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악마다
안창근 지음 / 창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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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범을 연쇄살인범이 잡는다??

 

미국 드라마 < 덱스터 > 이야기? 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이 이야기는 <사람이 악마다>라는 제목의 한국 소설 속 이야기다. 심지어 그 역시 경찰이다. 덱스터처럼 혈액 감정 전문 경찰이 아닌 전직 프로파일러 강민수. 그는 희대의 연쇄 살인범이라는 죄목으로 수감된 상태. 고요하게 모범수로 죄값을 치르고 있는 그를 세상 밖 연쇄살인범인 '유령'이 도발하기 시작했다.

 

 

p172   보기 싫어도 죽을 때까지 공생해야 하는 관계

 

 

제 1회 황금펜 영상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던 <블랙>의 저자 안창근은 크라임 소설을 고르는 취향은 나와 비슷했다. 제프리 디버, 요 네스뵈 등 영미와 북유럽 작가들에게 매료되어 있다는 점에서...또한 그들의 치밀하면서도 전문적인 소재에 반해 있다는 점에서도...좋아하는 것이 비슷한 사람에 대한 호의적인 마음을 담아 읽기 시작한 <사람이 악마다>는 영상이 떠올려지기 보다는 도표를 자꾸 그리게 만든 소설이어서 특이했다.

 

미친 놈으로부터 날아온 살인 예고장을 두고 경찰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할 수 밖에 없었다. 누군가의 장난일 수도 있을 이 예고장이 다름아닌 지역이 젊음의 거리 홍대였기 때문. 하필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 플래시몹이 펼쳐질때 한 여성이 여기저기 칼에 찔린 채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오페라의 유령과 흡사한 면이 많은 숫자 '5'에 집착하는 '유령'이라 불리는 연쇄살인범. 그는 왜 대체 강간당한 적 있는 여자들만 골라 살해하는 것일까.

 

친절한(?) 연쇄살인범이 키드(명탐정 코난에 등장)처럼 예고장을 보내지만 경찰 내에서는 그의 의중을 꼬집어낼 코난 같은 녀석이 없었다. 아니 그를 감옥안에 가두어 두고 있었다. 사실 그는 살인범일망정 연쇄살인범은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한 사람을 죽이는 것과 여러 명을 죽이는 것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사실 적당한 답이 없다. 하지만 과실치사나 우발적 살인으로 조사할 수도 있는 사건을 두고 경찰들은 경찰인 그를 연쇄살인범으로 단죄했다.

 

한 때 최고의 프로파일러였던 강민수. 유령의 도발적 다잉메시지를 전하기에는 그의 전 여친이자 뛰어난 감을 지닌 후배 프로파일러인 노희진이 적절한 카드였다. 게다가 그녀 역시 과거 성범죄의 희생자 중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범인에게 던져질 미끼로도 훌륭했으리라. 여기에 한 사람. 범인의 메시지를 글로 전하는 황기자까지 더해져 이야기는 흥미롭게 진행된다

 

다만...<사람이 악마다>라는 제목과 읽고 싶게 만드는 책의 표지에 비해 그 결말이 너무 선하게 결말지어진 것은 아닌지....아쉬움을 남기긴 했지만...이야기는 한 번 펼쳐 끝까지 읽을만큼의 가독성 강한 스토리로 독자를 마지막 무대까지 이끌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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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트래블러 : 위대한 유산 2 - 완결 타임 트래블러
윤소리 지음 / 필프리미엄에디션(FEEL)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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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오가는 여자가 있다. 현실에 있는 한 놈을 짝사랑해 그놈의 의뢰를 받아 과거를 오갔던 그녀는 이제 과거와 현재의 다른 한 남자를 위해 목숨을 걸고 필사적으로 두 팔 걷어부친 채 나섰다. 어린 아이였던 그의 첫 사랑, 이모가 되고 그 엄마의 절친이 되어 한 집안의 흥망을 함께 하면서 자신의 사랑을 채워 나갔다. 사랑, 아무 쓸모도 없는 것이 아니었다. 타임 트래블러라는 소설 속에서는-.

