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할머니 평화그림책 1
권윤덕 글.그림 / 사계절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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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할머니」북콘서트에 초대를 받아 가게 되었다. 궂은 날씨에도 많은 학생들과 시민들이 참여해 놀랐다. 이 책의 저자인 권윤덕씨도 함께하고 가수 실비씨의 노래를 들으며 함께 한 북콘서트는 참 재미있기도 하고 의미있기도 했다.

이 콘서트에서도 얼마 전 있었던 1000차 수요시위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한 번도 국가적 사과와 배상을 공식적으로 하지 않은 일본에 대해 울컥울컥 하는 마음이 치밀었다.

 

 

 

 

 

사실 이 북콘서트에는 일본분들이 여러분 계셨는데,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친구 얘기를 들어보면 평소에도 '정신대 할머니'에 대한 궁금증과 도움을 얻고자, 도움을 주고자 일본일들이 종종 사무실에 찾아온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하지만 일본이 공식적으로 국가적 차원에서 사과와 배상이 없다면 큰 성과는 없을 듯 했다.

 

이 책 「꽃할머니」심달연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이다. 원예치료사와 함께 하시던 꽃누르미(눌러서 말린 꽃과 잎으로 그림을 구성하는 일)를 너무 좋아하시고 '꽃'을 워낙 좋아하셔서 붙여진 제목이다.

 

역사적으로 분명히 일어났던 사실인데도 박정희가 일본에 돈 받아오는 조건으로 체결한 '한일청구권협정'만 들이밀며 할머니들의 호소를 무시하고 있다.

그들의 만행을 몸으로 겪으셨던 할머니들이 모두 돌아가시면 이 문제도 자연히 덮여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들이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기억할 것이다.

사계절 출판사에서 한,중,일 세 나라의 작가들이 함께 협력하여 계속 이런 평화그림책을 출간한다는 소식이 반갑다.

이런 작업과 과정들이 지속되어야 우리가 기억하고 마음에 새길 수 있다.

 

 

콘서트가 끝나고 아내 이름으로 권작가님의 사인도 받을 수 있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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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당신들의 나라 - 1%를 위한 1%에 의한 1%의 세상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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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몽골 여행 중에 홈스테이 하던 가정의 아이가 아파 병원에 같이 따라간 적이 있다. 큰 아이 다기마가 13살이고 작은 아이 사롤이 5살이었는데 한국처럼 부모가 차에 태워 병원에서 접수시키고 약을 타오는 그런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둘이 손잡고 놀러가는 것처럼 병원에 가는 것이었다. 병원은 아파트 단지 내에 있었고 진료비와 약값은 모두 무료였다. 몽골하면, 우리보다 당연히 못사는 후진국이라 생각하던 내게 완전한 충격이었다. 한국보다 훨씬 안정적인 의료보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 「오! 당신들의 나라」를 읽으며 그 몽골 병원 생각이 많이 났다.

얼마 전 날치기로 통과된 FTA의 많은 독소조항들 가운데 정치권과 언론에서 잘 다루지 않는 것이 ‘의료보험의 민영화 추진’이다.

 

“한 지역 병원이 보험 적용 환자에게는 6783달러인 맹장수술비를 비보험 환자에게 2만9000달러로 청구했다고 보도했다.” (p.185)

“응급실에 한 번 갈 때 드는 비용은 1000달러를 웃돈다. 천식 발작이 일어나거나 아기가 열이 날 때마다 1000달러 넘는 돈이 든다는 뜻이다.” (p.212)

 

“대부분의 국가는 의료 제도가 있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 병들고 약한 사람을 체계적으로 돕는 의료제도는 문명의 진정한 표지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의료 제도가 건강을 위협하는 제도로 급속히 변질되고 있다. 수십 년 동안 민영화, 부당 이익 추구, 보험사가 주도한 관료주의가 활개를 치면서...” (p.211)

 

“개인 파산의 첫 번째 원인이 의료비로 인한 빚인 만큼 전 국민 의료보험을 즉각 실행해야 한다. 하지만 오바마조차 그런 서민층 중심의 정책 실행을 주저하고 있는 듯하다.” (p.70)

 

미국인이 쓴 책이다. 이것도 괴담인가? 수십 년에 걸친 민영화 추구가 가져온 결과가 개인과 가정의 파산이란다. 물론 돈 많은 사람들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돈만 많이 주면 기가 막힐 정도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1%를 제외한 이들은 이제 아플 사치도 부려서는 안 된다.

