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의 정치학 - 왜 진보 언론조차 노무현·문재인을 공격하는가?
조기숙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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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누적 적자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ECOS)

 

김영삼 정부- 23조원

김대중 정부- 54조원

노무현 정부- 109,000억원

이명박 정부 988,000억원

박근혜 정부 167조원

 

역대 정권 가계대출 증가액 (자료: 한국은행 ECOS 가계대출 통계)

 

김대중 정부 : 232조 원 증가 (185417)

노무현 정부 : 213조 원 증가 (417630)

이명박 정부 : 276조 원 증가 (630906)

박근혜 정부 : 321조 원 증가 (20169월까지) (9061227)

 

역대 정권 1인당 GDP 증가액 (자료: 통계청)

 

김영삼 정부 : -107달러

김대중 정부 : 4,493 달러

노무현 정부 : 9,532 달러

이명박 정부 : 3,981 달러

박근혜 정부 : 1,486 달러

 

 

수치상(p. 74) 으로 제시된 위의 자료만 보더라도 역대 가장 적은 적자, 가정 적은 가계대출, 가장 높은 1인당 GDP 증가를 보여준다. 노무현정권의 경제적 실패를 비판하며 등장했던 이명박 정권이 오히려 경제적 지표에서 낙후된 면을 보여주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럼에도 아직 우리는 노무현 때문에....’ 라는 근거없는 찌라시 수준의 말에 속아 넘어간다. 진보파인 노무현대통령을 보수파인 그들이 합리적인 비판(??????)을 하는 건 어쩔 수 없더라도 같은 진보파조차도 같은 양상을 취해 왔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왕따의 정치학에서 나름의 합당한 이유를 제시해 주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정치의 방향도 제시해 준다.

 

시민운동은 크게 3세대로 나누어진다.

 

1세대 시민권 - 참정권을 위한 운동 (독재 vs 민주) 4.19혁명 , 5.18민주화 운동,

                      6.10 민주항쟁이 여기에 속한다.

 

 

2세대 시민권 경제적 권리(복지권, 노동권등)를 위한 운동 (자본 vs 노동)

        ⇝1987~1990년대 집권기회는 없었음

 

3세대 시민권 자치권 (권위주의 vs 탈권위주의) 2002~현재

 

1세대 2세대의 공통적인 문화적 현상이 바로 권위주의이다. 힘을 가지고 위에서 아래로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이에 반해 3세대의 문화는 탈권위주의’, ‘탈물질주의’, ‘탈이념주의에 속한다. 위에서 아래로가 아닌 아래에서 위로의 자연스러운 변화를 추구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2세대를 거치지 않고 바로 3세대로 넘어갔다. ‘노사모와 같이 인터넷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일반인의 힘이 노무현 대통령의 궁극적인 에너지였다.

하지만 좌파는 아직 2세대에 머물며 권위주의를 바탕으로 경제적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당연히 탈권위주의를 표방하고 개혁을 하려는 노무현대통령과 그들은 같은 좌파이면서도 같은 편이 될 수 없었다.

 

구좌파는 20세기의 진보적 가치, 즉 경제적 평등을 위해 사익을 추구하지 않고 올인했다. 진보언론과 운동권의 길을 택해서 사회정의를 위해 싸운 이들에게 구좌파로서의 가치는 모든 것에 우선한 옳음이다. 옮음을 위해 자신의 일생을 바쳤기 때문에 이게 자신의 정체성이 돼버렸다.p.198”

 

3세대는 자치권을 주장한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다. 시민이다. 국민에 의해 부여받은 권리를 자신의 태생적 권리인 것처럼 휘두르며 운영되는 방식은 이미 과거정부의 형태이다. 인터넷 덕분에 그리고 국민의식의 성장 덕분에 이제는 특정 누군가의 책임 없는 방식의 운영보다는 시민들의 모니터링에 의해 감시받고 견제 받으며 동시에 지지를 받는 방식의 운영이 선호된다. 이명박 정부 때의 촛불시위,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에 맞선 촛불혁명은 시민자치권이 이미 그것을 증명했다.

