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레보스 탐 청소년 문학 10
우르술라 포츠난스키 지음, 김진아 옮김 / 탐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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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게임이란 설정 때문에 예전에 읽은 <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이란 소설이 먼저 떠올랐다. 오래되어 희미해진 기억 속에 현실과 게임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왠지 모르게 겹쳐보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히 <에레보스>나 <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이란 소설에서만 특별히 다루고 있는 설정은 아니다. 게임을 매개로 하는 스릴러 장르라면 거의 모두가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때문에 언론은 게임의 유해성을 부각시키는 기사를 내놓고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된다. 하지만 소설이나 만화나 영화 등에서 이미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은 교묘하게 감추고 있다. 이 소설도 게임 중독에 의한 위험성을 강하게 부각시키지만 역시 과장된 부분이 많이 있다.

 

에레보스는 소설 속 게임이다. 이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규칙이 있다. 첫 번째는 게임은 딱 한 번만 할 수 있고, 두 번째 반드시 혼자 해야 한다. 세 번째는 게임 내용은 비밀로 해야 하고, 마지막으로 에레보스 CD를 잘 보관해야 한다. 철저한 비밀 속에 게임을 해야 하기 때문에 게임 속 캐릭터가 누군지 현실 속에서는 전혀 알 수 없다. 자기가 에레보스 속 누구라고 말하는 순간 게임을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게임 플레이어 누구도 원하지 않는 일이다. 강한 게임 중독을 유발하고 딱 한 번만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중독자에게 엄청난 즐거움이자 위험이다. 때문에 게임 속에서 캐릭터가 죽은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에게 게임 CD를 빌려 다시 깔려고 노력한다. 물론 그 결과는 거부다.

 

처음 닉이 이 게임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그냥 보통의 게임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 게임은 보통 게임이 아니다. 자신이 누군지 알려줘야 하고 엄청난 노력을 들여야 한다. 그 대가는 엄청난 몰입도와 재미다. 닉 친구 콜린이 이 게임을 한 후 변한 것은 이 게임의 강한 중독성과 재미를 알려준다. 언제나 그렇듯이 가볍게 시작한다. 자신도 모르게 점점 빠져든다. 게임을 하지 못하는 순간은 자신을 주체할 수 없다. 자신의 캐릭터가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 빠지면 에레보스 속 전령이 요구하는 것을 현실에서 실행해야 한다. 바로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게임 속 전령의 요구가 현실 세계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 전체적인 고리를 모르는 사람은 결코 그 미션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지만.

 

게임소설은 언제나 강한 현실성을 부여한다. 플레이어가 그 가상 세계에서 현실처럼 경험한다. 사실 이런 종류의 게임을 전혀 해보지 못한 나에게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그래픽이 엄청나게 발전한 현재를 생각해도 게임 속 장면은 엉성한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설정은 이 소설에서 중요하지 않다. 플레이어가 느끼고 빠져들고 경험하는 것들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플레이어 개인에게 끼치는 영향과 그 결과 발생할 수 있는 일들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이 부분을 극대화시켜 보여준다.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게임 플레이어와 같은 경험을 하는 듯하게 느끼게 만들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경험을 플레이어가 같이 하는지도 모르겠다.

 

닉이 게임에 빠져들고, 캐릭터를 구하기 위해 전령이 시키는 일을 한다. 이 과정에 이상한 몇몇 장면을 보게 된다. 어떤 순간에는 전령이 요구 사항이 너무 엄청나 고민에 빠지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에레보스 게임이 그에 대한 정보를 너무 가지고 있고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하다는 것이다. 읽는 순간 가장 섬뜩한 부분이다. 게임 운영자가 플레이어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설정은 뭔가 거대한 음모가 깔려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것에 대한 답이 나왔을 때 이 엄청난 게임과 설정들이 왠지 너무 비약한 것 같았다. 아쉬운 부분이다. 그리고 닉과 에밀리의 관계가 발전하고, 그 과정에 에레보스의 음모가 밝혀지는 부분에 이르게 되면 앞에 설정한 것들이 힘을 조금씩 잃게 된다. 역시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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섀도우 헌터스 1 : 뼈의 도시
카산드라 클레어 지음, 나중길 옮김 / 노블마인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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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보다 영화 예고편으로 먼저 만난 소설이다. 예고편을 보면서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원작이 있었다. 그런데 그 원작이 영화 개봉보다 조금 빨리 무려 3권이 함께 나왔다. 원작이 있는 영화가 나오면 원작을 읽은 후 보려고 한다. 영화의 이미지가 원작을 읽을 때 끼어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소설은 조금 실패다. 소설을 읽으면서 클라리의 이미지와 마법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예고편이라서 자동적으로 어느 수준에서 차단되었다. 예고편 몇 장면은 원작과 왠지 모르게 달라 의아한 부분이 많지만.