 

아버지께서 5년째 암과 싸우고 계셔서 누구보다 잘 안다. 현재의 의료보험체제가 없었다면 우리 집도 파산했을 것이다. 지금도 일부 고가의 약과 검사는 보험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지금의 의료보험체제가 없다면 암으로 인해 사망하는 환자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돈 없으면 완치는 꿈도 못 꾼다.

그런데 우리보다 의료보장체제가 미흡한 미국의 방식을 따라가려 한다. 정말 개같은 짓거리다.

 

 

“지난 10년 동안 자본주의적 혁신이 가장 두드러진 분야는 여력이 거의 없는 사람들에게서 돈을 쥐어짜는 기술이었다.” (p.11)

 

“꿈에 그리던 집을 사세요! 집을 담보로 재대출을 받으세요! 신용 등급이 문제라면 자동차 담보 대출을 받으세요! 모두들 대출을 받으세요! 가난한 사람들이 대출금을 갚을 돈을 어디서 마련할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p.65)

 

글로벌 경제위기를 몰고 온 월스트리트의 파산의 가장 큰 원인은 무분별한 대출이었다. 한국도 가계부채가 사상최고치를 경신했다. 신자유주의 경제의 첨병이던 미국은 그들이 처음에 부르짖던 경제성장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저자의 표현대로 “부의 봉우리들은 점점 더 높이 솟아올라 구름을 뚫었고, 빈곤의 골짜기는 더욱 깊이 가라앉아 어둠에 묻혔다.” (p.9)

 

그런데 한국은 이런 미국의 전철을 그대로 따라가려 아주 환장을 한다. 아무리 국가의 고위 경제 관료와 경제학자들이 미국에서 유학을 해서 미국을 동경하는 마음이 크다고 해도 그 당시와 지금의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아닌 것은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

 

“지상 최강의 군대가 가난에 시달린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많은 구호단체들이 미군 가족들을 돕기 위해 나서고 있다.” (p.81)

 

난 미국이 최소한 군대만큼은 제대로 굴러가게 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도 아니란다. 많은 수의 군인 가족들이 구호단체의 도움을 받고 있다니 놀라웠다. 보수를 기치로 내건 집권자들이 보수의 가치를 지켜낼 가장 큰 힘인 군대를 등한시하는 이 간사함, 김어준의 책 「닥치고 정치」에서도 지금의 사병 월급이 이정도로 대폭 인상된 것이 오히려 노무현 정권시절이라는 사실을 읽었는데 미국도 마찬가지다.

 

부시는 보수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 주변 사람들만 챙기기 바쁜 사람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 왜 FTA를 반대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책이 재미있다. 저자인 ‘바버라 애런라이크’가 글을 잘 쓰는 것 같다. 어렵지 않고 글에 리듬감이 있다. 풍자와 조소 또한 일품이다.

계속해서 그녀의 책이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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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364일 블랙 로맨스 클럽
제시카 워먼 지음, 신혜연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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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종류의 소설은 처음 읽었다. 개인적인 취향은 아니다. 하지만 출판사가 「황금가지」라 신뢰를 가지고 읽었다. 「황금가지」의 야심찬 [블랙 로맨스 클럽]의 책이라 했다. ‘기존의 천편일률적인 구조와 내용을 벗어난 로맨스 소설’이라는 칭호가 어울리는 작품이었다.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인터넷 서점에서의 광고를 보면 자칫 추리소설로 생각할 수 있는데, 형식이나 내용상으로도 추리소설을 아닌 것 같다.

물론 주인공 리즈의 죽음, 리즈가 죽인 알렉스, 리즈를 죽인 조시 이런 소재는 추리소설의 그것으로 충분하지만 중·고등학생 내지는 대학생이(특히 여학생)이 참 재미있게 읽을 만한 로맨스 소설이라 생각한다.

