시선이었다. 누가 뭐라 안 했어도 그것만으로 무언의 족쇄였다. 그래서 여성들도 쉬이 벗을 수 없었겠구나, 절실 히 깨닫게 됐다. (p20)

여자인 나조차 이해하지 못했던 다른 여자들의 고민을 오히려 남기자님은 더 구구절절 공감해주었다. 힘들다고 말하는 것조차 유난이라며 따가운 시선을 이슈에 어쩌면 그 첫 단추를 끼우는 건, 우리 몫인지도 모르겠다(p21)며 격려한다.

시각장애인의 삶이 운에 따라 편하고 불편할 순 없는 일이다. 그리고 이들도 각자 삶을 오롯이 누릴 권리가 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도 맛있는 걸 먹고 원하는 걸 누릴 수 있어야 한다. (p182)

그의 체험에는 한계가 없다. 육아 체험, 80세 노인 체험, 초등학생 체험, 소방관, 집배원, 청소부 등 언젠가는 나도 그렇게 될 것이고, 또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이 사회를 지탱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현장에 직접 출동한다. 이 중 내 기억에 가장 남는 건 시각장애인 체험이다. 어렸을 때 수련회에 가면 꼭 눈을 감고 친구에게 의지해 장애물 넘기 같은 활동을 하는데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때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함이 얼마나 답답한 지, 친구도 믿을 수 없는 나의 얕은 우정을 탓하곤 했었다.

예쁜 벚꽃이 피는 봄 날에, 시각 장애인들에게 축제는 사치일 것이다. 그들의 외출이 순탄 하려면 순전히 남의 호의에 의지해야 한다. 시각장애인 수가 252,132명이나 되는데, 주위에서 왜 찾아보기 힘든지. 바깥에 나오지 않는 게 아니라, 나오고 싶어도 못 나오는 거였다(p180)는 글을 읽으며 우리 사회가 약자에게 얼마나 무감각한지 깨달았다. 나도 지금껏 왜 우리 주위에 장애인이 쉽게 보이지 않을까 단 한번도 의문을 가진 적이 없다. 이게 당연한 거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무심했을 뿐이다.

그러다 어쩐지 우스워졌다. 일탈마저도 정답을 찾으려 애쓰고 있다는 게. 정답 같은 삶을 살아왔고, 그게 싫어 회사를 하루 땡땡이쳐음에도 말이다. (p307)

나도 모르게 사회가 규정해 놓은 그 틀안에서만 행동하려 한다. 착한 사람이 되고 싶어하고, 거절당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한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나태의 죄악으로 여기고 바쁘다는 핑계로 정작 중요한 걸 챙기지 못한다. 사실 다 한번씩은 읽어봤던 기사인데 이렇게 책으로 읽으니 새롭게 다가온다. 사실 체헐리즘을 읽고 난 전후로 뭐 대단한 변화가 있는 건 아니다. 여전히 나는 무심하게 살 것이고, 세상에 이런 일도 있다는 건 기사를 통해 읽을 것이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이전에는 몰랐던 것을 알게 하는거야말로 언론의 참된 역할이 아닐까.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격언을 몸소 실천하는 기사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이 책,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솔직히 남기자님은 기사는 댓글 읽는 재미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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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어하우스 플라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0
혼다 데쓰야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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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응석 부리지 마. 세상은 자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전과자에게 엄격해.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싶은 건 성실한 사람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그것도 어지간한 인내로는 어림도 없어. 자네 같은 멍청이가 다시 시작하고 싶다느니 가볍게 말할 게 아니라고.” (p17)

 

 

각성제 복용으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요시무라 다카오, 살던 집에 불이 난 바람에 졸지에 당장 머물 곳이 없어진다. 전과자인 그는 집을 구하기 쉽지 않지 않은 상황,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아간 보호사 고스게의 소개로 다행히 그에게 집을 알선해 줄 수 있는 부동산 업자를 만난다. 그렇게 찾아간 곳이 바로 이 책의 제목, 혼다 데쓰야의 장편소설 셰어하우스 『플라주』. 이곳의 입주자들은 저마다 심상치 않은 내력을 지니고 있다. 평범한 사람은 들어갈 수 없는 곳, 왜 굳이 전과자들만을 위한 셰어하우스를 운영하는 걸까? 한달 월세 5만엔, 각 방에는 방문없이 커튼만 달려있다. 플라주의 집주인 아사다 준코는 셰어하우스와 가게를 운영해 살림을 꾸려간다. 다카오의 입주로 플라주의 6개 방이 모두 꽉 차고 서로의 과거도, 현재도 묻지 않는 플라주의 생활이 시작된다. 솔직히 각성제 흡입이 이렇게 엄격한 형벌에 처하는지 처음 알았다. 일본 사회는 그런 건가? 마약하고 나서 잠시 자숙의 시간을 가지고 바로 복귀하는 연예인들만 봐서 그런지 한번의 실수로 나락까지 떨어진 다카오의 삶이 조금은 안쓰러웠다. 이래서 사회적 분위기가 중요한가 보다. 나조차도 마약에 대해 무감하니 말이다. 다시 사회에 정상적으로 복귀하고 싶은 다카오는 절실하다. 하지만 이미 전과자로 낙인 찍힌 그의 삶은 결코 녹록치 않다.