 

문재인 정권의 정부는 탈권위주의이다. 시민권을 존중하고 섬길려고 한다. 논쟁이 필요한 사안은 공론의 장을 거쳐 결론에 도달하고자 한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와는 다르다. 같은 탈권위주의, 시민자치권을 추구함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의 실패에서 배웠다. 내려진 권위는 역날검이 되어 상대방이 아닌 오히려 자신을 벨 수도 있다는 걸을... 다시 말해 시민을 향한 권위는 내려놓되 힘을 가진 자들에 대한 권력은 유지하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를 욕했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를 선망했으며, 그가 떠난 이후에서야 그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노무현대통령을 싫어했던 이명박, 박근혜 정권 덕분에..... 이제 그의 후계자라고 할 수 있는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었다. 이번만은 노무현대통령 때처럼 잘 알지도 못하고 동조하지 말고, 왜곡되고 조장된 정보에 속아 그를 욕하지도 말자.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올바른 정보를 선별해 우리의 눈으로 판단하고 결정해 타당한 비판 합리적인 비판을 하며 올바른 지지와 믿음을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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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 - 지금 가까워질 수 있다면 인생을 얻을 수 있다
러셀 로버츠 지음, 이현주 옮김, 애덤 스미스 원작 / 세계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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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데우스의 작가 유발 하라리에 의하면 인류는 처음에 자연()을 섬겼으며 산업혁명을 통해 자연()을 정복하여 자연과 동등한 자리에 오르게 되었으며 이제는 자연()을 넘어서는 자리를 넘보고 있다. 인간이 처음으로 종교로 믿어왔던 것들을 넘어서게 되면서 휴머니즘(인간애)이라는 것을 새로운 종교가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인류는 태생이 타인에 대한 관심과 사랑보다는 자기애가 더욱 강한 동물이다. 그렇기에 언제나 사랑받고 관심 받고 존중받기를 원한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자기애에 대한 집착은 위험한 요소이다. 그렇기에 규제하고 통제할 수단이 필요하다. 제도적인 수단도 있지만 애덤 스미스가 주장하는 통제자는 공정한 관찰자이다. , 마음속에 또 다른 나를 존재시켜 타인의 관점에서 나를 판단하고 조정해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꿈꾸고 바란다. 그럼 행복이란 무엇인가? 이 책에 의하면 인간은 사랑받고 사랑스러운 존재, 존경받고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 될 때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두 가지 방법이다.

 

첫째, 부와 명예와 권력을 가지는 것이다. 이것에 의해 받은 관심과 사랑은 나 자신때문에 사랑받고 존경받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것들이 사라지면 대중들의 관심은 사라진다. 따라서 진정한 행복을 불러오지 못한다. 연예인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둘째, 현명하고 도덕적인 사람(지혜와 미덕을 가지기)이 되는 것이다. 일단 4가지가 필요하다.

 

적절성- 지나친 감정표현은 타인에게 부담감과 시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너무 큰 기쁨은 시기심과 부러움을 사게 되고 너무 큰 슬픔은 타인의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따라서 주위사람들의 기대에 맞는 수준의 기쁨과 슬픔은 표현할 때 서로간의 믿음과 신뢰가 쌓이고 이 과정에서 사랑스러움이 시작된다.

 

신중- 자기 자신을 돌본다.(진실과 겸손) 되도록 적게 말하고 많이 행동하라

 

정의-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공정한 관찰자를 통해 인간의 본성인 자기애를 끌어내림.

 

선행- 다른 사람을 선한 마음으로 대한다. 선행을 위한 자기만의 원칙을 정하고 공정한 관찰자를 통해 관리함.

 

위의 4가지가 행복한 삶을 위해 필요한 요소라면 더 나은 세상, 더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애덤 스미스의 대답은 간단하다.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충실해야 된다고 한다. 즉 세상이 아닌 내가 사는 생활공간에서의 작은 변화들이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 된다.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때는 지금 이시간이며,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며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다.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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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고릴라 - 우리의 일상과 인생을 바꾸는 비밀의 실체
크리스토퍼 차브리스.대니얼 사이먼스 지음, 김명철 옮김 / 김영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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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착각을 인정하기는 쉽지 않다. 내가 직접 보고 느끼는 것들은 올바르게 기억되어 있는 반면 상대방의 것은 어딘가 믿음이 덜 간다. 특히 나와의 의견이 충돌할 경우에는 과감히 그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내가 옳다고 주장한다.

 

보이지 않는 고릴라는 이런 인간이 타고난 착각(맹시)를 여러 실험을 통해 증명해 보인다. 주의력 착각, 기억력 착각, 자신감 착각, 지식 착각, 원인 착각, 잠재력 착각 등 6가지의 착각은 인간 누구나 가지고 있는 착각들임에도 인정하기 쉽지 않은 것들이다.

