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밍 3
강풀 지음 / 재미주의 / 2012년 2월
구판절판


왜냐하면... 미래를 모르기 때문이야.
미래를 알고 있다면...
지금 현재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겠지.

반대로 생각해보자.
미래를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의 현재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무슨 말이냐고...?

다시 한 번 생각해봐,
지금은 현재야.
그런데 어떤 사람이 미래를 볼 수 있어서 봤는데
그 미래가 너무나 참혹해 보여.
그래서 그 사람은 지금의 현재를 바꾸고 싶은 해.

그 사람에게 참혹한 미래를 보여준다고 생각해봐.
그 사람은 그 미래를 본 순간부터
미래를 바꾸려고 노력할 거야.

그 사람이 봤던 미래는 있었지만
그 사람이 본 미래에만 존재하겠지.

그 사람에게... 참혹한 미래를 보여줘야 해.

참기 어려운 고통과 견디기 어려운 미래를 보여줘야 해.

그럼... 그 사람은 바꾸려고 할 거야...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돌릴 수 있을 거야...

그 사람에게...
참혹한 미래를 선사해야 해...

그러면 돼...

너는 지금은 죽지만...
그 사람이 본 미래에서만 죽은 거야...

나는 사자야...

한 번 죽었던 사람에게는
죽음의 운명이 피해간다는 걸 알아.

그 사람이 본 미래에서만이라도
네가 죽는다면 그걸로 된 거야.-146~147쪽

죽음의 운명은
그 사람만이 본 미래 속에서 이미 이루어졌어.

너를 죽이겠어,
그래서 너를 살리겠어.

그 사람이 볼 미래에서의 널 죽이겠어.

그러면 돼...
넌 살 수 있어...

그러면 돼.
널 죽이고 난 후에 너의 죽음을 포함해서...
그 사람이 막아내고 싶을 정도로
참혹한 미래를 보여주겠어.

그 사람이 미래를 봤을 대...
미래를 바꾸고 싶을 정도의
참사를 보여주겠어.

신내림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어지간한 미래는 못 볼 수 있다고...?

연쇄적으로 일어난
사건만 봤다고... 했지...?

괜찮아,
그럼 볼 수 있을 때까지
참혹한 미래를 보여주겠어.

참혹하디 참혹한
긴 미래를 보여주겠어.-146~14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동서고 비파나무 그늘사이로 1
김현 지음 / 동아 / 2011년 11월
품절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다.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누워 있는 선아에게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몰려와 뭐라고 시끄럽게 묻는다.
'왜지? 저들은 누구지?'
"이봐요. 학생. 학생."
소방대원이 뒤집어진 차에 깔려 있는 선아를 애타게 부르지만 선아는 자신을 어째서 부르는지 알지 못했다.
그는 정신을 잃어가는 선아를 계속해서 부르며 말을 시키고 있었다.
그 119구급대원의 안쓰러워하는 얼굴과 외침에 사고로 막힌 차들의 운전자들이 하나 둘씩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러다 구급대원들이 곁으로 다가온 이를 알아보고 말한다.
"대장님, 출혈이 너무 심합니다. 어서 차를 치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때 사고 현장을 누비고 다니던 소방대원이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소리쳤다.
"이 자식아, 내가 그걸 몰라? 지금 저쪽 뒤집어진 버스 때문에 손이 부족한 것을......."
선아를 담당한 구급대원은 안타까움에 아랫입술을 깨물며 주위를 돌아보았다.-7~14쪽

한강을 잇는 **대교에서 아직 초저녁임에도 술을 먹고 오토바이폭주를 하던 아이들이 보슬보슬 내린 비에 도로가 젖은 줄 모르고 속도를 올리다 선두에선 오토바이가 넘어지면서 이 차선을 가로질러 미끄러진 것이다. 그것을 피하려고 하던 차가 급정거로 가드레일을 들이박고 또 다른 차가 그 차를 들이박고 뒤 따라 오던 버스도 급정거를 하느라 뒷바퀴가 돌아 차 뒤쪽이 빙그르르 돌아 가드레일에 들이박고 멈추었다. 그에 뒤차들이 줄줄이 피하지 못하고 잇따른 충돌로 사고현장은 구급차가 진입하기도 여러 울 만큼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버스에서 튕겨져 나와 도로에 널부러진 사람들 곳곳에서 흘러넘치는 비명소리와 신음소리, 구급대원은 이 순간 신이 있다면 제발 이들을 다 살릴 수 있는 힘을 주기를 바라며 보슬비에 섞인 눈물을 감췄다.