 

결코 적은 분량이 아니다. 거의 600쪽에 육박한다. 재미있다는 먼저 읽은 사람의 평은 회사 다니는 시간을 쪼개 읽은 나에게도 단숨에 읽을 수 있겠다는 희망을 주었다. 하지만 그 분량은 역시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피곤한 일상으로 며칠을 보내다 어느 조용한 저녁 커피숍에서 그 절반을 단숨에 읽었다. 앞부분에서 그 재미와 속도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면 후반부는 새로운 이야기와 예상한 출생의 비밀과 예상하지 못한 전개들과 전투 장면 등으로 몰입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까 궁금해졌다.

 

이제 곧 16살이 될 클라리는 절친 사이먼과 클럽에 간다. 이곳에서 클라리는 이상한 장면을 본다. 그것은 한 아이가 묶여 있고 3명의 아이가 둘러싸고 있다. 폭력의 현장에 나타난 것이다. 이것을 말리려고 하는데 싸움이 벌어지고 묶여 있던 아이가 죽는다. 이보다 더 이상한 것은 자신은 이 현장을 보는데 사이먼을 비롯한 다른 사람은 전혀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세 명의 아이들이 그녀가 본다는 사실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바로 이 장면이 영화 속 예고편으로 나온 것이다. 클라리가 섀도우 헌터스들과 처음으로 만난 장면이다.

 

예고편을 보면 클라리가 이들과 만난 후 금방 악마를 사냥하는 섀도우 헌터스가 될 것 같다. 하지만 원작은 1권이 끝나는 순간까지도 그녀에게 이런 재능은 쉽게 생기지 않는다. 반면에 작가가 창조한 세계와 인물들의 과거와 현재를 복잡하게 엮어서 시리즈의 기초를 탄탄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 나오는 뱀파이어, 늑대인간, 마법사 등은 기존 판타지 소설의 설정을 어느 정도 따라가면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낸다. 개인적으로 발렌타인의 존재는 해리포터의 볼드모트를 연상하게 만들었고, 늑대인간과 뱀파이어의 대립은 영화 <언더월드>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뱀파이어가 타고 다니는 오토바이는 <고스트 라이더> 속 바이크가, 섀도우 헌터스들이 몸에 새긴 룬 문자는 기존 판타지 마법의 변주로 다가왔다.

 

세계를 기존 판타지 설정을 빌려와 새롭게 만드는 와중에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섀도우 헌터스는 천사 라지엘의 피로 창조되었고, 네피림이라고 불린다. 천사와 인간의 결합이다. 네피림을 검색하니 구약에서 거인들인데 왠지 이름만 빌려왔지 다른 존재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그것과 상관없이 10대 소년들이 악마 사냥꾼으로 활약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이 훈련되었다고 하나 아직 충분히 성장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약간 과한 설정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것은 중요한 사건을 해결하는데 어른들이 큰 역할을 하지 않거나 이 아이들이 큰 위협에 처할 때면 문득 문득 드는 생각이다. 어른 섀도우 헌터스가 임무를 수행하는 도중에 죽었다는 이야기를 할 때면 더욱 강해지는 의문이기도 하다.

