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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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여러 가지 타고난 능력이 있다. 그 중에 한 가지 능력이 망각이다. 망각 덕분에 사람들은 좀 더 부드럽게 삶을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인상적인 사건은 망각되지 않는다. 만약 좋지 않은 기억이라면 그것은 트라우마로 남아서 지속적으로 사람의 삶을 괴롭힐 것이다. 1980518일의 사건은 한국인의 트라우마다. 전라도 광주에서 일어난 사건이지만 그들의 가족 뿐 만아니라 그 시대에 살았던 타 지역의 사람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앞으로 대한민국이라는 땅에서 살아가야 할 미래세대들의 트라우마다.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처음엔 차디찬 몽둥이 같았던 그것,

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이리가 된 그것,

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놓은, 내 모든 따뜻한 피를 흘러나가게 한 구멍을 생각해.

그걸 쏘아 보낸 총구를 생각해.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p.57

 

그 날 이후로 살아남아 숨 쉬고 있는 이들은 죽은 이들에게 죄인이다. 같은 날 죽지 못해 죄인이며 그 날 함께 있지 못해 죄인이며, 그들의 죽음을 딛고 서 있는 지금 죽음이후에도 그들을 자유롭게 해 줄 수 없어서 죄인이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p.135”

 

눈물을 흘렸다. 그 시대를 살아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라도 광주에 있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의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무관심하고 무지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서, 그리고 살아남아서 아직도 그들만의 전쟁을 하고 있는 그들을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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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 -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시대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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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발 하라리의 호모 사피엔스에 따르면 인류는 인지혁명이후 다른 생명체와는 달리 추상적 사고 능력(imagined order)이 가능해졌다고 한다. 농업혁명은 정착생활을 가능하게 됐지만 그 만큼 미래에 대한 불안이 높아졌다. 그 결과 조금 더 복잡한 공동체의 모임이 생겨나고 사회, 국가라는 개념이 발생했다. 다시 말하면 국가라는 개념 자체는 개개인의 모임을 좀 더 효율적이고 안정적이고 인간답게 만들기 위해 생겨났다는 말이다.

 

국가라는 체제 안에는 전제정치, 군주정치, 입헌군주정치, 민주정치 등 여러 가지 정치체제가 존재한다. 그런데 이들 중에 어느 것이 옳은 것이고 어느 것이 그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홍구 유신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이런 의문이 떠올랐다. 다양한 정치 방식들은 말 그대로 국가를 운영하기 위한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 나라를 대표하는 대표자 예를 들면 왕, 대통령 등과 같은 인물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국가를 운영해 가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그리스 시대에는 페리클레스, 로마 시대에는 율리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등처럼 한 국가는 시대상황에 맞게 그 체제를 변화되어왔다. 그것을 결정지은 것은 언제나 인간이라는 존재였다.

 

박정희의 유신시대는 결국 박정희라는 인물의 문제다.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유정회설립, 자신의 정권에 반하는 인물을 처단하기 위한 민청련 사건’, ‘인혁당 재건위 사건’, ‘김대중 납치사건’, 경제발달이라는 명목으로 이루어진 새마을 운동’, ‘기지촌 정화사업‘, 달러를 벌어들이기 위해 독일 간호사 광부 파견‘, 베트남 파병등 그의 시대에 일어난 모든 일들은 한 사람을 위해 이루어진 것들이었다. (경제에 큰 변화를 불러 왔다고 하지만 실제 그 일을 이룬 것은 자식들 따뜻한 쌀밥 먹이기 위해,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취직시키기 위해 밤낮으로 뛰어다닌 우리 부모님들이다.)

 

한 나라를 움직일 권력을 가진 사람은 그 권력의 무게를 스스로 느껴야 한다. 그 무게가 국민들이 그에게 부여한 권력과 같은 무게이며 그에 대한 믿음의 무게와도 같기 때문이다. 박정희의 시대는 권력의 무게를 무시했다. 국가라는 존재가 만들어지게 된 인류학적인(?) 이유를 간과했다. 그러기에 새 정부에게 부탁드리고 싶다. 국민이 부여한 권력의 무게를 절실히 느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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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으로의 긴 여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9
유진 오닐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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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언제나 안전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넘어가기 가장 안전한 방법을 찾아다녔으며, 생명의 위협을 가장 덜 느끼는 곳을 찾아 거주지를 정했다. 그러기에 인류의 등장은 신의 등장과 함께 했다. 신이라는 우산아래서 주위의 위협으로부터 심리적 안정을 느껴왔다. 또한 신이 있기에 인간 행동에 방향과 한계를 규정할 수 있었다. 반대로 신이라는 존재에 의문을 가지게 될 때 인간이 가지고 있는 나침반은 부서지게 되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탐욕과 욕정, 잔인함과 악랄함이 걸러지지 않고 세상 밖으로 나온다. 세상으로 소환된 이런 감정들은 인간들과의 관계 속에서 눈덩이처럼 더 커져간다. 제어기이자 탈출구였던 신 대신 인간은 돈, 권력, , 마약 등과 같은 다른 탈출구에 집착하게 되고, 그로 인해 감정의 정화보다는 오히려 감정의 추악함만이 더욱 발현된다. 인간으로 가지고 있던 가치와 존엄성은 벼랑 끝에 몰리게 되고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약육강식의 논리만이 살아남는다.

