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오늘 책읽기 어떻게 해! 맛있는 글쓰기 12
조혜원 지음, 박선미 그림 / 파란정원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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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오늘」시리즈가 이렇게 유명한지 몰랐습니다. ‘교과 연계 책’에 대한 책소개가 굉장히 신선하고 재미있습니다. 아직 저는 자녀가 없어 지인에게 선물을 하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책을 읽어보니 어느새 빠져들었습니다. ‘이야~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교과서가 안 이랬는데... 요즘은 정말 재밌어 졌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요. 물론 지금 초등학생 들에게는 교과서가 재밌지만은 않겠지요^^

 

‘교과 연계 책’도 이렇게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는지 몰랐습니다. 초등학교 자녀를 둔 부모님께는 정말 좋은 안내서가 될 것 같습니다.

 

사실 저도 책을 본격적으로 읽은 것은 대학교 때였거든요. 누가 ‘책 좀 읽어라! 읽어라!’해서 읽은 것이 아니라 제 스스로 ‘책을 읽어야겠다. 읽고 싶다!’라는 마음이 먼저 생겼고, 좋은 책을 만나는 행운까지 겹쳐져 지금껏 책을 읽고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 「나, 오늘 책읽기 어떻게 해!」같은 경우는 아이가 흥미를 가지고 이 책을 읽을 수 있다면 분명 교과서에도 큰 흥미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각 챕터마다 몇 학년 몇 학기 무슨 과목의 무슨 책인지 상세히 소개가 되어 있어 만약 부모님이 함께 책을 읽을 수 있다면 교과서를 같이 찾으며 읽어봐도 좋을 것 같네요.

그리고 각 챕터마더 [다양한 생각과 함께 하는 독서록]과 [이런 독서록은 어때?]라는 적용파트가 있어 읽고 쓰고 말하며 이해하고 학습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드네요.

‘이런 책이 나온다는 건 얼마나 아이들이 책을 안 읽는다는 소리일까?’

초등학생들이 책을 많이 읽고 교과서를 잘 이해한다면 굳이 이런 책이 나올 필요가 없지 않겠어요?

 

저는 제가 책을 좋아하고 독서하는 것을 사랑하니까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최소한 나보다는 더 열렬한 독서쟁이를 만들거야!’라며 아내에게 호언장담을 하는데 철없는 소리인지도 모르겠네요. 아이가 제 말을 너무 잘 따라서

‘네 아버지! 아버지 뜻대로 아버지를 뛰어넘는 독서쟁이가 되도록 하지요! 책 이리 주십시오!’ 라고 한다는 보장이 없으니까요.

아~ 갑자기 머리가 아파오고 고민이 시작됩니다. ㅋㅋ

환경을 잘 만들어주고 ‘책 읽어라~!’ 하기 전에 아이 앞에서 먼저 책을 읽는 모습을 보이도록 다시 한 번 다짐해 봅니다.

 

 

저는 이 책에 소개된 많은 책 중 143페이지에 소개된 안네마리 노르덴의 「잔소리 없는 날」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래서 제 구매리스트에 당장 추가했지요.

 

이 책에 등장하는 푸셀처럼 단 하루만이라도 잔소리 없는 날을 살아 보고 싶거든요. 이건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도 공감할 수 있을 얘기일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책에서처럼 하루 종일 제 마음대로 행동하고 놀았던 푸셀이 숙제를 하지 않은 이유를 거짓말하기 위해 엄마에게 부탁하지만 엄마의 거절로 ‘잔소리 없이 마음대로만 하는 것이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니다’라는 교훈을 얻게 되지만 단 하루 만이라도 ‘잔소리 없는 날」을 살아보고 싶네요.

 

 

 

 

 

 

이 리뷰는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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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자 잡혀간다 실천과 사람들 3
송경동 지음 / 실천문학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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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버스를 처음으로 기획하고 진두지휘한 송경동 시인의 산문집이다. 희망버스가 김진숙씨를 구원해 냈지만 송경동 자신에게는 희망고문이 되어 버렸다. 수감 중인 시인에게는 희망고문이 되어 버렸다.

물론 내 생각일 뿐이지만.