 

# 그녀, 민호

 

사랑하는 남자의 할머니를 만났나? 했더니 어랏? 그녀는 엄마였다. 식민 시절이라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죽은 유모 딸의 신분으로 미국행을 감행했던 그녀는 남편(편의상)의 친구와 결혼하여 남편의 아이를 낳아 기르며 조선의 유물들을 사 모으기 시작했지만 역시 사람의 농간으로 새남편과 함께 기차에 치여 사망하고 그 어린 아들은 민호가 개입한 덕분에 살아 남아 그들을 죽인 원수의 아들로 둔갑하여 성장해야만 했다. 자신의 엄마를 할머니로 인식한 채.

 

사랑하는 남자의 가족사를 알게 된 그녀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결국 현재에 그를 살아서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까....다만......!

 

 

# 그, 이안

 

거짓말인줄 알았다...처음에는...과거를 오갈 수 있는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리숙하고 유쾌하면서도 엉성한 민호를 만나고 나서야 어린 시절 만났던 이모가 바로 그녀였음을....삐까뻔쩍하게 입고 나타난 옷이 자신이 사준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죽음으로 끝나버린 과거의 어느 한 장면에서 진저리 칠 수 밖에 없었는데.....그녀를 살려야만 했다. 무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지만....그녀를 다시 잃을 수는 없었다.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충격은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낸 것에 비해서는 간에 콩알만큼의 고통도 남기지 못했으므로...

 

 

#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사랑하게 되면

 

전 우주가 돕게 되는 것일까. 어린 시절 엄마가 죽어 평생 그리워했던 민호와 부모의 죽음을 눈 앞에서 목격하고 계부로 알았던 원수의 손에 맞아가며 커야했던 이안은 외로움에 사무친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참 많이 닮아 있었다. 서로의 그 결핍을 서로만이 채워줄 수 있었으며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는 한 남자에게 이토록 잘 맞는 짝이 또 어디 있을까 싶을 정도로 민호 그녀는 대책 없이 살아왔다. 하지만 정의감에 불타는 것으로도 모자라 남의 일에 자신의 일처럼 발끈발끈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이토록 따뜻한 여자를 또 어디가서 만날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행복이 아닐까. 타임트래블러는 기존의 시간여행자들의 여행과 달리 달달한 로맨스가 가미되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 이 작가의 다른 소설들은 어떨까. 달달한 로맨스 한 편이 그리운 계절엔 그 누구에게든 이 소설을 들려주어 함께 읽게 만들어야겠다. 나는 작가의 다음 소설을 한 번 찾아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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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트래블러 : 위대한 유산 1 타임 트래블러
윤소리 지음 / 필프리미엄에디션(FEEL)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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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여행자는 이제 그리 낯선 소재가 아니다. 운명을 바꾸기 위해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는 드라마 <나인>이나 영화 <나비효과> 등이 있었고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시간 속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자의 아내>도 있었다. 그래서 재미있다는 친구의 추천을 받은 책이지만 별다른 기대없이 펼쳤는데 몇장 읽지 않아 후루룩~ 넘기면서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이 대책없는 로맨스 소설 속으로!!

 

#엄마는 없었다

 

여덟살 되던 해 엄마를 잃은 민호는 열 살 엄마의 기일에 그녀를 다시 볼 수 있었는데 이는 다 벽장 덕분이었다. 며느리가 임신한 마당에 늦둥이로 낳게 된 딸이 귀찮을 수도 있으련만 마음씨 따뜻했던 노모는 딸을 위해 아이스크림을 사서 돌아오던 중 집 앞에서 용달차에 치어 즉사했다. 그래서였을까. 첫 시간 여행에서 그녀는 엄마를 보고 돌아왔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로맨스 드라마 단골 주인공의 전형인 직업/남자/돈 3무 상태의 쬐죄죄하지만 명랑한 여자로 거듭났다. 나이 서른. 아무도 안 주워갈 더티한 총각 교수를 짝사랑하며 그의 부탁으로 시간여행을 하면서 사는 여자, 민호.  임시직인 유치원 보조 교사를 하던 중 운명의 남자와 마주칠때까지 그녀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엄마보다는 이모를 기억하는 남자

