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드 세트 - 전2권 - 가난한 성자들 ㅣ 조드
김형수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2월
평점 :
몽골을 두 번 갔다 온 것이 이 책 「조드」를 읽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책에 등장하는 광야와 게르가 머릿속에 그려지고 참 신기한 노래 허미와 말 머리를 한 악기 마두금을 연주하던 공연을 봤던 기억이 떠올라 책에서 그런 단어들이 나올 때마다 신기하고 반가웠다.
몽골에 가기 전에는 여행의 필요성을 전혀 알지 못했다. 여행 갈 돈으로 책을 사서 더 다양하고 알찬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행은 독서와는 다른 새로운 세계였다.
몽골 현지인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그들과 어울리고 게임을 했다. 시장을 보고 그들의 친지들을 만났다. 너무 달랐다. 완전히 달랐다. 인종적·어문학적으로 한민족과 굉장한 유사성이 있는 몽골이었지만 삶의 양식은 완전히 달랐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교과서로 배우던 대륙성 기질을 직접 보고 겪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흔히 유럽의 대륙성 기질이라고 말하는데 이 책을 보면서 그런 대륙적 기질의 태동이 유럽이 아닌 칭기스칸이 이룬 대정벌을 통해 유입된 몽골 기마민족 특유의 기질이 아니었나 싶었다.
“성이 뭔데요?”
“말을 탄 사람이 못 넘어 다니게 마을을 빙 둘러서 막은 울타리야.”
“왜 그런 곳에 갇혀서 살아요?” (1권, p.69)
“국경이 뭐지? 아마도 자기들 땅이라 표시한 만리장성을 말하나 보지요. 하하, 그놈들 참 귀엽구만. 푸른 하늘도 만 리 구름으로 막아놓고 자기들의 것이라고 주장하지, 그래. 하하하하.” (2권, p.160)
끝없는 초원과 지평선을 태어나면서부터 보고 자라온 몽골의 유목민들에게 “경계”, “담”, “성”같은 것은 무의미한 개념이었을 것이다. 고개를 들면 하늘이고 눈을 뻗어도 닿지 못하는 땅과 초원인데 성을 쌓고 담을 두르고 당시 금나라가 축조한 만리장성 따위는 한낱 레고 쌓는 놀이처럼 장난질로 여겨졌을 것이다.
“칭기스칸은 쥐르긴 족을 반역자의 예속민이 아니라 평범한 백성으로 분류해 몽골국의 일원으로 흡수해버렸다.” (2권, p.170)
“초원에는 이제 귀족도 없고, 특권 가문도 존재하지 않았다. 누구나 공적의 크기에 따라 품신을 받고, 품신의 크기에 따라 전리품을 가졌다.” (2권, p.286)
책에서도 여러 번 등장하지만 당시 칭기스칸의 군대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동일한 법의 형량을 받아야 했고 신분의 귀천이 없었다고 한다. 누구나 능력이 있으면 장군이 될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팍스로마나나 팍스아메리카나가 도저히 할 수 없었던 융화·융합 정책 또한 상하의 개념보다 좌우의 개념에 익숙하고 체득화된 몽골 유목민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책의 제목 「조드」또한 그렇다.
“마침내 겨울이 지났다. 조드는 유목민의 삶을 초토화시켰지만 인간이 보지 못하던 것을 보여주고 갔다. 고원에 엄청난 추위가 머무는 동안 푸른 하늘처럼 영원한 것과, 낱낱으로 존재하는 찰나의 생명들이 너무나 극적이고 생생하게 대조되었다.” (2권, p.67)
“신기한 일이었다. 조드를 겪고 나서 초원의 모든 세력은 일제히 겸손하지 않을 수 없었다.” (2권, p.73)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조드는 인간과 가축에게는 잔인한 형벌이다. 하지만 자연만이 내릴 수 있는 가장 공정한 형벌이다. 조드는 사람과 가축, 식물을 비껴가지 않는다. 조드 앞에서는 다 똑같다. 두 번의 몽골 여행 시 홈스테이를 했던 민데형네 가족이 지금은 한국에 들어와 일하고 있다. 종종 만나서 밥도 먹고 여행도 가곤 하는데, 재작년과 작년 유목민인 친척들이 조드로 많은 가축을 잃어서 유목민 생활을 접고 수도인 울란바타르로 이사해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참 무서운 것이라 했었다. 재작년 조드는 전 세계적으로도 크게 보도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근래 일어나는 조드는 책에 등장하는 1000년 전 조드 보다 훨씬 무섭다고 한다. 인간의 탐욕과 욕심으로 몽골의 초원이 더욱 사막화되어 가고 그로 인해 조드의 횟수와 강도, 세기가 증가하는 것이다. 유목민은 점점 줄어들고 너도나도 울란바타르로 이주하다 보니 도시는 도시대로 실업난과 환경공해(가난한 유목민들은 도시에서도 낮은 구릉지에 게르를 짓고 산다. 울란바타르에 가서 주위 산들을 둘러보면 온통 게르로 가득 차 있다.)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과거의 찬란하던 역사를 되새김질할 틈도 없이 힘든 시기를 겪은 몽골이 지금도 과도기를 겪고 있다. 풍부한 지하자원과 광물자원의 대다수가 이미 탐욕스런 나라의 기업들에 팔려나간 실정이다.
그래도 민데형네 가족을 만날 때마다 늘 칭기스칸을 얘기한다. 초콜렛도 보드카도 칭기스칸이 새겨진 것이 많다.
(ㅋㅋ 조드와 함께 ㅋㅋ)
작년 말 민데형 아버지께서 한국에 다녀가실 때 선물해 주신 보드카. 너무 독해 4분의1도 마시지 못했다.ㅋㅋ
이 책에 대한 몽골의 관심이 뜨거운 것도 사실은 현재의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한 몽골사람들의 고육지책인지도 모르겠다.
조드는 1000년 전이나 1000년 후인 지금이나 무섭고 두려운 존재다.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말발굽으로 재패한 칭기스칸의 본격적인 활약상이 없어서 좀 아쉬웠다. 책의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후속작 연재를 넌지시 밝혔는데 신나는 내용이라면 조드1,2권 보다 더욱 대박이 날 것 같다.
내가 이제껏 살면서 본 것 중 가장 큰 감동이었던 엘승타슬라헤(작은 고비라는 뜻) 사막에서의 일출장면이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펼쳐지는 장관에 넋을 잃고 주룩주룩 눈물만 흘렸었다.
저 끝이 보이지 않는 초원에서 들려오는 거대한 말발굽 소리를 기대해 본다.
아~~ 몽골에 또 가고 싶다. 저 초원으로 저 사막으로 조드의 흔적으로
“삶이란 그렇게 몽롱한 것이다. 아름답고 참혹하다.” (1권, p.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