 

송경동 시인을 알지 못했다. 희망버스가 이슈가 되고 보도가 되면서 그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이 산문집 「꿈꾸는 자 잡혀간다」는 그대로 시인의 절규이다. 수십 년을 하루같이 하나의 문제를 위해서 싸워왔지만 극과 극의 대통령을 거치며 희망을 가져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앞뒤로 하늘 끝부터 땅 끝까지 완전히 막혀있는 구조를 깨부술 수 없었다.

그에 대한 절절한 실패의 기록이기도 하다.

 

그래서 책은 불편하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지식인입네 하며 온갖 휘황찬란한 미사여구를 갖다 붙인 허접한 ‘글’들 과는 차원이 다르다.

글자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가 그대로 송경동이다.

삶에서 살아낸 흔적이 그대로 글자가 되어버렸다.

책을 읽는 독자로서 그것이 느껴지고 진심이 전달된다.

이것은 힘이다.

송경동 시인이 가진 힘일 것이다.

 

그간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오히려 공권력이라는 명분으로 짓밟고 때리고 겁주고 빼앗았다.

그래도 그는 85호 크레인에 올라가 홀로 사투를 벌이는 김진숙씨 옆에 유령도시가 된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노조원들 옆에, 800만 명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규 바로 옆에 있었다.

TV시사 프로그램에 화장 떡칠하고 앉아서 개기름 섞인 자만으로 진보입네 하고 연결된 라디오 프로그램 전화통화에서 마치 시국을 혼자 관통하는 것처럼 으스대는 꼴이나 SNS를 통해 무지하고 몽매한 대중을 가르칠 대상으로만 인식해 오만방자한 칼을 휘두르는 먹물 잡배 놈들과는 다르다.

 

시인은 이 사회의 가장 끄트머리 건설현장 일용직 잡부로 일한다.

그러면서 글을 쓴다.

그러면서 늘 운동의 선두에 선다.

소외받고 차별받는 이들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래서 불편하고 미안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내 자신을 질책한다.

그래도 이 불편함과 미안함이 해소되지 않는다.

조금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오늘 현재 일어나는 불의와 폭력에 맞서지 않는다면 어떤 과거의 민주주의도 다 허상일 뿐이다.” (p.156)

 

체제가 바뀐다고 해서 정치주체가 바뀐다고 해서 노동자, 농민, 궁민( “그래서 그들은 이 나라의 국민도 아니다. 노래패 꽃다지의 노래에 나오는 ‘궁민’조차도 못 된다.”, p.104)의 삶이 바뀌지 않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를 통해 확인한 바다.

 

결국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역사의 분곡점마다 혁명, 전쟁, 봉기, 투쟁의 형태로 점 찍혀 있다. 분노하든 짱돌을 들든 무언가 해야 할 때란 말이다.

 

희망버스가 조직되고 부산으로 향하는 것을 알면서도 휴가를 내지 못했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휴가를 내지 않았다. 괜한 호기를 부릴 용기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냥 피해버렸다. ‘내가 아니어도 사람 많은데 뭐’

비겁한 변명이었다.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에 다녀온 친구로부터 이야기를 전해 듣는 것으로 스스로의 구차함을 자위했다.

 

한국에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형태의 운동을 그렇게 축제로 만들고서는 조용히 감옥에 수감되었다. 희망버스도 결국 송경동을 지켜내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늘 이렇게 지는 싸움을 했다. 아니 싸움을 해보기나 했으면 억울하지나 않지, 그냥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고 집단 린치를 당했을 뿐이다.

시인이 만들어 낸 희망버스가 자신에겐 희망고문이 되어 버린 것을 아닐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전국에서 모여드는 자발적 운동을 처음 경험하면서 ‘이번에는 뭔가 바뀌겠다.’ 핑크빛 환상을 꿈꾸게 한 건 아닐까. 해가 올라오면 급격하게 사그라지는 새벽안개처럼, 바람 빠져 방향 없이 휙휙 나부끼는 풍선처럼 ‘희망’고문을 가한 것은 아닐까.

 

시인은 자친출두했다.

마지막 자존감을 지킨 것이다.

멋있다고 생각하기도 미안하다.

 

 

“먼지바람이 휭하니 부는 낯선 객지 공사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띄엄띄엄, 쓸쓸하게 들리는 망치소리로나 만나요.” (p.79, 「노동자 전영관 잘 가시라」 중)

 

머릿속의 자맥질이 멈추지 않는다.