서울 **병원, 사고 현장에서 실려 온 환자들 중 상태가 심각한 사람들이 실려 온 병원이다.
병원응급실 앞에서는 초조하게 구급차가 오기를 기다리며 사고소식에 안타까운 얼굴인 응급실 당직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대기하고 있다.
때마침 구급차들이 줄지어 들어오고 각기 조를 이뤄 재빨리 구급차로 달려갔다.-7~14쪽

그중 선아도 포함되어 있었다.
구급차 뒷문이 열리고 구급대원들이 선아를 실은 간의 침대를 끌어내리니 젊은 레지던트가 다가와 물었다.
"상태가 어떻습니까?"
구급대원은 의사의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선아의 숨을 유지 시켜주는 인공호흡장치의 펌프를 의사에게 넘겨주고 급하게 침대를 밀어 응급실로 들어갔다.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서 눈을 감았다 뜨니 이제는 눈이 부신 천정에 불빛이 보이며 여러 명의 사람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선생님, 맥박이 떨어집니다."
간호사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영화처럼 삐- 소리와 함께 선아의 심장이 멈췄다.
"CPR(심페소생술) 준비해요."
"네."
다급한 젊은 의사는 두 손으로 선아의 가슴을 눌렀다.
"하나, 둘, 셋! 펌프!"
곁에 있던 간호사가 호흡기의 펌프를 의사의 구령에 맞게 눌렀다.
의사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고 혼신을 다하는 정성이 통했는지 다시 심장박동이 뛰기 시작했다.
"선생님, 뜁니다. 뛰어요."
호흡기의 펌프를 누르며 모니터 하던 간호사의 목소리가 상기되었다.

멀어지는 의식에 선아는 어렴풋하게 죽음을 예감했지만 소란스럽게 자신의 주변을 맴도는 사람들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7~14쪽

그러다 침대 끝에 앉아 선아를 보며 웃는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려는 화려하며 아름다운 여자였다.
입에 문 기다란 담배의 연기를 내뿜으며 입술의 모양만으로 선아에게 말했다.
선아는 그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그녀로 인해 죽음이 두렵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세상이 빛을 잃고 어두워졌다.

텔레비전에서 뉴스가 흘러나온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딴 매달을 입에 물고 환하게 웃고 있는 선아와 아빠의 사진이 아나운서 옆으로 나타나며 아나운서가 침울한 얼굴로 말을 꺼낸다.
[다음 뉴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이 년 동안이나 혼수상태였던 김선아 양이 어제 끝내 깨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녀를 전담했던 **병원 김일산박사님을 송 기자가 만났다고 합니다."
화면은 선아를 돌았던 전담의사에게로 넘어가고 그는 병원에 있는 정원 어느 켠 잔디밭에 선아의 사진과 수많은 꽃들이 놓인 곳을 한 번 보고 기자를 바라본다. 그러자 여기자가 화면을 보며 말한다.
[네, 저는 안타까운 사연의 고 김선아 양을 추모하기 위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곳으로 나와 있습니다.-7~14쪽

박사님, 고 김선아 양의 전담의셨죠? 듣기로는 선아 양을 그전부터 알고 계셨다는 맞습니까?]
[네, 그녀 어머니의 전담의였습니다.]
[어머니요? 어머니는 선아 양이 중학교 때 돌아가셨다는고 들었는데요?]
[네, 암이셨습니다. 제 손으로 두 모녀의 마지막을 함께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김 박사는 살짝 나온 눈물을 훔쳤다.
그 모습에 당황한 여기자가 화제를 돌린다.
[네, 안타까운 사연인 김선아 양이 그녀의 사후 선행이 밝혀지면서 모든 이들을 감동 시키고 있는데요.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그녀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쯤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죽었을 때 장기기증을 하고 싶다며 아버지와 웃으며 찾아 왔었는데.]
의사가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자 여기자가 얼른 마이크를 자신 쪽으로 돌리고 말을 잇는다.
[네, 그렇습니다. 故 김선아 양은 그 당시 열일곱 살의 매우 어린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전 장기를 기증하겠다고 기증센터에 등록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고를 당하기 일주일 전까지 매주 이 병원을 찾아와 소아암병동 아이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7~14쪽