이런 착각들은 스스로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며 의심하게 하며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게 만들 수 있다. 또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이런 착각을 인지하고 다시 한번 점검하고 결정을 내린다면 좀 더 나은 결과물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라고 작가는 덧붙여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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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시, 헌법
차병직.윤재왕.윤지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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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에서 서민들에게 가장 낮은 문턱으로 다가와야 할 두 가지가 병원과 법원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고 수득을 보장하는 전문직이 의사와 법 관련직종이다. 옛날과 비교해 많이 줄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인식에는 권력과 부의 집중은 법 관련 직종에 몰려있으며 사회적 인정과 부를 보장하는 직종은 의사이다. 당연히 대학 입시 때 항상 높은 커트라인을 자랑한다.

 

건강한 직업의식과 직업윤리를 가지고 직업을 선택하기 보다는 물질적인 요인들이 더욱 크게 직업선택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렇게 획득된 부와 재력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존중 받는요소로 또한 작용한다. 서민들에게 낮게 접근해야 할 병원과 법원은 자연스럽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권력과 부를 가진 자들과 끈끈한 끈을 형성한다. 이번 최순실 사건이 가장 좋은 예이다.

 

이번 사건으로 서민들의 헌법에 대한 필독이 요구되었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니 어렵다. 특히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법률적 용어들은 더욱 법과 거리를 멀게 만든다. 권력과 부를 가진 자들이 스스로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서 주로 작용되어 왔던 이유가 아마 이런 것 때문일 것이다. 누구나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법, 약한 자를 보호하고 새로운 기회를 부여할 수 있는 법. 그것이 건강한 사회 요구되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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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티스맨 - 2017년 제13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
도선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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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를 한 꺼풀씩 벗겨내면 마지막에 남는 것은 양파가 양파일 수 있는 씨가 남는다. 유구한 역사를 거친 인간도 마찬가지다. 진화라는 이름으로 발전해 왔지만 한 꺼풀씩 벗겨내면 결국 마지막에 남는 것은 태초의 인간의 본능이 남는다. 폭력성, 야만성, 잔인함 등이 아마 거기에 속할 것이다. 이런 본능들은 사회라는 것이 만들어지면서 형성된 사회규범, 가치, 문화라는 것들에 의해 제어된다. 애국심이라는 이름으로 가끔 이루어지는 전쟁과 같은 본능의 발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사회적 시스템에 의해 많은 부분 인간본능이 제어된다.

하지만 이런 불안요소들은 제어시스템의 부재, 그리고 한 사회에 속하지 못한다는 불안의식에 의해 자연스럽게 밖으로 드러난다.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공간은 새로운 자아를 형성할 수 있는 곳이다. 서로 칼부림을 하지 않을 뿐 언제나 서로 경쟁하고 싸우고 살아남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현실에서 그 공간은 도피처가 될 수도 있다. 비록 현실에서는 경쟁에 도태된 찌찔한 인간으로 살아야 하지만 컴퓨터 속에서는 쉽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그룹을 형성해 주류층에 속할 수 있다. 현실에서의 차별과 속박을 받는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가 될 수 있다. 거기다 자유라는 이름아래서 익명으로 이루어지니 더욱 매력적이다. 주류에 속한 의견이 아니라는 이유로 비주류의 의견을 간단히 무시하고 짓밟고 욕을 한다. 그래도 미안하거나 부끄러운 마음이 들지 않는다.

한 사회가 이루어질 수 있는 이유는 사람과 사람간의 끈 덕분이다. 믿음 신뢰 공감 동정 연민과 같은 여러 감정들이 얽히고 설키는 과정 속에서 그 끈은 더욱 두꺼워지고 쉽게 끊어지지 않게 된다. 그런 끈을 가지고 사회는 자멸하지 않으며 계속 성장해 간다. 그러나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는 쉽게 본능을 드러낸다. 사회에서는 암묵 중에 이루어진 규칙아래 통제되던 본능들이 슬금슬금 기어 나와 활개 친다. 본능과 본능이 충돌하고 피 터지는 싸움을 하고 그 과정에서 타인과 연결되어 있는 끈이 하나하나 끊어지기 시작한다. 그럴수록 더욱 원초적 본능이 발현된다.

 

이 소설은 매력적이다. 허구라는 이름으로 쓰여 졌지만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읽게 된다. 현실이기 때문에 현재도 진행 중인 문제이기 때문에 정의가 승리 한다라는 말로 결말지지 않는다. 마침 그 정의의 승리는 결국 타자를 치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 달려 있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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