 내 머릿속에서도 공사판 망치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가장 낮은 곳으로 몸을 굽히며 살았던 시인의 삶이 제발 시사 하는 바가 컸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무도 소리치지 않고 그들의 손을 잡아 주지 않을 때 맨 앞에 서서 확성기에 목이 터져라 울부짖고 조용히 그들 옆에 쭈그려 앉아 함께 눈물 흘린 시인의 삶이 아름답다.

 

아무리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써도 살아본 경험이 없는 자, 삶에 녹아있지 앉는 자의 그것은 거짓말이다. 제 자랑일 뿐이다.

 

책을 읽는 내내 부끄럽고 미안해 몸이 쪼그라드는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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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빈곤 경제학고전선집 15
헨리 죠지 지음, 김윤상 옮김 / 비봉출판사 / 199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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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쓴 리뷰이다.

그때보다 더 나아지지 못한 나를 발견해 흠칫 놀랐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확인을 하니 더욱 부끄럽다.

 

 

 

 

 

 

 

 

 

"사회가 고도로 진보하는 가운데 극심한 가난이 존재하는 이유는 토지의 사유에 있다."

 

 

 

위의 고민은 헨리조지가 이 책을 펴내게 된 결정적 이유가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140년 전 뉴욕에서 신문기자 생활을 하던 시절 극도의 사치와 지독한 빈곤이 공존하는 대도시의 현실을 보고는 충격을 받아, 진보 속에 빈곤이 존재하는 원인을 찾아 이를 제거하는 일에 신명을 바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140년 전의 현실이 2007년 현재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것에 더욱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진보와 빈곤>

 

이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인류가 겪는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일 것이다. 전 세계의 공통된 화두이지만 자본주의가 시대의 정신으로 인정되고 있는 지금.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구분은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부의 축적'에 대해서 무한한 찬양을 보내는 현 시대는 부를 축적하게 된 과정에 주목하기 보다는 얼마나 많은 부를 가졌느냐에 주목한다. 이것은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교회는 '가진 자'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물질적 축복이라 얘기한다. '가지지 못한 자'는 더 열심히 노력해 하나님의 물질적 축복을 받으라 얘기한다.

 

나는 단 한 번도 부정한 방법으로 축적한 부의 죄악성과 부의 불균형에 대한 냉철한 비판을 가하는 신앙서적을 보거나 설교를 들어본 적이 단 한번도 없다.

 

나로서는 묵인하고 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몇 달전, 모방송의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교회의 땅투기"를 대상으로 방영을 한 적이 있었다. 수도권 신도시를 중심으로 땅값이 급격히 상승하는 것을 염두하여 개발 전 조립식 교회를 지어놓아 토지의 소유권을 가진 후, 신도시 개발이 시작되어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 교회를 철거하고 땅을 팔아 많게는 수억원의 이익을 챙긴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해당 교회의 목사와 장로들은 전혀 투기의 목적이 아니었다고 역정을 냈지만 누가봐도 투기였음은 분명했다.

 

부동산 공화국이라고 불리는 한국에서 목사라고 별 수 있겠나 하는 비아냥거림이 계속 들리는 것 같아 방송을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었다.

 

 

 

책으로 돌아와 저자는 토지에 대한 사유가 빈곤을 조장하며 이러한 토지사유는 정의롭지 못한 것이고 자연권을 부정하는 악한 제도이며 자연법에 반하는 제도로서 사회발전에 따라 수 많은 사람을 고되고 미천한 노예로 전락시킨다(p. 391)는 사실을 책의 전체에서 지적한다.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지대 징수"를 제시하는데, 이는 사회가 지대를 징수하여 공공의 용도로 사용하면 지대 상승분은 사회의 모든 구성원의 이익으로 돌아가고 이렇게 하면 하나의 계층만이 생활의 필수품, 편의품, 고급품을 얻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계층이 얻게 된다. 인구 증가, 생산 기술상의 새로운 발견, 노동절약적인 발명, 원활한 교환의 확대 등과 더불어 나타나는 생산력 증대의 이익은 아무도 독점하지 못한다(P. 428)고 하였다.