 

 

“다카오 군은 약, 나는 살인…… 룰을 깨고 반칙을 한 거지. 다카오 군은 옐로카드, 난 완전히 레드카드. 경우에 따라서 한 방에 퇴장…… 사형이란 것도 있지. 인제 시합에는 나갈 수 없어. 아니, 영구 추방인가. 두 번 다시 경기장으로 돌아갈 수 없지.” (p175)

 

 

내 옆방에 살인자가 산다면? 상상만 해도 후덜덜하다. 세상에, 살인 사건은 뉴스에서만 접했지 실제로 사람을 죽인 사람을 본 적도, 만나 적도 없으니 말이다. 서로가 굳이 과거를 떠벌리고 다니진 않지만 일련의 사건으로 다카오는 자신과 함께 지내는 사람들이 다범죄자라는 걸 인식한다. 자신도 범죄자이지만 아직은, 자신도 그들과 같은 처지라는 걸 받아들이지 못한다. 담담하게 자신의 범죄 사실을 말하는 미치히코의 고백에 다카오의 얼굴은 돌처럼 굳는다. 미치히코에게도 사정이 있었다. 그가 날 때부터 악해서 계획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어린 나이의 의협심을 주체하지 못해 재수 없게 사건에 휘말렸다는 게 더 정확해 보인다.

 

“다카오 군은 어느 쪽이 무서워? 무얼 했는지 모르는 나, 엄청난 짓을 했다 해도 무얼 했는지 아는 나. 어느 쪽이 무서워?” (p223)

 

 

다카오는 전과자가 되기 전 일했던 여행 업계에는 다시 발을 디밀지 못한 상황. 개과천선하고 싶어도 이전과 같은 삶을 살 수는 없다. 남자 넷, 여자 셋, 청춘 남녀가 한 지붕 아래 오손도손 모여 사니 사랑이 싹트기도 한다. 자신도 전과자라는 사회적 시선에 힘들어했으면서 눈길 가는 여자가 어쩐 범죄를 저질렀는지 아는 걸 두려워한다. 모르면 몰랐지 한번 범죄자로 인식하면 그만큼 색안경을 끼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렇지만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 소설 후반부에는 셰어하우스 사람 모두 힘을 합해 위기에 빠진 미와를 구하는데 이때 전과자라는 낙인이 얼마나 큰 걸림돌이 되는지 뼈저리게 느낀다. 쉬이 경찰조차 부를 수 없는 처지인 사람들. 한번 죄를 지은 사람은 죽을 때까지 용서받지 못하는 건가(p357). 작가는 독자들에게 묻는다. 다만 플라주의 입주민들은 겉보기에만 흉악 범죄일 뿐 실상 파고들면 다들 악의보다는 사고에 가깝다. 이들에게는 플라주 같은완충지대가 다시 사회로 복귀하는 데 꼭 필요하지만, 뼛속부터 악인인 범죄자들은, 단지 형기를 다 채웠다 해서 사회가 용서해야 하나 의구심이 든다. 일단 벌을 받은 사람에게 재출발할 기회를 준다. 그 정도는 사회가 보장해주어도 좋지 않은가. 이 생각이 그대로 플라주를 만든 동기가 됐다(p347). 자신의 생각이 확고한 준코와 달리 솔직히 지금 이 상태에서 나는 작가의 소설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도, 반박할 수도 없는 것 같다. 법 없이도 살 만큼 착하게 살자는 것이 이 책의 주제인 건가. 가볍게 펼쳤다가 너무 어려운 질문을 받았다. 엄청난 흡입력에 빠르게 페이지를 넘겼지만 뒤로 갈수록 이 책이 주는 충격은 엄청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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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는 여자 비채×마스다 미리 컬렉션 3
마스다 미리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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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함께한 일상을 사랑을 담아 쓰고 그렸습니다. 오래오래 가까이 두고 봐주시면 영광이겠습니다. (p5)

 

 

엄마, 그 이름을 불러보면 참 다양한 감정이 든다. 어떨 때는 내가 주워 온 자식이 아닐까 합리적 의심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내가 무얼 하든 언제까지나 나를 응원해 줄 아군이라 믿는다. 마스다 미리의 일상 에세이 『엄마라는 여자』를 읽으면서 가슴이 찡해지는 건 엄마를 생각하는 딸의 마음은 국적을 막론하고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어서겠지. 시작하는 말에 엄마와 함께한 일상을 사랑을 담아 쓰고 그렸다는 작가의 심정이 뭔지 알 것 같아 이 책이 더 눈길이 간다.