 

클라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녀의 출생에 대한 의문을 품게 만드는 첫 부분에서 시작하여 섀도우 헌터스로 자란 아이들과의 만남은 거대한 서사의 조그만 시작이다. 클라리에게 금제된 것에 대한 의문과 거대한 악의 존재인 발렌타인의 등장은 그녀의 기존 관계를 뒤흔들고 새로운 현재와 미래를 만들어낸다. 이 과정에 곳곳에 벌어지는 다양한 모험과 사건은 이 적지 않은 분량의 소설을 지루하지 않게 만든다. 그리고 예상한 출생의 비밀과 예상하지 못한 전개로 이어지고 엮이는 이야기는 기존 판타지 소설에서 잘 느껴보지 못한 것이다. 주인공들을 10대 설정한 만큼 그들의 이야기는 변화무쌍하고 예측불가능한 부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 그만큼 재미도 있을 것이다. 다음 권도 조용한 커피숍에서 몰입할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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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오늘의 일본문학 12
아사이 료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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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년생 만23세 청년이 제148회 나오키상을 수상했다. 대단하다. 가끔 일본 문학을 읽다 보면 나이에 상관없이 권위 있는 상들을 아주 어린 작가들이 받는다. 한국의 경우 결코 보지 못한 모습이다. 그래서인지 젊은 작가들의 수상이 결정되고 그들의 책이 나오면 더 관심이 간다. 어떤 소설이기에 이런 상들을 받는가 하고 말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나오키상 수상이다. 하지만 젊은 작가는 관심을 더 가지게 만든다. 이제는 그들과 적지 않은 나이차가 생겨 공감대 형성에 어려움을 느낄 때도 많지만 말이다.

 

취업 준비생들 이야기다. 오래 전 일이라 잘 기억나지 않는데 이 소설 속 취업은 우리 때와 많이 다른 모습이다. 한국의 특성과도 다른 모습이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것과 상관없이 취업 준비생들의 노력은 비슷하다. 자기소개서를 쓰고 이력서를 제출하는 노력이 취업 전까지 반복되기 때문이다. 요즘 세대가 다행이라면 예전과 달리 손으로 쓰지 않는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이전에 비해 더 심해진 경쟁을 뺀다면 말이다. 이 속에서 그들은 정보를 교환하고 면접 단계까지 나아간다. 하지만 그 다음 단계인 취업은 결코 쉽지 않다. 불황기에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기 때문이다.

 

화자인 다쿠토를 비롯한 다섯 명의 취업 준비생들이 나온다. 전체 이야기를 이끌고 나가는 것은 다쿠토다. 그의 관찰을 기본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 사이에 이들의 생활을 살짝 엿보는 역할을 하는 것이 SNS다. 트위터로 자신의 일상과 감상을 풀어내는데 이것이 다쿠토의 관찰에 걸린다. 여기에 풀려나오는 감정은 솔직하거나 감춰진 것들이다. 화자인 다쿠토의 시선을 기본적으로 따라가다 보니 그 시선에 왜곡된 것이 나타날 때 화자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다. 바로 여기서 소설은 반전이 펼쳐진다. 이것은 제목과도 관계가 있다. 그리고 그 시선이 다른 사람으로 바뀔 때 화자는 관찰자에서 관찰 대상으로 변한다.

 

솔직히 소설 속 취업 준비생들의 생활 방식이 낯설다. 경험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지만 문화 차이가 더 크게 느껴진다. 그것이 아니면 세대 차이일 것이다. 이런 것을 감안하고 읽어도 왠지 모르게 이 취업 준비생들의 절박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있다면 엄마와 함께 살아야 할지 모르는 미즈키 정도다. 리카의 행동은 어느 정도 그것이 보이지만 남자 세 명은 전혀 긴장감이나 절박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읽는 순간 비현실적으로 다가온 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읽은 것은 미묘한 감정의 흐름을 잘 포착하고 풀어내었다는 것이다. 특히 미즈키를 둘러싼 감정의 흐름은 청춘의 열정과 비겁함이 동시에 담고 있다.

 