 

 

 

헨리 조지의 이러한 주장은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킬 만한 것이었다. 당시 영미권을 중심으로 정치경제학계를 주름잡던 존 스튜어트 밀과 아담 스미스등의 주장과는 판이하게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밀과 스미스의 이론은 주류로 인정받아 지금의 자본주의를 형성한 거름이 되었고, 헨리 조지의 이론은 놀랍도록 새로운 혁명적인 주장이었지만 그의 사후 뜬 구름 잡는 얘기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금의 경제학계에서 헨리 조지에 대해서는 전혀 들어보지 못하는 현실을 보면 그를 향한 세상의 푸대접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염추해 볼 수 있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가 함께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이 지독한 자본주의 세상에서 비록 모래속에 묻힌 진주같이 학계에서도 묻혀있는 헨리 조지의 이론은 주목할 만 하다.

 

 

 

나를 더욱 당황하게 만드는 사실은 헨리조지가 뉴욕에서 이 책을 집필하기로 마음을 먹은 그 당시 나이가 지금 내 나이와 같은 29세 였다는 사실이다. 그는 사회가 진보해 갈수록 빈곤은 창궐해 가는 1860년의 현실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하고 분노하였으며 자신만의 이론을 정립해 나갔다.

 

 

 

나도 기도할 때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성토하고 마음이 맞는 사람과 대화할 때마다 마치 대단한 고민을 하고 있는 양 핏대를 세우며 말을 해댄다.

 

그러나, 헨리 조지는 행동하였고 나는, 말만 해대고 있을 뿐이다.

 

 

 

서른을 앞둔 내게 가장 큰 고민은 도대체 무엇이어야 하나?

 

불편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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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문재인의 운명
문재인 지음 / 가교(가교출판)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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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에 사두고 읽지 못하다가 올해 마지막에 맞추어 읽었다. 그냥 읽을 수 없었다. 이제는 시간이 많이 흐르고 그분의 직접적인 얘기도 아니지만 읽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어렵게 읽었다. 올해가 가기 전에는 꼭 읽고 싶었다.

 

“우리가 쭉 살아오면서 여러 번 겪어 봤지만, 역시 어려울 때는 원칙에 입각해서 가는 것이 가장 정답이었다. 뒤돌아보면 늘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p.99)

 

잠정적인 대권 후보로 많은 사람들에게 짐작되고 있는 문재인씨는 두 번의 민정수석과 한 번의 비서실장을 거치며 완전히 원칙주의자의 전형을 보여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어준 총수가 한 눈에 훅 가버린 영결식 장면이 절정이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참여정부 내내 흩뿌려 놓은 조중동의 유언비어는 많았지만 도덕성 하나만은 원칙적 합의로 지켜냈다.

 

“저는 모든 권력적 수단을 포기했습니다. 도덕적 신뢰 하나만이 국정을 이끌어 갈 수 있는 밑천일 뿐입니다.” (p.279)

 

“민정수석 자리에 있는 나의 원칙주의가 여러모로 불편했던 것이다. 그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검찰의 수사 등에 대해 도와주지 않는다는 불만, 당 쪽의 인사부탁을 잘 들어주지 않는다는 불만” (p.281)

 

이명박과 그의 졸개들이 만들어놓은 시대의 스트레스와 결핍은 이제 도를 넘었다. 며칠 전 정봉주 전 의원의 구속이 화룡점정이었다. 내년에 분명히 바뀐다.

 

4년 가까이 이명박을 겪으며 그 전 참여정부에서 당연히 누렸던 것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가치였는지 뼈저리게 경험했다. 외교·안보·정치·사회·문화 모든 면에서 수십 년을 퇴행한 4년을 살았기 때문이다. 국가를 자신과 몇몇 졸개·재벌 각하들의 수익모델로 삼는 파렴치도 보았다. 최소한 그러면 안 된다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다.

 

참여정부 시절 이루어 낸 정치개혁, 지역주의 타파, 청와대의 탈 권위화, 검찰의 중립성 강화, 국세청·감사원의 중립성 보장과 역할 확대, 과거사 위원회를 통한 진실 규명 및 명예 회복, 인사검증 시스템의 선진화 구축, 미·중과의 외교를 통한 6자회담 등 수많은 성과를 한꺼번에 헌신짝 취급했다.