 

촌스러운 꽃무늬 패션, 모아두면 다 고만고만한 스타일의 옷, 어디 TV에 나왔다 하면 결과물은 달라도 일단 따라 해보고, 별것 아닌 것에도 미친 듯이 폭소한다. 넉살도 좋은지 동네 아줌마들과 음식도 나눠 먹고 길거리에서 ‘저거’로 통용된 아줌마들의 수다는 끝이 없다. 남의 집 화단에 지대한 관심이 있고 다 큰 딸도 아직 한없이 어려 보이지만 정작 본인은 가슴 아린 과거를 품고 사는 가수 뺨치는 멋진 노래꾼. 중간중간 만화가 삽입되어 있어 짧지만,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벌써 작가님의 어머니가 생생하게 내 머릿속에 떠오른다. 누구나 한 번쯤은 만나봤을 것 같은 흔한 동네 아줌마. 그래서 더 정감 가나 보다. 막연히 작가님의 재능이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것 같은데 또 그건 아닌 거 같고. 개인적으로 엄마를 기억하고 생각하며 이 책을 쓰고 그린 작가님의 재능이 참 부럽다.

 

 

 

 

 

이 책을 읽으며 소소하게 공감했지만, 작가님의 엄마와 우리 엄마가 참 다르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마다 성격도 다 다르고 작가님 나이 마흔 살에 쓴 책이니 아직 이십 대 딸을 둔 우리 엄마와 다른 건 너무도 당연하다지만 그래도 신기하달까.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전보다는 꽃무늬를 좋아하지만, 여전히 우리 엄마는 참 세련됐다. 도시락은 사주고 (ㅋㅋㅋ) 무소식이 희소식이려니 연락은커녕 답장도 잘 안 한다. 성격은 또 어찌나 불같은지, 싫어하는 사람 앞에선 절대로 표정 관리가 안 돼서 오히려 내가 타박할 정도다. 손재주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지만, 여행은 국내고 해외고 다 좋아한다. 말 한마디 안 통하는 곳에 혼자 떨어져도 분명 잘 살 거다. 그리고 또 우리 엄마는 어떤 사람일까? 솔직히 나도 잘 모른다.

 

어린 시절 나는 엄마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조금씩 성장하면서 엄마를 딱히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시기에 돌입했다. 엄마가 하는 일쯤 어른이면 당연히 할 수 있는 줄 알았다. 성년이 되고는 내 미래가 엄마의 삶보다 훌륭할 거라고 내심 으스댔다. 그리고 마흔 살이 된 지금의 나.

 

엄마가 간단히 해내시던 일이 간단히 되지 않는다. (p156)

 

 

책의 맺는말, 이 문장이 왜 이리도 가슴에 왜 닿는지. 엄마는 내 나이 때 결혼해 나를 낳았을 텐데 나는 아직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벅차다. 이제는 엄마가 만능이 아님을, 엄마는 슈퍼우먼이 아닌 걸 잘 알지만, 엄마는 쉽게 했던 일들이 내게는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 나는 엄마만큼 잘살 수 있을까? 아직 어른이 되기에 나는 한없이 어린 것 같다.

 

 

참 가슴 따뜻해지는 에세이다. 우리 엄마는 어떤 사람일까, 엄마와 나는 어떤 추억을 공유하고 살았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남의 집 화단에 하나부터 열까지 너무 관심이 많아 조금 피곤하지만 그래도 꽃을 좋아하는 우리 엄마, 오늘은 엄마한테 꽃 한 송이를 선물해야겠다.

 

 

엄마와의 추억, ‘잘 기억하시네요.’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럴 때면 내가 ‘잊어버린 기억’을 떠올려보려고 애쓴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극히 일부다. 그 너머에는 아낌없이 쏟아졌을 엄마의 사랑이 조용히 잠들어 있다. 하나하나 확인하지 못해도 내 맘 깊숙이 남아 있을 것이다. (p157)

 

 

별것 아닌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모아두고 보면 하나하나 너무 소중한 추억이 된다. 마스다 작가님처럼 나도 무심코 놓쳤던 엄마와의 시간을 애써 떠올려본다. 너무 사소해서 무신경했던 엄마의 사랑이 지금, 이 순간에는 참 애틋하게 다가온다. 부디 한 시간 후에도 이 마음 변치 않기를...... 지금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을 떠올리며 읽기 좋은 에세이다. 뭉클한 감정을 느껴보고 싶은 분들께 추천한다.

 


* 어디까지나 제 기준이지만 괜히 글이 어색하게 느껴져 격조사 높임 표현은 무시하고 썼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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