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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당 사진관
오지혜 지음 / 마카롱 / 2016년 2월
평점 :
품절
대한제국.
이름을 새로 선포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면 뭘하나 백성들의 삶은 시궁창 바닥처럼 처참했는데...
굶주림이 싫어 화려한 삶을 택했던 기생들은 끼니 걱정을 하며 한 놈 잘 물 생각을 하다가 사진 한 장에 사기를 당하고,
오라비와 여동생은 '고토 텐신(일본이름)'과 '안나(서양 세례명)'라 불리는 국적불명의 이름이 싫어 서로 부르지 않고 사는
그런 시대가 바로 <천연당 사진관>의 시대적 배경이다.
안나는 거친 여자였다.
남의 것을 제것마냥 훔치고도 미안함이 없었고 사진 한 장으로 매월향 기생들의 눈물서린 돈을 사기쳐 놓고도 다시 오지 못하는
것이 더 아쉬운 쪽이다. 그도 그럴 것이 부모 없이 어린 여동생인 안나를 거둬먹이기 위해 닥치고 무슨 일이든 해 온 오라비를 보며
자랐기 때문이다. 여간내기들이 아니었다. 죽이 척척 잘 맞는 남매는.
>> 살아내라 어떻게든 살아내라(p28)
훔침을 당하는 쪽이 등신인 세상인데 뭐 어때? 라는 마음으로 살아온 안나 앞에 어느 날 도덕 운운하는 재원이라는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국채보상운동의 자금 관리를 맡고 있는 기탁과 함께 <대한매일신보>에 적을 둔 우국청년이었던 것.
그렇게 도덕 운운하던 기자 재원에게 맘이 상했던 안나의 마음이 움직여진 것은 한 대가댁 마님의 오열 때문이었다.
사진이라는 것이 배우고 싶어 '무라카미 사진관'에서 일본인의 수족 노릇을 하며 사는 오라비와 함께 살던 안나는
의외로 사진을 찍고 싶어하는 여인들은 많지만 남녀가 유별하다는 성리학적 사고방식의 틀에 갖힌 사회가 그들의 열망을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수백 년의 관습은 하루 아침에 바뀌지 않는다.(p61) 그래서 출가외인인 딸은 아픈 어미에게 보낼 제 사진 한 장을 박기 위해 부인
사진사를 찾았고 안나는 그녀의 사진을 찍어주게 된다.
이를 계기로 <천연당 사진관>에서 규진으로부터 사진을 배우게 된 안나는 급기야 의친왕비의 사진까지 찍게 되지만
마냥 행복할 수 만은 없었다. 오라비를 구하기 위해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해야할 판이었기 때문에.
그녀가 팔아야할 인물들은 자신에게 새 삶을 열어준 재원, 강오, 기탁, 헐버트, 의친왕이었다. 슬프게도 그들이었다.
반대로 누이를 살리기 위해 똑같은 이들을 팔아야했던 사내도 있었다. 바로 안나의 오래비 텐신.
동족끼리 배신을 일삼던 그 시절. 나라를 구하고자 했던 이들에겐 지옥같았을 그 시대.
일본의 강제 침탈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헤이그 특사 파견이 실패로 돌아가고 대한제국은 더 암울해졌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내던진 사내들과 그 운명을 함께 했던 안나, 채련, 연홍의 슬픈 이야기는 결국 상해로 옮겨져
계속 이어지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희망의 불씨를 남겨 두었으나 그 역사의 후손인 내게 이 이야기는
참으로 아프게 읽혀졌다.
제 3회 교보문고 스토리 공모전 최우수상을 수상한 조선 최초의 여자 사진사 이야기는 암울했던 시대에 순응하며 살기 보다는
살아가고픈 나라를 위해 애썼던 청춘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 감동스러웠다. 다만 글자체가 너무 작아 눈이 시려 그 읽기를
몇 번이나 멈추었기에 독자의 가독성을 위해 좀 더 글자체에 신경써주었더라면..하는 작은 아쉬움을 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