 

서담 박부전과 김춘방의 손자인 이완의 집안엔 조부모가 평생의 재산을 들여 구매했던 조선 유물 3,500여점이 보관되어 있다. 허랑방탕한 삶을 산 아버지 제임스 박도 그것은 손대지 못했는데 이는 할머니의 유언장 때문. 이제 오늘 내일 저승사자를 만날 일만 남겨둔 아버지를 대신하여 유산을 물려 받게 될 줄 알았으나 망자의 유언은 이완의 발목을 단단히 잡아 버렸다. 최종 유언장이 든 화각함에 맞는 열쇠를 찾아 유언을 따르라는 것! 그렇지 못할 시엔 유물 3,512점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조선관'을 지어 기증된다는 것이었다.

 

이런 벼락맞을 유언의 집행을 막기 위해 한국을 찾은 이완은 유물 전시전을 꿈꾸던 이교수와 만나게 되고 그의 주선으로 타임트래블러인 민호와 계약을 맺게 된다. 백만원이라는 언급에 입째지게 행복해하는 순진한 여자 민호를 사기꾼으로 매도하던 그는 눈 앞에서 그녀가 사라졌다가 잃어버렸던 유물의 조각을 가지고 돌아오자 그녀를 믿고 관찰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에게도 과거로 돌아가 만나고 싶은 그리운 사람들이 있었으니....첫사랑이었던 이모 역시 그 중 한 명이었던 것!

 

관찰이 관심이 되고 관심이 사랑으로 변해가는 것도 순간! 둘 사이 강력한 스파크가 파바박 튀는 시점부터 이야기의 재미는 급물살을 타고 로맨스의 강을 굽이굽이 돌아쳐 흘러갔다.

 

 

#반전의 묘미 : 알고 있던 사실들을 다 뒤집어야 진실이 보인다

 

 

풍양 조씨 집안에서 데리고 있던 유모의 딸이었던 할머니는 그때 당시 머슴과 결혼하여 아이가 둘 있었던 상태였는데 아씨의 친구였던 박부전과 결혼하여 아비 제임스 박을 낳았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어떻게 돌아가는 심산인지 민호를 따라 과거로 들어갔던 이완은 함께 목매달아 죽으려한 처녀를 구조하게 되고 그녀가 바로 할머니의 주인이자 조씨댁 고명딸인 덕희임을 알게 된다. 독립 운동으로 잡혀가 고문을 당하고 있는 오빠의 벗 영호의 아이를 처녀의 몸으로 덜컥 임신해버린 덕희. 그리고 그런 덕희를 곁에서 묵묵히 바라보며 짝사랑하고 있던 남자 박부전. 이야기는 요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훗날 친일의 오명을 쓰게 만든 박제순 대신의 아들인 박부전은 미곡선물거래로 당시 큰 재산을 모은 상태였기 때문에 사랑하는 여인이 어려움에 처했을때 자신의 모든 인맥과 재산을 동원하여 그녀를 돕게 된다. 천성적으로 수줍고 음악을 좋아하던 취향이 고급진 이 남자는 말을 더듬는 습관 때문에 쉽게 눈에 띄는 인물은 아니었으나 그 따뜻한 진심만은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으면 알게 될 그런 좋은 사람이었다. 할머니의 남편이 될 이 남자가 왜 주인 아씨의 뒤통수만 보고 서 있는 것일까. 또한 어린 시절 급사한 계부와 엄마의 기억 너머에 어느날 갑자기 찾아와서 자신을 위해 목숨을 던졌던 멋진 외모의 이모는 어디서 온 여자였을까.

