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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전쟁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과거의 일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 논쟁의 주제가 역사
라면 이야기는 또 달라진다. 역사는 과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까지 이어져 있는 중요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고서는 진실을 100% 장담할 수 없다. 타임트래블러가 되어 그 시대에 잠깐 다녀온다고 해도 쉽게 알 수 없는 것이 역사다. 민초의 삶과
양반, 정치인의 삶과 왕의 삶이 다 다르듯 누군가의 입장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 바로 역사이기 때문에.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을 보며 혼란스러운 저 시선이야말로 진실이 아닐까 싶어졌었는데 역사 역시 라쇼몽 같이 여러 갈래의 해석이
있어 이해관계의 잣대를 누군가가 어디로 대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중국과 일본 역시 그 점에서 우위점을 찾기 위해 자신들의 역사를
과대 포장하고 자기것화 하는데 돈과 시간 그리고 명예를 내세우고 있는 것이리라.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말들이 붉어진 현재, 김진명 작가의 [글자전쟁]은 어떻게 읽혀져야 할까? <천년의
금서>,<최후의 경전>,<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을 빼놓지 않고 읽으며 필력의 매력에 빠져들게 만들곤 했다.
김진명 작가의 소설은 이덕일 작가의 역사소설이 주는 재미와는 또 달랐는데 그 몰입감과 애국심의 고취는 분야 최고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읽고나면 가슴 먹먹하게 만드는 역사소설. 누가 이토록 진한 피냄새를 진동하게 역사소설을 쓸 수 있을까. 심장을 역류하는 피냄새를 늘 맡게
만드는 작가의 이번 소설의 소재는 '한자'다. 한자가 동이족의 것이라는 이야기는 전에 들은 적이 있는 가설이어서 놀랍지 않았지만 그 동이족이
누구인가 하는 것을 두고는 중국과 우리가 첨예하게 다른 의견을 들이밀고 있다는 사실은 몰랐던 것. 하지만 놀랍지는 않았다. 역사가 아니던가.
한치 양보의 틈을 둬서는 안되는......!
p15 이 시대는 돈이 힘이야
학창시절 "자식을 이따위로 키웠냐"는 폭언을 선생에게 들을 만큼 태민은 남다른 아이였다. 수재였으나 윗사람에 대한 예의보다 자신의 생각이
먼저였고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돈'의 힘을 알고 돈을 벌기 위해 인생 목표를 책정했을만큼 현실적이었다. 그는 선생을 향해 "마음껏 다
해보고 모조리 실패하면 할 수 없이 학교에서 선생이나 하겠다"며 대차게 대꺼리 했던 버릇없는 학생이기도 했다. 그랬던 그는 전액 장학생으로 칼텍
물리학과를 통과하여 스탠퍼드에서는 국제 정치학으로 석사를 받고 종국엔 무기제조업체인 록히드마틴에 입사하여 2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헤비급
사원으로 거듭났다.
목표 금액만 채우면 손을 탁 털고 여유롭게 살리라 마음 먹으면서. 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그렇듯 계획대로 되지 않는 법! 북한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던 그는 어느새 도망자가 되어 중국으로 숨어들었고 그 곳에서 자신처럼 타인의 눈을 피해 홀로 다니는 동양인을 눈여겨 보게 되었는데
북한 사람? 조선족? 대한민국인? 의혹의 시선으로 관찰했던 사내는 그에게 갑자기 말을 걸어와 자료 하나를 맡겨두고 다음날 살해되어 버렸다. 무슨
일에 말려 들었단 말인가!!
p13 배신의 현실에 내던져진 허한 웃음은 종말을 예감하고
있었다
깐깐한 여검사를 피해 도피해 온 곳에서 괜한 일에 말려들어 목숨까지 잃게 되었다. 중국에 잔류할 것인가 대한민국으로 넘어가 체포되고 말
것인가. 머릿 속이 복잡하던 그는 죽은 남자가 사실은 대한민국에서 건너온 소설가였으며 그의 소설이 사라졌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가 남긴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소설 속 마을에서는 살인사건이 일어나는데 그 연유는 아무도 본 적 없는 글자 하나 때문이었다고 했다. 누구도 본 적
없으나 누구도 알아서는 안되는 그 글자를 밝혀야만 살인범을 잡을 수 있다. 액자소설 속 이야기는 또 그 이야기대로 너무나 재미나서 태민의 사정은
잊은 채 작가의 의도대로 새로운 이야기에 빠져들며 메모지에 나름의 글자를 추리해봤지만 밝혀진 글자는 역시 생소했다. 그 글자의 비밀과 사내의
죽음의 단서를 가지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 태민은 예전의 돈만 밝히는 사람으로 살 수 없었다. 더이상은. 그리고 정의를 선택하는 순간, 그의
발목에 채워진 족쇄도 함께 풀어졌다.
한자의 기원을 두고 설왕설래하는 것은 여전하지만 소설은 더부룩한 속을 한방에 뻥 뚫어줄만큼 시원했다. 그래서 다 읽고나서 내 일처럼 크게
웃어제칠 수 있었다. 재미와 대중성. 작가는 영리하게도 둘 다를 잡고 독자를 매니아로 만들어가고 있다. 점점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