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2030 세상보기. 이번 달엔 <사과 디자이너Apology Designer들에게>란 테마를 고민해보았다. 


원문 링크 '사과와 변명의 차이' 

사과문은 오늘날의 윤리를 체험하는 관광명소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야구 커뮤니티에서 상대 팀을 댓글로 조롱한 자부터, ‘땅콩 회항’이라 불리는 사건까지. 일이 터지면 사람들은 맨 먼저 어떤 사과문이 나올지 기다린다. 사과가 깔끔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기꺼이 사과문의 편집자가 된다. 사람들은 사과문을 읽으며 머리를 굴린다. 읽었을 때 사과한 측에서 머리를 굴린 티가 나면 좋은 사과문이 아니다. 자초지종(自初至終)의 비중이 높을수록 분노를 사기 쉽다. 공분에 휩싸인 사과문은 수정된 채 다시 발표된다.


허나 사과의 세계에서 ‘재차’ 사과한다는 것은 실패나 다름없다. SNS로 인해 성공적인 사과의 통과 기준은 과거에 비해 높아졌다. 사과 하나하나에는 고도의 지식이 투자된다. 그러다 보니 사과를 어떤 식으로 하면 좋은지 세세히 조언하는, 이른바 ‘사과 디자이너(Apology Designer)’들이 생겨났다.


기업의 윤리적 경영·사회적 책무가 화두가 된 지 오래다. 사과 디자이너도 이런 흐름 가운데 나타났다. 이들은 적절한 사과를 위해 유감, 해명, 개선의 내용이 각각 어느 정도 들어가야 할지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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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가 하나의 윤리적 노동이 되었을 때, 철학자 알랭 바디우의 말을 빌자면, 그 윤리는 과연 투쟁을 위한 형식인가 투쟁하지 않기 위한 변명인가.

그러했을 때 '쿨Cool한' 사과론을 외치는 PR 전문가들과 기업 컨설턴트들은 그들의 사과론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쿨한 사과론에는 사회적 약자가 끼어들 틈이 있는가. 이미 명성을 누릴 수 있는 자들의 뻔한 권리가 오늘날 쿨한 공적 사과가 아닌가. 정치인, 기업인의 납작 엎드린 사과가 을/피해자/희생자의 입장에서 최종의 정서적 승리로 인식되어선 안 되는 이유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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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족 2015-08-21 1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것과, 정직하게 좀 더 열심히 말해보는 것, 권력의 큰 격차를 고려한다면 전자를 원하는 게 맞나 싶다가도, 그래도, 정직하지도 않다면 듣고 싶은 말을 듣는 게 무슨 의미야, 싶기도 합니다.

얼그레이효과 2015-08-28 13:00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그런 마음과 비슷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