그녀의 아버지는 생전의 고인의 뜻대로 그녀의 사고로 나온 보상금과 보험금을 모두 소아암병동에 기증했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태권도 요정으로 사랑받았던 김선아 양이 남겨준 장기로 인해 열 명이 넘는 생명이 새 생명을 찾았습니다. 그녀는 세상을 떠나면서도 우레에게 많은 사랑을 남겨주고 떠났습니다.]
현장기자의 화면이 사라지고 다시 여 아나운서의 모습이 비춘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다음뉴스입니다.]

병원 대기실에 있는 텔레비전에 나온 선아의 사진이 사라지고 다음 뉴스가 나오자 사람들은 눈물을 훔치며 상복을 입고 대기실 의자에 주저앉는 선아의 아버지를 알아보고 한마디씩 위로의 말을 건네고 갔다.
그중 선아가 봉사활동 하던 소아암병동에 있는 아이 엄마가 선아 아빠를 알아보고 다가와 옆에 앉았다.
"선아학생은 좋은 곳으로 갔을 거예요. 저는 그렇게 믿어요."
그러나 세상을 다 산 사람처럼 암울할 거라고 생각한 그녀의 예상을 깨고 그는 저만치 먼 곳을 응시하며 지긋이 웃고 있었다.
"네, 그렇다더군요. 그럴 겁니다."
그 모습을 본 그녀는 더욱 그가 측은하고 안타까워 눈물을 훔치며 황급히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7~14쪽

그녀가 자리를 떠났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한곳만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기다란 담배를 문 여인이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7~14쪽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후애(厚愛) 2012-04-03 0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시대물 중에서도 조선시대 로설을 제일 좋아하고 소장한다.
물론 다른 시대물 로설들도 소장을 하지만 내가 1위로 뽑는다면 바로 조선시대 로설이다.
가리는 게 있다면 바로 퓨전 로설이다.
퓨전 로설은 재밌다고 하지만 난 영...

자세한 책 정보가 있었더라면 이 책을 구매하지는 않았을텐데...
책 값이 아까워서 읽기로 했지만 소장은...
 
모르는 여인들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장바구니담기


신발 이야기를 해야겠다.
발 크기가 똑같은 두 소년이 있었다.
나이는 열다섯과 열여섯이었다.
남쪽이 전쟁에 지고 있을 때 둘은 어깨에 총을 짊어진 소년병으로 북쪽 군대 편에 있었다.
진군한 북쪽 군인들이 마을에서 이 둘을 강제 차출해갔다.
북으로 퇴각하기 전날 밤, 그들은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산에 모여 있었다.
총을 든 북쪽 군인이 중대장이 찾는다며 두 소년병을 앞세우고 큰 바위 뒤로 갔다.
중대장이 두 소년병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중대장은 열여섯 소년병의 조부인 한의사 밑에서 약초 심부름을 하던 이였다.
전쟁이 터지자 그는 중대장이 되어 마을에 나타났다.
두 소년을 산으로 끌고 온 이도 그였다.
중대장은 동이 트기 전에 우리는 북으로 이동한다, 고 말했다.
두 소년병은 한때 함께 소몰이를 나가기도 했던 중대장의 얼굴을 주시했다.
너희들은 여기 남고 싶으면 남고 떠나고 싶으면 떠난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소년병은 동시에 여기에 남겠다고 대답했다.
여기서 태어났고 여기서 성장했으며 이곳에 집이 있었다.
북쪽엔 아무런 연고가 없었다.
자신들이 어쩌다가 북쪽 편의 소년병이 되어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일이었다.-9~11쪽