 

영화 『사랑과 영혼』에서 패트릭 스웨이지가 데미 무어를 만나기 위해 우피 골드버그에게 벽을 자유롭게 통과하고 차를 가로질러 걸어가는 등등을 배우는 것처럼 자신의 생일에 죽은 리즈는 자기가 교통사고로 죽인 알렉스에게 이런 것들을 배우게 된다. 흔히 유령이나 귀신이라고 하는 상태의 인물들이라 볼 수 있다.

 

“나는 내 부츠를 바라본다. 발가락이 너무 아파서, 계속해서 콕콕 찌르는 듯 한 통증만 제외하면 거의 감각이 없을 정도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그냥 발을 잘라내 버리고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을 지경이다.” (p.294)

 

죽기 전 학교 퀸이었던 리즈는 퀸 같은 겉모습과는 달리 많은 아픔을 가진 소녀이다. 엄마의 죽음, 아빠의 재혼, 사랑하는 리치에게서도 채울 수 없는 감정...

그것을 채우려 아침이나 저녁을 가리지 않고 달리기를 하지만 달리면 달릴수록 발의 통증은 더하다. 죽어서도.

 

“정말 끔찍해. 네가 없으니 모든 게 끔찍해, 그렇지만 네가 있을 때도 끔찍하긴 마찬가지였어.” (p.346)

 

절친한 친구인 캐롤라인이 리즈의 묘지에 찾아와 하는 독백에서 리즈가 생전에 어떤 사람으로 평가되었는지 알 수 있다. 예쁘고 돈 많고 잘 나가는 엄친딸이어서 주위에 넘치도록 잘 나가는 친구가 있었지만 그 아이들도 결국 채우지 못하는 감정에 시달리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더 이상은 다가갈 수 없는 괴리가 존재했다. 가장 사랑하는 리치에게도.

 

엄마가 죽기 전 아빠와 새엄마간의 불륜이 이미 벌어졌던 것처럼 리즈가 죽기 전 애인인 리치와 이복자매인 조시도 리즈 몰래 바람을 피운다.

비오는 날 밤 파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사람을 치어 죽이고 그 죄책감으로 망가져가던 리즈를 아빠도 리치도 구원해 줄 수 없었다.

물속으로 밀어 넣은 사람은 조시였지만 리즈는 이미 죽어가고 있었다. 자신이 죽음으로 더 가까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방치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 누구에게도 구원의 손을 내밀 수 없었다.

 

달콤하고 아슬아슬한 로맨스 이야기는 없었지만 연장선상에 있는 삶과 죽음에 대한 진실한 생각을 하게 만든 작품이다.

 

 

 

 

 

이 리뷰는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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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비참 1 동문선 현대신서 173
피에르 부르디외 지음, 김주경 옮김 / 동문선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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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오프라인, 중고서점을 모두 뒤져 어렵게 구한 책이다. 그래서 한 페이지 읽는 것이 아깝고 아쉬웠다.

이름만 들어도 설레이고 기대되는 ‘피에르 부르디외’의 책이었다.

'La Misère Du Monde'

세계의 비참이다.

 

“만일 프랑스 지도층의 엘리트들이 좌파든 우파든간에 근시안적인 기술주의를 부르짖고, 단기 금융적 성과를 기대하면서 70년대 중반 이래로 그들이 내세워 왔던 정책, 즉 공공 분야 축소와 ‘중상주의화’의 기치를 내건 신자유 정책을 계속 고집한다면, 부정적이고 요원하기만 한데다가 끔찍하기도 한 유토피아가 현실로 나타날 수도 있는 최악의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절대로 배제해서는 안 될 것이다.” (p.280)

 

지금으로부터 20여 년전에 출간된 이 책은 2011년 현재 한국이 처한 위기의 모습과 아주 유사하다. 서유럽, 특히 ‘프랑스’하면 예술의 도시 파리가 떠오르고 68혁명 이후 대학개혁에 성공해 전 세계에 좋은 선례를 던져준 앞서가는 선진국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혁명 이후 집권한 사회주의·공산주의 세력이 신자유 정책을 고집하게 되면서 유토피아를 약속했지만 최악의 사태가 지속되리라는 것을 예견했다.

