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교내논술 1등 먹었어. 학교 대표로 교육청 대회 나간대!"

6월 4일 낮 12:59분에 막내한테 들어온 문자다.

이 날은 숲해설가 교육과정 하이라이트인 모둠별 무등산 숲해설 시연이 펼쳐진 날이었고,

오후에 방과후 수업이 있는 나는 다른 모둠의 배려로 먼저 시연을 마친 후, 부리나케 학교로 가는 중이었다.

"오~ 우리딸 잘했네, 축하해!"

간단한 답문을 보내고, 그날 밤엔 친정 작은어머니 장례 때문에 충청도에 갔었다.

다음 날은 '새일여성본부'가 지원한 숲해설 기초과정을 끝내고 수료식이 예정돼 있었지만,

손님처럼 조문만 하고 돌아오기가 서운해, 남편만 광주로 돌아오고 나는 그 곳에 남았다.

 

그날 심야에 막내는 교육청 논술대회 지정도서인

"허수아비춤'과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권을 가져다 달라는 문자를 보내왔고,

다음 날 아침 남편에게 전화걸어 두 권의 책이 어디 있는지 위치를 설명하고 찾아서 가져다 주게 했다.

나중에 들으니 지정도서는 모두 다섯 권이었는데, 세 권은 학교도서실에서 빌렸단다.

 

 

 

 

 

 

 

 

 

 

 

 

6월 9일 토요일 아침 8시 조금 지나서,

대회장소인 시교육청 근처 고등학교로 택시를 태워 보내며, 심호흡으로 긴장을 풀고 부담갖지 말고 편하게 쓰라 일렀다.

나는 토요일만 출강하는 중학교 방과후수업으로 바빠서 잠시 잊었고,

수업을 끝내고 40분 거리를 걸어서 집에 다 도착했을 즈음, 지하철 타려면 어디로 가야되냐는 문자가 왔다.

전화를 걸어 현재 위치를 묻고, 화정사거리쪽으로 나가 평동방향 지하철 타고 송정공원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오라 일렀다.

중학교 때 친구들과 버스를 타고 시내 중심가로 쇼핑하러 간 적은 있지만,

고2가 되도록 아이 혼자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어디를 보냈던 기억이 없어 아주 조금 걱정은 됐지만 찾아 오겠지 믿었다.

 

1시간 후,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집을 찾아 온 막내를 꼭 안아주었다.

"집도 잘 찾아오고 다 컷네! 어휴~논술을 3시간이나 쓰게 했어? 고생 했네, 우리딸!"

"응, 중학교때는 1.2.3학년 다 나가봤지만, 고등학교는 처음이라 좀 떨렸어."

우리 모녀는, 잘했든 못했든 교내대회서 1등해서 학교대표로 나갔다는 데 만족했고,

제 언니도 2학년 때 학교대표로 나가 '은상'을 받았으니, 그만큼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욕심은 내지 않았다.

 

 

그리고, 어젯밤 만보기를 차고 동네 골목을 걷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엄마, 나 논술 안 됐대.ㅠ"

잠시 망설였다. 바로 위로 문자를 보낼까~.

하지만 동네 골목골목을 다 돌고 체육공원으로 진출해 땀나도록 열심히 걷고 돌아와 샤워하고 알라딘에서 답문을 보냈다.

"에구, 우리딸 서운하겠네, 엄마는 괜찮아, 너한테 좋은 경험됐으니까,기죽지 말고 힘내~"

"응,첨엔 좀 그랬는데 뭐, 안타까운 일이 아니니까. 좋은 일이 있으면 이런 일도 있는 거라고 확실히 느꼈어~ㅎㅎ"

 

초등학교, 중학교 내리 학교대표로 교육청 대회에 나가면 꼭 상을 받아서

이번처럼 동상도 못 받은 경우는 처음이라 충격이 됐을 거 같은데...

음, 역시 사람은 실패도 겪고 좌절도 경험해야 마음이 단단해지고 생각이 여무는 것 같다.

'아픈 만큼 성숙한다'는 말이 헛말이 아니듯이.^^

사실, 나는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막내가 썼다가 잘못 쓴 부분에 교정부호를 넣기 싫어서 다시 써내고, 가져온 것을 봤는데 너무 평범했다.

그리고 지정도서 다섯 권 중에 과학분야 '극한의 우주'는 서문만 봤다는데 거기서 출제됐으니... ㅠㅠ

 

 

교내대회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6>를 읽고 

"한국인의 이중적 문화의식을 드러내는 구체적 실례와 해결방안을 논술하라"

 

   경복궁에 대해 내가 줄곧 듣는 정말로 기분 나쁘고 화나는 말은  "자금성(紫禁城)에 비하면 뒷간밖에 안된다"는 식의 자기비하다. 나는 이런 말을 한국에게서 들을 뿐 외국인들한테선 들어본 적이 없다. 중국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역사적 콤플렉스에다 유난히 스케일에 열등의식이 많아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겠지만 경복궁에는 자금성에서 볼 수 없는 또다른 미학과 매력과 자랑이 있다.