 

p510  어차피 다 사라진 사람들의 이야기 아닙니까

 

맞다. 주말의 명화를 다시 돌려보듯 지난 장면들을 보는 것처럼 그대로 보기만 해야하는 것이 과거의 일들일 것이다. 바꾸려고 하면 할수록 꼬여버리기 때문에 현재의 사람은 과거의 사건에 관여하면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민호는 이완을 위해 무언가를 해 주고 싶어졌다. 부모를 잃고 외롭게 자라온 두 남녀는 그렇게 통하는 면이 있었다. 그 외로움이 끌림을 만든 것일까. 과거와 현재는 묘하게 그리고 딱 맞게 교차하면서 시간 여행의 조각들을 맞춰나가고 있었다. 그 어떤 추리소설보다 완벽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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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전쟁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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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일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 논쟁의 주제가 역사 라면 이야기는 또 달라진다. 역사는 과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까지 이어져 있는 중요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고서는 진실을 100% 장담할 수 없다. 타임트래블러가 되어 그 시대에 잠깐 다녀온다고 해도 쉽게 알 수 없는 것이 역사다. 민초의 삶과 양반, 정치인의 삶과 왕의 삶이 다 다르듯 누군가의 입장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 바로 역사이기 때문에.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을 보며 혼란스러운 저 시선이야말로 진실이 아닐까 싶어졌었는데 역사 역시 라쇼몽 같이 여러 갈래의 해석이 있어 이해관계의 잣대를 누군가가 어디로 대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중국과 일본 역시 그 점에서 우위점을 찾기 위해 자신들의 역사를 과대 포장하고 자기것화 하는데 돈과 시간 그리고 명예를 내세우고 있는 것이리라.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말들이 붉어진 현재, 김진명 작가의 [글자전쟁]은 어떻게 읽혀져야 할까?  <천년의 금서>,<최후의 경전>,<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을 빼놓지 않고 읽으며 필력의 매력에 빠져들게 만들곤 했다. 김진명 작가의 소설은 이덕일 작가의 역사소설이 주는 재미와는 또 달랐는데 그 몰입감과 애국심의 고취는 분야 최고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읽고나면 가슴 먹먹하게 만드는 역사소설. 누가 이토록 진한 피냄새를 진동하게 역사소설을 쓸 수 있을까. 심장을 역류하는 피냄새를 늘 맡게 만드는 작가의 이번 소설의 소재는 '한자'다. 한자가 동이족의 것이라는 이야기는 전에 들은 적이 있는 가설이어서 놀랍지 않았지만 그 동이족이 누구인가 하는 것을 두고는 중국과 우리가 첨예하게 다른 의견을 들이밀고 있다는 사실은 몰랐던 것. 하지만 놀랍지는 않았다. 역사가 아니던가. 한치 양보의 틈을 둬서는 안되는......!

 

p15  이 시대는 돈이 힘이야

 

학창시절 "자식을 이따위로 키웠냐"는 폭언을 선생에게 들을 만큼 태민은 남다른 아이였다. 수재였으나 윗사람에 대한 예의보다 자신의 생각이 먼저였고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돈'의 힘을 알고 돈을 벌기 위해 인생 목표를 책정했을만큼 현실적이었다. 그는 선생을 향해 "마음껏 다 해보고 모조리 실패하면 할 수 없이 학교에서 선생이나 하겠다"며 대차게 대꺼리 했던 버릇없는 학생이기도 했다. 그랬던 그는 전액 장학생으로 칼텍 물리학과를 통과하여 스탠퍼드에서는 국제 정치학으로 석사를 받고 종국엔 무기제조업체인 록히드마틴에 입사하여 2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헤비급 사원으로 거듭났다.

 

목표 금액만 채우면 손을 탁 털고 여유롭게 살리라 마음 먹으면서. 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그렇듯 계획대로 되지 않는 법! 북한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던 그는 어느새 도망자가 되어 중국으로 숨어들었고 그 곳에서 자신처럼 타인의 눈을 피해 홀로 다니는 동양인을 눈여겨 보게 되었는데 북한 사람? 조선족? 대한민국인? 의혹의 시선으로 관찰했던 사내는 그에게 갑자기 말을 걸어와 자료 하나를 맡겨두고 다음날 살해되어 버렸다. 무슨 일에 말려 들었단 말인가!!