 

최악은 아니었지만 90년대 중반과 2000년대 중반 프랑스에서 일어난 폭동을 기억하면 이 책이 얼마나 적확한 예측을 했었는지 알 수 있다.

 

단순히 사회학자 몇 명이 탁자에 둘러앉아 ‘이제 프랑스가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 토론합시다’로 그친 것이 아니라 이 책이 출간되던 당시 프랑스 내에서 문제가 되던 ‘빈민주택 단지’, ‘대규모 단지’등을 꾸준히 찾아다니며 연구하고 그곳에서 사는 이들과의 심층적인 인터뷰를 하며 발로 쓴 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상호간의 몰이해와 무지, 혹은 잠재적으로 존재하고 있거나 아니면 공공연하게 드러나고 있는 갈등의 환경 속에서 서로 부딪치면서도 함께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 모든 상황이 이들을 서로로부터 분리시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조건 속에서 빚어지는 온갖 종류의 고통을 느껴 가며 어쩔 수 없이 함께 생활할 수밖에 없는 그런 장소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빈민주택 단지’ 혹은 ‘대규모 단지’, 그리고 수많은 교육 기관들이 바로 그러한 장소들이다.” (p.13, ‘관점들의 공간’, 피에르 부르디외)

 

 

총 3권으로 이루어진 「세계의 비참」 중 1권은 이러한 곳에서 사는 이민자들과 도시 주류집단에서 배제된 채 빈민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공권력의 말단에 있는 공무원들의 이야기이다.

특히 이민자들과의 갈등이 책의 배경이 된 80년대 말, 90년대 초 그 이전부터 지속되어 왔고 지금도 여전하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이 동네처럼 세련되고 우아한 상류주택가에 아랍 사람이 살고 있다는 걸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겁니다.” (p.56)

 

“아, 아무것도 서로 맞는 게 없어요. 하나도 없지요. 서로 잘 이해가 안 돼요. 머지않아 여기도 다른 곳의 빈민주택 지구처럼 되고 말 겁니다. 아랍인들은 마치 여기가 자기네 나라인 것처럼 자기들 식으로 엉망으로 만들었다니까요. 아예 자기들 나라에 와 있다고 생각하나 봐요.” (p.71)

 

“자신이 한때 사회주의를 위해 투쟁해 온 사람이면서도, 여름에 특히 라마단 기간 동안에 아파트 건물 안에서 풍겨 나오는 냄새와 소음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말하고 있으며, 오랜 공산주의 투사들이었던 이들 부부가 이전에도 똑같은 이유로 해서 자신들의 모든 신념을 잃어버렸다는 생각 때문에 절망을 느끼면서 이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p.28, '종키 가‘, 피에르 부르디외)

 

거국적인 투쟁과 혁명을 통해 이룩한 세계 최고의 민주적 정치제도 하에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불편함’이 내 것이 되어버리면 아무 소용없다.

내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위해 투쟁한 전사라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낮에는 ‘해방’, ‘투쟁’, ‘민중’을 부르짖다가도 밤에 옆집 이민자 가정의 냄새와 소음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율배반적인 멸시를 자행한다.

 

“프랑스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정부에서 아랍인들, 말하자면 우리 동족들을 이곳에 보냈지요. 우리를 이곳에 살게 한 것은 우선 정부 측이고, 그 다음엔 경찰청, 사회복지 기관, 그리고 구청입니다.” (p.196)

 

“알제리인, 튀니지인, 모로코인들은 모두 ‘아랍인’이라는 한 마디로 불릴 뿐이에요. 저처럼 그냥 ‘이민자’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구요. 예전에는 당신들이 필요하다고 해서 그들을 아프리카에서 불러 왔고, 그들이 당신들의 프랑스라는 나라를 건설해 놓고 나니까, 이제 와서는 더 이상 그들이 필요 없다는 겁니까? 그러면 안 되지요. 앞뒤가 안 맞지 않습니까? 당신들과 무엇이 다릅니까? 그리고 당신들은 저보다 뭐 특별한 것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는 모두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같이 살아가면서 서로 도와야 해요.” (p.204, ‘HLM의 한 입주자와 함께’)

