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강 소설
한강 지음, 차미혜 사진 / 난다 / 201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좁고 어두운 공간에서 10개월이라는 미지의 시간을 보내며 자라난 하얀 아이는 자신처럼 새하얀 조명을 받고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 부모 앞에서 하얀 속살을 드러낸다. 배내옷을 입고 하얀 강보에 둘러싸여 낮에는 하얀 햇살을, 밤에는 반짝이는 새하얀 달과 별이 존재하는 새로운 공간에서 살아간다.

 

눈처럼 하얗고 반듯한 아이는 자라면서 조금씩 그 색깔, 그 모양을 잃어간다. 투명할 정도로 하야기 때문에 어떤 색으로도 물들어 버린다. 절망과 슬픔, 역경과 두려움으로 구겨지고 조금씩 찢겨져 원래의 모양이 사라진다. 하얀 페인트로 덧칠을 하고 하얀 연고를 발라도 잠시 감추어질 뿐 색과 상처는 다시 복구되지 않는다. 시간의 흐름은 더욱 흰 것을 무너뜨려 마지막에는 원래 흰 것이 왔던 어두운 것으로 되돌려 보낸다. 어둠에서 나와 어둠으로 들어가고 흰 것으로 태어나서 흰 것으로 마감하는 운명임을 알지만 우리는 오늘도 한 걸음을 내디딘다.

 

그렇게 날카로운 시간의 모서리 시시각각 갱신되는 투명한 벼랑의 가장자리에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간다. 살아온 만큼의 시간 끝에 아슬아슬하게 한 발을 디디고, 의지가 개입할 겨를 없이, 서슴없이 남은 한 발을 허공으로 내딛는다. 특별히 우리가 용감해서가 아니라 그것밖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도 그 위태로움을 나는 느낀다.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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