 

  사람들은 은연중 경복궁이 자금성을 모방해 축소해 지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자금성이 완공된 것은1420년이고 경복궁이 완공된 것은 1395년이니, 경복궁이 25년 먼저 지어진 것이다.(13~14쪽)

 

막내는 위글을 인용하고, 작년 5월 유홍준 선생님과 함께 부여답사한 이야기를 썼다고 한다. 백제의 소박한 탑과 석상을 보면서 느꼈던 감회 등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자세히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부여답사가 큰 도움이 됐다며, 심사한 선생님께서도 부여답사 사례가 가산점을 받아 1등이 됐다고 말씀하셨다니.... 몸으로 하는 경험만큼 좋은 글감도 없지 싶다.^^ 더구나 중학교 1학년 때는 '저작권' 관련 논술에서 '이 한 몸 죽자'는 마음으로 저작권 위반으로 석장의 반성문을 썼던 사례를 풀어내고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으니, 더 말해 무엇하리.ㅋㅋ

 

교육청대회는 두 문제가 출제됐다.

1. 사회적 행동과 인간의 유전적 요인, 문화적 요인의 상관성에 대해 '극한의 우주'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내용을 참조해서 자신의 견해 쓰기

2. 과거와 현재의 권력구조 비교, 현재 권력구조의 문제점과 해결방안

 

중학교 때 교육청 논술은 이런 정도 였는데...

http://blog.aladin.co.kr/714960143/2398656

 

음, 고등논술은 만만치 않군, 저렇게 어려운 말을 이해하고 자신의 논리를 펼쳐 설득하는 글을 쓴다는 게 쉽지 않겠다.ㅜㅜ

 

 

그런데, 시교육청 논술대회 결과를 교육청 홈페이지에 띄우지 않고 개별적으로 학교에 연락한다니 좀 웃기네.

다른 대회는 다 결과를 첨부화일로 올리면서, 왜 논술대회 결과는 개별통지야!

우리딸이 안됐다고 괜히 엄한데 화풀이 하는 건 아니고.ㅋㅋ

이제 체육공원에 나가 땀나도록 걸어야겠다. 오늘은 만보기가 5146보 걸었다고 알려주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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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남매맘 2012-06-27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기쁜 일이 있었네요. 엄마 마음이 내가 잘 되는 것보다 자녀가 잘 되는 게 100배, 1000배 더 기쁘더라고요.
장한 따님이네요. 축하 드립니다. 교육청 결과는 안 좋았지만 학년 대표로 교육청 대회 나가는 게 어디예요? 문제 보니 저도 이해가 잘 안되는군요. 논술 세대가 아니라 문제만 보고도 허걱합니다.

순오기 2012-06-28 16:29   좋아요 0 | URL
고교 논술, 너무 어려워요~~~ ㅠ

이진 2012-06-27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논술 문제가 경악스럽네요. 사회적 행동과 인간의 유전적 요인 문화적 요인... 권련구조 비교 권력구조의 문제점과 해결방안. 저는 논술시험은 나가지 말아야겠습니다. 설마 국어국문학과 들어갈 때 논술 시험 치지는 않겠지요? 치려나. 국어니까. 칠까? 안되는데. 흐.

순오기 2012-06-28 16:32   좋아요 0 | URL
소이진님이 대학갈 때는 제도가 또 바뀔지 모르지만,
현재는 교내대회 수상만 생기부에 기록되고, 교외대회 수상은 수상란에 적지 못해요.
다만 관련교과란에는 적을 수 있지요.
국어국문학과에서 논술대회 참가하지 않았다고 안 받아주면 말이 안되죠.ㅋㅋ

라로 2012-06-27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비록 떨어졌다지만 그런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라니!!
막내가 글을 잘 쓰는 건 알았지만!!! 정말 대단해요!!!
기회가 이번이 마지막도 아닐 테고, 더 좋은 대회가 있을 거에요.
작가나 기자가 되면 좋겠다…. (누가 무슨 재능이 있다고 하면 뭐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만 하는,^^;;)

저도 만보기 하나 살까 봐요!! ㅎㅎㅎㅎ

순오기 2012-06-28 16:33   좋아요 0 | URL
논술이든 기타 글쓰기든 필이 와야 하는데~~
얘네들은 어떤 분야에서 일하든 글쓰기는 기본이라 생각해요.
만보기 하나 있으면 더 많이 걸으려고 노력은 하지요.^^

프레이야 2012-06-28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필 서문만 읽은 책에서 나왔군요.ㅠㅠ 아쉬워라.
그치만 교내 1등도 아주 잘한거지요. 좋은 경험이라 생각해요.