 

“사회보장 제도가 한 일이라곤 이 사람들을 함께 몰려 있게 만든 것뿐이에요.” (p.43)

 

알제리인, 튀니지인, 모로코인들은 모두 다르지만 프랑스인들에게는 모두 ‘아랍인’으로 여겨진다는 현실. 이것이다. 이것이 유럽에서도 가장 민주적이고 문화적 수준이 높다고 믿어지던 프랑스의 현실이었다.

 

“오늘날 ‘문젯거리가 되는 교외 지역’ 게토, 사실 미국의 게토만큼 이 원리를 잘 보여 주는 곳은 없다. 내팽개쳐진 장소인 게토는 근본적으로 ‘부재(不在)’라는 말로 정의될 수 있는 장소로서, 우선 그곳엔 국가가 부재하며, 그밖에 경찰·학교·보건위생 기관 등이 부재하다.” (p.259, ‘장소의 효과’, 피에르 부르디외)

 

필요할 때는 너도나도 ‘프랑스에 와서 돈도 벌고 성공하라’ 라고 했지만 결국 책임은 아무도지지 않았다. 그냥 ‘니가 알아서 살아’ 라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처음 이민을 장려했을 때 그들을 통해 달성하기를 기대했던 ‘수익’이 이민자들에게 들어가는 국가적 ‘비용’보다 작아지기 시작했을 때부터 국가는 그들에게서 손을 놓았다고 보는 것이 분명할 것이다.

 

 

“사르트르는 자신이 자신에게 하는 거짓말을 악한 신념이라고 불렀다. 국가의 공적인 소명에 부합하는 실제적인 행위들이나 조치들을 거부하거나 국가 기관의 변함없는 성향을 일컬어 기관의 악한 신념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p.384)

 

책에 인용된 사르트르의 ‘국가의 악한 신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국가는 공적인 소명과 책임이 있다. 하지만 변함없이, 한결같이 국가는 그것에 대한 책임과 소명을 등한시 해왔다. 국가는 반드시 국가에 속한 국민과 그 국가 안에 살고 있는 자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적어도 그것이 가장 중요한 국가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자신에게 하는 거짓말은 아주 나쁜 것이지만 내가 모른 척만 하면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은밀성이 있기에 유혹이 심하다. 그런데 국가는 이러한 은밀한 유혹에 매번 넘어간다. 유혹을 하기도 전에 미리 나서서 유혹해 달라고 한다.

 

책을 읽으며 줄곧 들었던 생각이 하나 있다.

‘프랑스도 저렇다면 다른 나라는 어떨까?’ 라는 생각이다.

가장 발전된 민주주의와 정치제도를 가지고 있다고 공인되던 프랑스가 아닌가.

 

그리고 최근 몇 년간 뼈저리게 경험해 온 ‘국가의 악한 신념’에 대한 분노가 치밀었다. 국가가 제 할 일을 하지 않고 제 주머니 잇속만 챙기기에 혈안이 된 악하고 파렴치한 존재들이다. 그래서 반드시 이들을 심판하고 단죄해야 한다. 지금보다는 조금이라도 ‘악한 신념’을 덜 가진 자들에게 국가를 맡겨야 한다.

 

이것이 숙제이자 소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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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세계사 - 대량학살이 문명사회에 남긴 상처
조지프 커민스 지음, 제효영 옮김 / 시그마북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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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관통했던 잔혹한 사건들의 대부분은 누군가의 모른 척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현대에 일어났던 제노사이드는 더욱 그렇다.