총을 내려놓아라.
두 소년병은 총을 내려놓았다.
가려면 지금 마을로 내려가라.
둘은 서로를 응시한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돌아서서 가! 다시 중대장의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두 소년병은 마을 쪽을 향해 돌아섰다.
내려가라- 한 발짝 내딛는 순간, 뒤에서 철커덕, 총의 노리쇠를 당기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를 뒤에서 쏘려는 것이었어.
그 자리에 얼어붙는 듯했다.
열다섯 소년병이 허리를 굽히더니 긴발을 벗었다.
군화도 없이 소년병이 된 그들이었다.
신발 바꿔 신어.
열다섯 소년병이 말했다
이걸 신고 달려- 열다섯 소년병은 부상으로 오른 허벅지에 깊은 상처를 입고 있어 달릴 수가 없었다.
열다섯 소년병은 어둠 속에 엎드려 열여섯 소년병의 신발을 벗겨 바꿔 신었다.
온전한 신발이었다.
살아남아- 열여섯 소년병은 신고 있던 신발의 뒤축이 닳아 발에 겨우 걸치고 있는 중이었다.
산에서 지낼 때 뒤축 없는 신을 찍찍 끌고 다니다가 골짜기에 처박히기 일쑤였다.
골짜기를 맨발로 달리다간 발바닥이 베이고 찔려 곧 쓰러질 것이었다.
너는? 열여섯 소년병의 말에 열다섯 소년병은,
잔말 말고 달려-
단호히 응수했다.-9~11쪽

등 뒤에서 철커덕 소리가 다시 한번 들렸다.
열여섯 소년병은 열다섯 소년병의 신발을 신고 공포에 질려 어둠 속의 골짜기를 뛰기 시작했다.
골짜기를 달려내려와 열여섯 소년병은 뒤돌아보았다.
멀리 뒤에 열다섯 소년병이 그의 신발을 찍찍 끌며 절룩이며 걸어오고 있었다.
중대장은 총을 겨누기만 했을 뿐 쏘지 않았다.
그들이 신발을 바꿔 신는 것을, 열여섯 소년병은 뛰어가고 열다섯 소년병은 절룩이며 골짜기를 빠져나가는 것을 어둠 속에서 지켜보기만 했다.-9~1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자는 힘이 세다 - 안젤라 카터의 세계 여성 동화집
안젤라 카터 지음, 서미석 옮김, 코리나 사굿 삽화 / 민음사 / 2009년 12월
절판


옛날에 새끼 세 마리를 둔 어미 새가 강을 건너려고 했다.
어미 새는 먼저 첫째 새끼를 날개 아래애 끼고 강을 건너가기 시작했다.
날면서 어미 새가 물었다.
"얘야, 말해 보렴. 이 어미가 늙으면 지금 내가 너를 데리고 가는 것처럼 네 날개 아래에 품어 건네주겠니?"
"그야 물론이죠. 물어보나 마나죠!"
"아, 이런 새빨간 거짓말 같으니라고!"
어미 새는 그렇게 말하며 새끼가 미끄러지게 나두어 강에 빠져 죽게 했다.
이제 어미 새는 둘째 새끼에게로 돌아가 다시 날개 아래에 품었다.
그리고 날아서 강을 건너며 물었다.
"얘야, 말해 보렴. 이 어미가 늙으면 지금 내가 너를 데리고 가는 것처럼 네 날개 아래에 품어 건네주겠니?"
"그야 물론이죠. 물어보나 마나죠!"
"아, 이런 새빨간 거짓말 같으니라고!"
어미 새는 그렇게 말하며 둘째 새끼도 떨어뜨렸고 새끼는 강에 빠져 죽었다.
그런 다음 어미 새는 셋째 새끼에게로 돌아가 다시 날개 아래에 품었다.
그리고 강 한가운데를 날아가며 물었다.
"얘야, 말해 보렴. 이 어미가 늙으면 지금 내가 너를 데리고 가는 것처럼 네 날개 아래에 품어 건네주겠니?"
"아니오. 엄마.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639~640쪽

