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31 | 32 | 33 | 34 | 3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열하광인 1 백탑파 시리즈 3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1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아무리 넓은 로마제국이라도 모든 길은 다 중심부인 로마에 연결되어있다. 교통, 건물과 같은 하드웨어뿐 만아니라 철학, 사상에 이르는 소프트웨어까지 모든 것이 로마와 하나였다. 그럼 조선시대는 모든 학문은 성리학으로 통한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얼마나 성리학의 사서오경을 잘 암송하고 얼마나 인용을 잘 하느냐로 선비들의 학문의 깊이를 알 수 있었다.

 

  글을 쓰기 전에 필사를 추천한다. 문학적으로 뛰어나고 매력적인 문구들이 많은 책을 베껴 적으면서 글을 쓰는 수련을 한다. 과거 선비들이 사서오경을 입으로 음독하면서 암기해서 자연스럽게 입으로 읊을 수 있도록 한 것처럼 말이다. 이 모방의 과정은 어떤 일을 하던지 꼭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이다. , 반복과 모방은 모든 학문의 첫 걸음이다. 하지만 모방만을 계속 강조한다면 세상의 모든 책과 그 속에 있는 글들은 붕어빵처럼 똑같을 것이다. 식상하고 재미없을 것이다. 조선시대의 성리학의 고문서들은 선비들에게 성서와 같은 존재였다. 선비라면 누구나 그것을 반복적으로 읽고 암송하고 인용을 함으로써 자신의 지적 능력을 뽐내었다. 하지만 붕어빵처럼 그 글 등은 비슷한 색채와 감정을 가진다. 일정한 틀 속에 사고의 범위를 정해두고 거기서 벗어난 것은 도덕적이지 않다’, ‘올바르지 않다라고 규정한다. 다양성을 무시하고 획일성을 조장한다.

 

  조선 정조 때 박지원의 열하일기와 같은 소설체 문장을 중심으로 하는 책들이 들어오게 되고 정조는 이것들을 패관소품이라고 명하고 금서로 지정한다. 그리고 성리학에서 나오는 전통적인 고문들을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고 명령한다. 이 사건을 문체반정이라고 부른다. 열하광인은 실제 정조 때의 문체에 대한 학자와 선비들의 문체에 대한 생각의 다툼을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려서 보여준다. 그리고 이야기한다. 같은 붉은색으로 보이는 것도 개개인의 눈으로 보면 다른 의미와 색깔과 냄새를 가지고 있다고..... 붉다 하여 어찌 모두 같을 수 있겠는지요. 연지의 붉음과 분의 붉음이 다르고 석류화의 붉음과 성혈의 붉음이 다르지요. 어떤 것은 짙게 붉고 어떤 것은 옅게 붉으며 어떤 것은 가볍게 붉고 어떤 것은 무겁게 붉습니다. 연지의 붉음도 아침과 저녁이 다르고 집 안과 산 위가 다른 법이지요. 만물을 제각각 다르게 노래해야 한다고 주장한 박제가와 비슷한 주장이었다. 옛날의 노래는 훗날의 독서와 같으므로, 박제가의 말은 곧 다르게 보고 듣고 읽고 써야 한다는 뜻이었다. p 178 상권

각 사물의 이름 또한 대국에서 빌려 온 것이 많으니 그 쪽에서는 귤인 것이 우리에게는 탱자에 불과할 수도 있음이외다.......더러운 것은 더럽다 해야 하고 추한 것은 추하다 해야 합니다. 그것을 이런저런 방식으로 피한다면 어찌 세상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겠습니까?.... 서시가 예쁘다고 하여 매일 서시처럼 얼굴을 찡그릴 수만은 없소이다. 진짜 자신만의 문장을 찾았으면 좋겠소이다. p.235 하권

  같은 것을 읽더라도 글 속에 포함되어있는 색깔과 소리와 리듬을 읽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다름을 무시한 같음은 전체주의적인 성향을 띄기 쉽다. 같음 속에도 다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더 풍요한 사회, 삶을 이룰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31 | 32 | 33 | 34 | 3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