 

 

“미국 중앙정보국 극비 보고서에도 그 유혈 사태가 일어나기 훨씬 전에 이를 예고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르완다와 밀접한 관계에 있던 프랑스와 벨기에 양국 정보부 역시 이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사태를 막기 위한 조치는 아무것도 취해지지 않았다. 100일간 살육이 진행되는 동안 빌 클린턴이 대통령으로 있던 미국은 당국 관리들에게 ‘대량학살’이란 단어 사용을 피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p.383) ‘르완다 대량살육’

 

“NATO 군이 그렇게 했듯 공군력을 이용해 세르비아를 진압할 수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UN은 스레브레니차에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을까? 그다지 상관하지 않은 것일까? 이슬람교도들은 세르비아 기독교인들에 비해 가치가 덜하다는 것인가?” (p.388) ‘스레브레니차 대량살육’

 

미국과 NATO는 왜 르완다와 세르비아에서 일어났던 제노사이드(genocide)에 수수방관 했을까? 중요한 사실은 ‘국가’라는 집단 자체는 절대로 선할 수 없다는 논리가 확인된다는 것이다.

물론 ‘국가’를 운영하고 그것에 속해있는 구성원 각자가 선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국가’라는 집단의 성격에서는 결코 선하지 않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선’이냐 ‘악’이냐 따지는 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 살아남아야 ‘국가’라는 것이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국가’들이 역사 속에서 없어졌는지를 생각하면 금방 알 수 있다.

 

“논쟁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 한 가지 있다. 바로 전 세계 역사 속 거대 단일 국가, 혹은 정치적인 대규모 운동에서, 그 결과를 달성하기 위해 대량학살의 힘을 빌지 않은 경우는 없다는 것이다.” (p.9)

 

그것의 중요한 수단이 바로 ‘대량살육(genocide)’이었다. 가장 쉽고 빠르게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원전 146년, 로마인은 카르타고의 문명을 일소한다. 50만 명에 이르는 카르타고인들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이 대량살육은 로마가 왜곡시킨 역사 속에 감추어졌다가 15세기 유럽, 한 고대 문서가 발견되면서 겨우 세상에 드러났다.” (p.18)

 

“아르메니아인 대량살육은 터키인 손에 죽은 사람의 숫자가 엄청나다는 사실 때문에 유명한 것이 아니다. 이 사건은 이후 거의 1세기가 지날 때까지 터키 정부가 그러한 대량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부인한 것으로 더욱 화제가 되었다.” (p.176) ‘아르메니아 대량학살 사건’

 

하지만 ‘대량살육’이 얼마나 비도덕적이고 나쁜 것인지 그것을 저지른 ‘국가’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숨기려고 한 것이다. 불행히 어떤 경로를 통해서 만천하에 그 사실이 드러난다 할지라도 그때부터는 ‘모르쇠’로 일관하면 된다. 가깝게는 일본이 아직도 그들이 저지른 만행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1948년 국제연합은 ‘대량학살 협약’을 채택하고 이를 국제 범죄로 인정하기에 이른다. 흥미롭고도 아이러니한 사실은, 미국이 이 대량학살 협약의 초안을 마련하는 과정에는 참여했으면서 1988년이 되기 전까지 거기에 서명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p.11)

 

“미국을 포함한 서방 민주국가들은 그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그 원인으로는 국제 정치가 큰 부분을 차지했다. 터키는 주요 석유생산 국가로 북대서양 조약기구 NATO 회원국이다.” (p.194)

 

아, 미국

미국만 제대로 선한 방향으로 세계사를 이끌어줬다면 적어도 이런 책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동네에서 가장 힘세고 싸움 잘하는 형이 질서를 잡아주지 않고 자신의 골목대장질을 손쉽게 이어가기 위해 똘마니들을 이용하고 그 똘마니들이 힘없는 아이들 괴롭히는 것을 방관하고 있는 꼴이다.

 

세계평화를 위한다느니, 성경에 기반을 둔 성전(聖戰)이라느니 다 뻥이다. UN의 협약쯤은 가소롭게 무시하고 이라크와 아프간을 침략한 미국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으면서 동네 작은 아이들이 혹시 가지려는 생각만 하면 뒤통수를 후려 버린다. 참 못된 동네 덩치 큰 형이다.

 

 

 

 

 

 

이 리뷰는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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