사람들이 모이기만 하면 뒤에서 조종을 했느니, 사주를 했느니 노무현 콤플렉스로 4년을 보냈다.

 

역사 상 최악의 대통령을 겪으며 국민들로 많이 지쳤다.

문재인씨가 전면에 나서 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수년 전 그랬던 것처럼 정말 기쁜 마음으로 투표하고 개표방송을 숨을 죽이며 시청하고 당선소식에 미친 듯이 기뻐하는 경험을 다시 한 번 해보고 싶다.

 

책의 말미에 다음 총선과 대선에 대한 언급이 조금 있다. 분명히 말하는 건 참여정부 시절 할 수 있었으나 하지 못했던 많은 일과 힘을 합칠 수 있었으나 그러지 못했던 경험들은 면밀히 반추해서 다음번에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피력한다.

 

참여정부 시절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 설치와 국가보안법 폐지는 분명히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들이었는데 딴나라당은 물론 열린우리당 의원들도 그리고 시민·사회단체에서도 미지근했다. 분명한 실수다. 다음번에는 절대로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아야 한다.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적당히 안락하게, 그리고 적당히 도우면서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의 치열함이 나를 늘 각성시켰다. 그의 서거조차 그러했다. 나를 다시 그의 길로 끌어냈다.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야 말로 운명이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 (p.467)

 

문재인에게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제 떼어놓을 수 없다. 그것이 운명이든 숙제이든 꼼짝 못하게 되었다. 문재인씨 본인에게는 두렵고 부담되는 일이겠지만 또 다른 밝은 미래를 갈망하는 우리에게는 분명 희망적인 운명이다.

 

자꾸만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각이 나서 힘이 든다. 현실의 피폐가 자꾸만 과거를 회상하게 한다. 회상에 대한 리뷰를 한 페이지 정도 썼다가 다 지워버렸다. 내게도 생채기가 될 뿐이다.

 

날이 많이 어둡다. 새로운 해가 동트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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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레 사진관 - 상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네오픽션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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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의 책은 「모방범」이 후 두 번째이다. 아내가 추리 소설을 워낙 좋아해 선물을 자주 하기는 하는데 나는 잘 보지 않는다. 그런데 미유키의 책은 좀 달랐다.

일본 추리소설계의 신화적 존재인 ‘에도가와 란포’와 ‘오코미조 세이지’의 책은 읽으려 해도 그 소재나 구성이 너무 불편하고 무서워 읽을 수 없었다.

「모방범」은 그간 일본 추리소설에 대해 갖고 있던 선입견을 완전히 깨트린 작품이었다. 사회의 모순과 병폐를 날카롭게 파헤치면서도 상처받은 인간에 대한 탁월한 묘사와 포용성으로 단숨에 작품 안으로 흡입되게 만들었다. 물론 조금 무섭기는 했지만(?)

 

이번 작품 「고구레 사진관」은 「모방범」처럼 장편이다. 두 권의 책에 4개의 에피소드가 담겨 있었는데 작년 미유키씨가 이 책을 출간하면서 책 표지에 “신인 미야베 미유키”라는 홍보문구를 선보였다고 한다. 이유는 기존의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 세계와 확고하게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말 그랬다. 비록 나는 두 권 밖에 읽지 않았지만 미유키씨의 책을 많이 읽은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블로거들의 리뷰를 보면 그녀만의 확실한 색깔이 있었다.

굳이 「고구레 사진관」의 장르를 말해보자면 [감성 미스터리 성장소설]이라고 하고 싶다.

 

주인공 에이이치에게 일어난 일은 우연이 아니다. 미야베씨의 작품이 늘 그랬듯 따로 떨어져 있어 연관이 없는 듯 한 사건과 소재가 어느 순간 큐브가 맞춰지듯 들어맞는다.

에이이치의 가족이 지은 지 33년이나 된 오래된 ‘고구레사진관’에 이사오게 되고 한 여고생으로부터 심령사진을 받게 되고 그 사진에서 미심쩍은 부분을 발견해 사건을 해결하려 동분서주 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그물처럼 촘촘히 얽혀있다.