관찰자가 대상으로 바뀐 순간을 다루는 마지막 부분은 아프다. 다쿠토가 전혀 변명을 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한다. 물론 이것이 성장으로 가는 여정의 일부다. 그렇지만 아픈 것은 아픈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앞부분을 읽으면서 살짝 의문을 품었던 것 중 하나가 분명하게 풀린다. 앞에서 놓친 것인지 아니면 작가가 의도적으로 배치한 것인지 자신이 없지만. 다쿠토가 대상으로 변하는 장면에서 리카가 보여준 모습은 또 다른 아픔을 전해준다. 그것은 자신을 어딘가에 자꾸 끼워 맞추려고 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꼴불견인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다고 할 때 더욱 그렇다. 삶이, 청춘이 무겁고 어렵고 아프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준 작은 희망은 살짝 입가에 미소 짖게 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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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노래의 숲을 거닐다 - 향가 고려가요 시조 가사 민요 등으로 만나는 우리의 고전 시가
김용찬 지음 / 리더스가이드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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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조선의 영혼을 훔친 노래들>이란 책으로 저자를 처음 만났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옛 서평을 찾아보니 지금 느낀 기분과 비슷한 문장이 많이 보인다. 그것은 아마도 학창 시절을 제외하면 옛 노래를 일상생활에서 거의 만날 일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낯익은 시조나 가사가 나오면 소리 내어 읽어보지만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과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낯익고 반가운 반복 어구는 흥겹고 재미있지만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낯설기만 하다. 그 때문인지 저자의 글을 따라 가면서 자주 학생 때 기억을 자꾸 되살리려고 한다. 대부분 부정확하고 희미하지만 시험을 위해 읽었고 외웠던 시가 등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모두 네 꼭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우리의 옛 노래가 어떻게 발전했는지 보여주고, 그 다음 꼭지부터는 삶의 애환, 사랑, 충성과 자연을 부르는 노래에 대해 설명해준다. 개인적으로 가장 많은 것을 배웠던 것은 역시 첫 꼭지다. 향가, 고려가요, 경기체가, 시조, 가사, 사설시조 등으로 발전해온 우리 옛 노래에 대한 저자의 잘 정리된 설명은 잘 읽혔다. 그리고 학창시절에 건성으로 흘려들었거나 그 시대 해석에 매여 있던 지식을 현재 학설이나 분석으로 풀어내주었을 때 그 사이 조금 자란 나의 지식과 함께 반가움과 즐거움을 전해주었다. 반면에 경기체가에 대한 낯설음은 그 설명 끝 무렵이나 제목 때문에 겨우 넘어설 수 있었다.

 

사실 이 책에 실린 수많은 옛 노래들이 학창시절 한 번 정도는 읽은 것들이다. 물론 낯선 것도 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소리 내어 읽을 때면 나도 모르게 엉터리 운율을 타게 된다. 아마 이런 경우는 아주 낯익은 노래이거나 소리 내었을 때 더 잘 읽혔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것이 끝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없다. 중간에 그 흐름이 끊어진다. 그리고 옛글을 읽을 때면 그 낯섦 때문에 정확한 발음과 번역의 어려움을 느낀다. 번역이야 저자가 다시 표기해주니 상관없지만 읽기는 기억 속에서 대부분 사라졌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학창시절 고문에 대한 공부를 더 철저히 했다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고.

 

언제나 문학과 노래는 그 시대상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후대에 오게 되면 권력집단의 필요에 의해 생생했던 노래나 문학이 왜곡되거나 삭제되어진다. 이것은 문화재와 서적 파괴로 이어진 역사가 증명한다. 그래서 수많은 연구가가 아쉬워하고 제대로 된 번역과 해석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남지 않은 향가나 고려가요 등은 아주 흥미롭고 그 시대를 상상하는데 도움을 준다. 연구자에 따라 다른 해석이 나올 때면 그럴 수도 있지! 하고 감탄한다. 아마 이런 정보가 쌓이면서 현대 문학이나 역사를 보는 나의 시선도 조금 성장한다.

 