 

p13  배신의 현실에 내던져진 허한 웃음은 종말을 예감하고 있었다

 

깐깐한 여검사를 피해 도피해 온 곳에서 괜한 일에 말려들어 목숨까지 잃게 되었다. 중국에 잔류할 것인가 대한민국으로 넘어가 체포되고 말 것인가. 머릿 속이 복잡하던 그는 죽은 남자가 사실은 대한민국에서 건너온 소설가였으며 그의 소설이 사라졌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가 남긴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소설 속 마을에서는 살인사건이 일어나는데 그 연유는 아무도 본 적 없는 글자 하나 때문이었다고 했다. 누구도 본 적 없으나 누구도 알아서는 안되는 그 글자를 밝혀야만 살인범을 잡을 수 있다. 액자소설 속 이야기는 또 그 이야기대로 너무나 재미나서 태민의 사정은 잊은 채 작가의 의도대로 새로운 이야기에 빠져들며 메모지에 나름의 글자를 추리해봤지만 밝혀진 글자는 역시 생소했다. 그 글자의 비밀과 사내의 죽음의 단서를 가지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 태민은 예전의 돈만 밝히는 사람으로 살 수 없었다. 더이상은. 그리고 정의를 선택하는 순간, 그의 발목에 채워진 족쇄도 함께 풀어졌다.

 

한자의 기원을 두고 설왕설래하는 것은 여전하지만 소설은 더부룩한 속을 한방에 뻥 뚫어줄만큼 시원했다. 그래서 다 읽고나서 내 일처럼 크게 웃어제칠 수 있었다. 재미와 대중성. 작가는 영리하게도 둘 다를 잡고 독자를 매니아로 만들어가고 있다. 점점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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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옷을 입으렴
이도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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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전지현이 출연했던 <설화와 비밀의 부채>속 두 소녀의 우정은 시간이 갈수록 묵혀진다. 물론 오해도 있었고 갈등도 있었고 서로의 삶이 달라진 부분들도 등장하지만 시대는 달라도 우리네 인생이 이렇게 흘러가는 것이기에 두 소녀의 우정이 여인의 우정으로 변모해가는 것 역시 물흐르듯 지켜봐진다. 그 마음 그대로 읽히는 또 다른 소설 한 권이 이도우 작가의 <잠옷을 입으렴>이었다.

 

구성작가, 카피라이터 등으로 활동했던 저자는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이후 이종사촌간인 수안과 둘녕의 이야기를 담은 <잠옷을 입으렴>을 내어놓았는데 전작을 잃지는 못했지만 현재의 둘녕과 과거의 둘녕을 오가며 뱉어내는 추억들이 진한 진국맛이 나 전작 역시 훌륭하리라 짐작케 만든다.

 

첫문장은 꿈속 이야기로 시작된다. #7 꿈속에서 조용히 울었다. 슬픈 꿈이었다. 포플러 신작로를 따라 그 아이와 타박타박 걷던 시절, 등에 멘 책가방에서 필통 속의 연필들과 빈 도시락 수저가 달그락거리던 날들의 이야기였다 라고. 분명 눈으로 읽고 있는데 내 귓가에는 그 달그락거리는 수저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조용히 울었다에서 예상 할 수 있듯 아주 그립지만 이제는 함께 할 수 없는 누군가 혹은 그 시절의 이야기구나 싶어진다. 꿈처럼 시작된 둘녕의 추억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데 늦은 밤 조용히 몇몇이 없는 영화관에 앉아 무묵히 화면을 응시하듯 구경하게 만드는 소설은 그렇게 내 마음을 조금씩 적셔 나갔다.