 

등교거부나 신흥종교의 폐해 같은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소재도 등장하지만 책의 초점은 에이이치가 만나서 이야기하는 많은 등장인물들의 억울함과 하소연 상처들에 대한 토로이다. 또 그것을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들어주는 에이이치의 따뜻함과 포용력을 통해 오히려 심령사진의 미스터리가 풀려나가게 된다.

 

“더 이상 살인은 쓰고 싶지 않다!” -2010년 7월 20일자 아사히 신문

 

일본에서 작년에 책을 출간하며 저런 말을 했다고 하는데, 진심으로 한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고구레 사진관」에서는 그렇다.

 

행복해 보이는 가족사진 옆에 찍힌 여성의 슬픈 얼굴, 활짝 웃고 있는 가족사진 뒤로 찍힌 똑같은 가족의 울고 있는 표정, 케이크를 둘러싼 아이들 위로 누가 봐도 ‘봉제 인형’인 갈매기가 날아‘가고’ 있는 모습이 책에 등장하는 심령사진들이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고 들어 왔던 목이 없는 여자가 등장하는 수학여행 단체사진이나 다리가 없이 공중에 떠 있는 눈 없는 남자가 등장하는 가족사진 따위가 아니다. 무섭지만 기괴하지 않고 2차원의 사진 표면에서는 볼 수 없지만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의 3차원적인 삶의 구석구석에 녹아 있는 아픔과 슬픔, 상처를 들여다보면 결코 무섭지만은 않은 애달프고 마음 짠한 우리들의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오히려 성인보다는 청소년들이 이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얼마 전 대구에서 있었던 무시무시한 학교폭력의 사례를 보았다. 친한 친구를 한 순간에 왕따로 만들어 버리고 학대하고 폭력과 폭언을 가하는 아이들.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동물을 대하듯 물건 짝 취급하듯 해버리는 인간이 가져야 할 감성을 가지지 못했거나 아니면 한 순간에 그러한 집단 폭력에 동조되어 양심과 죄의식 따위는 팽개쳐버리는 아이들이 있다.

 

학교에서 유명한 일명 ‘노는 애들’이 아니었다는 것이 더욱 충격적이었다. 흔히 보고 만나는 그 ‘평범한 아이들’도 한 순간에 그런 괴기하고 흉측한 괴물로 변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

 

책의 주인공 에이이치도 심령사진을 들고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얘기를 듣고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성장하게 된다. “사진에 찍힌 것은 피사체만이 아니”듯 친구를 죽게 만든 그 아이들도 괴물만은 아닐 것이다.

 

에이이치처럼 최소한 남의 말을 귀담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마지막 에피소드처럼 남의 일 뿐만이 아니라 나의 일도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에이이치의 가족 간에 있었던 묵은 갈등과 오해, 반목이 서로의 말과 입장을 그대로 수용하고 들어주면서 점차 풀리게 된다. 에이이치 가족이 겪고 입었던 상처를 그대로 고백하면서 오히려 그것이 가족 내에서 아픔으로 동변상련으로 받아들여지게 되고 유대가 형성되는 것이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가장 아픈 상처 내지는 가장 부끄러운 치부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상처와 치부 그대로를 누군가 알아주고 있는 그대로 수용해 주기를 바란다.

우리는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상대방의 얘기를 들어주려 노력해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만 실컷 떠들어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너도 나와 같은 상처 입은 사람이구나’라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책을 읽는 동안 내 주변을 돌아봤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친한 친구들, 가족...

최소한 상처를 주는 사람은 되지 않아야겠다.

물론 내가 알지 못하고 의도하지 않는 사이 또 누군가에게 생채기를 낼 수 있겠지만 조심 또 조심하며 살아야겠다. 그리고 늘 입보다 귀가 앞서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고구레 사진관’의 심령사진 같은 것을 볼 수는 없겠지만 내게 던져질 나만의 심령사진을 외면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그녀가 그렇게 공격적인 건 사실은 두렵기 때문이야. 다른 사람을 대할 때는 어떻게든 강하게 나가야지 안 그러면 금세 당한다고 굳게 믿고 있는 거야. 상처 받기 전에 먼저 상처를 주려는 거지. 그런 인간관계밖에 모르는 것 같아, 지금껏.”

 

 

 

 

 

이 리뷰는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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