시조나 가사를 읊조리다보면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고 여유를 가진다. 눈으로 글을 따라가는 것과 달리 그 의미가 더 분명하게 다가오는 경우도 많다. 물론 시대에 따라 쓰임새가 다른 단어의 경우는 어쩔 수 없다. 영화나 사극 드라마에서 노래로 불리는 것을 가끔 듣지만 그 리듬 등은 너무 쉽게 사라진다. 요즘 가요 듣는 것의 100분의 1도 제대로 듣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글을 읽으면서 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가요나 팝송이나 자기 자신이 지은 노래등을 웅얼거리는 것을 보면 삶 속에 노래가 자리하고 있다. 지금도 청산리 벽계수야~ 로 이어지는 이 대목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옛 노래의 숲을 거닐며 자연스레 몸을 흔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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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
레이철 조이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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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적인 이야기다. 첫 부분을 읽을 때 약간은 도식적인 이야기가 펼쳐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뒤로 가면서 진솔한 감정이 섬세하게 표현되었고 눈물샘을 자극했다. 어떻게 보면 단순히 한 노인의 도보 여행인데 그가 길에서 만나는 사람과 자신의 감정과 사람들의 기대가 뒤섞이면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속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흔한 기적 이야기가 아닌 잊고 싶어 하거나 절대 잊을 수 없는 과거의 삶이자 현재이자 미래다. 그것을 제대로 바라볼 때 이 소설의 감정은 증폭되고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성실하게 일하다 정년퇴직한 해럴드에게 한 통의 편지가 온다. 그 편지에서 모든 일이 시작한다. 그것은 20년 전 같은 회사에 근무했던 퀴니 헤네시의 편지다. 그녀는 암에 걸려 죽기 직전이다. 이때만 해도 그녀에게 이 편지에 대한 답장을 보내고자 하는 마음이 전부였다. 주유소 아가씨가 암에 걸렸던 자기 고모와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 이후 자신도 모르는 힘에 이끌려 그는 직선으로 800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걸어가게 된다. 실제 잘못된 길로 간 것을 포함하면 1000킬로미터가 넘는 대장정이다. 우발적인 일에서 시작한 조그만 발걸음이 자신이 모르게 놀라운 순례로 바뀐 것이다.

 

많은 이야기기 해럴드를 중심으로 펼쳐지지만 그 배우자인 모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두 부부는 20년 동안 함께 살고 있는 남과 다름없었다. 부부였다는 흔적만 남은 상태에서 둘은 한 집에 살 뿐이다. 처음에는 그렇게 심각하게 다가오지 않았는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이 둘 사이에 어떤 큰 틈이 있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그 틈새가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지 알게 될 때 상실을 겪은 두 남녀가 어떤 보호색을 가지게 되는지 보게 된다. 오해와 비난이 자리한 곳에 묵묵한 견딤이 있고, 후회는 삶 속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하지만 결코 이 사실을 마주하고 싶지 않기에 둘의 틈새는 좁혀지지 않는다. 살아도 살아있는 것 같지 않던 해럴드에게 이 도보 여행은 새로운 삶에 대한 첫걸음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기대를 몇 번이나 저버린다. 기대보다는 예상이란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전개되겠지 생각하고 읽다보면 그 예상은 산산조각난다. 60대 노인이 충동적으로 도보 여행을 나섰을 때 제대로 여행 도구가 갖춰지지 않았다. 아마 그에게 현금카드가 없었다면 생각보다 더 빨리 여행이 끝났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다른 방향의 여행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여행은 무대포다. 준비는 걷는 도중에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에게 도움을 준 사람들을 통해 하나씩 갖춰진다. 동시에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서 그는 현금카드를 비롯해 지갑과 손목시계 등의 물건을 집으로 보낸다. 개인적으로 첫 감동을 받은 대목이자 섣부른 예상을 하게 된 첫 대목이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그의 여행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려주는데 이것이 언론을 자극한다. 언론은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어느새 그의 곁에서 수많은 순례자 무리가 생긴다.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무리에서 권력을 쥐고 싶은 사람이 생기고, 이를 따르는 무리도 역시 나온다. 상업적 목적에 의해 그의 도보 여행이 왜곡된다. 하지만 변함없이 그는 포기하지 않고 굳세게 걸어간다. 이때 다시 한 번 더 변화가 생긴다. 예상하지 못한 대목이다. 이런 예상 못한 장면들이 나오고 그 속에 해럴드의 진솔한 감정들이 솟아져 나올 때 잔잔한 울림은 점점 커진다. 반면에 기적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지독한 현실의 높은 벽이 자리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두 개다. 하나는 아들 데이비드가 물에 떠내려갈 때 해럴드가 신발끈을 묶고 있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해럴드와 모린의 첫만남이다. 상실과 상처로 가득한 신발끈이라면 첫만남은 이것들을 깨끗하게 씻어줄 사랑을 담고 있다. 그래서 “그게 그거였어, 사랑. 별거 아닌 말이었지. 하지만 우리가 행복했기 때문에 웃겼던 거야.”(394쪽)와 같은 문장이 나온다. 삶의 수많은 질곡을 겪고 아픔을 견뎌낸 이 노부부에게 별거 아닌 말이 환희에 찬 행복한 웃음을 전해준다. 우리가 살면서 가장 흔하게 하지만 가장 그 원래 의미를 잊고 살아가는 별거 아닌 말 사랑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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