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만든 공간 - 새로운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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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은 그 시대의 지혜와 집단의 의지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결정체로, 그 시대와 사회를 대변한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건축물은 시간을 뛰어넘어 후세까지 전달된다. (p25)

 

동양과 서양, 각 문화권의 건축물을 보면 겉모양부터 확연히 대비된다.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동양과 화려하고 압도적인 수학의 비례로 계획된 서양,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 것일까? TV 교양 프로그램 알쓸신잡을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유현준 건축가의 신작공간이 만든 공간은 각 문화의 건축물들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공간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상세히 설명해준다.

 

저자는 공간의 기원을 농사형태의 차이로부터 바라본다. 강수량이 많은 벼농사 위주의 동양은 필연적으로 이웃과의 관계가 중요해 협동심을 중요하게 보았다. 이에 반해 밀농사 위주의 서양에서는 이웃 간의 협업 없이 홀로 수확이 가능한 노동 방식으로 개인주의가 발달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비가 적게 내리는 유럽에서는 건축 방식도 폭우에 대비한 지붕 중심보다는 공간을 분리하는 중심으로 발전했다. 문제는 구조 역할을 하는 벽에 창문을 내기가 용이하지 않다는 점이다. 아름답고 화려한 서양의 건축물은 창문을 뚫는 게 쉽지 않아 안에서 밖을 보는 대신 내부를 화려하게 치장했다. 서양에 비해 비가 많이 내리는 동양에서는 방수를 위한 지붕이야 말로 건축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기둥 구조는 지붕을 받치기 위한 벽이 필요 없다. 따라서 창문을 내기가 용이했고 이는 집 내부에서 바깥을 바라보는 경치를 중요시하게 된다. 강수량의 차이는 농업 품종의 차이를 만들고, 품종의 차이는 농사 방식의 차이를 만들고, 농사 방식의 차이는 가치관의 차이를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건축에서 동서양의 강수량 차이는 건축 디자인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발전시켰고, 건축 공간은 행동 방식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행동 방식은 궁극적으로 사람의 생각에도 영향을 미쳤다. (p80)

 

외부의 색다른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문화권이 새로운 변종을 만들어 내게 되고, 그것이 시간이 지나면 시대를 이끄는 매력적인 문화가 되는 것이다. (p192)

 

콘크리트의 발전은 동, 서양을 막론하고 새로운 건축 패러다임을 가져왔다. 동양과 서양을 분리해 생각하기 보다는 각자의 특징을 융합해 하나의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낸 것이다. 근대 건축의 4대 거장 미스 반 데어 로에라가 설계한 건물을 살펴보면 그가 직간접적으로 동양 건축에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바로셀로나 파빌리온을 통해 동양의 기둥 구조를 도입해 공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고, ‘허블 하우스에서는 동양과 서양의 특징을 반반씩 섞은 짬짜면을 만들어냈다. 기하학적이고 수학적인 서양의 건축미와 자유롭고 유동적인 동양의 건축미를 한데 아울러 새로운 문화적 변종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가 동양을 의식하고 건물을 만들지 않았더라도, 생각은 창작자 자신이 의식을 하건 안 하건 상관없이 영향을 받고 진화하는 법이다(p245). 책에 동서양의 건축물이 서로 어떻게 닮았는지 사진이 수록되어 있는데 글로만 읽었을 땐 추상적인 닮음이 사진으로 보니 한눈에 파악됐다. 서로 다른 문화가 자연스럽게 융합되면서 새로운 건축 양식의 건물이 탄생하는 모습을 보니 공간은 생각을 만들고, 생각은 공간을 만든다(p145)는 저자의 말이 확 와 닿았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도시 속에 빈 공간이 생겨나고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새로운 도시 공간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우리가 어떻게 꿈꾸느냐에 따라서 다음 시대의 도시가 바뀌고, 라이프 스타일이 바뀌고 사회가 바뀔 수 있다. (p374)

 

현대의 유명한 건축물은 나같이 건축물에 문외한인 사람이 보면 참 난해하기 그지없다. 불규칙해 보이는 복잡한 형태의 건축물이 컴퓨터의 힘을 빌려 만들어진다. 더 이상 형태의 차별성이 두드러지지 않는 이 시대를 지나 미래에는 어떤 건축물이 그 시대를 대표할지 궁금해진다. 특히 저자가 말한 지하로봇 운송 시스템이 구축된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바뀔까? 유명한 건물에 담긴 뜻을 생각해보지 않고 단순히 인증샷 찍는 곳으로만 여겼던 과거의 내가 조금은 부끄러워진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공간을 바라보는 시선과 인류가 새롭게 창조해 낼 공간을 상상해보게 된다. 건축과 인문학을 엮어 새로운 통찰을 보여주는공간이 만든 공간, 쉽게 읽히진 않지만 모두가 한번쯤은 읽어보길 강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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