순오기 2012-06-28 16:35   좋아요 0 | URL
타고난 문과생이니 과학분야 도서가 땡기겠어요?ㅜㅜ
뭐 이런 경험은 쉽게 하는 게 아니니까 그거로 족해야죠.^^

hnine 2012-06-28 0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걱~ 논술문제가! 문제가 꼭 저렇게 어려워야 하는지...
아무튼 따님 대단합니다. 그야말로 결과가 뭐 중요해요?
그나저나 요즘 저녁때 걷기 운동 하시나봐요? 저는 새벽에 하는데, 참 좋지요? ^^

순오기 2012-06-28 16:37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논술주제가 저리 어려워서야 원~~~~
하긴 우리나라는 고등학생이 제일 실력이 좋다잖아요.ㅋㅋ
그동안 운동을 제대로 안하다가 사흘째 탄력받았는데...
하천 옆에 체육공원이 잘 조성돼서 시원한 밤바람 맞으며 걷고 기구 이용해서 몸도 풀고 좋아요.
작심삼일 안되려면 오늘도 나가야죠.^^

하늘바람 2012-06-28 0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내대회 일등도 정말 대단한데요
그런데 교육청 논술 문제 정말 어렵네요
국회의원들한테 논술이 아닌 질문만 해도 버벅될 것같은데요
저런 주제로 글 몇번 쓰고 나면 우리 아이들 다 논술 강사 해도 되겠어요
막내 따님 정말 근사해요 어디 막내 따님 뿐인가요?
삼남매와 언니도 다 근사하지요

순오기 2012-06-28 16:37   좋아요 0 | URL
아마 심사위원들도 저런 주제로 글 쓰라고 하면 아이들보다 더 못 쓸걸요.ㅋㅋ

책읽는나무 2012-06-28 0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논술 정말...허걱입니다.
하지만,교내 일등도 감히 해내기 쉽지 않은 것이에요.
삼남매가 도대체 누굴 닮아 저리 똑똑한거죠?ㅋㅋ
그야말로 이쁜이들이네요.
역시 책 많이 읽은 아이들 답네요.
논술문제는 정말 아직도 허걱이네요.
아이들 정말 힘든 삶을 살아내고 있었군요.ㅠ

순오기 2012-06-28 16:39   좋아요 0 | URL
그저 뒹굴뒹굴 책 읽는게 취미니까~ 글쓰기에 도움을 받겠지요.^^
대한민국 고딩은 정말 힘들어요.ㅜㅜ

소나무집 2012-06-28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에서 수준 높은 논술 같은 건 제대로 가르치게 하지도 않으면서 교육청 대회에서 너무 높은 수준을 요구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학교 대회 1등만도 잘했어요.^^ 잘 지내고 계시지요?

순오기 2012-06-28 16:3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수준 높은 논술은 가르치치도 않으면서...
교내 일등도 족합니다.^^

단발머리 2012-06-28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너무 자랑스러운 삼남매네요. 교내대회, 교육청대회에서 수상한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그 책들을 읽고, 생각하고, 글로 풀어간다는 것 자체가, 무척 멋있습니다. 근데, 문제는 참~~ 거시기하네요. 출제자들한테 함 써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순오기 2012-06-28 16:40   좋아요 0 | URL
출제자들은 더 못 쓸거에요.
다만 아이들은 쓴 글을 평가할 수는 있겠지만.^^

울보 2012-06-28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정말 못하는게 없는 아이들이네요,
정말 멋져요,
그져 부러울 뿐이랍니다,
책을 더 많이 읽어야 자기 마음의 생각을 글로 쑥쑥 쓸줄 알까요,
아직은 기다려주는데 ,,ㅎㅎ
삼남매를 잘 키우신님도 부럽고, 말잘듣고 알아서 스스로 잘하는 삼남매도 멋져요,

순오기 2012-06-28 16:41   좋아요 0 | URL
정약용은 책만 읽는 건 소용이 없으니 반드시 초서(밑줄 긋고 옮겨 적고)하라고 아들에게 가르치더군요.
기다려주는 건 정말 중요하지요.^^

cyrus 2012-06-28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하네요. 저런 어려운 논술문제를 풀다니요 ㅎㅎㅎ 어린 시절부터 꾸준한 독서 습관 아니면
저런 문제 쉽게 못 풀었을거에요. 제가 봐도 문제 보자마자 현기증이.. ^^;;

순오기 2012-06-28 16:42   좋아요 0 | URL
논술 문제~~~ 저는 말뜻을 알아먹기도 힘들어요.ㅋㅋ
꾸준한 독서, 꾸준한 글쓰기~~ 시루스님이 잘 하고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