 

“... 그 땐 바다가 잔잔했어요. 나른하게 넘실대는 파도 위에서 배가 졸릴 정도로 천천히 흔들리고 있을 뿐이었죠. 승객들은 모두 잠들고 승무원들도 눈에 띄지 않았죠. 인간의 소리라곤 들리지 않았어요.....함께 잠들어 있는 하늘과 바다 위로 여명이 마치 채색된 꿈처럼 살그머니 퍼져 나가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말예요. 그 때 황홀한 해방의 순간이 온 거예요. 평화, 탐색의 끝, 마지막 항구, 인간의 더럽고 비참하고 탐욕스런 공포와 희망과 꿈들을 초월한 성취가 주는 환희.....보이지 않는 손이 만물의 베일을 벗기는 순간이라고 할까요. 한 순간 우리는 만물의 신비를 보고, 그러면서 자신도 신비가 되는 거죠. 순간적으로 의미가 생기는 거예요. 그러다 그 손이 도로 베일을 덮으면 다시 혼자 안개 속에서 길을 잃고 목적지도. 그럴 듯한 이유도 없이 비틀거리며 헤매는 거죠. 전 인간으로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요... 인간이 되는 바람에 항상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하고, 진정으로 누구를 원하지도, 누가 진정으로 원하는 대상이 되지도 못하고, 어디 속하지도 못하고, 늘 조금은 죽음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된 거죠. p.191-192”

 

 

인간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힘들어진다. 안개 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처럼 한치 앞이 보이지 않아 어디에 첫 발을 내딛어야 할지조차 알 수 없다. 방향을 잃은 첫 발걸음이 자칫 라는 존재의 소멸로 이어질 것 같기에 더욱 두렵고 무서워진다. 하지만 그 자리에 주저앉아 헤매고 있을 때 하나의 손이 뻗어온다. 그 손은 힘없이 처져 있는 나의 손을 잡고 힘이 풀려버린 다리에 힘을 준다. 붙잡은 손은 짙은 안개 속에서 다시 일어날 힘 뿐 만아니라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까지 제시해 준다. 그 손을 따라 걷다보면 우연찮게 지쳐 땅에 쓰러져 있는 다른 사람을 마주하게 되고 다시 그 손을 잡고 일으켜 앞으로 나아간다. 손과 손을 마주잡고 가다보니 어느 덧 안개는 걷히고 다시 황홀한 해방의 순간, 평화와 희망의 순간이 빛난다.

 

밤으로의 긴 여로는 좌절에 지친 인간이 결국 과거의 좋은 때만을 회상하고 그리워하면서 장면을 마감한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내 옆에 있는 사람, 내 눈 안에 있는 사람들이 나의 또 다른 희망이라고. 상처 입은 사랑이 또 다른 사랑으로 치유되는 것처럼 사람으로 인한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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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 소설
한강 지음, 차미혜 사진 / 난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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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고 어두운 공간에서 10개월이라는 미지의 시간을 보내며 자라난 하얀 아이는 자신처럼 새하얀 조명을 받고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 부모 앞에서 하얀 속살을 드러낸다. 배내옷을 입고 하얀 강보에 둘러싸여 낮에는 하얀 햇살을, 밤에는 반짝이는 새하얀 달과 별이 존재하는 새로운 공간에서 살아간다.

 

눈처럼 하얗고 반듯한 아이는 자라면서 조금씩 그 색깔, 그 모양을 잃어간다. 투명할 정도로 하야기 때문에 어떤 색으로도 물들어 버린다. 절망과 슬픔, 역경과 두려움으로 구겨지고 조금씩 찢겨져 원래의 모양이 사라진다. 하얀 페인트로 덧칠을 하고 하얀 연고를 발라도 잠시 감추어질 뿐 색과 상처는 다시 복구되지 않는다. 시간의 흐름은 더욱 흰 것을 무너뜨려 마지막에는 원래 흰 것이 왔던 어두운 것으로 되돌려 보낸다. 어둠에서 나와 어둠으로 들어가고 흰 것으로 태어나서 흰 것으로 마감하는 운명임을 알지만 우리는 오늘도 한 걸음을 내디딘다.

 

그렇게 날카로운 시간의 모서리 시시각각 갱신되는 투명한 벼랑의 가장자리에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간다. 살아온 만큼의 시간 끝에 아슬아슬하게 한 발을 디디고, 의지가 개입할 겨를 없이, 서슴없이 남은 한 발을 허공으로 내딛는다. 특별히 우리가 용감해서가 아니라 그것밖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도 그 위태로움을 나는 느낀다.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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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의 노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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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은 자연의 것이다. 열을 가하고 방망이질을 수차례 가한 이후에 인간에게 필요한 쇠가 된다. 그렇기에 쇠는 누구의 것도 아니다. 만든 사람의 것이기도 하고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것이기도 하며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쇠는 담을 수 없다. 오히려 담기 보다는 담은 것을 부순다. 사람의 손을 거치게 되면서 더욱 그 쇠는 날카로워져서 부수고 또 부수어 더욱 견고해진다. 그렇기에 너무나 세속적이다. 사람의 욕망과 욕구 그리고 야망은 쇠를 통해 날카롭게 표현되어져 왔다. 따라서 쇠는 사람을 뿐만 아니라 자연도 담을 수 없다.

 

소리는 다르다. 소리는 모양과 형태가 존재하지 않는다. 소리는 살아있는 생명체의 것이다. 살아서 숨 쉬는 모든 존재는 소리를 만들어 낸다. 그렇기에 소리는 모든 것을 담는다. 베고 쓰러뜨리는 쇠와는 달리 소리는 울려 퍼져 살아있음을 증명한다. 소리는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다. 단지 그것을 표현하는 이와 그것을 듣는 이의 마음에 따라 다르게 들릴 뿐이다. 그렇기에 소리는 살아있는 자를 위한 것이다. 죽은 자를 위해 만들어내는 소리조차 산 자를 위해 만들어진 소리이다. 소리는 무한히 퍼져나가고 무한히 담으며 무한히 살아 숨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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