 

기억속에 두고 온 사람. 둘녕에게는 이종사촌 수안이 그랬다. 엄마가 집을 나가고 재혼한 아빠에게서도 멀어져 외가에 와서 더부살이하게 된 둘녕에게 수안은 처음부터 살갑게 굴지는 않았다. 그랬던 둘의 사이가 쫀쫀해진 것은 장에서 둘녕의 손을 놓았던 수안의 마음속에 미안함과 함께라는 의식이 불어넣어지기 시작하면서부터였으리라. 그렇게 고둘녕과 정수안은 둘도 없는 자매이자 친구가 되어 학창시절을 함께 해 나갔지만 둘녕은 외가에서 함께 살되 가족일 수는 없었다. 잊을만 하면 툭툭 붉어지던 "넌 가족이 아니야"라는 표식. 이모부의 외도, 막내이모의 가출, 대학을 그만두고 내려와 버린 외삼촌의 지난 역사를 함께 겪었지만 물과 기름이 한 컵에 담긴듯한 이질감은 그녀를 더 쓸쓸하고 외롭고 눈치 보게 만들었으리라. 더부살이. 그래서였을까. 대학을 보내주겠다는 외가쪽 어른들의 제안을 거절하고 그녀는 손재주를 살려 알바 및 취업을 선택했다. 그리고 얼마 후 글을 써오던 수안이 사라졌다. 그녀의 인생에서.

 

 

P127  근사한 이야기를 쓰기 위해선 학교에 다녀서는 안되는 거라고.

        모든 사람이 똑같은 걸 배운다면 다들 똑같아지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혼자만의 독특하고 멋진 이야기를 지어내려면 엘리너 파전처럼 학교 따위는 가지 않고,

        먼지 가득한 다락방에서 종일 뒹굴며 놀아야 할 것만 같았다 

 

 

그 시절 소녀들의 감성은 물오른 꽃망울 같았다. 현재의 둘녕은 편지를 쓴다. 삼촌에게, 아빠에게, 외할머니에게, 이종사촌 웅이에게, 삼촌과 결혼한 숙모의 동생인 산호씨에게 부치지 못할 편지들을 썼다. 어쩌면 고백일지도 모를 그 말들을 가슴으로 부치기 위해. 그녀는 마지막에 또 다른 고백을 덧붙이고 있다. 한때 내 것이었다가 나를 떠난 것도 있고, 내가 버리고 외면한 것도, 한 번도 내 것이 아니었던 것도 있었노라고. 그녀에게 인생은 셋 중 어느 것에 속해 있는 것일까.

 

떠났다기 보다는 본디 둘이 하나였던 것 같았던 수안과 둘녕은 어쩌면 한 몸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과거의 추억들을 끌어안고서. 어린 딸을 두고 집을 나가버린 엄마를 둔 둘녕과 그 어느 것도 맞지 않아 사사건건 부딪히기만 하는 엄마의 딸인 수안. 성격도 다르고 좋아하는 것도 다르고 그 길도 달랐던 그들의 공통점은 그것이 아니었을까. 엄마 그리고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

 

 

P343   엄마란 여자는 세 종류야. 낳고 키우거나, 낳고 버리거나, 낳고 키우다가 버리거나

 

그 중에서 드물게 예외인 엄마는 낳고 버렸다가 다시 찾아 키우는 거 라고 말했던 구절이 기억에 남았다. 사춘기 소녀들에겐 부모나 가족보다는 친구가 더 소중한 시절이긴 하지만 혼자인 소녀와 혼자가 편한 소녀의 우정은 너무나 절절했기 때문에. 자기 주장 강해 보이던 수안보다 조용조용하기만 했던 둘녕이 더 강한 쪽이었을까. 결국 끝까지 남아 생을 이어가는 것은 둘녕이었으니. 인생의 어느 한 시절은 영원히 자라지 않은 채 마음 한 켠을 차지하고 말았다는 소설의 내용처럼 나의 기억 너머 어딘가에도 성장을 멈춰둔 채 남겨놓고 온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문득 그 기억을 떠올려보며 그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보려 한다. 꿈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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