"아, 얘야. 너야말로 유일하게 사실대로 말하는구나."
어미 새는 셋째 새끼를 강둑 건너편으로 데리고 갔다.
-639~640쪽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후애(厚愛) 2012-03-05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짓말 하지말고 솔직해지자
 
여자는 힘이 세다 - 안젤라 카터의 세계 여성 동화집
안젤라 카터 지음, 서미석 옮김, 코리나 사굿 삽화 / 민음사 / 2009년 12월
절판


옛날에 식초병에서 사는 할머니가 있었다.
어느 날 요정이 근처를 지나다 할머니가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정말 창피한 일이야, 아이고 창피해, 식초병에 살아서는 안 되는데. 담에는 온통 장미꽃이 만발하고 지붕이 있는 근사한 작은 오두막에 살아야 하는데, 그렇고말고."
그래서 요정이 할머니에게 말했다.
"좋아요. 오늘 밤 잠자리에 들 때 세 번을 돌고 눈을 감아요. 아침이 되면 당신이 보게 될 것을 알 거에요."
할머니가 자기 전에 세 번을 돈 후 눈을 감았다.
그리고 정말로 아침이 되니 담에는 온통 장미꽃이 만발하고 지붕이 있는 근사한 작은 오두막에 있는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매우 놀랍고 한편으로는 매우 기뻤지만 소원을 들어준 요정에게 감사할 생각은 까맣게 잊었다.

요정은 해야 할 일을 찾아 동서남북으로 분주히 다녔다.
그러다 갑자기 할머니 생각이 났다.
"할머니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가서 봐야지. 아마도 소원이던 작은 오두막에서 매우 행복해하고 있을 거야."
그런데 현관에 서자 할머니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206~210 쪽

"정말 창피한 일이야, 아이고 창피해, 정말 창피해. 이렇게 작은 오두막에서 나 혼자 살아서는 안 되는데. 창에는 커튼이 쳐져 있고, 문에는 청동 쇠고리가 달려 있고 밖에는 홍합과 조가비 파는 사람들도 있는 유쾌하고 즐거운 집들이 죽 늘어선 곳에 있는 멋진 아담한 집에 살아야 하는데. 그렇고말고."
요정은 조금 놀랐지만 이번에도 할머니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좋아요. 오늘 밤 잠자리에 들 때 세 번을 돌고 눈을 감아요.
그러면 아침이 되어 당신이 보게 될 것을 알 거에요."
그래서 할머니는 자기 전에 세 번을 돈 후 눈을 감았다.
그리고 정말로 아침이 되니 창에는 커튼이 쳐져 있고, 문에는 청동 쇠고리가 달려 있고 밖에는 홍합과 조가비 파는 사람들도 있고 유쾌하고 즐거운 집들이 죽 늘어선 곳에 있는 멋진 아담한 집에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할머니는 한편으로는 매우 놀랍고 한편으로는 매우 기뻤지만 소원을 들어준 요정에게 감사할 생각은 까맣게 잊었다.-206~210 쪽

요정은 해야 할 일을 찾아 동서남북으로 분주히 다녔다.
그러다 갑자기 할머니 생각이 났다.
"할머니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가서 봐야지. 분명히 지금 매우 행복해하고 있을 거야."
그런데 집들이 죽 늘어서 있는 곳에 이르자 할머니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 창피한 일이야, 아이고 창피해, 정말 창피해. 이렇게 양쪽에 평범한 사람들의 집들이 늘어선 곳에 살아서는 안 되는데. 주위에는 온통 커다란 정원이 있고 벨만 눌러도 하인들이 달려올 시골의 대저택에 살아야 하는데."
요정은 매우 놀랐고 조금 화가 났지만 다시 할머니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좋아요. 오늘 밤 잠자리에 들 때 세 번을 돌고 눈을 감아요. 그러면 아침이 되어 당신이 보게 될 것을 알 거예요."
그래서 할머니는 자기 전에 세 번을 돈 후 눈을 감았다.
그리고 정말로 아침이 되니 주위에는 온통 커다란 정원이 있고 벨만 눌러도 하인들이 달려올 시골의 대저택에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할머니는 한편으로는 매우 놀랍고 한편으로는 매우 기뻤고 고상하게 말하는 법을 배웠지만 소원을 들어준 요정에게 감사할 생각은 까맣게 잊었다.-206~210 쪽

요정은 해야 할 일을 찾아서 동서남북으로 분주히 다녔다.
그러다 얼마 후 할머니 생각이 났다.
"할머니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가서 봐야지. 분명히 지금 매우 행복해하고 있을 거야."
그런데 할머니의 응접실 창문가에 이르자 할머니가 고상하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 창피한 일이야, 아이고 창피해, 정말 창피해. 이렇게 친구들도 없는 이곳에서 적적하게 살아서는 안 되는데. 여왕을 알현하기 위해 옆에는 종복을 넷이나 거느리고 내 마차를 몰고 있는 골작 부인이 되어야 하는데."
요정은 아주 많이 놀랐고, 아주 많이 실망했지만 꾹 참고 대답했다.
"좋아요. 오늘 밤 잠자리에 들 때 세 번을 돌고 눈을 감아요. 그러면 아침이 되어 당신이 보게 될 것을 알 거예요."
그래서 할머니는 자기 전에 세 번을 돈 후 눈을 감았다.
그리고 정말로 아침이 되니 여왕을 알현하기 위해 옆에 종복을 넷이나 거느리고 자기 마차를 몰고 있는 공작 보인이 되어 있었다.
할머니는 한편으로는 매우 놀랍고 한편으로는 매우 기뻤다.
하지만 소원을 들어준 요정에게 감사할 생각은 까맣게 잊었다.
요정은 해야 할 일을 찾아서 동서남북으로 분주히 다녔다.-206~210 쪽

그러다 얼마 후 할머니 생각이 났다.
"할머니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가서 봐야지. 분명히 지금 매우 행복해하고 있을 거야. 이제 공작 부인이 되었으니."
그런데 할머니의 으리으리한 대저택 창가에 이르니 할머니가 전보다도 더욱 고상한 어조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겨우 공작 부인밖에 안 되어 여왕에게 굽실거려야 하다니 정말 너무너무 창피한 일이야. 왜 나는 여왕이 되어 머리에는 황금 왕관을 쓰고 모든 조신들을 대동한 채 황금 옥좌에 앉아 있지 못하는 걸까."
요정은 아주 많이 놀랐고, 매우 화가 났지만 이번에도 꾹 참고 대답했다.
"좋아요. 오늘 밤 잠자리에 들 때 세 번을 돌고 눈을 감아요.
그러면 아침이 되어 당신이 보게 될 것을 알 거예요."
그래서 할머니는 자기 전에 세 번을 돈 후 눈을 감았다.
그리고 정말로 아침이 되니 왕궁에서 자기가 여왕이 되어 머리에 황금 왕관을 쓰고 모든 조신들을 대동한 채 황금 옥좌에 앉아 있었다. -206~210쪽

할머니는 뛸 것처럼 기뻤고 신하들에게 명령했다.
하지만 소원을 들어준 요정에게 감사할 생각은 까맣게 잊었다.
요종은 해야 할 일을 찾아 동서남북으로 분주히 다녔다.
그러다 얼마 후 할머니 생각이 났다.
"할머니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가서 봐야지. 분명히 지금은 매우 만족해하고 있을 거야."
그런데 옥좌에 다가가자마자 할머니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온 세상을 다스리는 대신 겨우 이렇게 작은 땅뙈기의 여왕이라니 대단하나 수치야. 너무 창피한 일이야. 정말로 나한테 어울리는 자리는 바로 이 땅 위의 모든 사람들의 정신을 다스리는 교황이야."
그러자 요정이 조용히 대답했다.
"좋아요. 오늘 밤 잠자리에 들 때 세 번을 돌고 눈을 감아요. 그러면 아침이 되어 당신이 보게 될 것을 알 거예요."
그래서 할머니는 한껏 자만심에 부풀어 잠자리에 들었다.
세 번을 돈 후에 눈을 감았다.
그런데 아침이 되니 어느새 식초병 안에 다시 돌아와 있었다.-206~210쪽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후애(厚愛) 2012-03-02 0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욕심이 너무 지나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